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존 던이 『드러나는 일들에 대한 묵상』 III에서 인간의 나약성, 죄, 그리고 한계성의 인식에서 비롯된 내적 분란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데 있다. 또한 이러한 내적 혼돈과 불편함을 전지전능하신 신의 목적과 현시에 대한 명상을 통해 어떻게 저항하고 극복해 가는가를 분석한다. 존 던의 이 작품 여러 곳에서는 영적 불안정성, 인간 삶의 유한함, 인간사의 여러 한계에 대한 생각으로 인하여 비롯된 영적 불안함을 성스러운 신에 대한 통찰을 통해 대면하고 극복해 나가는 영적 순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의 세 부분을 통하여 던은 구원에 대한 신성한 묵상을 통하여 내적으로 자기 파멸적인 고뇌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글은 도산의 사사로운 개인 생활사에 관한 試論的 小考라 하겠다. 그동안 도산에 관한 연구는 상당하다. 유명한 연설가로, 독립운동가로, 교육자로, 민족의 스승으로 등 여러 분야와 여러 관점에서 조명되었다. 따라서 도산에 관해서는 더 이상 연구주제를 찾기 어려울 만큼 큰 진척을 보았다. 그러나 개인 도산 안창호의 사사로운 개인적 삶을 구명한 연구는 별반 없었다. 이 연구는 이러한 점에 유념하여 도산 삶 가운데 상해에서 활동하던 기간 (1919-1921)으로 한정하여 그의 개인생활의 일단을 살펴보려 한다. 마침 이 시기 상해에서의 개인 삶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일기>와 <편지>가 있어 이를 중심으로 재구성해보고자 한다.
「벌레 이야기」는 자식의 유괴 피살로 고통을 겪는 한 어머니가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려 했으나 신정론적 고뇌에 부딪혀 자살하게 된 경위를 보여준다. 반면 「남경의 그리스도」는 한 경건한 창녀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녀의 삶에 일으킨 기적을 보여준다. 「벌레 이야기」의 그녀는 용서의 주체가 되어야 할 자신이 빠진 가운데 범인에 대한 신의 구원 계획이 그를 용서했다는 절망감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그래서 서술자인 ‘나’는 아들과 아내의 죽음을 신의 섭리에 희생당한 희생자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인간을 위한 인간의 신학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반면 「남경의 그리스도」에 등장하는 금화는 자신의 불행한 처지 가운데서도 오직 주관적인 믿음으로 매독을 치료받는 꿈의 기적을 체험한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신비체험을 전해들은 ‘그’는 금화가 그리스도라고 믿고 있는 그 실제 인물이 누구인가를 알고는 있지만 금화에게 알리지 않는다. 이처럼 신앙은 신의 말씀이나 약속에 대한 개인의 태도요 결단에 속하는 문제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경험하면서 동아시아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개편된다. 일본의 경우, 이 전쟁은 明治시대의「국체」를 확고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두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유럽의 열강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근대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변두리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암시하는「支那」로 위치가 격하되었고, 일본은 오랫동안 문화적으로 의존해 왔던 중화적 세계로부터의 분리를 위해 支那를 보급시켰다. 16세기「선교의학」이었던 서양의학은 제국주의가 팽창함에 따라 위생제국 건설의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었으며, 森鷗外와 魯迅은 이것의 가치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동양의 선두인 일본의 森鷗外도 나우만에게서는「他者化」된 오리엔트에 불과하다는 것이 논쟁을 통해 확인된다. 森鷗外 자신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나우만에 의해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야만이라는 가치 판단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森鷗外는 서양과 동등해지고자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强辯했다. 나우만은 서양의 눈으로 동양의 선두 일본을 마음껏 조롱하고, 그 衰滅을 예고한다. 하지만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총력적인 明治政府의 지원 아래 森鷗外의 과학적 위생국가 건설의 꿈은 점차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거기에는 文學者 ․ 軍醫 ․ 衛生學者인 森鷗外가 서양과「同等」해지기 위해 전투적으로 분신하는 모습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의학도 魯迅은 醫專 在學 도중, 자신의 역할에서 근대의학 효용의 한계를 깨닫고 문학으로 전환한다. 이 전환점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는 장소로서 仙台醫專이며, 時期로서 러일전쟁이, 후지노와 周樹人의 인연을 엮어내고 있었다. 支那人 의학도와 日本人 선생의 만남은 20여년 후 국책소설《惜別》을 낳게 되고, 文學報國會는 太宰治를 통해, 40여 년 전의 침략자의 施惠를 추억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仙台는 제국주의 실현의 한 장으로 볼 수 있으며, 오늘날에는 中日親善을 목적으로 그 추억은 이어지고 있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周樹人의 자아 비판적 회심은 혁명가 魯迅에게 정치적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지만, 魯迅으로 하여금 작품 속에서는 끊임없이 중도에 그만둔 근대 의학의 역할을 차용케 한다. 즉 魯迅은 누구보다도 근대 의학의 정치적 효력을 알고 있었고 근대문명을 수행하는 이가 의사임을 깨닫고 있었다. 위생 제국 건설에 전투적으로 이바지 한 森鷗外지만, 유학생활을 통해 발아한 서구자유주의 사상과 문학 창작에 대한 욕구 등은 제국주의 현실에 회의를 품게 했다. 이러한 間隙을 그는 문학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다. 이는 혁명가 魯迅이 정치적 변화를 문학이라는 도구로 풀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인다. 따라서 근대 서양의학은 선교사를 따라 또는 식민지 개척자를 따라, 물리적 국경을 넘어 그 세력을 확장하면서 과학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학적 발전 그 자체가 권력이 되었다. 의학적 지식 그 자체가 권력화 되고 결정권을 가지게 되면서 사상적으로 월경해 가는 것을 森鷗外와 魯迅의 생애와 유학체험의 분석을 통해 밝혀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