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코로나19(COVID-19) 바이러스는 전 세계인의 전인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전인을 치유, 회복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행해져야 한다.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수용성을 높이는 전인치유선교의 핵심적 대안이 요구된다. 이는 곧 그랜빌 오랄 로버츠(Granville Oral Roberts)의 전인치유선교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에 주력해야 함을 방증한다. 그랜빌 오랄 로버츠는 오순절/은사주의 중심에서 개신교의 거대한 성장을 이룬 인물이자, 20세기 복음치유사역의 권위자이다. 그는 대형천막집회와 각종 문헌 발생 및 방송사역을 시행하고, 병원, 학교를 설립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전한 복음전도자이다. 그랜빌 오랄 로버츠는 통전적 선교사상, 믿음선교사상, 종족화합을 위한 협력선교 사상을 바탕으로 일평생을 하나님의 치유회복의 능력을 전하는 전인치 유선교를 하였다. 그의 전인치유선교 연구는 복음전도를 위한 목회와 선교현장에 실천적 대안을 제공할 수 있고, 선교사상 정립에 바탕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한국전쟁이 한국 개신교 교회에 준 영향을 규명하고, 이러한 규명을 바탕으로 한국 개신교 교회의 평화선교 과제를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연구의 범위는 한국전쟁이 한국 개신교 교회에 준 영향이다. 이 연구의 방법론은 문헌 연구와 메츠(J. B. Metz)의 위험스러운 기억과 역사의 주체로서의 희생자이다. 희생자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의 결과를 제시한다. 한국 개신교가 한국전쟁으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교회 재건과 국가 재건, 개신교 교회의 구조와 성격, 개신교와 국가의 관계, 교회분열과 사이비이단 발흥 등을 다룬다. 한국전쟁의 영향을 받은 한국 개신교의 특징으로 친미반공 이데올로기의 보루, 기복적 신앙, 신학적 성찰 없는 교회성장주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 개신교 우파의 등장과 정치참여, 신학적 영향을 제시한다. 한국 개신교의 평화선교 과제로 죄고백, 회심, 전쟁 기억 치유를 통한 민족화해,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올바른 한일관계 수립, 희년을 이루는 교회 10년, 베트남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사과, 평화신학과 평화선교신학 수립, 평화교육, 민족의 코이노니아, 군축과 평화체제로의 전환 등을 제시한다.
본고의 목적은 선교의 도구로서 푸드테라피의 필요성을 고찰하고 현대인의 질병을 부르는 음식들과 비교한 성경 시대의 음식에 대하여 연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음식에 대한 바른 성경적 인식과 더불어 현대 음식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함으로써 더욱더 성경적인 먹거리를 실천하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추구하고자 함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음식법(kashrut)은 인간에게 부정한 것을 멀리하고 정결한 삶을 살게 하며 그에 따른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신 것이다. 음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였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 언약의 역사였고, 곧 성경의 역사였다. 성경의 음식과 관련하여 치유 선교의 도구로서 푸드테라피의 필요성을 밝히며, 또한 21세기 한국 교회의 선교적 대안으로서 푸드테라피의 장점과 특징들을 중심으로 선교전략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이것이 시대적인 당면한 연구 과제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상황으로 인해 온 세상이 아픔으로 가득 차있다. 이 글은 오늘날처럼 상처가 만연한 시대에 적합한 교회의 선교로서 ‘치유를 지향하는 환대’의 사역을 제안한다. 이 글은 이야기적 접근이 선교신학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먼저 살핀 후, 본인이 직접 경험한 두 개의 이야기를 제시한다. 이 이야기들은 어떻게 상처입음의 경험이 환대를 통해서 치유적 경험으로 변화되었는지, 그리고 이 ‘치유를 지향하는 환대’의 경험이 또 다른 아픔을 감싸는 환대의 선교적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 글은 ‘치유를 지향하는 환대’를 오늘날 선교적 소명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먼저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였고, 이어서 다음의 3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교회는 오늘날의 극심한 깨어짐의 고통을 호소하는 자들에게 환대의 공간을 제공해야 하며, 둘째, 환대의 사역이 치유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신학의 역할을 통한 공동체적 성경해석의 과정이 필요하며, 셋째로, ‘치유를 지향하는 환대’가 새로운 타인과 공동체를 향해 이어지기 위해서는 환대의 선교적 차원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