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조선 말기에 서인순과 권도용이 창작한 「천령악부」의 내용과 특징을 처음으로 검토하여 소개하였다. 서인순의 「천령악부」20수는 칠언절구 연작시 형태로 구성된 것으로, 함양 지방의 유적지와 명승지를 집중적으로 읊은 죽지 사 계열의 작품이었다. 권도용의 「천령악부」50수는 이동양의 악부시를 참고하 여 창작한 것으로, 작품의 구성방식이나 형식 등이 조선후기 영사악부과 동일 한 계열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기존의 죽지사나 영사악부와 크게 다른 특징을 드러내었 다. 서인순의 작품은 민풍습속보다 지방관의 행적을 중시하고, 비판정신보다 지방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자 하였으며, 작품의 서사적 배경보다 작자의 현 재적 감회를 충실하게 드러내어, 죽지사 다운 특징이 크게 약화되는 현상을 보 여주었다. 권도용의 작품도 함양 지방에서만 작품 소재를 찾고, 이를 시간 순서 에 따라 정리하지 않은 점이 기존 영사악부와 크게 달랐다. 이런 점은 죽지사와 유사한 특징인데, 작품의 소재 선택이나 서술 시각은 죽지사와도 또 달랐다. 민 풍습속보다 모범적인 삶을 중시하고, 충 효 열 등 유교적 덕목을 강조하였으며, 비판과 고발보다 교훈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 그런 점이다. 이처럼 서인순과 권도용의 「천령악부」는 죽지사와 영사악부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실상에 있어서는 크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변화는 한국 악부시의 말기적 창작 실상을 보다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도 록 해준다는 점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변화의 방향이 악부시의 고유한 가치를 상실하는 쪽으로 귀결되었던 점에서는 한계 또한 분명한 작품이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朴致馥의 《大東續樂府》는 조선시대 사화를 수용하여 악부체시 형식을 빌어 쓴 영사악부로서 28편이나 되는 시 모두를 일컫는 시집 이름이다. 작가의 창작 동기는 《大東樂府》를 보고 조선 시대 역사가 빠져 있어서 이를 보충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따라서 이 작품은 대동악부의 속편으로 조선 시대 사화를 중심 으로 지어진 것이다. 박치복의 《대동속악부》는 盧德奎의 《海東續樂府》와 내용이 같은데, 박치 복의 《대동속악부》가 원본이고 노덕규의 《해동속악부》는 박치복의 《대동 속악부》를 베낀 이본이다. 《대동속악부》는 조선시대의 王政, 烈行, 忠節, 學行, 孝行 등의 사화를 수용 하여 褒貶을 노래한 시로서 勸善懲惡의 교훈성을 지니며, 문학성과 역사성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28편 모두를 1편 3수의 편법으로 구성하였으며, 장편의 서사성을 더하여, 일반 영사악부들이 지니는 문학성, 역사성, 교훈성을 뛰어 넘 는 특성을 지녔다. 특히 1편 3수의 편법과 장편 서사시로서의 구성과 표현은 우 리 나라는 물론 중국 고악부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양식이다. 이를 통해서 작가의 충만한 표현 욕구에 의한 다양한 표현의 추구, 서사시의 다양한 변모, 연작시의 새로운 시도를 발견할 수 있다. 《대동속악부》는 중국의 악부에 대한 한국의 악부라는 개념이 바탕이 되어 서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노래를 중시한다는 작가의 역사의식에 의해 창작되었 다. 작품을 통해 작가의 서민의 삶에 대한 긍정, 조선 건국의 위대성, 충신, 열 녀, 학자, 효자의 아름다운 행실을 후대에 전승하려는 역사의식도 함융되어 있 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의식을 지니게 된 밑바탕에는 박치복의 역사관과 衛正斥邪 사상 이 깔려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대표적인 글이 「斥洋邪論」이다. 《대동속악 부》에 나타난 악부시적 성격과 작가의 역사의식을 통해 나타난 양상은 한국악 부문학사는 물론 漢詩史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