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5

        1.
        2020.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지좌리유적의 유물 분류를 통하여 순서배열보충법으로 편년한 9개 단계(Ⅰ~Ⅸ기)를 이용하여 주 거지-수혈-구의 상호 층서ㆍ공간중복의 관계를 살펴서 시기가 불확실한 유구의 시간성을 보완하였 다. 이 결과를 취락의 변천과정을 살피기 위해서 5개의 期(一~五기)로 묶었다. 지좌리유적은 청동기시대 BC.10~6c.에 하천 충적지에 입지하는 山間聚落으로서, 제Ⅴ기에는 취락 전체가 침수되는 큰 수해를 입은 것이 판명되었다. 최초 一期부터 上ㆍ下區 2개의 구역으로 분리 되어 가옥이 형성되었다. 하구에는 청동기시대 전기의 확대가족 가옥인 세장방형주거지를 중심으로 대형과 중형 가옥이 다수를 차지한다. 반면에 상구에는 배후습지에 수로를 굴착하고 단혼가족의 소형 가옥이 중심이다. 두 구역 모두 2~4동의 가옥으로써 世帶共同體를 이루는 특징을 보이며, 각 구역 내 에서도 주거지는 2~4개소로 분할된다. 주거지의 규모나 수에 있어서 하구가 상구보다 우월하지만, 취락 대표로서의 대형가옥은 하구에서 二期에 먼저 출현하였고, 상구에는 마지막까지도 세대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三期이후에는 수해를 입은 탓에 다시 一期의 마을 형태로 복귀하였고, 세대 공동체가 분화하여 단혼가옥과 1동의 대형가옥으로 구성하는 형태로는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각 구역을 통합하지 못한 채 분할은 지속되었으므로, 결국 수장의 출현은 이루지 못하였다. 무덤은 하구에서만 확인되는데, 수해 이전에는 남단부에 2기, 五期에는 북단부에 1기를 조성하였 다. 전자는 수렵채집문화권의 묘제로서 부장품은 없었고, 후자는 석검ㆍ석촉을 부장한 석관묘였다. 무덤이 지속적으로 조영되지 못한 것도 수장사회를 이루지 못하였던 까닭일 것이다. 지좌리취락은 소하천 변의 한정된 농경지(밭)를 경작하였으므로 주변 산지의 채집경제에도 크게 의 존하였을 것이다. 산뿌리 쪽으로는 논 경작을 했다고 해도 집약농경으로써 잉여생산을 도모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취락이 전기의 혈연적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또 정치체의 중심인 특정 엘리트가 없이, 혈연적 가족단위의 생산공동체가 지속된 사회였다고 추정된다. 대외관계는 하천의 하류 13㎞ 거리에 위치하는 거점취락 송죽리유적과의 교류가 상정되며, 후반대 에는 주변의 중국 북방계와 일본 야요이계 문화도 유입되었다.
        9,200원
        2.
        2019.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취락고고학에서 주거지의 동시성을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유물 과 유구를 총망라한 양식 편년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기존의 토기의 문양이나 주거지의 형식을 통하여 청동기시대의 시기와 단계를 설정하였던 관습에서 벗어나 문양, 무문토기 壺, 淺鉢, 적색마연토기의 壺ㆍ甕ㆍ鉢, 內彎口緣甕, 底部의 두께, 胴 下半部 의 傾斜度 등의 器形과 또 석촉과 有溝石斧, 반월형석도, 방추차 등의 형태적 차이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주거지와 수혈에서의 공반상을 통하여 순서배열보충법으로 양식을 편년하였다. 그 결과 110개의 유구에서 51단계의 시간적 차이를 구분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단계는 너무 세분된 편년이라 취락의 변천 과정을 살피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각 단계에서 새로운 형식이 출현하는 경향을 살펴 9단계의 획기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점토대토기 단계에 발견할 수 있는 유물들도 나타나는데, 이것은 점토대토기 단계 직전의 재지계 유물의 변형으로서 先粘土帶土器文化(청동기시대 晩 期)를 설정할 수 있었다. 이 획기를 통하여 지좌리유적의 취락상은 협곡에 입지한 주변 취락으로 타 공동체와의 교류가 적어 전통문화의 존속기간이 긴 다소 폐쇄적인 성격을 밝힐 수 있었고, 청동기시대 전기ㆍ후기ㆍ만기의 문화가 혼재함을 알 수 있었다. 지면 관계상 차후에는 이 편년을 이용하여 지좌리유적 Ⅰ~Ⅸ기(기원전 1100년~550년 전후)의 취락 변천 과정을 살펴서 그 시대상을 복원하고자 한다.
        7,800원
        3.
        201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엽록소형광반응 분석을 이용하여 건조스트레스에 의한 공정육묘의 광화학적 활력을 분석하였다. 토마토와 오이 공정육묘를 8일 동안 건조스트레스 처리를 하였다. 엽록소형광반응 (OJIP)과 매개변수 분석을 통해 건조스트레스로 인한 작물의 광화학적 변동을 평가하였다. 엽록소 형광반응 (OJIP) 분석 결과, 토마토는 처리 후 5일부터 최대 형광량 (P)이 감소한 반면 J-I 단계에서는 엽록소 형광량이 증가하였다. 따라서 생리적 활력이 감소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이의 경우 처리 후 4일부터 최대 형광 (P) 및 변동 형광량 (FV)이 낮아지고 J-I 단계의 엽록소 형광 수치가 증가하였다. 엽록소 형광 매개변수 분석한 결과 토마토는 처리 후 5일부터 특히 ET2O/RC와 RE1O/RC가 감소하면서 광계II와 광계I의 전자전달효율이 유의적으로 낮아진 것으로 보인 반면 오이는 처리 후 4일부터 ET2O/RC와 PIABS가 상당히 변화하였다. 결론적으로 FV/FM, DIO/RC, ET2O/RC, RE1O/RC, PIABS, PITOTALABS 6개의 지표가 공정육묘의 건조스트레스를 판단하는 지표로 선정되었다. 건조스트레스지수 (DFI)를 통해 건조스트레스로 인한 작물별 건전성 평가를 하였고 오이의 경우 토마토에 비해 건조 저항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4,000원
        4.
        2014.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1995년 검단리유적을 보고하면서 소위 형식학적 편년틀 위에서 취락의 변모를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후 2008년에 유병록씨에 의해 제기된 문제점들이 발표되고, 또 필자가 주장하던 검단리 유적 선송국리문화론이 계속적인 발굴 연구로써 허구임이 밝혀지게 되고, 검단리유형이 설정되기도 하였다. 필자도 이 검단리유형은 농경문화중심의 송국리문화에 비하여 수렵어로채집문화가 강한 사회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차제에 늦게나마 유병록씨의 질의에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답하게 되었다. 먼저 분류의 잘못을 지적하고 수정하였다. 보고서의 분류체제를 그대로 사용하였기에 편년에 크게 유용하지는 못한 부분이 있었다. 편년의 방법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순서배열법을 사용하지 못하였음 을 밝혔다. 본고에서는 발생순서배열법의 새로운 조작방법을 소개하고 그 결과로서 22단계의 군집을 상대편년할 수 있었다. 이것을 다시 주변 거점취락의 출토자료를 활용하여 각 유물의 형식의 출현과 소멸시점을 복원하고, 각형식의 조합상으로써 Ⅰ∼Ⅵ기를 설정하였다. 검단리취락의 복원을 위하여 환호취락을 기점으로 그 전후시기에 주거지 중복된 상황을 살펴서 환호 전시기를 3단계로 환호 이후시기를 2단계로 파악하여 총 6단계의 취락구성을 Stage1∼6으로 설정하였다. 또 각 Stage에서 주거지의 분포를 통하여 검단리유적 구릉의 A구와 사면부의 B구로 나누었다. 취락변천의 전반적인 경향은 A구는 중형가옥이 증가하는 추세로, 그리고 씨족체가 분립하다가 세대공동체단위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인데 반하여, B구는 환호취락 이전에는 A구와 같은 방향으로 전개되다가 환호 이후부터 쇠락해지며, 그후 1동의 중형가옥과 다수의 소형가옥으로 구성된 씨족공동 체의 형태로 지속된다.
        8,300원
        5.
        2004.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사회적 실천’은 ‘개인의 도덕수양’과 다르다. 그것에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총칙, 즉 무엇보다도 중요한 절대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런 총칙에 따라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이 존재한다. 모든 사회실천은 이런 총칙과 방법들에 근거해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분명한 기준을 갖고 올바로 판단, 평가해야 한 다. 이 글은 이상의 내용을, 왕부지의 사장에 근거하여 서술한 것이다. 원론적이고 추상적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 이 사회실천의 총칙이라는 왕부지의 주장은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총칙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제시된 방법이나, 실천의 구체적언 내용 및 판단 평가의 기준 또한 우리가 심각하게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혹자 는 왕부지의 이런 주장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하등의 효과를 얻기 어렵다고 평가절하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철학사상이라는 것이 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려는 학문이 아니라 그 해결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인 한, 그와 같은 비판은 아무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분명한 이론적 근거를 갖는 원칙들이 정립된다면,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형편없는 수준의 혼란상은 자연스럽게 소멸되리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