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명 건국 이후 산동사행로 개통을 위한 고려의 외교적 노력과 함께 정몽주 가 1386년 사행에서 남긴 시를 통해 산동 遼霫 지역의 군용과 登州와 萊州 지역의 경물을 살펴보았다. 정몽주는 요습 땅을 오가며 명나라가 전략 요충지에 설치한 衛 所와 驛站 등을 시로 기록하고, 遼河를 가득 메운 漕運船을 시에 담았고, 旅順口에서 는 군사와 군수물자를 나르는 수많은 병선을 목격하고 시로 남겼다. 발해를 건너 등 주와 래주를 경유한 정몽주는 사마천의 史記 등 역사서와 선인들의 문집에 기록된 진시황과 관련한 蓬萊閣과 之罘山, 田橫의 고사와 관련한 田橫島와 鳴呼島, 海神廟 등에 대한 시뿐만 아니라 현지 뱃사람들의 媽祖信仰을 기록했다. 본고는 산동의 경 물과 함께 요동 정벌을 위해 군용을 갖추어 가던 당시 상황을 기록하고, 전쟁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삶을 기록한 정몽주의 시가 갖는 ‘詩史’적 가치를 밝히고자 했다.
한반도의 인삼은 중국의 비단과 차, 일본의 은과 함께 동아시아 상품교역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중요한 상품이었고, 지금도 그 상품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인삼이 해외 수출상품으로 확립된 것은 개성상인들의 노력에 힘입은바가 크고,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개성상인 孫鳳祥과 孔聖學은 紅蔘과 白蔘 등 인삼제품을 해외시장에 수출한 주역이었다. 전통학문에 대한 깊은 소양을 갖춘 儒商 손봉상과 공성학은 중국, 대만과 홍콩 등지의 홍삼판매처를 시찰한 자신들의 활동을 『中遊日記』와 『香臺紀覽』에 남겼다. 그러나 개성상인들이 남긴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시장 시찰기라 할 두 책을 텍스트로 한 홍삼판로 시찰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상황이라 이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 본고는 일제강점기, 개성상인들의 중국 및 세계 인삼시장에 대한 인식과 함께 고려 인삼의 해외시장 개척에 대한 그들의 의지와 노력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吳漁山은 ‘虞山畵派’의 한 사람으로 ‘淸代六家’라 불린 저명한 화가였고, ‘虞山詩派’의 일원으로 시인으로서도 상당한 문명을 가졌다. 錢謙益의 가르침을 좇아 ‘博學’과 ‘詩史’의 정신을 계승한 오어산은 만주에서 일어난 이민족이 한족의 왕조를 뒤엎는 전란의 시기를 만나 常熟과 江南의 강과 바다를 떠돌며 자신이 보고들은 일들을 시로서 기록하고자 하였다.
본고는 오어산의 전기 시를 전하고 있는 『寫憂集』 중에서 위급한 시대를 만나 ‘근심을 적는다’라는 詩集名에 부합하는 시들을 분석대상으로 하여 그가 탄식하고 근심한 바가 무엇이었는지, 시로서 기록하고 알리고자 한 바가 무엇이었는지 미루어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본문에서는 『寫憂集』에 수록된 시를 ‘亡國之優’, ‘哀民之優’, ‘生活之優’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또한 오어산의 시는 사회와 시대를 그려내고 투영했던 두보의 ‘詩史’의 전통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농사 지으며 부지런하게 살아가며 자신의 생활을 진실 되고 평담한 어투로 소묘하듯 표현해낸 도연명의 태도를 결합하려고 노력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나라 초기 산수화단을 대표하던 “淸初六家”의 한사람인 吳漁山은 康熙 27년(1688) 8월 1 일 사제품에 오른 후 선종 때까지 약 30년간 江南地域 선교사업에 종사하였다. 그의 선교활 동은 크게 上海에서 보좌신부로서 생활하던 시기와 嘉定에서 본당신부로 활동 하던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三餘集』은 오어산 신부가 강남지역에서 修道生活, 司牧生活, 敎導生活을 하는 여가에 지은 광의의 天學詩들을 수록한 것이다. 陳垣 선생은 오어산 신부의 선교 생애를 ‘窮’과 ‘忙’으로 개괄하였는데, 연구자는 여기에 ‘愁’를 더하여 오어산 신부의 삶과 고민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三餘集』에 수록된 시를 통해 보면 오어산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라틴어와 교리에 대한 학습 의지를 접지 않았고, 목자로서 사목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며 바쁜 나날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 속의 영웅과 고사 들을 인용하여 기독교 교리를 알리고자 하였다. 본문에서는 오어산 신부가 『三餘集』에 남긴 천학시들을 修道詩, 司牧詩, 敎導詩로 나누고, 이상의 내용들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도문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시와 마주한 간도의 국경도시이다. 1932년 만주국의 신경과 도문을 연결하는 경도선철도건설공사의 착공과 함께 성장한 도문은 이후 ‘북조선 삼항(청진, 웅기, 나진)’의 배후도시, ‘중계 국경역’으로 발전하였다. 현경준은 일제 강점기 도문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조선족 소설가이다. 1937년 일제의 문화동화정책을 피해 만주로 이주한 현경준은 국경도시 도문에 거주하면서 현지에서 생활하는 조선인의 삶과 ‘밀 수’라는 사회문제에 천착하였다. 현경준은 작품을 통해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밀수를 할 수밖에 없었던 현지 조선인들의 삶을 변호하고, 그들을 ‘타락’으로 이끈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을 간접적으로 비판하였다. 또한 현경준은 도문역을 통해 북만주로 이주하는 조선인의 모습을 작품 속에 담았다. 그는 국경도시 도문역을 배경으로 일제의 식민정책으로 자기의 고국에서 못살고 타국으로 쫓겨 가는 인민들, 이민자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제공하지 않는 이민 보도소 관리, 그들의 배후에서 기생하는 인신매매업자 등의 다양한 군상들을 통해 도문이란 국경도시가 갖는 의미와 함께 일본제국주의의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내었다.
본고에서는 1688년 57세의 나이로 사제 서품을 받고 上海에서 10년간 선교활동(‘十年海上’) 을 수행한 예수회 신부 오어산의 삶을 통해 동질적인 가치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가톨릭과 유 교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고유문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해결하고, 두 문화를 융합 하기 위한 그의 노력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오어산의 三餘集 속에 수록된 시 가운데 상해에서 창작한 기독교문화와 예수회 신부들의 활동을 담아낸 광의의 天學詩를 분석 대상으로 하였다. 본문에서는 먼저 상해지역의 기독교 전교기지였던 老天主堂을 중심으로 한 예수회 오어산 신부의 생활을 살펴보고, 예수회원의 중국 선교활동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 당했던 서양의 천문학과 자연과학지식에 대한 그의 태도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예수 회 신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바티칸 포교성의 지휘와 감독을 받게 된 중국 지식인의 글로벌한 종교 활동을 살펴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오어산 신부가 상해지역의 선교활동에서 보여준 목자로서의 노력,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자 한 선교사로서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기독교와 중국 고유문화를 융합하고자 노력한 예수회 신부 오어산의 사목활동이 갖는 로컬적인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天學詩란 명말 청초 중국 고전시가의 형식을 빌려 천주교의 교리와 전례 등에 관련한 내 용을 담아낸 시를 이르는 말로, 청나라 초기 중국인 예수회 신부 吳漁山이 처음 사용하였다. 오어산은 ‘淸初六大家’의 한 사람으로 화가로서 명성이 높았으며, 지천명의 나이로 ‘聖名之城’ 이라 불린 마카오의 성 바오로학원에서 예수회 수도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던 특이한 인물이 다. 『三巴集』은 성 바오로학원에서 생활하던 오어산이 해항도시 마카오의 자연·인문환경을 노래한 『澳中雜詠』과 새롭게 학습한 기독교의 교리와 전례, 그리고 그가 속했던 예수회의 규 율과 성인들을 송찬한 시를 모은 『聖學詩』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에서는 『澳中雜 詠』에 나타난 천학시와 함께 『聖學詩』에 수록된 천학시를 교리시, 전례시, 송찬시 세 부분으 로 나누어 분석하고 중국고전문학에서 천학시가 갖는 의의와 함께 해양을 통한 동서양 인문 학의 교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