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예사에서 안진경(顏眞卿, 709-785)의 위상은 오랜 세 월동안 점진적으로 제고됐다. 당송시기, 명 말기, 청대의 3단계 발전과정이 있었는데, 당송시기에는 안진경의 인격을 추앙하고, 명 말기와 청대에 비학(碑學)이 출현해 안진경의 서예가 본격 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다. 이러한 서예 내면의 작품적 영향력과 서예 외면의 사회적 영향력이 작용해 안진경의 서예 가 당대에 높은 지위를 얻는 토대가 된 것이다. 본고에서는 연구범위를 당송시기로 한정하고 송나라 때에 안 진경의 서예를 추존한 [미]에이미 맥네어(AmyMcNair)의 중정 지필(中正之筆)에 대한 관점을 집중적으로 토론해 다음과 같 이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해 냈다. 먼저, 안진경을 추존하는 사조는 만당(晩唐)시기로 거슬러 올 라간다. 안록산의 난 이후에 당시 사대부들은 ‘중정(中正)’에 대 한 관심을 갖고 서예에도 이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둘째, 송나라 문인들의 안진경에 대한 추존은 여전히 당나라 사대부들의 논조를 계승해 ‘그 글씨(其書)’보다는 ‘그 사람(其 人)’을 더 중시했다. 셋째, 안진경 서예의 위상 제고는 문인 집단의 구조적 변화 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송나라 문인들이 안진경의 서예를 최 상으로 했다는 관점은 후대에 의해 크게 과장된 것이다. 이상과 같이 본고의 고찰을 통해 당송시기 안진경의 영향력 제고에 대한 원인과 변화양상을 이해하는데 일조가 됐으면 한 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독자의 많은 질정을 바란다.
본 논문은 중국 강소성 소주 운암사 탑과 서광사 탑, 그리고 절강성 금화 만불탑 안에서 발견된 소형 금동불상의 종류와 상태, 그리고 상들이 탑 내 봉안된 의미를 탐색한 글이다. 오대~북송 초, 즉 10세기 후반~11세기 중엽에 조성된 세 탑 안에서는 탑의 제3층 탑신부 혹은 탑 아래에 조성된 석실에서 각기 6구, 9구, 그리고 60여 구의 금동불이 수습되었다. 이 시기 불탑 안에 소형 불상이 안치되어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나 안치된 상의 성격이나 그 의미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본 논문은 상의 상태와 제작 시기 를 조사하여 대체로 이들은 탑보다 적게는 50년, 많게는 500여 년 앞서 제작되었으며, 광배 가 결실되거나 상의 일부가 파손된 채 안치된 것이 많음을 확인했다. 파손된 옛 불상을 탑 안에 넣은 이유를 탐색하기 위해 唐宋전환기라 불리는 이 시기 두드러지게 보이는 佛事의 신경향을 주목했다. 개인적인 발원을 담은 소형 불상의 제작이 감소함과 동시에 불상이나 탑내 다양한 공양물을 넣는 불사가 크게 유행했으며, 파손되었을 뿐 아니라 제작된 지 오래되 어 발원의 의미가 희미해진 옛 불상을 매장한 관습이 그것이다. 파손된 불상을 수리하여 사 찰의 경내에 보관하거나 소형 금동불을 불전에 진열해 놓았던 唐 이전의 관습 대신 오래된 상들을 매장하는 것이 당시 중국 각지에서 유행했는데, 江浙 지역에서는 그러한 불교 교장 을 조성하는 대신 탑이라는 공간 안에 옛 금동불을 모아 넣었을 것으로 보았다.
만당에서 오대를 거쳐 북송과 남송에 이르는 시대는 중국회화사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시기로 이 시기 회화의 양상은 이후 중국 회화의 전개와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산수화에서는 수묵대관산수 양식의 성립과 발전, 화북산수화와 강남산수화라는 상이한 산수 화 양식의 형성, 문인산수화의 대두를 통해 이후 산수화 전개의 기반을 마련한 전범을 창조 하고 지속적으로 화가들의 창작력을 자극한 여러 화파의 전통이 형성되었다. 이 글에서는 기왕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오대와 북송대 산수화의 발전 양상을 살펴보고 오대에서 북송을 거쳐 남송 초까지 산수화에 나타난 변화와 그러한 변화의 시대적 배경을 고 찰하여 중국 산수화의 창신 및 전범의 형성과 전통의 성립 과정을 파악하였다. 나아가 북송 과 남송 교체기인 12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화원화가인 李唐과 문인화가인 李公年의 작품을 통해 이들이 오대에서 남송에 이르는 산수화의 양식적 변화 및 창조와 모방, 전승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구명하여 이 시기 산수화의 흐름을 조명하였다. 남송대 이 후 중국산수화는 이 시기에 마련된 전통을 계승하고 변용을 거쳐 다시 새로운 전통을 창출한 과정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음으로 오대에서 남송까지 산수화의 발전과 변화의 양상을 정확하 게 파악하는 것은 후대 산수화의 흐름과 함께 화가의 독자적인 창조를 통한 성취나 작품의 우수성 및 역사적 위치를 이해하는 관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This work seeks to examine visible traces of Heavenly Horse天馬 through Li Gonglin’s Five Horses「五馬圖」. The conclusions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Li Gonglin’s Five Horses is a painting that consists of more than one painting of a horse. Accordingly, Five Horses is not an official work of Li Gonglin. Second, Heavenly Horse of Song Dynasties was a swift horse born in the Western Region西域 and was a term used to refer especially to the one that the emperors rode. The horses of Five Horses were tributes from foreign countries to the emperors, which were raised in the imperial palace. Therefore, Li Gonglin’s Five Horses shows the appearance of Heavenly Horses of Song Dynasties as they were. Third, Li Gonglin’s paintings made a stylistic standard, so the appearance of Heavenly Horses had no special features. Consequently, it is not false that the horses in Li Gonglin’s Five Horses are illustrations of traditional Heavenly Hor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