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과 새로운 정권의 출범 이후 남북정상회담이 계속되며 평화공존과 통일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지금, 감정적인 반응과 이념적인 평가가 현실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 공동체는 어떤 시각으로 사회변화를 바라보아야 하는지 또 어떤 마음가짐으로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지 검토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신앙의 눈으로 사회변화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고, 편향성과 주관성을 떠나 신중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하나님의 뜻이라며 하나님 이름을 오용하는 일은 이젠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화해의 사명을 자각하여 분열된 사회와 분단된 조국의 화해를 위해 선을 행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용서하고 서로 화목하며 공의를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북한동포를 위해 기도하며 통일을 준비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생명과학의 발달은 인류에게 영원한 번영과 행복을 가져다 줄 열쇠로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생명과학 특히 최근의 첨단생명과학의 현실을 보면 너무나 일천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짧은 역사 속에 이룩한 업적이 자랑스럽게도 생각된다. 오늘날 과학문명의 이기를 비롯한 인류의 모든 선진문화의 혜택은 이념의 변화와 경제성장에 그 기초를 두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해방 전 우리 민족이 세계적인 최빈국(貧國)일 때 초등학교를 다녔고, 8.15해방과 6.25전쟁, 4.19학생운동과 5.16군사혁명을 거치는 동안 대학을 나와 2002년 65세의 나이로 대학 강단을 떠날 때까지 40여 년간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한 가닥을 잡고 씨름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생명과학의 연구란 틀 속에서 맴돌았던 꿈만 같았던 지난날을 정년 후 9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잠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유년시절의 꿈과 60년대(GNP 79불) 선배들의 명에 순종하여 강의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실험하고 논문을 써 댔으며, 70년대(GNP 255불)에 와서 주어진 자연의 생명현상을 계수화 하거나 인위적으로 변형시켜 계수화 하는 논문을 작성하던 때를 지나, 80년대(GNP 1,000불)에 들어서 선진연구방법을 모방 응용하는 연구와 논문을 작성하였다. 90년대 이 후 6,000불을 넘어서면서 오늘날과 같은 첨단기기의 설치와 기법의 도입으로 연구를 시작했으나, 2002년(GNP 12,100불) 이미 65세 정년퇴임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 교실의 연구방향은 방명걸 교수팀의 “정자의 수정에 관련된 연구”와 류범용 교수팀의 “정원줄기세포에 관련된 연구”가 뒤를 이어갈 것이다. 교육의 수레바퀴는 구르기 시작한 후 멈추지 않고 오직 앞만을 향해 굴러가고, 과학의 발달은 내리막 경사의 레일 위를 달리는 제동장치 없는 기관차와 같이 영원히 구르고 달려갈 것이다. 이제 20,000불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후학들에게, 잠시나마 참담했던 나의 과거와 뒤늦게 정신을 차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엮어 여러분과 함께 부담 없는 회고의 시간을 가지고자 하였습니다. 인간의 행복을 가져다 줄 생명과학을 비롯한 과학문명의 발달은 사회안정과 경제성장에 비례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저는 이 시간이 제 일생에 가장 뜻있고 행복한 시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 논문은 「무진봉사」에서 드러나고 있는 조식의 사회변혁론을 정리해 봄으 로써, 실천적 유학자로 지칭되는 조식의 문제의식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데 목적이 있다. 「무진봉사」에 나타난 조식의 사회 변혁론은 한마디로 군왕의 도덕적인 인격의 완성을 토대로 한 ‘덕치’를 핵심으 로 하고 있다. 군왕의 도덕적 인격완성은 인재의 등용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문 제의 해결 등 모든 정치의 출발점이자 토대이다. 즉 인재를 등용하는 것도, 관 리들의 비리를 척결하는 것도, 그 밖의 모든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열 쇠는 바로 군왕의 수신에 있고, 군왕의 수신에서 시작한다. 이와 같은 덕치를 통한 조식의 사회변혁론은 지나치게 원론적이고 이상적이 라는 측면에서 비판받기도 하지만, 훈척정치의 폐단이 문제가 되었던 당시, 제 도와 그것을 제대로 지키려는 인간의지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작용을 할 수 있 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민주적 절차가 점차 형 식화 될수록 인간성의 실현으로부터 멀어지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도 형식화된 민주적 절차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주목될 수 있다. 또한 덕치의 이상은 현실을 재단하고 비판하는 척도로 작용함으로써 이미 충분한 의미를 가 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조식의 이러한 덕치는 관학파에서 훈구파로 이어 진 역사의 전개과정을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토대로 하지 않고, 단지 법과 제도 에 의지한 정치를 지향한 것으로 파악하고, 그러한 단면적인 추구가 결국은 정 치․사회적인 다양한 문제들을 생성시켰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제기되었다고 이 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