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당대문학사(當代文學史)에서 1980년대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상흔문학’, ‘반 사문학’, ‘심근문학’ 등이 있다. 또한 문학창작 주체의 관점에서 ‘돌아온 작가’, ‘지청 작가’ 등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바로 문화대혁명과 연관되어 있다 는 공통점이 있다. 만약 이렇게 몇 가지 키워드만으로 간단하게 정리된 중국의 당대 문학사에서 ‘쓰여진 것’만 그대로 수용한다면, ‘쓰여지지 않은 것’을 접할 기회가 없 어질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중국의 ‘다시 쓰여진 문학사’의 대표적인 결과물로 꼽히 는 훙쯔청(洪子誠)과 천쓰허(陳思和)의 당대문학사 저작 중, 1980년대 초반 문학사를 다시 읽으면서, 무엇을 쓰고 무엇을 쓰지 않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에서는 북한의 서술 시각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던 초기 단계를 벗어나, 1990년대의 개혁 개방 이후에 는 남한의 연구 성과를 폭넓게 반영해 왔다. 현재는 남북한 사이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중국 의 특색을 담아낼 수 있는 문학사 기술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금의 정편 한국문학사는 중국에서 가장 최근에 간행된 한국문학사로서, 한국학 연구의 동향과 문학사 교육의 방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고전문학 분야의 기술 양상을 중점적으로 검토해 보았다. 세부적으로는 시가문학과 산문문학으로 나누어 하위 갈래들의 개념과 범주, 주요 작가와 작품 등을 통해 서술상의 특징 을 살펴보았다. 중국에서의 최근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비교문학적 접근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 등은 긍정 적인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학 및 연구원생을 주요 독자로 상정하고 있는 만큼, 전문 학술서 로서의 깊이는 다소 부족하고 문학사의 실질과 어긋나는 부분도 발견된다.
8세기 이슬람 국가와의 교류와 침입으로 이슬람 문화와 함께 수피즘이 인도에 유입되었다. 수피즘은 정통적인 이슬람교의 제식에 반대해 생겨난 것으로 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만으로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수피즘의 일원론은 인도의 전통 철학인 베단따 철학과도 유사했으므로 인도에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초기 수피즘에는 포교를 위해 지역의 언어와 그들의 문화가 반영되었다. 비록 이 시기 힌디어로 쓰여진 수피들의 문학은 힌디문학사에 흐름을 만들지 못했지만 대중들의 언어로 대중을 위한 글을 쓰면서 박띠시대의 초석을 마련했다. 이후 14세기 박띠문학은 대중을 위한, 대중에 의한 문학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박띠즘은 문학사조이기 이전 인도 전체를 아울렀던 인도의 사회개혁운동으로 니르군 박띠 시파에 수피즘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식이 아니라 신에 대한 사랑만으로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신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므로 카스트를 반대하고 힌두와 무슬림의 차별을 없애는데 앞장섰다. 수피사랑시파의 사랑시 전통은 비록 영향력은 미미했지만 리띠시대에도 이어져왔다. 수피즘이 힌디 문학을 선도했다고 볼 수 없지만 수피즘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中唐 시기 “시승”은 이미 시가 창작의 한 주체로서, 시가 창작에 대한 자각적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자각적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추구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시승의 시 세계는 또한 일반 문인 사대부들과는 다른, 시승 특유의 풍격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러한 시승의 시풍이 이미 사회적으로 보편화되고 인정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中唐의 시승이 위진 남북조 시기의 승려시와 다른 점이며, 문학사에서 “시승” 집단의 출현을 中唐으로 보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의미이다. 요컨대, “시승”이란 용어는 단순히 中唐 시기에 승려들 가운데 시에 능했던 승려들이 출현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문학사적 시각에서 볼 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의 출현과 그들의 시가 창작에 대한 자각과 추구, 그리고 시가 작품 자체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中唐의 “시승”은 개별적 현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문화사나 문학사에서도 매우 독특하고 의미 있는 현상으로 자리 매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