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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aimed to analyze the periodic prevalence of the vegetables during the Joseon era with JoseonWangjoSilrok as a reference. The JoseonWangjoSilrok articles were collected from the Guksapyeonchanwewonhwe site, using web-crawling techniques to extract the relevant information. Out of 384,582 search results, 9,560 articles with vegetable-related keywords were found. According to the annual average vegetable recordings during the regimes of various kings, there were two peaking curves in the 15th and 18th centuryJoseon. The found was: 2,750 in the 18th century, 2,529 in the 15th century, 1,424 in the 16th century, and 1,018 in the 19th century. A Variable Interest Index was designed to ascertain the interestin vegetables of the 27 Joseon kings. The king most interested in vegetables was the 19th king Sookjong. The second most interested king was Youngjo. There were 5,105 vegetable-related findings within the JoseonWangjoSilrok related to specific species and categories of vegetables. Among the words found: 1,194 were stem-leaves vegetables (23.39%), 1,017 were root vegetables (19.92%), 1,148 were flower-fruit vegetables (22.49%), 1,144 were spice vegetables (22.41%), 95 were mushrooms (1.86%), and 507 were seaweeds (9.93%). Statistical analysis using ANOVA revealed the chronological factors that affected the vegetables’ prevalence 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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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3.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호남지역 유학자들의 초기 箴 작품은 蘇沿(1390-1441)이 창작한 것으로부터 李恒(1499-1576)이 지은 것에 이르기까지 총 6편이 지어졌다. 그 가운데 2편이 中宗에게 올려진 官箴이다. 그리고 경전 구절을 해석한 것이 3편, 전대의 작품에 차운하여 계승한 것이 1편으로, 의리의 발현을 수사 기법으로 삼은 작품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 중기는 箴을 지은 유학자가 4명밖에 되지 않아 초기에 비해 인원수가 더욱 줄었지만, 작품의 수량은 7편으로 1편이 더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安邦俊(1573-1654)으로부터 黃胤錫(1729-1791)에 이르기까지 150년이 넘는 시기 동안 4명의 유학자가 7편의 작품을 지었다는 것은 초기와 마찬가지로 매우 영성한 상황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中庸』 제1장의 ‘莫見乎隱’을 해석한 황위의 「莫見乎隱箴」을 제외하고는 모두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할 수양의 덕목을 해설한 내용들이다. 다만 경계하는 대상이 자신에게 한정되느냐 아니면 자식이나 주변의 타인에게 확장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개인적인 용도인 私箴의 범위를 벗어나는 작품은 없다. 후기는 초기 및 중기에 비해 거의 5~6배가 넘을 정도로 많은 분량의 箴 작품이 창작되었다. 그리고 경계의 내용과 방법이 이전과 달리 다양하게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奇正鎭(1798-1880)으로부터 柳永善(1893-1961)에 이르기까지 100년 동안 14명의 유학자에 의해 37편의 箴이 지어졌다. 이 시기는 이전보다 양적으로도 월등하게 많을 뿐만 아니라, 수사 기법도 다양한 양상으로 서술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을 경계한 작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구한말의 절박한 시대적·역사적 상황 때문에 箴을 통해 同道의 사람들에게 권면하고자 하는 의식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자신 및 학파가 주창하는 성리설을 箴의 문체로 드러내어 밝히고자 한 것도 이전 시기에는 없는 하나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1992.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