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한국기독교의 농촌계몽운동은 1920년대에 시작하여 1930년대에 소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한국기독 교의 농촌계몽운동은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전성기를 경험한 것이 맞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농촌계몽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의 역할들을 해온 두 인물이 있는데, 그 두 사람은 바로 윤치호와 로버트 알렉산더 하디 선교사이다. 본 논문에서는 같은 남감리회 소속이었던 윤치호와 하디 선교사가 농촌계몽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와 이유, 그리고 구체적인 활동을 우선 살펴보고, 이들이 목표했던 농촌계몽운동 은 단순히 경제적인 발전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고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의식을 변화시키 는 하나의 사회변혁운동이었음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생명 경시, 자살률 증가, 인간 소외현상 등이 만연한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한국기독교(개신교)가 진정한 계몽운동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본 논문은 한국에 와서 활동했던 수많은 외국 선교사 중 한 명인 로버트 하디 선교사 연구를 통해서 한국교회 선교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디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경건한 신앙의 유산 을 기반으로 인류에 봉사하고자 기독교인 의사가 되려고 의과대학에 입학했고, 바로 그때 SVM의 영향을 받아 선교적 소명을 깨닫고 선교사 가 되었다. 처음에 그는 독립선교사로 활동했지만,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를 위해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협력했고, 경제적인 어려움 과 가족의 질병으로 인한 어려움 등을 자립선교와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 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03년 원산에서 시작되어 1907년 평양에서 절정을 이룬 원산대부흥의 주역으로 쓰임 받았지만, 그 이후 에 어떠한 부작용도 없이 한국교회의 발전을 위해 신학교육과 문서선교 사역 등에 기여하였다는 점도 매우 중요한데, 이는 웨슬리 신학의 사변형(성경, 전통, 체험, 이성)에 근거한 균형 잡힌 선교사역을 감당했 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테스』와「약한 자의 슬픔」은 발표된 시기와 문화적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 하고, 근대화 시대의 상징 권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근대의 상징 권력 하에서 여성은 여전히 쉽게 타자로 간주 된다. 주체적 존재로서의 여성의 삶은 사랑과 종교 담론에 밀접한 관련성을 갖게 된다. 두 작품 속에 나타나는 주인공인 테스와 엘리자베트가 꿈꾸는 낭만적 사랑은 근대화 시대의 상징 권력에 직면하게 됨으로써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궁극적으로 사회의 상징 권력에 대한 개인적 태도에 따라서 미래의 삶에 대한 양상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두 작품의 비교는 과거를 통하여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기획 하는데 문학적 지혜를 제공한다. 위기에 놓인 인간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모색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전근대, 근대화, 탈근대라는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각 시대의 상징 권력을 뛰어넘음으로써 참된 사랑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때 사회적 상징 권력에 종속되거나 패배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을 꿈꿀 가능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점을 두 작품은 보여준다.
목적: 레이저굴절교정수술 후 나타난 근시퇴행안에서 밤에 착용하는 역기하디자인의 콘택트렌 즈 착용 후 나타나는 각막지형도 변화를 추적하였다. 방법: 레이저각막굴절교정수술을 받고 근시퇴행이 발생한 만 18세 이상 근시안 중 안질환이 없으며, 레이저굴절교정수술 후 2년 이상 경과하고, 굴절이상도가 구면굴절력 –0.25D~-4.00 D, 원주굴절력 –1.00 D 이하인 대상자 중 역기하디자인의 콘택트렌즈를 하루에 최소 6시간 이 상 착용하고 취침할 수 있는 총 12명(22안, 평균: 33.09±4.52세)을 대상으로 하였다 각막의 굴절력, 이심률 및 레이저굴절교정수술 후의 각막 모양을 기준으로 CRT(Paragon Vision Sciences, Mesa, Arizona, USA) 역기하렌즈의 변수를 결정하여 처방하였다. 각막지형도는 역 기하렌즈 착용 후 1일, 1주, 2주, 1개월을 기준으로 각막지형도검사기(ORB scanⅡ, Bausch+Lomb)를 이용하여 각막형상, 각막곡률반경, 각막 중심부와 주변부(각막 중심부 3 mm 주변부 8개 영역) 두께 및 전방깊이를 측정하고 착용 전과 비교하였다. 결과: 각막굴절교정렌즈 착용 후 각막의 비구면계수 Q-value는 착용 전 0.17±0.26, 착용 1일 후 0.30±0.28, 착용 1주 후 0.30±0.27, 착용 2주 후 0.34±0.21, 착용 1개월 후 0.38±0.21 로 점차 prolate 형태로 변화되었으나 유의하지 않았고(p=0.082), 중심부각막곡률은 착용 전 8.56±0.32 ㎜, 착용 1개월 후 8.83±0.44 ㎜로 편평한 형태로 변하였으나 유의한 차이가 없었 고 전방깊이도 착용 전 2.93±0.20 ㎜에서 착용 1개월 후 2.85±0.19 ㎜로 유의한 차이가 없 었다(p>0.05). 각막중심부 두께는 착용 전 514.73±40.41 ㎛, 착용 1개월 후 509.77±38.90 ㎛로 감소하였으나 유의하지 않았고(p>0.05), 각막주변부 8개 영역의 평균 두께는 착용 전 647.05±25.12 ㎛, 착용 1개월 후 651.44±22.38 ㎛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p>0.05). 결론: 레이저각막굴절교정수술 후 근시퇴행이 발생한 사람에게 밤에 착용하는 역기하렌즈를 처 방한 결과 각막형상은 prolate 형태로, 중심부 곡률반경은 편평한 형태로 변하였지만 역기하렌 즈 착용 전과 유의한 차이가 없었고, 각막두께도 착용 전과 비교하여 유의한 차이가 없어 근시 퇴행안의 역기하렌즈에 의한 굴절교정효과는 각막굴절교정술의 교정효과가 다를 것으로 생각 되며 이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변화와 역설의 시기였다. 왜냐하면 과학과 기술과 관련하여 발전과 업적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서로 상반되는 생각들이 공존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당시엔 물질주의와 반물질주의, 세속화와 영성, 과거와 현재 등이 복잡하고 미묘하게 서로 얽여 있는 시대였다. 한편으로 문명과 삶이 계속해서 발전해나갈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었지만, 동시에 퇴보라는 생각도 공존하였다. 특별히 챨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라는 책은 아마도 새로운 세상, 그리고 발전과 진보라는 희망을 상징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희망 안에서 퇴보라는 느낌도 겪어야 했다. 토마스 하디의 비천한 주드라는 작품을 보면, 주드와 슈라는 두 등장인물 안에서 그러한 측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특별히 이 두 등장인물을 통해서 다뤄지는 종교와 여성의 문제에 관하여 빅토리아 시대의 문맥 안에서 이 작품을 고찰하고자 한다. 두 인물은 교육과 여성성과 관련하여 나름대로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엔 실패로 돌아간다. 그들의 실패는 하디의 비관론적 차원에서 퇴보를 암시한다.
Many scholars and church leaders, both Korean and Western, have usually considered Hardie’s repentance as the main reason for the Wonsan great revival from 1903. Therefore, during the centennial anniversary of the Pyongyang great revival in 2007 ‘revival by repentance’ was a popular formular for a resurgence of the great revival among Korean churches. However, Hardie’s repentance was not the cause but the effect of the Wonsan great revival. After experiencing baptism of the Holy Spirit or revival, Hardie confessed his sins. Thus, his repentance was not the main cause of the Korean revival. If it was not contingent on Hardie’s personal repentance, it could be asked why God allowed the great revival to occur in Korea and chose to use Hardie for that work. There may be four possible explanations that can be posed: (1) Hardie’s knowledge of revival, (2) his prayer for revival with devotional Bible study, (3) his pursuit of a high ideal, and (4) his lofty motivation. In other words, Hardie regarded baptism of the Holy Spirit as revival and he had been praying for Spirit baptism with Bible study along with his Canadian supporters and some missionary colleagues. Also, like most early Methodist missionaries in Korea, Hardie tried to gain real Christians instead of nominal or professing Christians, which was defined as ‘a high idea’ by a Presbyterian missionary (Robert E. Speer, 18671947). The main purpose of Hardie's life and missionary work was Jesus Christ. In order to maintain loving Jesus Christ, Hardie remained sincere toward people, and followed not money but God’s will. In short, because Hardie understood the true meaning of revival or Spirit baptism, he prayed for revival with sincere Bible study, pursued a high ideal making real Christians, and kept lofty motivation based on loving Jesus Christ. Thus, God not only allowed the early Korean great revival, but also utilized Hardie to do it. In this writing, the writer mainly deals with whether ‘revival by repentance’ is a biblical idea or not, and why God chose Dr. Hardie as one of the main figures for the early Korean great revival.
W. B. Yeats and Thomas Hardy, as poets, were contemporaries. Their long careers spanned the transition from Romanticism to Modernism and their poetry constitute two of the most powerful dealings with that transition and those traditions. Younger poets after Yeats and Hardy have attested to their significant influences on their works respectively. Until 1930s it seems that the poets preferred Hardy as their poetic model, but after the 30s such a stand has become unpersuasive. Considering the course and interdependence of these two poets’ reputations and influences, we are led to acknowledge that Yeats and Hardy defined the options for poets for the whole period of the 20th century and that consequently poets have tended to be divided into two distinguishable streams. This paper aims to distinguish those different streams through the poetic works of Yeats and Hardy. There is some hint of determinism in both Yeats and Hardy, but with very important difference. In Yeats’s early poetry human weakness is implied despite a heavy-handed insistence on nature’s sympathetic; identification with man. But Hardy’s poetry implies a human strength in the face of a nature indifferent to man’s social arrangements and adjustments. Yeats proceeds dramatically to make a system, a private mythology; Hardy shows the structure of a mind capable of coming to a disturbing conclusion. Both Yeats and Hardy find nature for the most part unsympathetic to man, but while Yeats prefers to escape to a dreamy or fairy land or The Great Mind, Hardy illustrates man’s own resistance and adjustment within this world of reality. So, while Yeats offers a vision of a higher reality beyond or behind nature, Hardy, as a result of his acute scrutiny of appearances of the real world, offers us personal and narrative instances of man’s responses to the neutrality of nature. Hardy’s dealings with reality are for the most part moral, while those of Yeats’s incline to amorality, which means that Yeats allows himself to wander far from an acknowledgment of the limits of our individual lives and strengths. These different attitudes to reality lead to their poetic tone: Hardy’s-control of tone, Yeats’s being high and energetic. Considering the comparative characteristics of Yeats and Hardy we are led to conclude that they defined the options for the younger poets following after then: experimental and traditional, modernist and anti-modernist visionary, and discursive and rhetorical and plain.
개종 이후 T. S. 엘리엇은 문학 평가에 있어 엄격한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면을 강조한다. 낯선 신을 찾아서: 현대 이단의 입문서에서 엘리엇은 도덕가로서 ‘전통,’ ‘정통,’ ‘이단’ 그리고 ‘모독’이란 비평의 개념을 전개시키면서 현대 문학의 효용성을 평가한다. 토마스 하디는 불가지론자, 무신론자로서 여러 시를 통해 하나님을 부정하고 구원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표현한다. 엘리엇은 전통적인 종교적 신앙인 기독교 정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을 강조하고, 자유주의적 윤리나 종교, 퇴폐적인 감상주의, 기괴함 그리고 악마적인 요소를 시에 드러내며 자신만의 ‘낯선 신’이나 신화를 찾는 하디를 낯선 신을 찾아서에서 ‘이단’으로 공격한다. 본고에서는 하디의 시를 통해 “믿음의 징조”인 ‘모독’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 그의 이단성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