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함미가 그린 『금병매화집』의 인물 형상 표현을 분석하여 그 주요한 특징과 화가의 해석을 추적하였다. 화가는 화집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을 여성 인물, 남성 인물, 군상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각기 +주요한 표현 초점을 설정하였다. 여성 인물에 대해서는 ‘신’(神)과 ‘신사’(神似)를 추구하는 중국화 전통의 연장에서,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스러움’ 또는 ‘여성미’를 나타내는 다양한 ‘태’(態)를 형상화하였다. 남성 인물에 대해서는 주인공부터 소인물에 이르기까지 개성 있는 형상을 부여하여 화집의 세계를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또 즐겨 그린 군상 묘사를 통해 군중의 속물성과 타락 한 세태를 비판하여 소설의 주제를 심화시켰다. 화가는 이들 형상을 통해 민국시대 말기 부호와 고관 등 가진 자들의 사치와 성애를 탐닉하는 혼란상을 비판하였다.
『城北地帶』는 蘇童의 ‘참죽나무 거리 텍스트’ 중의 대표작으로 작가가 자신의 유소년 시절을 反芻하며, 상처와 결핍으로 얼룩진 성장과정을 復原해 낸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蘇童은 문혁이라는 억압된 사회구조에서 문혁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작동했고, 어떤 상처와 흉터를 남겼는가에 주목한다. 이는 문혁이라는 암흑의 터널 속에서 비정상적인 성장통을 겪어야했던 청소년들의 결핍과 상처에 대한 穿鑿으로 이어진다. 본 논문은 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방치된 채 방황과 일탈로 점철된 성장통을 겪는 청소년 인물형상을 중심으로, 그들 내면의 상처와 결핍, 고독과 소외, 좌절과 절망감을 고찰한다. 청소년 인물형상을 둘러싼 불투명한 잿빛 미래와 비극적 파국을 통해서, 蘇童은 청춘과 꿈을 박탈해가고 거세해버린 억압적 문혁의 시대와 그 역사적 과오와 상처에 대해 작가로서의 비판적 성찰을 보여준다.
이 글은 조선중기의 임진왜란 초기에 경상우도의 의병 봉기에 크게 기여하고, 정유재란을 당하여 고립된 황석산성에서 전직 군수로서의 직분을 지켜 순절하였던 대소헌 조종도가 한국의 인물사 내지 문화사에 있어서 가지는 의의를 점검하고, 역사 문화 인물로서 대소헌 조종도의 위상을 역대 문헌에 수록된 그 인물 형상의 특징을 통하여 개괄하고자 집필되었다.
본론에서는 먼저 대소헌과 관련된 문헌을 사망 직후의 애도를 표한 輓章과 祭文, 친지나 가문 기록으로서의 碑誌와 傳狀, 국가나 사림의 공식 추모 문자로서의 褒贈 追崇의 문자 등 세 층위로 나누어, 해당 인물에 대한 사적 애도와 공적 추모의 전개 양상을 점검하고, 다음으로 이들 문헌에 빈번하게 나타내는 인물 형상의 특징적인 징표를 大笑子와 烈丈夫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요약하고, 그 인물 형상의 성립 정착 과정을 추적하는 한편, 이 두가지 징표가 가지는 인물사적 문화사적 의의를 간략하게 추론하였다.
결론에서는 대소헌 조종도가 남명 조식의 문도로서 학문을 성취하여 통달한 식견과 활달한 처신 및 왜란 도중 의병을 일으켜 국난에 헌신하고 황석산성에서 대의를 지켜 죽음을 감수한 행적으로 인하여, 그와 교유한 당대의 지인들은 물론 후대 사대부 지식인으로부터 대대로 추숭되고, 조정과 사림으로부터 누차 포증을 받아, 조선왕조의 역사에 있어서 유가 의리와 신념에 충실하여 죽음을 사양치 않은 인물 전형의 하나로 각인되었다고 논평하였다.
The poems of Wangsogun. had been written by many Korean, Chinese, and Japanese poets in ancient time. Today we can discover several different aspects from the their contents. On this parer, I would like to introduce the particular points of three nations' poems in which Wangsogun's life was divided in six terms.
The first, I am interested in how poets of each nation described Wangsogun, before she left the court of Han(漢) in old time of China. In the poems, poets of three nations commonly told it very sadly at that time. However Japanese and Chinese poets did not say about it as sad as Korean do. It is very interesting thing that Korean poets sang the fact distinctly. Probably, in Korea the birth and growth of someone are accepted as an important thing than any other country.
The second. Wangsogun had lived unhappily in the court of Han, because she didn't be recognized by Woenhe(元帝), the Emperor of Han. Among the poets of Japan and China, this problems were not accepted as a large issue except of Korea.
The third, it was really miserable thing for the poets of three countries in ancient East Asia to describe the fact that Wangsogun departed for Hyungno(匈奴). Especially, In Japan, this subject of Wangsogun's poem, was accepted more serioulsy than the other countries.
The fourth,it caused variety problems why Wangsogun had to be married to Hohansa(呼漢邪), the king of Hyungno. The poets of three nations generally explained that Wangsogun wanted to go there by herself, but that reason was different from each other country.
The fifth, the life of which Wangsogun had lived in Hyungno, implicated lots of means in Chinese poems. In historical materials, it was treated very importantly whether Wangsogun was married to his son or not. But, in the poems, many poets of three countries criticized about incapability of Han dynasty.
The sixth, at this part, I try to understand the reaction of poets who wrote the Cheongchong(靑家), Wangsongun's tomb. Many Korean, Chinese and Japanese poets sang the Wangsogun's conduct through description of Cheongchong. Especially Korean poets described the mood of Wangsogun's tomb less than Chinese poets. This aspect was caused from Korean poets had not have many opportunities to see the Cheongchong.
On the above, Icompared three nations ancient poems which told the life of a woman who lived in the court of Han, and was married to Hohansa. We realize the fact that poets of three nations described the life of Wangsogun in various sides of hteir various versions. In many cases, Chinese poets sighed at the tragic fate of their own country, Korean expressed the sorrow of themselves through the Wangsogun's poems, and Japanese sang the grief of Wangsogun who had to go to Orangkae(胡)'s reg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