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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나카네 기요시는 陸軍(省)參謀局 등에 근무하면서 『兵要日本地理小誌』 등 일본지리교과서를 출판하였다. 그가 육군참모국 재직 중 집필했던 『병요일본지리소지』는 최초의 官撰 全國地理書로 군인용 교재뿐 아니라 일본지리교과서로도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따라서 당시 최신의 정보를 근거로 편찬된 『병요일본지리소지』에는 육군참모국의 일본 영토 인식이 잘 반영 되어 있다. 『병요일본지리소지』의 본문에는 일본의 극단에 위치한 섬들이 소개되고 「日本國全圖」와 「山陰道之圖」 등에 일본 영토가 표시되었지만, 울릉도와 독도는 거론되지 않았다. 따라서 나카네가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獨學日本地理書』에는 일본 영토의 변동 상황이 정확히 반영되었음에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문과 지도에서 모두 나타나지 않았다. 나카네는 『日本地理小誌』에서 비로소 竹島와 松島를 조선 영토가 되었다고 확실하게 밝혔다. 山陰道總論에서 오키의 서북쪽에 松島⋅竹島가 있음을 소개하고 울릉도쟁계와 竹島 渡海禁止令을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막부가 竹島를 포기한다고 명령했다고 서술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일본지리교과서 가운데 최초이자 거의 유일한 사례이며, 「日本國全圖」와 「山 陰道之圖」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日本地理小學』에는 松島⋅竹島가 조선 영토라는 나카네의 인식이 유지⋅계승되고 있다. 『일본지리소학』의 본문에는 竹島⋅松島가 거론되지 않지만, 「日本總圖」에는 竹島⋅松 島로 여겨지는 두 섬이 그려져 있다. 「山陰道之圖」는 『일본지리소지』의 것과 동일한데, 『訂 正日本地理小學』의 「山陰道之圖」는 경위도의 범주가 줄어들면서 松島가 표시되지 않았다. 『정정일본지리소학』의 「日本總圖」와 「山陰道之圖」에서 松島⋅竹島 모두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점은 더욱 확실해졌던 것이다.
        2.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중학교 사회교과과정 중 독도교육의 현황을 분석하고 바람직한 교과운영의 방안 마련 및 학습내용 개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행 교육정책과 중학교 사회2 교과서 지리 영역의 독도관련 학습주제와 내용을 분석하였으며 중학생들의 독도에 관한 인식 수준을 살펴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분석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중학교 지리교과학습 중 실질적 독도교육의 강화를 위한 제언을 담고 있다. 2014년 교육부는 독도교육 내용체계의 개정을 통해 학교에서의 독도교육을 강화하고 그에 따른 세부시행계획들을 비교적 잘 시행해오고 있으나 한편으로 독도교육 의무화 정책은 학교 현장에서 상당히 괴리된 채 진행되고 있는 문제점과 무엇보다 교육과정개편이 추진 되지 않아 그에 입각한 교과서 내 독도 관련 내용이 독도교육 강화 목표에 부합하지 못하는 경향이 본 연구를 통해 확인된다. 특히 지금까지 부족했던 지리 영역 내 독도 기술 내용은 양적, 질적 보완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선 지리학계의 지속적 연구 성과물 생산과 이를 학교교육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독도관련 정부 및 민간단체와의 협력적 관계를 모색하여 제한된 재정과 인력으로 실효적 수업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일선 학교에서의 독도수업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3.
        2013.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독도 문제는 동아시아의 미래 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럼으로 앞으로는 독도 문제 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현실주의적인 해법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독도 문제에서 1905년 1월 일본의 독도 점유는 조선 침략을 시작하면서 5년 뒤의 강압적인 한국 병합을 위한 전조로 행해졌다는 점에 시초가 있다. 일본으로서는 이 주장을 논박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이렇듯 독도 문제는 일본군 강제위안부 등 여전히 미해결 상태인 다른 과거사 문제 청산작업과 동시에 진행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젠 이런 문제를 인정한 뒤 대화와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쌍방 모두 심대한 손실을 입게 될 상황에 처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이런 중대한 의미를 갖는 독도 문제에 대해 한국 국민들의 현재 상황을 파악해 보는 시도이다. 이를 위하여 이 연구에서는 특히 우리 국민의 독도 영유권 인식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이 연구에서는 먼저 한국 국민의 독도 영유권 인식 현황을 살펴보았다. 더불어 사회경제학적 입장에 따른 한국 국민의 독도 영유권 인식 현황을 살펴보았다. 다음 으로는 독도 영유권과 관련 있다고 판단하는 다른 항목들에 대한 인식 현황을 살펴보고, 이들 관련 항목과 독도 영유권 인식과의 관련성을 분석해 보았다.
        4.
        2005.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이제까지 선행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메이지 시대 문헌들을 중심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인식의 한 단면을 살펴 본 것이다. 독도의 일본에 대한 역사적 영유권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울릉도와 독도를 분리하여 울릉도는 조선의 영토였으나 독도는 일본의 영토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근대국가형 성기에 과연 이러한 인식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있었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본 논문은 메이지시대의 울릉도와 독도 인식은 전 통시대와 마찬가지로 울릉도를 중시하였을 뿐으로, 울릉도개척논의는 존재했으나 독도를 단독으로 주시한 견해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 당시 메이지 지식인의 언설에서 볼 때 울릉도와 독도를 동해상에 위치한 두 섬으로 인지하고 있었고 이를 따로 떼어 인식하지는 않았다는 점, 메이지 시대 이전과 이후의 지도자료를 통해 볼 때 울릉도와 독도를 모두 일본의 영토로 간주한 지도도 있지만 이 두 섬을 조선의 영토로 간주한 지도, 혹은 아예 울릉도와 독도가 표시되지 않은 지도가 존재했으며 메이지 시대 지도에도 독도를 일본의 영토권 내로 표시한 지도는 없었음을 밝혔다. 이러한 사실은 배타적 영토관념이 희박했던 시대에 독도에 대한 관심이 불명료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즉, 이러한 자료를 통해 볼 때,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에 영토편제하기 이전인 19세기 후반기에 일볹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생각한 흔적은 없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