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독도연구 KCI 등재 The Journal of Dokdo

권호리스트/논문검색
이 간행물 논문 검색

권호

제1권 (2005년 12월) 9

2.
2005.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독도에 대한 역사ㆍ지리적 인식을 밝히기 위해서 마련되었다. 이 연구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본 논문에서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문헌 자료와 구전 자료, 그리고 지도들을 이용하였다. 그리하여 얻은 성과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하나의 세트로 인식하여 왔는데, 조선 시대에 접어들면서 독도에 대한 실체를 별도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둘째 한국은 일찍부터 울릉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일본은 상대적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지식을 근대에 들어서 가지기 시작하였다. 셋째 한국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울릉도는 울릉도로, 독도는 우산도로 인식하였으며, 이들 두 섬에 대한 위치와 크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졌다. 한편 일본의 경우는 이들 두 섬의 명칭부터 혼란을 보이고 있었으므로, 정확한 지식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 넷째 일본은 독도가 무주지였기 때문에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무주지는 생활권을 함께 하는 곳에 속한다는 원칙에 따라, 울릉도에 속한 섬이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을 구명하였다.
3.
2005.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오늘날 일본인들의 가까운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의 권위있는 정부기관에서 생산된, 일본의 사료들만을 기초 자료로 하여, 당면하고 있는 소위 독도문제 의 본질을 이해하려 했으며, 그 문제의 중심에는 조작된 󰡔島根縣 告示 第40號󰡕가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려 하였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독도가 주인없는 땅이 아니라는 역사적 사실을 1905년의 시마네현고시 제40호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으며, 고시에의 한 영토편입 이후에도 일본의 독도에 대한 영토인식, 즉 조선의 영토라 는 기존의 인식에는 변화가 없었음을 확인하였다. 더욱이, 일본이 국제 법적 근거로 내세우는「島根縣 告示 第40號󰡕의 실체는 일본 제국주의가 독도 불법강점을 위해 은밀히 진행시킨, 위장된 근거에 불과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당시의 국제 상황, 그리고 러시아와 전쟁의 와중에 그야말로 비밀에 붙일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일본의 뿌리깊은 침략근성, 끈질긴 영토팽창야욕에 기인하는 술책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4.
2005.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에도 막부는 속종 때에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현재 일본측은 그 당시 조선의 땅임을 증명한 것은 울릉도만이라고 주 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학자들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이 었음을 인정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양측 주장의 괴리(乖離)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 이 당시에 활동을 했던 안용복(安龍福)에 관한 기록이다. 특히 2005년 일본의 시마네현에서 발견된 안용복의 진술문서는 일본 사람들이 마쓰시마(松島)라고 부르던 자산도(子山島)가 조선의 영토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이 문서를 중심으로 하여,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일본측에 남아있는 그에 관한 기록들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는 것도 아울러 해명하였다.
5.
2005.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일본의 고지도에 독도가 어느 나라의 영토로 표기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찰하였다. 그리하여 에도 시대와 명치 시대에는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밝혔다. 그러므로 이 연구로 인해 일본이 역사적으로 독도를 계속 영유해왔다는 주장은 거짓말임을 입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05년에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켜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근대법적으로 재확인했다고 하는, 일본측의 주장도 결국은 그 타당성을 잃게 된다고 하겠다.
6.
2005.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이제까지 선행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메이지 시대 문헌들을 중심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인식의 한 단면을 살펴 본 것이다. 독도의 일본에 대한 역사적 영유권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울릉도와 독도를 분리하여 울릉도는 조선의 영토였으나 독도는 일본의 영토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근대국가형 성기에 과연 이러한 인식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있었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본 논문은 메이지시대의 울릉도와 독도 인식은 전 통시대와 마찬가지로 울릉도를 중시하였을 뿐으로, 울릉도개척논의는 존재했으나 독도를 단독으로 주시한 견해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 당시 메이지 지식인의 언설에서 볼 때 울릉도와 독도를 동해상에 위치한 두 섬으로 인지하고 있었고 이를 따로 떼어 인식하지는 않았다는 점, 메이지 시대 이전과 이후의 지도자료를 통해 볼 때 울릉도와 독도를 모두 일본의 영토로 간주한 지도도 있지만 이 두 섬을 조선의 영토로 간주한 지도, 혹은 아예 울릉도와 독도가 표시되지 않은 지도가 존재했으며 메이지 시대 지도에도 독도를 일본의 영토권 내로 표시한 지도는 없었음을 밝혔다. 이러한 사실은 배타적 영토관념이 희박했던 시대에 독도에 대한 관심이 불명료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즉, 이러한 자료를 통해 볼 때,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에 영토편제하기 이전인 19세기 후반기에 일볹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생각한 흔적은 없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7.
2005.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일본 영토정책의 틀 안에서 독도가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일본에서의 독도 문제 제기는 일본 내셔널리즘의 확대에 의 해서 초래되었으므로, 이 내셔널리즘의 약화만이 문제 해결의 핵심임을 밝혔다. 다음으로 러시아와 문제가 되고 있는 쿠릴열도 귀속 문제는 일 본측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도 알아냈다. 또 조어도 문제는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역사적 근거가 박약함에도 불구하고 실효적 지배론을 앞세우고 있다는 사실도 규명하였다. 특히 일본이 조어도 문제에 관한 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기를 꺼려한다는 사실은 한국과 관계가 있는 독도 문제와 대조되는 입장이어서 주목을 끈다. 이상과 같은 고찰은 일본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국가와의 영토분쟁에 대한 현안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들 영토분쟁이 앞으로 어떻 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망을 하였다. 즉 독도의 경우는 한국이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되면, 일본의 집요한 요구에 설복될 가능성이 있다. 쿠릴열도 문제 역시 러시 아의 국내적인 어려운 상황을 기다렸다가 일괄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어도는 일본이 실효적인 지배를 하고 있으나, 영토 적 권원이 미약하다는 약점 때문에, 중국에 자원의 공동 개발을 제안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사례를 가지고 일본이 독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한국의 독도 영유권 문제가 위기에 봉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울러 밝혀둔다.
8.
2005.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일본은 근대로 접어들면서 영토의 팽창을 계속적으로 추구해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는 독도의 귀속 문제가 제기되었고, 중국과는 조어도 (釣魚島) 귀속문제가 제기되었다. 특히 중국과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된 조어도는 전략적 가치가 대단히 중요한 곳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치란 단순히 섬 본래의 영토적 가치 가 아니라, 잠재적인 경제적ㆍ군사적 가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중국은 조어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보하여, 일본의 부당한 이익이나 강점(强占) 을 합법화시켜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