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중국 내몽고 화림격이 벽화고분의 벽화 주제와 구성 방식에 관한 것이다. 화림격이 벽화고분은 1971년에 내몽고 화림격이현에서 발견된 대표적인 동한대 벽화고분 중 하나로 풍부한 벽화와 방제가 발견된다. 화림격이 벽화고분의 벽화 주제로는 크게 현실 세계와 천상 세계로 나눌 수 있다. 현실 세계를 표현한 주제로는 묘주도, 거마행렬도, 역사고사인물도, 건축도, 악무백희도, 속리도, 푸주 및 농경 등이 있고 천상 세계를 표현한 주제로는 상서도, 사신도, 운문 등이 있다. 묘주의 생활과 관련한 벽화는 전실과 중실, 후실에 모두 주요하게 등장한다. 본 연구는 벽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묘장 구조에 따른 벽화 위치를 살펴보아 벽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아보고자 한다. 전실에는 묘주의 정치적 지위를 나타내며, 중실에는 묘주가 한가롭게 지내는 모습과 역사고사 인물도, 거마행렬도 등이 그려져 있다. 후실에는 묘 주의 사적인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나머지 세 개의 측실에는 묘주를 위해 생산 활동하고 있는 시자들의 모습이 주로 묘사되어 있고, 목조의 기둥과 두공, 운문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화림격이 벽화고분에는 묘주의 일평생이 담겨 있으며, 정치적 신분과 경제적 부 등을 벽화를 통해 과시하고 있다. 고분 구조에 따라 벽화의 배치를 살펴보면, 전실의 벽화는 중축선을 기준으로 좌우대칭적이다. 중실은 좌에서 우로 향하는 대각선을 기준으로 서벽과 북벽에는 역사고사인물도가 주요하게 그려져 있고, 거마행렬도는 남벽과 동벽에 그려져 있다. 후실의 벽화는 여러 주제가 등장하는 전실과 중실과 다르게 묘실 전체에 묘주의 사적 생활 모습이라는 공통된 주제의 벽화를 보여준다.
길림성 집안시의 장천1호분 예불도는 5세기 후반 고구려의 예불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단순히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에 그치지 않고, 불교에서의 절하는 방법은 이마를 땅에 닿게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묘사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 논문에서는 인도에서조차 잘 표현되지 않았던 이러한 예불방식이 고구려 벽화에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이 절하는 모티프는 간다라미술에 자주 표현된 연등불수기본생도에서 수메다가 헌신적으로 진흙바닥에 머리카락을 펼치며 몸을 눕혔던 것을 묘사한 장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해 보았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특정한 설화 속의 장면을 넘어 보편적인 예불의 행위로 간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절하는 방법에 익숙했던 동아시아인들은 자연스럽게 미술 속의 수메다의 행위를 부처에 대한 배례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나아가 장천1호분 예불도의 불상 좌우측에 배치된 예불자들의 움직임을 통해서는 우요의 방식으로 예불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자 의도했던 것으로 해석해 보았다. 이 시기 예불방식에서 우요가 중요했을 것임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것을 실증할만한 자료는 많지 않다. 그런 가운데 이 예불도는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지 100여 년 안에 이러한 예불방식이 정착했음을 보여준다.
끝으로 장천1호분 예불도는 정황상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일어나는 장면으로 추정된다. 이는 단순히 실내ㆍ외의 문제가 아니라 화면상에 등장하는 부처가 단순한 불상인지, 아니면 석가모니의 현현한 모습의 묘사인지의 차이이기도 하다. 실내, 즉 법당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러한 구별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야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설법 장면이라면 조각상이 아니라 실제 석가모니를 묘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배경에 등장하는 하얀 연꽃 봉오리는 법화경에 등장하는 백련의 꽃비를 연상시킨다. 물론 예불도가 그려진 공간이 무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미타불, 그리고 극락세계에서의 연화화생 등을 묘사한 것으로 해석하거나, 혹은 내세에 미륵삼회설법에 참여하게 된 것을 상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법화경에서 석가모니의 ‘무량삼매’에 의해 부처가 타방세계에 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석가모니가 고구려에 현현한 것을 묘사한 것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음을 제시해 보았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고구려인의 생활상과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자료이다. 특히 5세기 평양지역 고분벽화는 4세기 이래로 지속된 漢系와 낙랑 고분의 영향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평양천도 이후에는 고구려 고유의 문화가 반영된 벽화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본 논문에서 옥도리 벽화고분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5세기 전 반~중반 평양지역에서 이루어진 집안지역 문화의 수용과 융합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옥도리 벽화고분이 조성된 5세기 고구려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427년에 단행된 평양천도에 주목하였다. 수도 천도로 인해 평양은 이제 고구려의 새로운 정치적․문화 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이후 기존 국내성의 집안 문화가 새로운 수도 평양으로 유입되며 평양에서 汎고구려적인 새로운 문화가 꽃피게 되었다. 5세기의 고분 문화에서도 평양천도를 전후로 하여 두 지역의 고분문화가 교류․융합되는 과정을 거쳐 汎고구려의 문화가 성립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옥도리 벽화고분은 구조상 감실이 달린 二室墓의 구조로 평양지역 벽화고분 고유의 특징을 보여준다. 고분의 구조나 생활풍속·사신의 벽화 주제와 구성은 평양과 집안 지역의 고분들과 친연성을 보여 그 제작시기를 5세기 전반∼중반까지 내려다 볼 수 있다.
옥도리 벽화고분은 감이 달린 이실묘의 독특한 구조와 생활풍속·사신·장식문 등 다채로운 벽화 내용과 구성으로 주목받아 왔다. 또한 옥도리 벽화고분에 나타나는 집안과 평양지역 고분문화의 특징들은 고구려의 평양지역 지배 및 평양천도를 전후로 하여 두 지역에서 이루어졌을 문화적 교류를 보여준다. 그러나 옥도리 벽화고분은 두 지역의 고분문화가 공존할 뿐 아직 서로 융합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양상으로 두 지역 의 문화교류 초기 양상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옥도리 벽화고분을 통해 5세기 전반~중 반에 이루어졌을 두 지역 간의 교류를 통한 고분문화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으며, 옥도리 벽화고분은 5세기 후반 고구려 고분벽화와 汎고구려 문화의 탄생을 이해하는데 중요 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The present study addresses the tea utensils and tea drinking methods seen in tomb mural paintings of Song, Liao, Jin, and Yuan, which were Koryo’s foreign exchange countries. The paintings illustrate the pointing tea method, which was popular during dynasty times. Tea utensils observed in the paintings include a tea mill, mill stone, and tea pestle necessary for making cake tea into powder. The tea stove and boiling bottle are depicted as being required to boil water. Some mural works vividly depict how a tea drinker pours hot water from a boiling bottle into a cup with a stand, mixes it with a tea spoon, and whisks tea powder for foaming with a tea whisk. The tea drinking method of the Southern race Han is also similarly described in the tomb mural paintings of Liao, Jin, and Yuan from Northern nomads. The distribution of tea culture had an enormous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tea utensil manufacturing methods.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is that these findings can be used as basic data to provide food culture insights into Koryo celadon tea utensils.
This study is on the alcohol beverage utensils represented on the Chinese tomb mural paintings of Song, Liao, Jin, and Yuan those countries had foreign exchange with Koryo Dynasty. These mural paintings are distributed in the areas such as Hebei, Henan, Inner mongolia, Shanxi, Shaanxi, Peijing. etc. The Alcohol beverage vessels were classified mainly into storage vessel, pouring vessel, drinking vessel and ladles according to the purpose. The storage vessels of Song, Liao and Jin were called Jiuping, Jingping, Jiuzun as well as Meiping. Pouring vessels are basically one set of Zhuzi, Wenwan and Jiuzhu, or Zhuhu and Zhuwan. On the mural paintings of Yuan Dynasty, Meiping as storage vessels disappear, and a variety of shapes of pouring vessels such as Mayu and Yuhuchunping appear. This trend indirectly indicates the new arrival of distilled liquor, which seems to have affected transition of the alcohol beverage utensi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