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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글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에 송국리형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거점취락을 대상으로 사회발전 양상을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송국리형문화 단계가 과연 어떤 형태의 또는 어떤 수준의 사회였는지 들여다 보기 위함이다. 이를 위하여 당시 취락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이념체계와 관련되는 고고학적 맥락을 추출하여 사회적 수준과 발전양상을 살펴보았다. 송국리형문화의 취락사회는 Chiefdom 사회에 깊숙이 진입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모든 취 락사회가 동일한 체계로 운영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고고학적 환경에서 사회 발전과 변화에 영향 력을 행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핵심요소들은 거점취락에서 활성화되어 있었다. 족장 성격을 갖는 유 력자의 존재와 지도력, 유력자와 그 공동체 또는 세력집단 간 갈등과 같은 사회현상, 대규모 공사를 위한 노동력의 집결과 부의 재분배, 위세품의 존재와 장거리 교역, 사회적 위계화와 장인집단(전문 화·분업화)의 존재, 거점취락과 지역사회의 유기적인 연계망, 사회결속을 위한 취락의례(제의)의 존 재 등은 송국리형문화단계의 취락사회, 특히 거점취락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이었다. 비록 모든 취락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화·보편화 현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Chiefdom 사회의 발전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문화요소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송국리형문화를 영위했던 다양한 취락사회는 내적·외적으로 사회적 관계와 지역적 적응 속에서 상사·상이한 체계로 발전해갔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공통되는 사회발전 양상과 지역성을 고려하여 우리 형편에 맞는 사회발전 모델과 범주의 체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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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송국리형문화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문화로서 지역적 보편성과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 문 화는 한반도에서 제주도로 전파되어 북제주의 삼양동과 남제주의 예래동과 화순리에서 대규모 취락을 형 성하였다. 이러한 배경은 제주 탐라문화의 지역 거점화를 이루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제주도에서 송국리형문화는 유입기-확산기-토착기-전환기를 거치면서 발전한 것으로 파악된다. 시기에 따라 변화하는 물질문화와는 달리, 제주 토착민들은 송국리형주거의 전통을 원삼국시대까지 지속시켰다. 특히 호남 지역과 상통하는 주거문화가 전기간 동안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은 송국리형문 화가 제주의 토착적 기층문화를 형성했다는 점과 그 기원이 호남 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근거 라고 생각한다. 제주도의 송국리형문화는 기원전 7세기 어느 시점에 등장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기원후 2세기 이후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기간 동안 제주도에서는 물질문화의 변화 과정을 거치는데, 기원전 300년 을 전후하면서부터 제주도만의 토착적인 토기문화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양상은 외도동식토기가 출현하 는 기원후 2세기 전까지 원초적인 탐라문화로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외도동식토기의 출현과 곽지리 식토기로의 계승은 본격적인 탐라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므로 이전 단계는 古탐라시대라고 해도 무리는 아 니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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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0.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송국리형 주거는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주거로서, 다른 주거에 비해 가장 오랜 세월동안 축조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전통성·지속성·보편성을 가지는 주거라고 할 수 있다. 전남의 남해안지역은 진도·해남권역, 탐진강유역권역, 고흥반도권역, 여수반도권역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여수반도권역을 제외한 나머지 3개 권역은 영산강유역을 비롯한 호남지역의 송국리형 주거 문화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수반도권역은 남강유역권과 인접해 있어 점이지대 혹은 문화적 동화나 융합의 성격이 강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남해안지역은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양과 종류가 매우 한정적이고 빈약하다. 현재까지 탐진강유역이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유물군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기원전 7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이미 대규모 취락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송국리형문화는 여수반도권역에서 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 지속되고 있다. 제주도에서 나타나는 대규모 송국리형 취락은 영산강유역을 비롯한 전남 남해안지역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취락 형성기에 소위‘돼지코’형태의 주거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물질문화에서는 제주도의 특색을 강하게 보이고 있어 취락형성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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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고고학에서 청동기시대 시기구분은 1980년대 이후 송국리문화를 특징으로 中期가 설정되어 前期-中期-後期의 3時期區分이 이루어졌다. 3시기구분은 1990년대까지 거의 통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청동기시대 後期의 점토대토기문화를 청동기시대에서 분리하여 초기철기시대로 보고 있어, 청동기시대는 전기와 후기의 2시기로 구분하자는 의견과 3시기로 구분하자는 의견이 팽팽하다. 中期는 지역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남부지역은 송국리문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북한지역의 경우 서북한지역의 미송리형토기문화, 동북한지역의 유정동유형으로 대표된다. 중부지역은 역삼동 Ⅱ유형과 북한강유형으로 대표되며, 영남 동남해안지역은 검단리유형으로 대표된다. 이처럼 청동기시대 중기에는 지역적으로 다양한 문화양상들이 확인되고 있다. 後期는 점토대토기문화를 특징으로 하는데, 점토대토기문화는 靑銅器時代後期, 初期鐵器時代, 三韓時代등 다양한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점토대토기문화는 한반도에서 가장 발전된 靑銅遺物이 출토되고 있어 청동기시대 후기로 설정할 수 있다. 중기의 年代는 上限은 전기의 下限과, 下限은 後期의 上限과 맞물려 있다. 전기의 하한과 중기의 상한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전기의 특징적인 장방형주거지가 소형화되고, 토기문양이 소멸되며, 석기에서도 변화가 확인된다. 이러한 변화 양상은 절대연대 자료로 볼 때 기원전 10세기경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특히 중기의 특징적인 송국리형주거지의 연대를 기원전 10세기로 보고 있어 중기의 상한은 기원전 10세기로 설정하고자 한다. 이 시기가 되면 한반도 전역에서 중기문화가 나타난다. 중기의 하한은 점토대토기와 같은 외부로부터 새로운 토기문화가 유입되는 시기로 설정할 수 있으며 한반도에 점토대토기가 유입되는 시기는 절대연대와 요서지역 자료를 참고할 때 기원전 6세기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기원전 5세기부터 청동기시대 후기로 편년될 수 있으며 따라서 중기의 하한은 기원전 5세기 이전으로 잠정해두고자 한다. 그러나 중기로 편년되는 송국리형주거지의 경우 제주지역에서는 기원전 1세기내지는 기원후 2~3세기까지 축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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