이 글은 예수회 본국의 예술신학과 예술교육이 중국이라는 선교지의 예술선교 방식에 어떤 영향 주었는지를 17세기경 중국에서 만들어진 엠블럼 북의 제작과 이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을 살펴봄을 통해 고찰해 보았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예수회의 예술신학과 예술교육에 대해 살펴보았다. 기존에 예수회의 ‘예술신학’(Art Theology)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지 않았던 예수회의 예술에 관한 신학적 관점을 ‘예술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하고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하였다. 하나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신학에 담겨진 아름다움과 예술에 관한 함의이다. 아퀴나스는 현실세계가 선한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이며 하나님의 진리와 선, 아름다움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아퀴나스는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은 신적 창조의 아름다움을 파악하고 자연 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창조를 모방하는 행위로서 가치 있게 여겼다. 피조물을 재현한 예술작품은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을 계시하는 하나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보았으나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다른 하나는 예수회의 ‘영적 이미지’(spiritual images)라는 이론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에 복음을 피조물의 이미지를 통해 은유적으로 이해시키고 각인시켜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이러한 예술신학적인 관점에 따라 예수회에서는 이미지를 활용하여 신앙을 교육하고, 예수회 대학에서 원근법을 가르쳐서 복음을 전하고 회원들과 신자들의 신앙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엠블럼 북과 같은 삽화와 이에 대한 해설을 곁들인 책들이 유럽 본국에 널리 전파되고 유행하였다.
3장에서는 예수회의 예술신학과 예술교육의 내용들이 중국이라는 선교지에서도 적용되어 반영되는 과정을 17세기에 유럽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중국에 가서 제작했던 중국말로 번역된 도해와 중국적인 모티브와 양식이 가미된 엠블럼 북들을 통해 살펴본다. 그 중에서도 기울리오 알레니(Giulio Aleni)가 중국에서 제작한 『천주강생출상경해』(Tianzhu Jiangsheng Chuxiang Jingjie)는 유럽에서 제롬 나달(Gerome Nadal)이 만든 『그림으로 된 복음 이야기』(Evangelicae Historie Imagines)에 관한 그림에서 몇 점을 뽑아서 예수의 생애를 중국인들에게 소개한 책이다. 알레니는 유럽의 언어로 되어 있는 그림의 해설 부분을 중국어로 번역하였고, 그림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중국적인 표현을 서양양식과 혼합하여 표현하였다. 이러한 이미지는 유교라는 현실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중국인들에게 예수의 생애의 초자연적인 부분들을 보여줌으로써 당대 유교 사대부들로부터 글을 모르는 일반적인 중국인들에게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예수회의 예술신학과 예술교육이 중국 예술선교의 방식과 상호작용한 사례에 대한 고찰은 예술선교나 사역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개신교와 한국의 중국선교 상황에 몇 가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먼저 개신교의 예술신학과 예술교육의 연구 기반을 좀 더 확고히 하는 가운데 예술 선교사역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러한 예술 신학적이고 예술교육의 이론적인 측면이 신학교 커리큘럼에 좀 더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예술신학과 예술선교가 서로 영향을 줌으로써 복음이 들어가는 다양한 문화 속에서 한층 더 방향성 있고 풍성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If you want to write a mission history, academic dilemmas hinder you to sustain objective perspectives due to your confessional orientation. We mission historians believe that God has a grand plan of salvation for humankind and we are witnessing His story in the history of mission. Secular historians, however, do not believe in this kind of confession orientation. Rather they despise this kind of approach as the lack of academic objectivity. We mission historian must find the third way for writing mission history which could be shared not only with our fellow Christian scholar but also secular historians who believe in the objectivity as the primal condition for writing history. This paper suggests the method of Jacob Burckhardt(18181897) who proposed a flexible approaches in historiography. He criticizes that history is neither logic nor philosophy which is logical framework is firm and decisive. History writing should, according to Burckhardt, flexible because the interpretation of history should be open. The present author shows that this kind of flexible historiography could be accommodated in a new way of mission historiography. To show an example the author interprets the early Jesuit Missionary Matteo Ricci from the flexible mission historiography: Push factor and Pull factor. The author claims that writing mission history in more flexible historiography could be achieved by comparing push factor of missionary sending and pull factor of missionary receiving. Early Jesuit mission history will be more flexible if we approach the Jesuit mission from politics(of missionary sending from 16thcentury Europe and missionary receiving from the late Ming China's political situation), culture, and religion.
19세기에 중국에서 활동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가톨릭교회의 선교에 비 해서 그들의 선교가 여러 측면에서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음을 인식하 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교현장에서 의도적으로 개신교회가 ‘성서의 종교’ 임을 강조하고, 성서를 번역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으며 성서를 보 급하는 일에 노력하였는데 이는 개신교 선교부의 가톨릭교회와의 차별화 전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가톨릭교회가 초기에는 ‘선교보호권’(宣敎保 護權)을 중심으로, 1622년부터는 포교성성(布敎聖省)을 중심으로 하여 국 가 및 교황청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 및 중국선교를 수행하였던 것과는 달리 개신교 선교사들은 대체적으로 자발적 선교회 등을 중심으로 하여 국 가 또는 강력한 교회중심체제로부터 벗어나 선교를 수행하였다. 일부의 현 상이나마, 가톨릭교회가 기독교를 선점한 중국에서 그리고 당시 직접적 복 음전도의 자유가 없던 중국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의 최선의 전략은 성서원 문으로부터의 성서번역과 보급이었으며 이는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자신들 의 정체성과도 일치하는 일이었다. 로버트 모리슨의 번역본을 시작으로 첫 100여년동안 8개의 다른 중국어번역본을 출판한 개신교의 열정이 그들의 성서에 대한 관심을 증거한다. 그러나, 대립되는 성서판본을 출판할 수밖에 없었던 개신교회의 불일치성은 오늘날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기도 한다.
유명한 예일대 역사가 케네스 스코트 라투레트(Kenneth Scott Latourette, 1884–1968)는 기독교의 전 역사를 ‘확장’(expansion)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하며, 특히 ‘예수의 영향력 확장’이라는 주제를 자신의 역사관으로 설정하고 이 사상을 일평생 유지했다. 그렇다면 그는 이 사상은 언제 그의 역사관과 선교관으로 확정했을까? 일반적으로 1937년 이래 수년에 걸쳐 출판된 『기독교확장사』(A History of Expansion of Christianity, 1937-45)가 그의 이런 역사관이 구체화되는 시기라고 주장되는데,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라투레트에게 이런 역사관이 없었을까?
1937년 이후 확고히 정립되는 ‘예수의 영향력 확장’으로서의 기독교 역사라는 표현 자체는 1929년에 출판된 첫 기독교 역사 관련 저작 『중국기독교선교역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라투레트가 이 책에서 기독교 선교사를 중국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서구의 대리자로 묘사할 때, 독자는 그가 1937년 이후 저술에서 등장하는 ‘예수의 영향력 확장’으로서의 기독교 선교역사라는 개념과 거의 같은 인식을 하고 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중국에 끼친 서구의 영향력’이라는 표현으로 자주 등장하는 명제는 사실상 ‘서구’를 ‘기독교’로, 또 ‘기독교’를 ‘예수’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즉, 1937년 『기독교확장사』 이후에 구체화되는 명제가 이미 1929년 저작에서 배아의 형태로 표명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기독교선교역사』는 단순히 ‘명제’에서만 1937년 이후 작품들의 선구적 배아가 아니었다. 공정하고 편파적이지 않기 위해 기독교역사 해석은 반드시 여러 교파를 통합과 비교의 방식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에큐메니컬적 역사기술, 또한 예수의 영향력은 교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므로, ‘교회사’가 아니라, 반드시 교회 바깥의 모든 영역을 포괄적으로 기술하는 ‘기독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 기독교 신앙이 선교를 통해 퍼져나갈 때, 이는 마치 파도의 고저, 밀물과 썰물의 반복되는 양상처럼 진보와 후퇴를 반복하지만 결국에는 전진한다는 믿음 등, 1937년 이후 작품에서 구체화된 라투레트의 모든 역사기술 방법론과 관점은 사실상 1929년의 『중국기독교선교역사』에도 흔적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선교사와 선교활동의 공헌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고, 결국에는 기독교의 확장으로 역사가 진보할 것이고 윤리가 개선될 것이라 믿는 이상적이고 순진하고 낙관주의적인 승리주의 역사관이라고 라투레트의 후기 저작을 비판하는 목소리 또한 이미 1929년에 출판된 『중국기독교선교역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 점에서 『기독교확장사』(A History of Expansion of Christianity, 1937-45), 『아노 도미니: 예수, 역사, 하나님』(Anno Domini: Jesus, History, and God, 1940)과 『꺼지지 않는 빛』(The Unquenchable Light, 1941), 『기독교사』(A History of Christianity, 1953), 『혁명시대의 기독교』(Christianity in a Revolutionary Age, 1958-62), 『기독교의 역사』(Christianity through the Ages, 1965) 같은 라투레트의 후기 대작은 모두 『중국기독교선교역사』에 빚을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