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전략경쟁과 코로나19 여파로 세계 경제질서가 급변하며, 미국은 국 가안보 차원에서 '경제안보 정책'을 추진하고, 전통적 군사동맹 체제를 경제‧ 기술 동맹으로 재편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현 글로벌 가치사슬(GVC)구조 하에서 자원 및 핵심 기술을 토대로 상호 의존성을 무기화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국가안보의 차원에서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트럼프 정부와 이를 이은 바이든 정부는 중국의 부상을 봉쇄하고, 경제안보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동 맹국과 관계를 재정립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 정부가 ‘힘을 통한 평화’와 ‘원칙에 기반한 현실주의’의 기조하에 무역전쟁을 통한 중국 때리기에 앞장 섰다면, 바이든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신뢰 가능한 동맹·파 트너 국가들과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해 나간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 인다. 본 연구는 경제안보 시대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기술 동맹전략 및 특징들을 살펴보고 이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또한, 미국과 자 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국가이면서, 첨단 과학기술과 제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에게 4차 산업기술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경제‧기술 동맹 재조정은 어떤 함의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1세기 세계화와 함께 국제사회가 다원화되고 주권 국가의 기능이 약화 하면서 초국가적 행위체의 영향력이 증대되는가 하면, 국가 간에 많은 불 균형적 발전이 초래되었다. 냉전 종식과 90년대 북한 핵 문제의 대두, 그 리고 21세기 중국의 급부상으로 동북아의 안보환경이 급격히 바뀌면서 미 국의 동맹정책도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미국의 동 북아 안보 정책은 한미·미일동맹을 통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게 되는데 북한 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안보협력 강화를 통해 대처하고, 중국에 대한 문제는 미일동맹을 통한 견제를 추구 하고자 하였다. 특히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미일 남방 3각 협력과 북중러 북방 3각 협력으로 나뉘면서 신냉전으로 이어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특히 미일동맹이 글로벌 전략적 동맹으로 발전하면 서 미일동맹 현대화를 통해 일본은 군사대국화하려 하고,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서 군사적 영향력의 확대를 원하고 있다. 이는 2022년 말 미국의 적극적지지 속에서 일본이 국가안전보장전략 등의 3대 안보 문서개정을 각의에서 통과시키고 보통국가화하면서 표면화되었다. 그러나 대중 전략에 서 일본이 미국과 같이 중국을 위협 요소로 인식하자, 중국은 일본을 동북 아 안보에 대한 최대의 전략적 도전으로 규정하면서 동북아 안보에 새로 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미국의 동북아 안보전략 중 핵심이며 대중 견제 전략인 인도·태평양전략 참여에 대해 한국의 진보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보수의 현 정부는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며 자연적 연루를 보이 고 있다. 이에 적극적 연루를 보인 미일동맹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강대국 경쟁 하에서 약소국들의 동맹 전략의 차이는 어디에 서 발생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추구한다. 기존 국제정치 이론은 약소국들 의 자율적 외교 정책이 제한되어 있으며 국제정치에서의 힘의 배분이 약 소국들의 외교정책을 추동한다고 설명한다. 또 한편으로 국내정치의 구 도와 이데올로기, 민족주의의 국내 정치적 요소 또한 중요하다는 논의 또한 존재한다. 본 연구는 많이 주목받지 못했던 1950년대 초반 냉전의 형성 당시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각기 다른 외교안보전략을 국내 정치적 비교연구를 통해서 분석한다. 두 국가는 모두 외부 경제적 지원의 필요 성, 안보 위협에 직면했으나 동맹전략에 있어서 인도네시아는 미국과의 동맹이 아닌 비동맹 전략을 취한다. 반면 태국은 국내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협력을 취한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이 두 국가의 국내 정치적 세력 구도의 차별성에 기인하고 있음을 밝힌다.
본 논문에서는 기존의 EU 다자주의 협력 외교에 관해 고찰하고, 최근 강조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는 EU 및 유럽 주요국의 전략을 분석하였다. EU와 미국은 실재하는 양측의 가장 큰 위협인 러시아 및 중국에 대해 상호 협력 하 대응하여 다자적 구도를 형성하고자 한다. 이를 토대로 본고는 EU·미 대서양 동맹 복원 전망에 관해 NATO를 통한 동맹의 강화 그리고 EU·미의 對러시아 및 對 중국 공동 대응 전략을 통해 복합적 측면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유럽의 전통적 안보체계인 NATO를 통해 러시아 등 기존의 안보위협에 관해 재확인하였으며, 새 시대와 상황에 따른 위협의 우선순위를 조정하였다. 더불어 EU는 범대서양 동맹을 통해 안보 부문을 포괄한 기술 등의 범 이슈적 영역에서 EU-미국 간 협력이 상호작용할 것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범대서양 동맹의 확증 강화는 중국의 선택지를 좁힐 것이며, 미중의 강력한 라이벌 관계에서 EU의 외교적 활동 영역과 역할을 넓힐 것이라 판단된다.
Southeast Asia has become a key area for the development of the “Belt and Road’ initiative (BRI). At present, among the six economic corridors planned by the BRI, Southeast Asia has covered two of them – the China-Indochina Peninsula Economic Corridor and the Bangladesh-China-India-Myanmar Economic Corridor. In the meantime, Southeast Asia is also an important part of ”21st Century Maritime Silk Road“ initiative, and thus can been considered as a sample of demonstration for the globalization strategy of the BRI. This study finds that in recent years, China-invested infrastructure and connnectivity building (particularly the railway constructions) have been growing fast in Southeast Asia. In addition, a number of China-ASEAN industrial cooperation zones have been established. Together with an increasing number of enterprises settled in these zones, transnational supply chains have begun to take shape. In this context, China’s private-owned enterprises have also started to expand their investment in the Southeast Asian markets. Nonetheless, the BRI has been confronted with problems and challenges, and has been criticized for the lack of risk management, profitability, sustainability, localization and public support. It shows that the export of ”China Model“ can be problematic, as it remains not adapted to other countries’ local conditions. This research first looks at the achievements of the BRI in Southeast Asia, and then examines the problems and challenges in these projects. Finally, this article also aims to provide a number of policy recommendations to the Chinese government.
전후 일본의 ‘영토문제’라 하면 오키나와(沖縄)와 북방영토(北方領土)가 주요 대상이었 으며 1972년 오키나와 반환 이후에는 북방영토가 최대 현안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 센카쿠(尖閣)와 독도에 대한 ‘영토 내셔널리즘’이 높아져 왔다. 그런 가운데 작년12 월 일본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하였고 민주당이 참패하였다. 야당에서도 보수 우익 정당들 이 약진한 반면 혁신정당들은 존폐의 위기에 빠졌다. 1955년 체제하 일본정치에서의 보수 -혁신(진보) 대립은 헌법9조, 미일안보, 자위대가 쟁점이었는데 1990년대 후반 소위 ‘총보 수화’를 거쳐 바야흐로 중의원 의원들 중 거의 80%가 헌법‘개정’과 ‘집단적 자위권’에 찬성 하는 등 일본정치의 ‘우경화’가 두드러진다.
일본정치의 보수화·우경화가 한일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자연 스럽다. 하지만 한일관계사에서는 일본의 보수정치가 항상 부정적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 었다. 그 사실은 1965년 한일협정이래 소위 ‘65년 체제’를 되돌아보면 알 수 있다. 즉, 일본 ‘일당 우위제’ 보수정권과 한국 ‘개발독재’ 정권 사이에서 냉전과 개발의 이익을 일치 시키며 과거청산과 독도문제를 내버려 둠으로서 협조를 이뤄 낸 것이 바로 ‘65년 체제’의 중요한 일면이었다. 따라서 일본정치의 보수화 우경화 가운데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한일관 계에 작용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일본정치에서의 ‘문 화적 폭력’으로서의 식민지주의와 ‘동맹의 딜레마’ 시각에서 일본의 역사인식과 영토정책을 살펴본다.
본 연구는 슈만의 상상 속에 존재한 “다비드동맹”의 탄생 배경과 그 명칭의 유래에 대한 연 구이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주목할만한 선행연구들이 있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기존의 연구에서 각 저자들마다 언급하고 있는 “다비드동맹”의 ‘모델들’의 근거와 주장은 무엇인지 를 비판적 시각으로 검토하고, 그 주장의 혼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고찰하며, 철저한 근거 제시 없는 선행연구의 인용의 반복을 반박함으로써 다음의 결론을 도출하였다. “다비 드동맹” 탄생의 직접적인 배경은 호프만의 『세라피온 형제들』(Serapionsbrüder) 및 비더 마이어 시기의 문예클럽, 특히 라이프치히의 “프라이쎄강의 터널”(Tunnel über der Pleisse) 이다. 이와 함께 이 클럽의 구성원이자, 훗날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운동이던 “청년유 럽”(Junges Europa)의 지부인 “청년독일”(Das junge Deutschland)의 구성원이 되는 슈만의 동료, 그중에서 특히 뤼헤(Lühe)와 헤르로쓰존(Herlosssohn)과 라우베(Heinrich Laube)의 자극이 슈만의 “다비드동맹” 탄생에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