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종교신앙의 자유를 보장한 한편으로는 종교정책를 통해 신앙활동을 강력간 섭하고 통제하고 있다. 종교로 인한 갈등이나 사건의 발발하는 것은 곧 정권의 위협 이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종교문제는 개인의 인권문제와 민족 갈등으로 자주 비화 되기 때문이다. 특히 성직자의 양성은 중국종교의 미래와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종 교 자체의 자율적 방식보다 종교학교를 통한 공적인 시스템을 선호하고 있다. 1949 년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로 새롭게 출발한 중국의 종교는 보장과 통제라는 기본 지 침 아래 통전부가 종교를 중점적으로 관리하였다. 그리고 종교학교의 설립은 이러한 국가 종교정책의 방향에 따라 획일적이고 균등한 방식으로 필요한 성직자를 정부 주도로 양성하기 위한 기제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중국 정부가 인가한 5대종교협회는 각기 불학원(불교), 도교학원(도교), 경학원(이슬람교), 신철학원(가톨릭), 신학원(기독 교)을 설립하여 종교인을 양성하고 있다.이들 종교학교는 정부의 종교정책 방향에 따 라 그 역할이 갈수록 중시되고 있다. 특히 근래에 공표된 「종교원교관리판법」은 중 국 정부가 종교학교를 통해 종교인 양성을 일원화하고 공식화하려는 의도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과 『맨스필드 장원』의 성직자 인물들을 중심으로 19세기 초반 영국 성직자의 모습과 종교적 분위기를 살펴보 고자 한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성직자의 전형인 『오만과 편견』의 윌리엄 콜린즈 목사에 대한 풍자를 통해 작가는 도덕적 해이에 빠져 세속화된 목사들의 타락상을 비판하고 교회의 도덕적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맨스필드 장원』에서 오스틴은 도덕성과 소명의식, 사회적 책임감을 갖춘 에드먼드 버트람이라는 바람직한 성직자 상을 형상화함으로써 복음주의 운동으로 불붙여진 성직 쇄신과 교회의 정화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요구를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아울러 작가는 두 성직자 인물들의 대조적인 가정생활의 성격을 통하여 성직자로서의 자질과 사적 영역인 가정생활의 행복 간의 밀접한 관계에 대하여서도 깊은 관심을 보인다.
소설이 탄생된 18세기 이후 여러 영국소설에는 성직자 인물들이 등장한다.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의 대표작『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1813)과『맨스필드 파크』 (Mansfield Park, 1814)에서 깊이 있게 다루어진 성직자 인물들은 19세기 초 영국 국교의 분위기 를 유추해볼 수 있게 한다. 또 샬롯 브론테 (Charlotte Brontё, 1816-1855)는 인도 선교사로 헌신 하게 되는 한 목사의 스토리를 『제인에어』(Jane Eyre, 1847)에 생생하게 담아냄으로써 빅토리아 중기의 종교적 분위기를 잘 전달해준다. 20세기 작품이지만 19세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 1915)에서 서머셋 모옴(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 역시 영국 시골 교구목사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그려내었다. 위대한 소설가들의 이와 같은 작업은 19세기 영국의 종교적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본 발표에서는 이상 언급된 작품들에서 여러 유형의 성직자 인물이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 분석해봄으로써 19세기 영국 성직자들의 목회와 삶의 성격을 이해해 보고자 한다.
본 소고는 초대교회의 성직제, 과부에 관한 연구논문이다. 본고는 여성성직제, 과부에 대한 초대교회의 자료들을 많이 소개하고 과부였던 여성들의 활동과 당시 교회에 미쳤던 의미들을 살펴보았다. ‘과부’는 단순히 남편을 잃은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로서가 아니라 교회여성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교회사역에 참여하고 헌신할 수 있었던 통로가 된 직제이었다. 이는 제도적 교회가 인정한 성직이었으며 여성들은 공동체를 위해 기도했고 환자나 가난한 자들을 심방하고 구제했으며 교회의 형편에 따라 예전에 참여하여 사제처럼 감독을 돕기도 했다. 그들은 그 인품과 영성, 그리고 섬김의 모델로 존경받았다. 성경과 (특히 목회서신), 속사도시대 문서들과 초대교회 교부들의 글, 그리고 여러 교회규정집들에서 과부직제에 대한 기록들이 발견된다.
초창기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과부들의 위상과 사역은 나름대로 존중되었고 공동체 회원들의 역할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차츰 교회가 제도적으로 모양을 갖추면서 과부들의 사역이 축소되었고 그 의미도 희미해졌다. 제도적 교회는 의도적으로 여성들을 리더십에서 소외시키고 그들의 사역을 축소시켰다. 교회규정집들이 제시하는 과부 직제의 의미와 사역의 범위가 이를 잘 말해준다. 더욱이 과부를 비유하는 ‘하나님의 제단’의 의미도 후대에 갈수록 그 뜻과 상징이 왜곡 되게 나타난다. 처음 기도로 공동체를 중보하는 의미로 헌신과 희생, 성결로 공동체의 모델이 되었지만 여성을 가사울타리 안에 가두는 도구로 제단의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사역을 공공연히 폄하시키는 것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제단은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 있는 것이므로 여성들은 집안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며 과부직제의 무게를 격하시켰다. 그러나 교회 규정집에 끝이지 않고 여성의 활동을 제한해야 한다는 항목이 나타나는 것은 역으로 그만큼 여성들의 활동이 활발했으며 이에 대한 요구가 계속 있었었음을 암묵적으로 말해준다고 봐야 한다.
본 소고는 제도적 교회에서 성직을 맡아 봉사하고 현신했던 여성들의 역할과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여 기독교 역사를 균형 있게 펼쳐가는 데 기여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