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김춘수가 이상에 대한 비평에서 ‘이상은 왜 키르케고르의 길을 가지 않았는가?’를 물은 데 착안하여, 시인으로서의 존재론적 지향점이 김춘수는 초월성을 향해 갔으며, 이상은 내재성을 향해 갔다는 전제 아래에 논증되었다. 초월성을 지향한다는 것은 차안으로부터 피안의 신, 존재, 진리, 선을 추구한다는 것이며, 내재성을 지향하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유래한 인간의 본성과 생명력을 신뢰하며 자기의식의 체험을 긍정하는 것이다. 김춘수는 초월성의 관점을 키르케고르의 신학에서 취한 바, 이 논문 또한 그의 사상을 원용하여 논증해 나아갔다. 이상 문학의 절망, 불안, 권태 등은 키르케고르의 1단계 심미적 실존에 머문다. 이상은 키르케고르적인 신학적 세계관과 아가페적 사랑을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천재로서 절망과 불안을 감내하며 내면의 자유를 추구하여 예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기여하였다. 결론적으로, 키르케고르의 신학적 길을 간 것은 오히려 릴케의 영향을 받은 김춘수였다. 한국현대시사에서 모더니즘의 두 거장 이상과 김춘수는 ‘내재성’의 사상과 ‘초월성’ 사상의 두 축을 담지하여 한국의 정신사를 풍요롭게 하였다.
이 논문은 현대예술과 현대 선교신학이 추구하는 ‘참’(본질)의 의미로서 개인과 사회의 아름다운 삶을 위한 미적 실천의 관점이 짙은 연구 글이다. 먼저 현대예술은 예술철학적 관점에서 개인의 삶과 공동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고, 덕을 세우는 등 진정한 사랑에 기인한 예술적 추구야말로 본질적 예술미로 규정한다. 또한, 현대 선교신학은 예전 중심의 예배를 넘어 인자와 공의가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실천으 로서 삶의 예배를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의 예술선교는 상황화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실용성, 방법론, 문화 상대성 중심의 타문화 선교전략을 강구하고 있다. 이는 그 출발점이 현지인을 통한 선교전략 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이 논문은 행위예술의 관점에서 문화적 정서나 다름을 초월하여 자국민의 삶에 나타나는 일상 행위와 존재 방식이 어떠할 때 선교적 의미를 드러내고, 그 기능을 수행하는지 를 연구한 것이다. 곧 ‘선교적 행위예술’(missional performance art)이란, 하나님의 본질적 미(美)를 구현하는 행위로서 그 신학적 기준은 1) 본질적 창조성, 2) 생명적 회복성, 3) 육화적 전인성, 4) 증언적 복음성, 5) 지속적 혁신성, 6) 초월적 현재성이라는 요소를 지닌다.
본 연구의 목적은 성찬을 선교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여 그 본디 의미를 고찰하고, 목회 현장에 적용할만한 ‘선교적 성찬’(Missional Eucharist)을 예시하여 교회의 선교적 동력으로 삼으려는데 있다. 이 시도의 신학적 근거는 첫째, 존 웨슬리의 성찬신학에서 살펴볼 수 있다. 웨슬리는 복음 설교자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그는 영국국교회의 사제로서 고교회(High Church) 전통의 성례주의자였다. 그가 성찬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거룩한 은총에 의한 회심의 변화가 여기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음적 성화의 사건으로 선교적 부흥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둘째, 성찬 그 자체가 이미 선교적일 뿐 아니라 흥미롭게도 그 의미에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의 신학적 관점들이 농후하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성찬은 은총에 의한 회심 체험 이나 변화의 부재로 ‘명목상의 성찬’(Nominal Eucharist)이 된지 오래다. 따라서 선교적 교회의 내적 동력으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추구하는 성찬이 되려면, 감성과 이성, 전통과 신학 그리고 통전성과의 조화로운 결합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본고는 ‘선교적 성찬’을 통해 선교적 성화가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접근이다.
이 연구는 설화에 내포된 금기 화소의 의미를 신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하는 연구다. 연구자는 설화의 금기 화소에 대하여, 인간은 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신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이며, 신은 왜 인간에게 하필 금기를 부여하는가. 또 그렇게 부여된 금기의 의미나 목적을 인간은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하여야하는가 등의 의문을 갖게 되었다. 금기 화소의 의미에 관하여는 지금까지 적잖은 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행연구는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는 존재”이며, 금기는 그런 인간이 침범해서는 안 될 신적 영역의 “경계선”이나 “고갯마루”로 규정하고, 이를 경계로 신과 인간을 대치시키는 부정적 견해로만 규정하였다. 연구자는 설화가 원시종교와 함께 발화된 점에 주목하여 기존의 연구에 신학적 시각의 접근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금기는 인간이 그것을 깨뜨림으로써 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방법적 메시지’라는 융의 주장을 수용하고, 금기의 파기로 원형성을 상실한 인간이 금기에 투사하여 통과 의례를 치름으로써, 신적 지위를 회복할 수 있는 근본적 행위 문제로써, 이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신의 계획된 목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이다. 독일의 루터10년 프로젝트처럼, 한국교회 역시 많은 학술 심포지엄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종교 개혁 내지는 루터 신학의 세계적인 의미를 찾을 것이다. 본 논문은 루터의 신학에서 “무엇이 종교개혁적인가?”를 다루었다. 관점에 따라서 루터 신학 의 핵심은 다르게 선택될 수도 있다. 필자는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염 두에 두었고, 그 결과 루터 신학의 바른 이해와 적용을 위해 ‘이신칭의’, ‘십자가 신학’, ‘만인제사장직’을 선택하여 논했다. 칭의의 조건은 그리스 도를 믿는 믿음이다. 그렇지만 칭의는 종결이 아닌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향한 시작이다. 신자의 거룩한 삶이 칭의와 더불어 시작되고, 이 세상에서 생을 다하기까지 함께 간다. 그것이 무엇이건 인간이 할 일이 있다면, 칭의 이후의 일이며, 칭의 이후의 일이 역으로 칭의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즉 칭 의를 위해 인간이 할 일은 없지만, 거룩한 삶은 칭의와 더불어 가는 것이 다. 십자가 신학은 하나의 일하심의 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한다. 이것은 가시적인 것 혹은 외적인 권위와 규모 를 통해 신을 파악하려했던 중세교회의 영광의 신학 내지는 스콜라신학을 거부한다. 물질주의에 대한 한국교회의 의존성, 기복 및 개교회 지상주의 는 중세교회의 영광의 신학과 다를 바가 없다. 만인제사장직은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적 평등의 선언이자, 직업 활동 을 통한 소명의 성취를 요구한다. 한국교회 역시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이 분법적 틀을 희석시켜야 하며, 동시에 교회 밖 직장과 사회에서 직업 소명, 즉 제사장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자랑스런 유산을 물려받은 프로테스탄트의 후예이다. 마르틴 루터의 이신칭의, 십자가 신학, 만인제사장직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여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하는 분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plore the relationship between Calvin and Anabaptist radicals in the sixteenth century This study first traces the relations of Calvin and Anabaptists from historical perspective, and then examines from theological perspective Schleitheim Confession(1527), which is an early Anabaptists’ articles of faith, and Calvin’s Brief Instruction Against the Errors of the Common Sect of the Anabaptists(1544), which is Calvin’s refutation against Schleitheim Confession.
In the sixteenth-century reformation movements, Calvin on the one hand should fight against Roman Catholicism, and on the other hand have to stand against Anabaptist radicals. Calvin cries for reform against Roman Church’s ecclesia deformata, at the same time he raises his voice against Anabaptist’s sectarian errors pursuing ecclesia perfecta. This study discloses what Calvin and Anabaptists argue, and what theological points of dispute between them are. In particular, it analyzes their differences from three significant topics, baptism, church, and st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