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이츠는 왜 아직도 많은 독자들과 학자들에게 흥미로울까? 왜 사람들 은 예이츠와 이우환과 사이 톰브리에 매료될까? 예이츠는 모던니스트 시기의 시인인 데도, 이우환과 사이 톰브리는 포스트모더니스 시기의 예술가들인데도? 이 논문은 이 흥미와 매혹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고자한다. 또 이 논문은 데리다를 보면서 그의 디콘 스트럭션-그가 텍스트를 어떻게 생각하고 읽는 지-이 나를 어떻게 작품들(이를테면 이 작품들은, 작가들은 디콘스트럭숀 미학을 알지 못했겠지만, 포스트모던 예술가들 사이 톰블리와 이우환이 만들었고 예이츠의 작품 일부는 디콘스트럭션의 미학으로 만들어 진 작품들이기 때문에)을 잘 읽을 수 있을까를 도울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이 논문은 젊은 학자들에게 지나치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몇몇 저명학자들의 디콘스트럭션의 잘 못된 읽기와 실천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것은 가능하면 빨리 수정되어야 할 방향이다.
자크 데리다의 해체론은 지금까지 포스트모던 담론으로서 G. W. F. 헤겔, I. 칸트 등 이성중심주의에 서 이성의 한계와 진리의 현존성의 부재, 즉 진리의 불 가해성에만 관심을 두면서 말의 유희에 고착된 비정치적이고 현실 사회에 유용 하지 않은 현학적인 사변적 학문으로 비판받아왔다. 그러나 데리다의 연구를 깊 게 진행한 학자들은 데리다의 해체론 이론이 얼마나 현실 사회에 직접적 관계 를 가지고 유효한 이론적 특을 제공하는지 인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데리다의 『불한당들』은 9․11 사건 이후 이라크를 재침공한 미국의 정치적 역사를 언급 하면서, 미국의 패권주의 형태를 불한당으로 묘사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과거 에 아프가니스탄을 대상으로 러시아와의 간접적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즉 미국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길러낸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전사들이 어떻게 수 십 년 이후 미국을 직접 공격하는 관계를 가지게 되었는가를 자가면역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데리다는 패권주의의 정치적 행태가 자기를 보호하는 정책의 일환이 거꾸로 자기를 공격하는 결과적 구조를 가짐을 폭로하면서, 정치적 차원이나 개 인적 차원의모든 자기는 진정으로 타자를 품어주는 레비나스적 윤리의 차원을 가져야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아케다 사건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데리다는 해체의 종교적 특성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가 지적하고자 하는 종교 속의 한 가지 문제가 대가의 경제이다. 아케다 사건에 대한 해체적 해석을 신약성경 속에서 예수가 이야기한 돌아온 탕자에 대한 해석에 적용할 때에, 많은 종교적 의미에 대한 통찰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해체적 (불)가능을 신약성경의 돌아온 탕자에 적용해 보았을 때에, (불)가능한 신의 은혜와 용서, 그리고 (불)가능한 인간의 믿음과 희망이라는 또 다른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 속의 아버지는 신의 (불)가능한 은혜와 용서를 상징한다. 탕자의 형은 대가의 경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탕자는 (불)가능한 믿음과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가의 경제를 벗어난 해체적 해석의 (불)가능성은 종교에 대한 좀 더 깊은 통찰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기존의 전통적 종교형태에 심각한 비판이 될 수도 있다.
이 글은 데리다의 환대의 철학에 근거하여 다문화 사회에서 이방인에 대한 환대의 특징 을 검토하고, 환대의 철학이 다문화 사회로서의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탐색하려 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데리다의 환대는 다문화 사회에서의 이방인이 가져온, 이방인에 관 한 질문들을 통해 이방인/비이방인에 대한 관념과 양자 간의 경계를 해체함으로써 기존의 환대에 내재된 한계를 극복할 것을 요청한다. 또한 데리다는 환대의 법제화가 수반하는 딜 레마를 극복함으로써, 환대의 법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정의를 실현하고 자 하는 것임을 상기시켜준다. 마지막으로 환대의 철학은 제한적이고 조건적인 관용을 넘 어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환대를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는 시도가 필요함을, 그리고 그것 이 곧 정의를 실현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데리다의 환대의 철학은 평등과 사회적 정의의 실현과 관련하여 한국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link Eliot’s exploration of “silence” and “negation” in Four Quartets with Derridean deconstruction, especially his essay, “How to Avoid Speaking.” The Eliot/Derrida parallel of this paper deals with a real question that one work can illuminate the other, rather than pursuing the similarities of their thoughts and revealing the interactions or influences. Eliot and Derrida share a common distrust of language. Eliot’s exploration of the void seems to be close to Derrida’s assertion, and Eliot’s “still point” is like an approach to the idea of différance. Throughout his career, the sense of the void never really leaves Eliot. Derrida also mentions about his implicit relation to negative theology. In Four Quartets, however, we can locate his turn toward the value of humility as an important difference between Eliot and Derrida. Eliot raises a question whether silence, in surpassing language, indeed fulfills the vision of unity and eternity; or only by negation can we indicate what remains forever beyond the conditions of representation. Thus one of his greatest concerns is the spiritual vicissitudes of finding and keeping a viable 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