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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청동기시대의 어로활동을 엿보기 위하여 어로구와 수 적게나마 발견되고 있는 패총유적에 대하여 검토한 것이다. 그 결과, 청동기시대의 어로구는 내륙지역을 중심으로 소형의 토제어망추가 주체를 이루고 있으며, 패총유적은 이 시대를 전후한 신석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에 비하여 패총의 발견예가 현저히 적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 두 현상과 관련한 그 배경과 원인을 청동기시대의 생업활동의 변화 안에서 찾아보았다.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의 어로상의 변화는 인구증가와 유적의 입지조건 등의 변화에 동반하는 생업활동의 변천 곧, 농경의 본격화가 그 배경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식량획득 사회에서 식량생산 사회(농경사회)로 전환되면서 어로구 구성이 변화하였는데, 생업활동의 장인 어장의 전면적인 변화에 기인한 생업 및 사회 전반에 변화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의 어로는, 농경이 본격화되면서 어로를 생업의 주된 생계방법으로 이용해 오던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농경의 보조적인 양상을 띠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 즉,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의 본격화로 인하여 경작지에서 가까운 크고 작은 하천을 어장으로 하는 내수면어로가 성행하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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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청동기시대 주구묘는 주구라는 묘역시설로 매장주체부 주변을 구획하는 묘제로서 고고학적인 의미는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주구묘의 최초 등장은 한반도 남부지역 전체에서 거의 동시기인 전기 후반이며, 변화 양상에는 지역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전과는 달리 피장자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두드러지며, 특정지역에서 주거공간과 구분된 묘역을 형성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발생 당시의 주구묘는 일본 야요이시대 방형주구묘와 같은 분구묘적인 개념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철정리와 옥방8지구의 경우와 같이 복수의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방식이 적용된다고 하여도 전반적으로 분구묘의 매장관념에 적합하지는 않다고 판단된다. 또한 일본 야요이시대 방형주구묘와의 직접적인 계보를 상정하기에는 시기나 매장방식, 구조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다음 단계의 묘제인 지석묘로의 대체는 자연스럽지 못한 면이 있다고 판단되지만 영남 남서부지역 주구묘는 형태적인 측면에서 원형과 방형계통이 공존하는 전통은 지석묘 단계에도 자연스럽게 계승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주구묘의 발생에 관한 문제는 외적인 요인보다 현재로서는 전단계와 다른 매장관념에서 발생하였다는 점으로 내적인 요인에 의해 다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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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전기 청동기시대에 대한 연구는 유구와 유물의 분석을 통한 편년, 그리고 주거지를 대상으로 한 취락연구가 주를 이루어 왔으며, 이에 대한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개별적인 유구분석과 연구는 주거지에 국한되어, 주변에서 확인되는 수혈유구에 대해서는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양이 적고 구조를 밝힐 수 있는 시설도 없어 연구대상에서 제외되어 왔다. 그러나 수혈유구는 취락의 일부를 차지하면서 변화하며 사회·경제적으로도 큰 의미를 담고 있음을 밝힐 수 있었다. 수혈유구는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오면서 기능 뿐 아니라 유구자체, 입지와 취락 내 위치, 그리고 분포 양상 등에서 기존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전개되어 나간다. 초기에 발생한 수혈유구는 신석기시대 저장공과 유사하게 저장의 기본적인 기능을 갖지만 점차 취사 및 의례 등의 여러 기능을 동시에 갖게 된다. 평면형태와 내부시설은 방형의 노지가 설치된 수혈유구에서 원형의 무시설식 수혈유구로 변화하면서 깊이 또한 점차 깊어지게 되고 후기의 송국리형 저장공으로 대표되어 간다. 입지에서도 변화의 양상이 파악되는데, 구릉의 정상부에서 점차 사면부 및 곡부로 이동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이와 함께 주거군 사이에서 개별적으로 위치하다 점차 주거군의 외부, 즉 취락의 외곽에서 수혈유구는 군집되어 설치된다. 이러한 변화는 취락의 구조 변화와 그 궤를 같이하며 사회경제적 의미의 변화도 반영함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이며 임시적인 구조물의 성격에서 벗어나 점차 취락 내 중요위치를 차지하며 공공재의 성격을 띠어 나가게 되면서, 전문적 관리자의 등장을 초래하고 이로 인해 계층화의 발생도 일어나는 것을 판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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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석기는 청동기인들의 실제적인 삶의 필요에 의하여 고안되었기 때문에 기능적 속성 파악을 통한 당시인의 생활방식이나 생계수단 등의 연구에 있어서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석기분석을 바탕으로 청동기시대 취락의 생계유형과 그 변화상을 검토하고, 더 나아가 취락 간의 사회경제적 측면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물론 석기만의 분석을 통하여 취락의 생계경제를 언급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지만, 고고학적 현상을 해석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 방법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분석을 통하여 확인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대단위 취락의 생계유형은 공통적으로 농경에 기반을 둔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동시에 자연지리적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렵이나 채집활동, 유적의 입지에 따라 어로활동까지 병행하는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논농사의 집약화에 의한 생산량의 증대와 농경 비중의 확대, 증대된 생산물을 차지하기 위한 집단 간 갈등과 교역을 목적으로 한 석기 생산량 증가 등의 변화상이 관찰되었다. 다음으로 호서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사회경제적 측면에 대해서는 특수한 역할을 담당하는 취락이 후기부터 등장하였는데, 저장 중심 유적이나 제사 관련 유적이 다른 취락과 유사한 생계경제 방식을 취한데 반하여 교역 관련 유적은 농경에 의존하는 대신 교역 등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통하여 식량의 공급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 호서지역의 최상위 취락이라 할 수 있는 관창리유적과 송국리유적에 대한 조성비 비교 결과, 생계방식상의 유사성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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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200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반도의 점토대토기문화는 점토대토기와 파수부호, 청동기·철기, 유구석부 등의 유물조합에 의해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1단계는 한반도에 점토대토기가 처음 등장하는 시기로 중국 동북지방 凉泉文化와 춘추시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기원전 5세기대로 볼 수 있다. 한국식동검이 등장하는 3단계는 기원전 4세기대로, 전국계철기와 삼각형점토대토기가 등장하는 4단계는 기원전2세기대가 중심이다. 또 와질토기와 다량의 철기가 보이는 5단계는 기원전 1세기대가 중심이 된다. 한편 점토대토기와 함께 한반도에 전개되는 초기철기문화의 사회문화적 변동은 점토대토기문화가 기존 청동기문화의 연속이라기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화임을 역설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송국리유형까지만을 청동기시대로 보아 청동기시대는 조기(미사리유형)-전기(가락동,역삼동유형)-후기(송국리유형)로 나눌 수 있다. 한편 본고에서 설정한 점토대토기문화 중 1,2단계는 송국리유형과 같은 시기로 볼 수 있으며, 5단계는 원삼국문화와 중첩된다. 따라서 초기철기시대는 앞서 살펴본 5단계 중 3단계와 4단계만을 지칭할 수 있으며 철대연대로는 기원전 4~2세기의 약 300년의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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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200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고고학에서 청동기시대 시기구분은 1980년대 이후 송국리문화를 특징으로 中期가 설정되어 前期-中期-後期의 3時期區分이 이루어졌다. 3시기구분은 1990년대까지 거의 통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청동기시대 後期의 점토대토기문화를 청동기시대에서 분리하여 초기철기시대로 보고 있어, 청동기시대는 전기와 후기의 2시기로 구분하자는 의견과 3시기로 구분하자는 의견이 팽팽하다. 中期는 지역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남부지역은 송국리문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북한지역의 경우 서북한지역의 미송리형토기문화, 동북한지역의 유정동유형으로 대표된다. 중부지역은 역삼동 Ⅱ유형과 북한강유형으로 대표되며, 영남 동남해안지역은 검단리유형으로 대표된다. 이처럼 청동기시대 중기에는 지역적으로 다양한 문화양상들이 확인되고 있다. 後期는 점토대토기문화를 특징으로 하는데, 점토대토기문화는 靑銅器時代後期, 初期鐵器時代, 三韓時代등 다양한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점토대토기문화는 한반도에서 가장 발전된 靑銅遺物이 출토되고 있어 청동기시대 후기로 설정할 수 있다. 중기의 年代는 上限은 전기의 下限과, 下限은 後期의 上限과 맞물려 있다. 전기의 하한과 중기의 상한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전기의 특징적인 장방형주거지가 소형화되고, 토기문양이 소멸되며, 석기에서도 변화가 확인된다. 이러한 변화 양상은 절대연대 자료로 볼 때 기원전 10세기경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특히 중기의 특징적인 송국리형주거지의 연대를 기원전 10세기로 보고 있어 중기의 상한은 기원전 10세기로 설정하고자 한다. 이 시기가 되면 한반도 전역에서 중기문화가 나타난다. 중기의 하한은 점토대토기와 같은 외부로부터 새로운 토기문화가 유입되는 시기로 설정할 수 있으며 한반도에 점토대토기가 유입되는 시기는 절대연대와 요서지역 자료를 참고할 때 기원전 6세기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기원전 5세기부터 청동기시대 후기로 편년될 수 있으며 따라서 중기의 하한은 기원전 5세기 이전으로 잠정해두고자 한다. 그러나 중기로 편년되는 송국리형주거지의 경우 제주지역에서는 기원전 1세기내지는 기원후 2~3세기까지 축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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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200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남한지역 청동기시대 전기의 상한과 하한을 검토한 편년연구이다. 먼저 청동기시대의 시기구분은 조기(미사리유형)-전기(미사리유형,가락동유형,역삼동·흔암리유형)-후기(송국리유형,역삼동유형,북한강유형,검단리유형)의 3단계로 나누었다. 전기단계는 조기에 이어지는 미사리식토기의 존속, 여기에 가락동식·흔암리식·역삼동식토기가 사용된 시기이며, 마제석검과 청동기가 제작되었다. 이와 함께 취락구성에 있어서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의 대형주거가 중심을 이루며, 정형화된 분묘와 환호취락의 등장 역시 전기청동기문화의 주요 구성요소에 해당한다. 특히 비파형동검을 모방한 혈구이 단병식마제석검이 성행한 점에서 비파형동검문화기로 볼 수 있으며, 마제석검만 존재한 선동검기와 비파형동검기로 세분된다. 전기 청동기문화의 상한은 미사리식·가락동식·역삼동식토기 등이 지역성을 보이는 기원전 12~13세기로, 하한은 역삼동식토기가 주체를 점하는 시기로서 기원전 9~10세기로 추정된다. 한편 이와 같은 절대연대는 동아시아적인 관점에서 중국의 기년명자료와 공반유물의 검토를 통한 비교연대 연구를 병행하면서 검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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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1995.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aims at examinating the change of architectural technique in the residential district of Seoktanri(石灘里), and then extracting the restorable types from it. The constructive technique was advanced in the composition of walls and the use of footing. The arrangement of columns was developed to standing them in a row and three rows in the center of interior space. In the light of excavated relics and the position of furnace, the interior space is seperated into cooking-heating, working and storing space. By the difference of height and the slope, the floor is divided into two parts which are low and high. According to the arrangement of column-holes, the types of roofs to be restored are as follows; the gable roof without column-hole, the hipped roof with center-column-holes(中央柱孔) in a row and the gable roof with center-column-holes in three r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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