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세계화의 본격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교통수단의 발전과 정보교환 수단의 발전으로 인하여 전 세계는 하나로 되어 가고 있는 과정을 밟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서 전세계 어디서나 상품을 구할 수 있고 전 세계 매스컴을 접촉할 수 있으며 인터넷을 통한 경제체제의 구축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각종 영토 영유권 문제도 각 나라, 또한 2~3 나라들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독도문제도 그 문제들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독도 문제는 고대부터 국제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역사와 국제정세 차원에서 독도 문제를 다시 한번 새로운 눈길로 보고자 한다.
작년(2005년)은 일본에 있어 국경 문제가 주목받은 해였다. 3개의 주요한 국경 문제가 일종의 주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입장 에서 본다면, 죽도의 시마네현 편입 100주년 (러일 전쟁중인 1905년), 센카쿠 제도의 오키나와 편입 110주년(청일 전쟁 중인 1895년에 오키 나와에 편입), 또 일본과 러시아의 국경 획정으로부터 150주년(일러 통교조약) 에 해당된다.
현재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3개의 국경 문제가 본격적인 국제분쟁 으로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이다. 일본과 러시아의 북방 4개 섬 문제를 시작으로 죽도 및 센카쿠 열도 문제도 모두 일본의 패전을 계기로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일본의 영토는 1951년 에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에 의해 규 정되었다. 평화조약의 제2장에는 메이지 이후 일본이 획득한 대만, 한반도, 미크로네시아, 쿠릴 열도, 가라후토(남사할린)의 일부 등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본이 획득한 지역에 대한 영유권 포기가 명기되 어 있으며, 이를 기초로 현재의 일본의 영역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평화조약에 의해 영유권 포기가 명기되어 있지 않은 지 역을 일본의 영토로 보는 해석이 있다1).
그러나 평화 조약에는 현재 일본과 영토분쟁의 상대국인 한국, 소 련, 중국은 조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이 포기한 영토의 귀속과 영토의 범위가 애매모호하게 되어 버렸다. 그 후의 개별 평화조약의 교섭에서도 해결을 보지 못하고, 현재도 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남중국해나 동중국해의 작은 섬들의 영유권 문제도 ―현재 일본과 직접적인 분쟁 지역은 아니지만― 평화 조약에서 일본이 포기한 서 사제도(西沙諸島, 파라셀제도)의 귀속국을 정하지 못한 점에 분쟁의 원인이 있다. 즉 중국(중화 인민 공화국)과 대만 어느 쪽도 평화 조 약에 조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쪽에 귀속시킬 것인가라는 문제 가 남게 된 것이다.
오늘 이 보고는,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3개의 큰 영토 문제의 해결 방법을 직접 논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이미 많은 전문가에 의해 문제의 소재가 논의되고 있고 필자도 새로운 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 깊이 있는 연구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일본의 영토 문제에 관한 오랜 논쟁이나 반환 운동을 되 돌아보면, 분쟁이 되고 있는 섬의 귀속이나 영유권에 초점을 좁히면 좁힐수록, 해결책은 어려워져 버린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래서 오늘은, 국경이나 영토문제를 해결한 아시아와 유럽의 몇 개의 역사적 사례를 예로 들면서 보다 넓은 범위에서 영토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