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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4,900원
        3.
        201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5,400원
        4.
        201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도산안창호선생의 생애와 사상과 활동을 연구하여 규명하고, 도산사상을 선양하기 위해 도산학회를 세운지 벌써 22년이 지났습니다. 도산학회 는 지금까지 도산사상세미나, 도산사상연구발표회, 기념학술대회를 개최 함으로써 안창호선생의 생애와 사상과 활동을 규명하고, 안창호선생과 도산사상이 우리 민족운동사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깊이 있게 연구하여 왔습니다. 올해는 안창호선생의 탄신 130주년을 한 해 앞둔 해이자, 안창호선생께서 주도해 조직한 신민회의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이에 도산학회는 오늘 ‘신민회 창립 100주년의 역사적 의미’라는 대주제하에 학술회의를 개최하게 되었고, 제가 기조강연을 하게 된 점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학술회의의 대주제인 신민회에 관해서는 박만규선생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발표와 토론에서 자세히 논의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신민 회가 창립된 1907년이 우리 민족운동사상에서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가 하는 문제를 거시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역사를 규명하는 데 있어, 숲에 들어가 꽃과 나무의 모습을 정확히 그려 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높은 창공에서 조감(bird's eye view)의 방식으로 살펴보는 것도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05인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의 하나로 신민회의 활동, 신민회의 지방조직 등의 문제를 실증에 의하여 구체적이고 미시적으로 연구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기조강연에서는 1907년의 역사적 의미를 「한국민족운 동사상의 1907년」이란 제목 하에서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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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本论文研究1990年代中国新疆维吾尔族的民族分离运动与中国的民族政策的主要内容和特征。新疆维吾尔族具有与汉族不同的民族认同感,而这些民族认同感主要来自于维吾尔族的历史和文化因素。受到冷战体系的崩溃和一些中亚伊斯兰国家独立,新疆维吾尔族也要求分离和独立,因而在中国境内发生了很多恐怖事件。为了控制新疆的形势,中国政府采取了多种方法,如在国内采取‘严打’政策; 阻止与海外维吾尔族以及伊斯兰势力的联系; 对新疆地区实施包括经济方面的各种优待政策。 今天的新疆在中央政府的多种政策和努力之下,基本上维持着安定的局面,但在解决新疆问题上还存在一时难以解决的各种矛盾。第一,‘中华民族’的认同感和中央政府统治思想的弱化。第二,新疆的安定与经济之间的关系和矛盾。第三,对于外部势力和强大国对中国内政介入的对策。 对中央政府来说,来自西部的何种‘高度’自治或独立要求也不会接受,而一旦存在新疆维吾尔族继续要求分离和独立,那'中华民族'与新疆的民族认同感之间的矛盾也无法一时解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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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대만 원주민족의 기원설, 분류, 정명운동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고산9족이라는 용어로 인해서 대만에는 9개의 민족이 있다는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원주민족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이전에 많은 학자들은 대만의 원주민을 고산족과 평포족으로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이 때 고산족은 고산지역에 사는 원주민으로 한족화(漢族化)되지 않은 사람들이고, 평포족은 평지에 사는 원주민으로 청대 중국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점점 한화된 사람이다. 그리고 평포족의 정체성은 이미 한족에게 동화되어 소멸한 것으로 학자들은 해석해 왔다. 그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고산9족이라며, 대만에는 9개의 고산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고산족은 대만 고산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것이었고, 고산족이외에 평지에 사는 평포족도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고산족이라는 명칭은 1953년 중국에서 실시되었던 민족식별작업에서 정해졌고, 이에 영향을 받은 대만은 고산족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1994년에 원주민, 1997년에 원주민족으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고산족 명칭 이전에는 문헌에 등장하는 여러 명칭을 고산족과 결부짓고 있으나, 대만 총독부 이번(理蕃) 당국에서 ‘번인(蕃人)’을 고사족(高砂族)이라 부른 게 고산족의 명칭과 가장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대만 원주민족에 관한 분류는 일제시기에 일본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 시기에 연구된 민족분류는 대만이 광복한 이후에 원주민족을 연구할 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학자들 중 일부는 대만 원주민족이 아주 오래전에 중국대륙에서 건너온 백월민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또 어떤 학자는 남도민족의 일부로 간주하거나 대만에서 살던 토착민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고대 문헌에 등장하는 용어들 중 ‘이주(夷州)’와 ‘도이(島夷)’ 등이 대만을 지칭한 것으로 여기면서, 대만이 오래전부터 중국에 포함되었다고 간주하였지만, 이는 한족 중심의 역사관에서 비롯되었고, 대만의 토착민이 보는 시각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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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島山安昌浩(1878.11.9∼1938.3.10)는 근대 한국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그의 사상과 활동에서 나타난 탁월한 업 적은 오늘날 21세기 우리 민족을 이끌 역사의 나침반과 같다. 특별히 안창호의 위대성은 그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수많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잘 드러난다. 본고에서 살펴볼 白一圭(호는 약산, 1880.3.11(음)∼1962.5.31, 원명은 白允祖)는 안창호가 관계했던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생애와 활동 속에 맺어진 안창호는 백일규의 얼굴에 비친 안창호의 참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이러한 고찰 방식은 안창호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매우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로 생각한다. 백일규에 대해선 방선주가 쓴 재미 3·1운동 총사령관 백일규의 투쟁일생 (水邨朴永錫敎授華甲紀念韓民族獨立運動史論叢, 1992)이 있다. 백일규의 일생과 활동에 대해 처음으로 밝힌 연구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그의 일생을 소략하게 정리하다 보니 빠진 부분이 적지 않고 부분적으로 사실과 다른 오류도 적지 않게 발견 된다. 본고는 이런 선행 연구를 기반으로 백일규의 생애와 독립운동 정리하였고, 그의 생애와 활동 속에 나타난 안창호와의 관계를 하나하나씩 적출하여 그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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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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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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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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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2001.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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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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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06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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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11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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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1995.11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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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1995.11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18.
        1993.04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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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2014.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아시아에 위치한 버마(1998년 미얀마로 개칭)의 소수종족인 까렌족이 서구 제국과의 만남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고 주권국가 건설을 시도하는 과정에 주목하였다. 버마는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불교 국가로 19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946년 1월 해방된 신생 독립국가(버마연방)이다. 버마 역사 상 정치적 주권을 전제한 민족주의운동은 영국이 버마를 식민지화하는 시기 소수종족 까렌족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 시기에 일어난 까렌 민족주의와 그 실천 과정은 당시 서구 기독교 선교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소수종족 까렌족은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된 기독교와 서구문명을 구전된 까렌 신화에 나오는 ‘생명의 책’에 대한 예언(백인 형제가 생명의 책’을 가지고 귀환할 때 까렌족의 번영이 이루어진다)의 성취로 보고, 기독교와 서구문명을 열렬히 받아들였다. 그 결과 (버마족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민족주의를 형성하고 버마족으로 분리된 까렌 독립국 설립을 추구하였다. 언급한 주제를 연구하기 위해 본 논문은 먼저 식민지 전 구(舊)버마 전통사회의 구조를 개관하고 식민지 이후 변화된 사항들을 고찰한다. 다음으로 영국의 식민지 통치 시기 서구 기독교가 까렌족에게 소개되고 전파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와 서구 문명의 영향으로 까렌 민족주의가 형성되고 현실에서 까렌 독립국 설립을 추구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본 연구결과는 19-20세기 초 기독교 선교사들을 통해 들어간 복음과 서구 문명이 버마의 소수종족 까렌족에 주어진 특수 환경, 즉 식민정부의 종족분할정책, 다수 버마족과의 공존, 낙후된 문명과 정령신앙 등의 영향으로 아시아 여타 지역과 다른 형태의 민족주의를 형성하고 실천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