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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의 목적은 서양고지도와 황조일통여지전도를 통해 조선의 북방영토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서양고지도에 표시된 조청경계의 유형을 분석하고, 타당성을 검증하였다. 18세기에 제작된 서양고지도의 경우는 간도와 같이 확실한 정치적 통제가 되지 않았던 지역의 경계 표시는 불명확하다. 따라서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기에는 상당한 취약점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황조일통여 지전도는 1885년의 감계회담에서는 청나라에 의해 토문강과 두만강이 동일한 강이라는 근거자료로 사용되었지만, 1887년 회담에서는 이중하에 의해 두만강 발원지가 홍토수라는 사실을 주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현재는 홍토수가 북한과 중국과의 경계선으로 설정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고지도를 북방영토의 영유권 주장의 근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철저한 검토가 필요함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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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4.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러시아와 일본 간 영토분쟁의 본질은 러시아가 실효지배 하는 몇몇 섬들에 대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쿠릴열도라 불리는 이 섬들은 지리적으로 캄차카에서 홋카이도에 이르는 일단의 섬을 말한다. 일본이 말하는 북방영토에는 4개의 섬, 즉 쿠나쉬르, 이투루프, 시코탄, 하보마이가 포함되고, 일본은 이 섬들이 자국의 4번째 섬인 홋카이도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일본이 소위 북 방영토의 일본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위 4개 섬 모두를 돌려달라는 말이다. 러시아는 아시아의 현 상태가 유지되길 바란다는 점에서 중국, 한국 등과 입장 이 같다. 이 두 나라 역시 2차 세계대전의 결과가 바뀌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독도 문제 역시 한국과 일본 간의 삐 걱대는 관계의 원인이 되었다. 즉, 독도는 한국의 남쿠릴열도라 할 수 있다. 일본 의 독도 및 쿠릴열도, 팽호도(중국), 파라셀군도(베트남) 영유권 주장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를 간접적으로 부정하는 것이고 따라서 일본의 국제법 상의 의무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것이다. 또한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확립된 이웃국가들의 영토에 대해 영토 주장을 함으로서 2차 대전의 법적, 정치적 결과들을 무시하고 있다. 모든 국가들은 이웃이자 역내 파트너들이며 우호 관계 강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모든 국가들에게 영토문제는 민감한 문제이며, 이들은 인접국과의 모든 분쟁에 있어 영토 획정 문제의 수용 가능한 해결은 해당국의 주권과 영토보전 을 해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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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7.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2016년 일러수뇌회담은 일러 양국의 영토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목적이었지만, 더 나아가 아베 수상이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강화하고자 하는 회담이었으며, 동북아국제정치의 큰 판의 움직임을 염두에 둔 아베 수상의 의도가 엿보이는 중요한 회담이었다. 그러나 북방4도의 반환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북방영토문제의 미해결은 많은 부분 일본정부의 책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정부의 ‘4도 일괄 반환’ 주장과 ‘2도 선행 반환’ 주장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잦은 ‘골대 이동’이 북방영토 해결을 무산시키는 주요 요인이었다. 물론 일본정부의 그러한 결정에 미국정부의 부정적 영향력 행사의 산물이거나, 미일동맹정책의 대가임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본 논문을 통해, 동아시아 영토문제는 대국간 힘의 전이 현상이 배경에 있어 복잡한 정치역학이 작용하는 극히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진다. 그리고 일본정부가 주장하는 고유영토론에 대한 러시아인의 인식을 살펴보면, 북방4도에 대한 일본정부의 ‘고유영토론’ 주장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명확해진다. 일본의 ‘고유영 토론’은 독도에 대한 주장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그 주장의 공허함이 같은 이유에서 오버랩 되고 있음을 숨길 수 없다.
        4.
        2015.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전후 초기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이루어진 소련점령지 반환을 위한 대중들의 초기 운동에 대하여 주안점을 둔 것이다. 운동의 기원, 그 뒤에 숨은 배경, 그리고 일본 전체 국민들의 광범위한 동조를 얻는데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초기 대중들의 요구는 지방의 경제적인 욕구에 의해서 형성되었고, 또한 공범위한 국내적, 국제적인 정치적 발전이 반영되었다. 이런 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여러 조직단체들은 그들의 요구가 직접적으로 구성원들의 물질적 이익을 반영한다고 믿고 단결하였다. 이 운동을 이끈 이념은 1960년대 말 중앙정부가 주도한 이후 영토회복주의자들을 이끌게 된 비물질적인 민족주의와는 분명히 거리가 멀었다. 또한 광범위한 대중을 동원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당시 일본에서 주도된 주권 정체성과 공명을 이루지 못하고 구조화에 실패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이 과정을 추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