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상황은 그것이 가져오는 이해가능성에 그 힘을 의존하며, 그런 이해가능성은 그 자체가 변형의 도구인 ‘정확하고’ 구체적인 양식을 통해 설명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마힘바타(7세기 인도 이론가)와 아누마나와 관련된 그의 이론화 (추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르면, 첫째, 자연 속에서 계속되는 모순되지 않 는 보편적 관계(vyapti)에 의해 객체와 주체가 함께 결합될 때, 이 둘은 변모한다. 둘 째, 마힘바타는 연역법칙에 의해 필요에 따라 일상적인 것에서 의미 있는 것으로 발전 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만 예술성이 보편화된다고 주장한다. 일상적인 것에서 의미 있는 것으로의 예술적 경험의 이 두 가지 탁월하게 빛나는 전제를 바탕으로 예술성의 동시성과 전시를 낳는 것이 가능해진다. 마힘바타의 추론 이론에서 발전된 개념적 구 조를 바탕으로 W. B. 예이츠와 T. S. 엘리엇의 시를 읽을 때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 다. 예이츠의 시에서 육체와 영혼은 각각 작은 것과 큰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두 용어로 나타나며, 둘 다 퇴폐와 해방에 의해 결합되어 궁극적으로 보편적인 병존 (vyapti)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엘리엇의 시에서 고통, 불임, 죽음은 육체와 관련되 는 용어이고 진리와 지식라는 용어는 영혼과 관련된다. 낮은 수준에 몸이 있고 높은 수준에 영혼의 내재가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병존(모순되지 않은 보편적 경험)이 있는 반면 몸은 영혼으로 발전한다. 모든 사실은 필연적으로 마힘바타의 아누마나 (Anumana)에서 확립된 추론에 귀속된다.
몰개성은 경험의 진실을 가져오기 위해 예술가의 입장에서 행하는 실천 이다. 그러한 진실한 경험은 현실과 아름다움을 모두 포함한다. ‘실재적’인 능력 안에 서 우리는 몰개성의 경험이 충만함과 전체성을 가져온다면 몰개성의 미적 상태가 더 큰 이해를 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 S. 엘리엇, W. B. 예이츠와 존 키츠는 인 간 삶의 모든 의미를 ‘결집’하여 예술로 만듦으로써 ‘감수성의 메커니즘’을 고안하여 예술을 창조했다. 이 위대한 시인들에게 몰개성화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현상과 현실이 구별되는 방식에 기반을 둔다. 따라서 엘리엇은 일상의 경험을 단편, 무정부 상태 및 불규칙성과 동일시하지만 예이츠는 일상의 수준에서 나타나는 동일한 경험을 대립적 으로 본다. 한편 키츠는 탐닉이 최대 상태의 일상의 사건들과 상황들로 일상을 위치시 킨다. 전체성의 출현이 연기되는 분명한 현상에 대한 해결책으로 엘리엇, 예이츠, 키츠 는 경험의 진리를 실현하기 위한 확실한 조치인 ‘몰개성,’ ‘존재의 통일,’ ‘부정적 능 력’을 제시한다.
My paper aims to find the locus of emotion in T. S. Eliot’s objective poetics. Eliot is best known as the promulgator of modern poetics of objectivity in contrast to the Romantic conception of poetry emphasizing subjective feelings. Specifically, along with “an objective correlative,” “impersonality,” defined as “escape from emotion” or “escape from personality,” becomes the watchword identifying the objectivity of his poetic theory. The problem is that the subsequent Modernist reception of Eliot’s poetics contains misunderstanding it as if it disregarded the emotional aspect of poetry. But, actually, Eliot affirms emotion and personality as the essential poetic experiences over and over again throughout his essays on poetry. And even in those scholars who have recognized that affirmation, the problem lies, too: they are at a loss, looking on Eliot’s acknowledgment of both personality and impersonality as a contradiction. In an attempt to solve these problems, my thesis has raised and justified the argument that Eliot, in his basic premise, allocates “impersonality” in the sphere of the poetic technique of creation and “personality” or “emotion” in the locus of the poetic content. By finding the locus of emotion in another poetic sphere than the objective technique, my argument has concomitantly clarified that Eliot’s conceptions of personality and impersonality are not contradictory at all but consistent over the critical writings published throughout his career.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시에서 “고독”이라는 주제는 동시에 나타나지만 그 성격을 달리한다. 윌리엄 워즈워드가 그의 작품 「외로운 추수꾼」과 「나는 구름처럼 외로이 배회했네」에서 드러내는 “고독”의 의미는 혼자 만의 호젓함을 내포하지만 T. S. 엘리엇의 작품 황무지 ,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와 「바람부는 날의 광시곡」에서 나타나는 고독은 도시의 풍경에서 비롯된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시인들의 시학에 근거하여 워즈워드와 엘리엇의 작품들 속에서 낮에 경험한 자연의 모습과 밤에 겪는 도시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어떻게 “고독”과 “소외”로 구분되어지는지를 증명해 본다. 낭만주의 “고독”은 관찰과 명상을 통해서 얻어지지만 도시환경에서 발생하는 “소외”는 도시인을 방황하게 만든다. 그리고 본 논문은 엘리엇의 “몰개성성”과 “통합적 감수성”에 기반을 두어 어떻게 인간소외가 불안정한 정신과 육체적 불안정을 야기 시키고 마침내 공허함과 무기력을 낳게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엘리엇은 이론과 실제, 즉 비평과 시 사이에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사실 엘리엇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특히 개별 작가에 대한 비평적 관점이 변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엘리엇 스스로도 이를 의식하였으며, 이러한 비난에 대한 대안으로 그가 제시한 것은 시 적 기법이다. 엘리엇은 초기부터 시작 행위자의 비평을 줄곧 옹호해왔 듯이 창작행위는 비평에 우선한다고 하였다. 즉 그의 이론을 정당화하 는 것은 바로 시라는 덕이다. 그러나 엘리엇에게서 이론과 실제는 일방 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으로 그의 시 이론과 시 창작행위 사이의 긴밀성을 추적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엘리엇의 몰개성시학을 정당화 하 는 작업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 기법은 엘리엇의 이론과 실제, 형식과 내용을 연결해 주는 수단이며, 동시에 시학이론—즉 시는 그 자체로 자 기 충족적이라는 이론—을 시험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인 것이다. 셰익스 피어, 단테, 형이상학파 시인, 상징주의자, 이미지스트 등은 모두 이러한 몰개성 기법의 연구자로서 엘리엇에게는 유의미했다.
본 글은 롱기누스의 「숭고에 관하여」에 나타난 그의 창작관을 토대로엘리엇의 창작관과 비교해 보았다.
먼저 롱기누스는 문체상의 우수성을 언어표현의 뚜렷한 탁월성이라 주장하는데 이는 엘리엇에게 평범한 또는 일상적인 언어표현으로 나타 난다. 그러면서 롱기누스는 지나친 과장을 절제하고 적절한 과장을 권 유하면서 창작자의 중간조절장치를 요구한다. 이것이 엘리엇에게는 객 관적 상관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롱기누스의 지적통제와 맥을 같이 한다. 다시 말해 작가는 지나치게 독창성을 추구한 나머지 미성숙함에 빠져들어서는 안되며 이를 위해서는 선배작가들의 장단점을 살펴 보아 야한다는 점에 있어서 롱기누스와 엘리엇은 서로 유사하다. 또 한 가지 지시대상의 명확화를 롱기누스는 들고 있다. 이는 청자의 집중력을 의 도한 롱기누스의 주장이라 할 수 있으며 엘리엇 또한 이를 작품에서 그 대로 보여주고 있다.
In his creative activities, T. S. Eliot used a systematic mysticism as the basis for the aesthetic principles of modern poetry and criticism. Seemingly, Eliot’s aestheticism resembles much of Romanticist organic unity in mind, poetry, and criticism; but Eliot disliked the personal tastes of poetic romanticism, which were largely an extension of Western romantic idealism. Eliot’s impersonal theory of poetry was, in fact, involved in many aspects of his understanding of Chinese poetry and tradition, as well as F. H. Bradley’s philosophical ideas. Briefly, as we see from Ezra Pound, Eliot is at once Confucian in form and Taoist or Buddhist in spirit. Such enlightened mysticism in Chinese thought has much to do with Eliot’s poetics, especially Bradleyan philosophy, in which philosophy and religion are considered neither academic nor dogmatic, but practical and felt, such that we experience it daily. This is called religio-philosophical experience as found in Eliot’s poetry Four Quartets and also is commonly found in Chinese ideas, especially the middle point (chung-mean) of the temporal (ch’i-spirit) and the timeless (li-principle), and thinking and beha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