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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6·25전쟁 시 패퇴하던 북한군에게 있어 중국인민지원군의 지원은 절 대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인민지원군은 조중연합사를 구성하여 조선인민 군을 통제하였고 김일성은 추락한 위상을 만회하고 군권을 장악하고자 조중연합사와 협력하고 갈등하며 북한군의 독자적인 군사전략 발전의 필 요성을 느꼈다. 따라서 본 논문은 북한의 주체적인 군사전략이 6·25전쟁 시 조중의 협력과 갈등의 결과로 창출된 것임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조중연합사 운용 간 조중이 협력한 사항과 갈등을 빚은 내용을 분석하고, 6·25전쟁 이후 조중의 협력과 갈등이 북한의 주체적 군사전략 발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6·25전쟁 중 조중 연합사 운용 간 조중의 협력과 갈등은 김일성으로 하여금 주체적인 군사 전략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였고, 김일성은 자위적 안보에 초점을 둔 배합전략과 속전속결전략의 군사전략을 채택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이와 같은 군사전략은 국제적 안보환경과 북한의 핵 무력 완성 등에 따라 다소 유동적일 수는 있어도 김일성 주체사상에 기 초한 배합전략과 속전속결전략은 변함없이 이어질 것으로 예견해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비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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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2.03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문재인 대통령의 6·25전쟁 종전선언 제안과 관련국 입장에 대한 분석평가와 추진방향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6·25전쟁 종전선언 제안과 종전선언 관련국 북한·미국·중국의 입장을 분석·평가하 고 한국의 추진방향·전략을 살펴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76차 유 엔총회 기조연설(2021.9.21)을 통해 비핵화와 한반도 항구적 평화정착의 입구론을 내세워 종전선언을 재차 제안하였다. 종전선언 제안에 북측도 일단 호응하면서도 적대시정책과 이중기준의 철회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도 종전선언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원론적으로 화답했지만 유엔사 해체와 주한미군철수를 우려하고 있고 또한 그 시기, 순서, 조건과 관련 해서 한국과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종전선언과 관련해서 중 국역할 강조하며 지지를 표명했지만 북한의 비핵화보다는 유엔군사령부 해체와 주한미군축출을 주된 목표로 삼고 있다. ‘급할수록 돌아서 가라.’ 는 말이 있다. 한국의 군사안보는 자조적이면서도 튼튼한 한미공조에 기 초해야 한다. 향후 우리는 신중·치밀한 단·중·장기적 추진방향·전략에 바 탕을 두어 종전선언, 평화협정, 평화체제를 점진적·순리적으로 도출하여 착실히 실천·이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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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2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DMZ가 생성된 이래 북한의 도발 및 남북무력충돌이 발생해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가장 높았던 시기가 바로 1960∼70년대였다. 정전협정 체결 후 1960∼70년대 북한 무력도발은 ①남조선혁명의 일환으로 획책, ②체제결속의 강화 차원에서 지속, ③남북분단 고통의 심화·확대의 초래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 북한의 대남전략 및 무력도발이 주는 시사점은 ①북한의 위장평화공세에 대한 철저한 대비, ②북한의 어떤 무력적화도 발에 대해서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안보능력 강화, ③통일지상주의 및 근거 없는 낙관론의 지양, ④북한의 변화를 위한 점진적·단계론적 접근의 추진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우리의 국방은 항상 최악의 상황 까지도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언제라도 북한의 무력도발을 억제하고 유사시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자조적·공조적 국방안보능력 강화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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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9.1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한국의 국군포로문제 해결노력과 향후과제를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국군포로문제의 성격과 현황, 한국의 국군포로문제 해결노력의 전개와 성과, 한국의 국군포로문제 해결을 위한 향후과제를 살 펴본 후 결론을 도출해 본 것이다. 「정전협정」에 따라 전쟁포로 송환이 이루어졌으나, 미송환 국군포로들이 북한에 억류된 채 남아 있어 이들의 송환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왔다. 한국은 김대중 정부이래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을 목표로 하되, 이산가족만남과 관련한 생사확인, 상봉, 그리 고 송환 등 현실적인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국군포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여전히 정전협정체결 당시 다 해결되었고 강제억류중 인 국군포로는 1명도 없다는 입장이다. 향후 한국은 국군포로문제 해결 을 위해 ①국군포로에 대한 면밀한 실태조사, ②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을 통한 공동노력, ③유해 및 생존자·가족의 의사를 존중한 송환모색, ④ 귀환한 국군포로·가족에 대한 정착지원 등과 같은 노력을 지속·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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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2.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memory of the Korean War is about the time period when people lived toughly during evacuation, due to being exposed to the natural climate such as intense cold or heat without any protection, leaving their comfortable home and living in temporary built shelters which were barely enough to avoid the wind. ‘Death is concealed and only the figures of evacuation for survival were expressed, just as how the government ordered. Since the experience of the battlefield is personal and fragmentary, that is broken into pieces, it does not have compatibility. As war is a distorted experience that cannot be placed in a big picture, it is not possible to take a view of the war’s big picture. Having this individualized experience as a common collective memory is an issue and it is the will that people tries to pursue. The reason why the evacuees from north to south, and as well as from the south to further south were all able to be adopted as the theme of artworks due to the military action that emptied the occupied territories of the North Korean Army under the forced removal command. In such situations, the natural state of the ‘snow’ was like a symbol of the 1.4 Recession. The group of people who were thrown into the intense cold displaced the war damage of loosing their base livelihood, and symbolized the obedient citizens who faithfully follow their government’s command. The figure of advocating anti-communism is projected as a figure of a refugee during cold winter-time and it contains ones past which he or she obeyed its own country’s commands. Evacuation, especially the evacuation during the winter is a visual device that can confirm these kinds of country’s command. The consequences were same for the artists as well. Therefore, the situation being communal could be found due to the individual experiences during war are ideological. The image of the refuge shown in the picture played the role of strengthening the consciousness of defecting to South Korea into the meaning of the ‘Finding Freedom.’ I would like to express that the reason of them leave their home during the harsh winter is in order to avoid the oppression of the Communist Party. The evacuation that people went through was not to ‘Finding Freedom’, but ‘To Survive’. Later, this evacuation has been imprinted as a behavior of choosing free Republic of Korea, which was an ideological issue. Anti-communism was the rule of survival in South Korea society, and people have the tendency to remember what they want to remember. As it is not the people who possesses an incident, but the memory that possesses ones, people cover their memory with disguised plots in order to forget the violence and to live a different prologue. They share the incident of violence as a hurtful memory. The tragedy of the Korean War was the result of Ideology and being in between the powerful nations’ rights, but the violence during the war has been depicted as a natural disaster, which was the evacuation in heavy s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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