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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연구 KCI 등재 The Journal of Do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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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

제11권 (2011년 12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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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중학교용 신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서 독도문제는 지리 교과서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일본이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 러시아 북방영토(남 구릴열토)와 똑같은 영토 교육으로 정했다. 그 런데 이 영향은 지리 교과서뿐 만 아니라 신 해설서에서 무관한 공민 교과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이유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계통의 지유샤(自由社)및 이에서 분열된 이쿠호샤(育鵬社)가 지리 교과서를 출판하지 않고 영토문제를 공민 교과서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함에 따라 다른 회사가 이에 대처하기 위 해 영토문제를 공민 교과서에서도 다룰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편, 독도문제를 가장 많이 다룬 지유샤는 역사 교과서의 도용 문제로 공민 교과서의 채택율이 0.1%이하로 되어 거의 무시할만한 존재가 됐다. 이에 반사 이익을 얻은 것이 이쿠호샤의 공민 교과서이며, 그들의 목표인 5%에는 미달했지만 4%를 차지해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이 교과서의 기술은 한국의 불법 점거는 물론, 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한 해결을 거부한 것이나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것 등을 자세히 적었다. 이는 일본 외무성의 독도 팸플릿을 이용한 것이다. 일본의 초등학교 학습지도 요령서·해설서도 2008년에 개정됐다. 이 개정된 교과서는 얼른 보기에 독도문제와 무관해 보인다. 그러 나 사회과 교과서는 일본의 동서남북의 끝을 밝혀야 한다는 규정 에 따라 2개의 교과서 회사가 지도교과서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그 렸다. 이 결과 모든 회사의 사회과 교과서가이처럼 개정된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이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 토로 배우게 된다면 독도문제의 해결은 차세대에 갈수록 어렵게 된다. 이런 사태에 단지 일본에게 항의나 비난을 거듭해도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 한일 양국은 외교적으로 본격적인 영유권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지만, 앞으로 모든 기회를 잡아 일본의 그릇된 독도 인식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 기회의 하나로서 장차 열리게 될 제3차 한일역사공동연구회를 들 수 있 다. 공동연구의 성과는 교과서문제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이 연 구회를 잘 이용하면 독도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독도를 일본영토로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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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가 2010년 이후 독도 명기 단계를 해설서에서 교 육과정으로 상향 조정하고,‘초ㆍ중ㆍ고교 독도교육 내용체계’를 제시한 것은 최근 일본의 독도 교육 강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일본의 독도 교육 강화의 내용을 살 펴봄으로써‘초ㆍ중ㆍ고교 독도교육 내용체계’의 구성 체계가 부 당한 일본의 독도 교육의 내용을 불식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초등학교에서 독도에 관한 교육을 지도로부터 시작하지 만 한국의 경우 울릉도와 독도를 서로 바라볼 수 있고, 강원도 삼 척, 울진 등의 동해안 지역과 울릉도는 서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 진 자료를 먼저 제시한다면 보다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독도 교육 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세종실록지리지』등의 문헌자료를 제시한다면 초등학생들에게 문헌자료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그것을 통해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보다 쉽 게 인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중학교 검정 통과된 일본의 교과서의 경우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강조한다.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된 시점을 일본 외무성 죽도 홍보 팸플릿에서처럼 17세기 중엽이라고 내세우면서 에도시 대 때부터 울릉도로 가는 정박장이나 어채지로 독도를 이용하였다 고 한다. 일본은 1693년 안용복ㆍ박어둔 납치사건으로 인해 1696 년 울릉도 도항을 금지했지만 독도 도항을 금지하지 않았기 때문 에 일본이 독도를 계속 영토로 보유하였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안용복 개인을 내세우기 보다는‘울릉도쟁 계’때 조선과 일본 정부가 울릉도 영유권 논쟁을 벌인 결과 일본 에도막부가 조선으로부터 울릉도가 더 가깝기 때문에 조선의 영토 로 인정하였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 와 오키섬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를 비교하고,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볼 수 있지만 일본의 오키섬에서 독도를 바라볼 수 없다는 것 을 내세울 필요가 있다. 일본의 독도 강탈은 일본 제국주의의 영토 야욕에서 비롯되었음 을 중학교 이후의 교과서에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2008년 7월 14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중학교 사회교과목 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 서 북방영토는 일본의 고유영토이며, 러시아가 불법적으로 점거하 고 있다는 것을 기술하면서 독도문제를 동일시하여 기술하고 있 다. 그런 점에서 중학교 교과서에서 일본의 고유영토설을 비판함 과 동시에 일본이 주변국가와 벌이고 있는 영토 분쟁, 즉 센카쿠 열도와 북방 4개 도서 문제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이 본격화된 시점으로부터 시작된 영토 분쟁이라는 점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독도 교육의 총괄 목적을“우리 영토에 대한 올바른 수호 의지 를 갖추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에 적합한 세계 시민 의식을 함 양한다”라는 시각에서 독도문제를 중심으로 한「동아시아사」의 영토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단순한 영토 분쟁의 차원에서의 교육이 아니라, 역사화를 통해 일본에게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고, 세계 시 민 의식을 일깨우는 교육이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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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대한제국 칙령 41호가 반포되어 울릉도가 지방행정에 편 입되는 시기에‘무주지 양코도(ヤンコ島)’가 등장한다. 한해통어 지침 저자 구즈우 슈스케(葛生修亮)는 지도에도 없는‘양코도’를 등장시켜 양코도무주지설을 유포하고 독도 침탈의 저의를 드러냈 다. 러시아가 1899년 울릉도 점령을 선언하자 구즈우는 울릉도에서 보이는‘새로운섬’‘양코도’를 발견했다고 유포하였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직선거리 92Km, 오키도에서 직선거리 160Km지점에 있지만‘양코도’는 울릉도와 오키도의 중간 120Km지점에 있으며 울릉도가 보인다고 설명하였다. 이것은 독도가 울릉도를 감시할 만큼‘가깝다’며 전략적으로 상호 보완적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이후 1905년 전후에 출판된 조선 지리서에는 울릉도와 나란히‘양 코도’가 등장하지만,‘양코도’는 전략적으로 일본인들이 사용할 구즈우가 만든 가상의 섬이었다. 구즈우는 동해안에는 울릉도 하나만 있음을 강조하였다. 무인도였 던 울릉도에는‘일한 어민들이 양코도라고 한다’라고 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발견된 섬이 있지만 조선인들은‘양코도’를 알지 못 했다고 독도무주지설을 유포하였다. 이것은 강원도 삼척 장울리를 근거지로 한 상어어민의 증언을 날조한 것으로 당시 보고된 수산 보고서와 상호 대조해 보면 거짓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구 즈우는 일본인들의 전통적인 수법을 이용하여 가상의 섬‘양코 도’를 이용하여 독도무주지설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일 본 관료들은 날조된 독도무주지설을 알고 있었으나‘시국(時局)’ 이라는 이유로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시켰다. 이렇듯 가상의 섬‘양코도’등장은 흑룡회의 계산된 독도 침탈 야욕에서 비롯되었다. 흑룡회는 울릉도와 오키의 두섬 중간 30리 (120Km) 지점에 양코도가 있다는 사실을 정계와 학계, 언론에 사 실인 것처럼 알렸고 조선 진출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관료나 학 자들은 아무런 의심없이 독도무주지설를 수용하였다. 현재까지 일 본의 독도 침탈은 러일전쟁의 전략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독도무주지설은 1900년대 조선 해상권 독점을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의 각축 시기에 만들어진 흑룡회의 자작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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