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상 전에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등장하는 흉노부터 13세기에 칭기스 칸이 창설한 몽골 제국, 그리고 손자 쿠빌라이 칸이 만든 세운 대원 올스(원조, 元朝)를 거쳐 오늘날까지 몽골 고원은 계속 유목사회였다 .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유명한 만리장성은 사실 농경문명과 유목문명의 지리적, 문화적 경계선이기도 하다. 본 논문은 몽골 고원 즉 현재의 몽골과 중국의 내몽골 자치구를 대상지로 하여 유목문명에서 성장한 도시와 건축 및 장인에 대해 설명한다. 몽골 고원의 초원지대에서는 식물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층은 30cm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아래는 모래층, 점토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토양층이 얕기 때문에 작은 구멍이라도 파면 풀로 굳어진 토양층이 노출되면서 바람에 날아가고 이듬 해에는 사막화된다. 즉, 농업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토지인 것이다. 이러한 초원지대의 지리적, 환경적인 조건에 적합한 방목이 생업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가족의 50배, 혹은 100배 이상의 가축들과 함께 생활하는 이 생산방식으로는 계속 한 곳에서 방목할 경우 환경에 미치는 부하가 커지기 때문에 장소를 옮겨가면서 생활하는 ‘유목’이라고 하는 생활 양식이 성립했다. 유목사회와 농경사회의 토지소유에 관한 결정적인 차이는 유목사회에서는 토지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이 없다는 것이다. 한 곳에서 일정기간 생활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생활 양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활 양식에 맞게 이동할 수 있는 건물 게르(중국어로는 '몽고포(蒙古包)'라고 부른다)가 탄생해 수천년의 진화를 거쳐 현대에 계승되었고 계속해서 변용해가고 있다. 즉, 토지를 '공유'하는 사회시스템에 기반해 이동을 전제로 하는 방목에 의한 생산방식과 생활양식의 니즈로 인해 토지에 속박되지 않는 도시, 건축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유목사회에는 전통적인 생산기술과 생활양식이 축적되어 있으며 그 기술과 문화는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널리 보급, 응용되어 유목문명을 구성하고 있다. 인류 역사 속에서 농경문명이 해양문명이나 유목문명보다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는 해양 문명이 각광을 받고, 최근에는 정보 기술의 발전에 따라 네트워크 사회가 형성되어 주거와 직장 모두 정해진 장소에 고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유목문명에 의해 만들어진 토지에 속박되지 않고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내는 지혜는 현대사회에서도 유익하다. 또한 유목사회에서는 일상생활을 항상 이동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소지품을 최소화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므로 중국 내지, 일본과 한국처럼 근세 이후 장인에게 전문 도구가 계속 늘어나는 것과 달리 유목민의 장인은 어떻게 도구를 늘리지 않아도 제조를 할 수 있는지에 최선을 다했다. 동시에 13세기 이후에는 이동건축양식의 시스템화가 진행되었다.
젠녠(剪黏) 기술은 대만 사찰과 전통 민가에서 매우 널리 사용되며, 젠녠기술은 `전화(剪花)', ` 첸츠(嵌瓷)'라고도 한다. 제작 시에는 먼저 회반죽으로 인물, 꽃, 새 등의 거친 형태를 만든 다 음 집게로 그릇 조각이나 유리를 잘라내어 마르지 않은 회반죽에 박아 넣어 완성한다. 작품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제한을 받지 않으며, 지붕이나 패두(牌頭), 수차도(水車堵), 지두(墀頭), 측 벽 꼭대기 등에서 모두 다 이러한 장식을 볼 수 있다. 대만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사찰과 민 가의 개조 및 보수로 인해 예술적 가치가 있는 초기 젠녠 작품들이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심지 어 문화 기관이 주도하는 유적 복원 분야에서도 젠녠은 급박한 보존의 곤경에 직면하고 있다. 철거 후 모조품을 제작하거나 보존하여 수리하더라도, 현재의 복원 기술로는 초기 젠녠의 예 술적 조예와 독특한 풍격을 생동감 있게 재현하기 어렵다. 특히 노련한 장인이 점점 사라지고 젊은 세대가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아 전통 젠녠 기술이 소실될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서는 직접 `젠녠 기술'의 관점에서 시작하여, 장인, 도구, 기술을 중심으로 하여 젠녠 기 술의 변천 과정과 현재 직면하고 있는 보존의 어려움을 검토하고자 한다. 연구 대상은 전통 젠녠 기술을 가진 장인과 젠녠 기술이 사용된 민가와 사찰의 사례를 선택하였으며, 연구 방법 은 현장 조사와 장인 인터뷰에 중점을 두고, 역사 자료와 문헌의 정리 및 비교를 보조 자료로 활용하였다.
중국은 지역이 넓고 민족이 많기 때문에 지리적 구역과 기후 조건에 따라 전통 건축 유형 계 보가 많다. 사회 문화가 풍부한 장인의 장인정신도 다양하다.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중국 전 통 건축과 그 장인의 기예가 수시로 축적되고 변화하여 중국 전통 건축의 특징 형성에 영향 을 미쳤으며, 그 다원적이고 복잡한 특징도 연구와 요약에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이 논문 은 중국 전통 건축의 분류와 그 장인의 계보의 특징, 그리고 고대 건축 장인의 조직 기구와 그 작업 법칙에서 시작으로 하여 중국 전통 건축과 그 장인의 기예의 근대 전환이후의 연구 과정 및 대표 성과에 대한 정리를 통해 중국 학계의 전통 건축과 그 장인의 기예에 대한 인 식, 현황과 연구의 단계적 성과, 그리고 향후 중국 전통 건축 장인의 기예 업무 연구 내용의 예비 전망을 설명하였다.
독일의 건축 역사학자 고트프리트 젬퍼는 1850년 전후 강연과 글에서 원시 형태(Urfo rmen) 건축을 이루는 네 가지 핵심 모티프로, 화덕, 지붕, 에워쌈, 터닦기를 제안했다. 이 가운데 에워쌈(Umfriedung)은 이후 젬퍼의 건축 이론에서 피복(Bekleidung) 개념 으로 발전하는데, 이런 에워쌈/피복은 19세기 이후 변화하는 현대건축의 기술적 조건 과 맞물려 당시 첨예하게 대두된 핵심 형태와 예술 형태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중 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특히 현대건축의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인 표면(surface) 을 다룰 때 젬퍼의 에워쌈/피복 관련 이론은 충분히 살필 만한 중요한 참조 대상이다. 다양한 경제 문화 요인에 따라 한국 현대건축에서도 표면이나 에워쌈/피복의 층위에 서 흥미로운 현상들이 발견되는데, 본 발표에서는 특히 에스오에이(강예린, 이치훈), 리슈(홍만식), 솔토지빈(조남호) 등의 작업을 이중(二重), 공중(空中), 중공(中空)의 에 워쌈으로 나눠 고찰함으로써 그 역사 이론적 의의를 논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