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하워드 스나이더가 주장하는 교회의 모습에서 선교적 교회가 추구해야 할 요건들을 돌아보며, 선교적 관점에서 돌봄 선교를 고찰하는 것이다. 스나이더의 선교적 교회의 핵심적 주제는 경제로서의 교회, 생태로서의 교회, 지역사회를 위한 교회이다. 경제는 생태로, 생태는 지역사회로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해 확장되어간다. 이러한 선교적 교회의 신학적 근거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며, 이를 실천하는 방안과 에너지는 돌봄 선교(Mission of Caring)에서 찾을 수 있다. 간호선교, 의료선교로 행해지고 있는 실천 속에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돌봄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간호선교, 의료선교는 전문가에 의해 일어나지만 돌봄 선교는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돌봄은 선교현장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 선교 속에 택한 백성을 향한 돌봄이 이루어지듯이 돌봄 선교는 확장되어져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에벤에저 하워드가 주창한 가든시티의 철학을 살피고 그가 설립한 최초의 가든시티인 레치워스의 조성과 경관 변화를 살핀 연구이다. 노동자들이 대도시의 빈곤과 열악한 생활을 벗어나 안정된 환경에서 지역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 하워드는 도시와 농촌의 결합한 형태로 가든시티라는 이상향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레치워스 가든시티를 조성했다. 당시로써는 혁신적인 저가 주택, 임대주택의 보급, 우수한 근로 환경, 실용적인 진보 교육이 시행되었다. 레치워스의 유지과정에서 자본의 분배에 따른 갈등, 정부의 개입에 의한 위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주민들이 만든 협동조합이 공동체의 지속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 연구를 토대로 현재의 주거는 교외의 전원주택지 성격이 강해졌고, 산업은 경제활동이 우수하지 않은 편이며 수입이 낮은 편임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레치워스 가든시티는 자체적으로 지속적인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최초 가든시티의 정신을 유지하고자 뉴가든시티 운동으로 전개하고 있다. 내일의 도시를 지속해서 만들고자하는 노력은 현재 도시의 자족성에 관한 다양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 도시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판단된다.
본 논문은 하워드 스나이더의 교회론을 중심으로 “공적 제자도를 이루는 생태학적-선교적 교회론”을 연구한 논문이다. 스나이더는 “교 회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선교사인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유전학적으로 선교적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로 현존하게 된 공동체 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교회론의 출발점”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한 다. 또한 그는 ‟교회는 가장 본질적인 차원에서 선교적 공동체다. 비록 때때로 선교가 실제로 주변화된 때가 있었지만 선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DNA 안에 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교회는 세상을 향해 전진하는 하나님의 선교 공동체로 공적인 영역에서 올바른 제자로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선교를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스나이더의 교회론적 방향은 선교에 맞춰 져 있으며 교회의 진정한 본질은 선교에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입장을 고려하면서 본 논고에서 그의 교회론을 세 가지 차원에서 탐구했다.
첫째 그의 교회론은 하나님의 창조의 영이 깃든 창조 세계를 보존하고 책임져야 하는 교회 공동체의 선교적 사명을 지향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의 회복과 그 세계 안에 하나님의 샬롬이 이루어지기 위한 교회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스나이더는 온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주목하면서 하나님의 원대한 선교적 계획은 이 세계를 섬기는 것이며 그 범위는 역사를 초월하여 나아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회는 이 세계를 섬기는 하나님의 선교적 행위의 도구로서 창조세계를 보존하고 책임을 져야하는 사명을 지녔음을 강조 한다. 하나님의 선교적 통치는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피조 세계로 향한다. 전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샬롬을 통해 평화를 되찾고 파괴되고 상처 난 영역들이 온전한 회복을 가져오는데 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생태학적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샬롬을 실현하 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둘째는 교회의 진정한 삶은 섬김, 즉 종으로 살아가는 데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세상은 ‘빈익빈 부익부’의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 부의 축척을 위해 가난한 자들은 끝없이 가난의 굴레와 노동의 시간을 보낸다. 스나이더는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는 가난한 자를 해방하는 종의 공동체로 존재해야 함을 강조한다. 교회는 공평과 정의를 행하며 탈취당하는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과부를 압제하 거나 학대하지 않는 해방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교회의 부르심은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부유한 그리 스도인들이 가난한 자들을 위한 자발적 가난과 섬김이 없다면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으며 이런 실천이 바로 예수의 선교적 삶을 실천하는 길임을 강조한다.
셋째는 교회의 선교적 부르심의 행동은 공적인 제자도로 나타나야 함을 보여 준다. 스나이더는 공적 제자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스 도인들은 교회 안에서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지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광장에서도 동일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께 서 교회를 이 세상 가운데 부르시고 파송하신 근본 목적은 제자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말과 행실로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보여준 사랑과 은혜를 세상 가운데 보여주고 실천해야 할 당위성을 지녔다. 교회가 교회됨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는 교회 안이 아니라 세상이다. 세상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살아내느냐에 따라 교회는 자신의 생태학적 삶을 구현할 수 있다. 선교의 실천이 단지 말에만 국한 된다면 교회는 공적 광장에서 복음으로 살아낼 수 없다. 말과 함께 실천적인 삶을 보여줄 때 공적 제자도를 이루는 공동체 가 될 수 있다.
하워드 스나이더의 5중적 교회 갱신론에 비춰 본 평양 대부흥운동
오늘날 이구동성으로 한국 기독교의 위기를 말한다. 종교별 사회
적 신뢰도에서 최하위를 면치 못하면서 동시에 양적으로는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갱신과
부흥이 한국 교회에 절실히 요청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가운데
필자는 평양 대부흥운동을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Snyder)의 이론
과 연계해 고찰함으로써 교회 갱신에 관한 선순환 패턴과 목회적 통찰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대전제, 설명, 비교의 순서로
전개된다. 먼저 갱신과 부흥의 대전제로서 하나님의 주권적 역할과
은혜가 소개될 것이다. 다음으로 스나이더의 5중적 교회갱신론이 설명될 것이다. 그에 따르면 참된 갱신은 개인적(personal), 회중적
(corporate), 개념적(conceptual), 구조적(structural), 선교적
(missiological) 차원을 함께 아우른다. 마지막으로 평양 대부흥운동과
스나이더의 이론과의 상관성이 서로 비교되어 논의될 것이다.
본고의 연구 결과, 평양 대부흥운동은 스나이더가 제시한 5중적
차원과 밀접한 상관성을 보인다. 우선 하디 선교사와 길선주 장로를
위시한 개인적 갱신이 선도적으로 일어났고 뒤이어 장대현교회를 중심
으로 회중적 갱신이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또한 새벽기도, 철야기도와
같은 개념적 갱신과 사경회(査經會)와 같은 구조적 갱신이 대부흥을
촉발시키면서 동시에 심화시켜 나갔다. 끝으로 상기한 개인적, 회중적,
개념적, 구조적 갱신은 날연보(日捐補)와 100만인 구령운동으로 대표
되는 선교적 갱신으로 승화되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제2의 평양
대부흥운동이 발화하기를 희구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갱신과 부흥의
주체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사모해야 한다. 특히 교회 지도
자들부터 회개를 통한 개인적 갱신을 철저히 추구해야 한다. 그들은
또한 회중적 갱신에 기여할 개념적, 구조적 갱신에 진력하면서 종국에
는 모든 교회적 활동을 선교적 갱신으로 수렴시켜야 한다. 이와 같은
5중적 차원의 갱신이 일어날 때 한국 교회는 초창기의 영적 능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A. Snyder)는 교회갱신학자로 세계적으로 알려졌지만 뉴비긴(L. Newbigin), 구더(D. L. Guder), 밴 겔더(C. Van Gelder)와 더불어 선교적 교회론의 주창자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스나이더는 뉴비긴이 신학적으로 가장 깊고 가장 포괄적이라고 간주한다. 이런 면에서 그는 구더와 밴 겔더를 파생적이긴 하지만 유용하다고 본다. 스나이더는 전반적으로 자신의 연구가 그들의 연구보다 더 포괄적이라 생각하며, 그런 면에서 뉴비긴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논문의 주요 목적은 인터뷰와 문헌연구를 통해서 스나이더의 선교적 교회론을 정리하는 것이다. “교수님의 교회론의 뼈대를 어떻게 세우면 좋을까요? 교회론의 큰 그림을 제게 제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스나이더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교회론의 뼈대는 근본적으로 성경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즉 ‘교회’에 관한 성경적 이미지들과 은유들―특별히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공동체―에 기초해 세워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생명의 이미지들로부터 나왔기에 관계적이고 유기체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들은 전체 성경의 계시와 하나님의 삼위일체 의 특성을 반영하고 연결되기에 생태적입니다. 생태학은 더 큰 하나님의 경륜(oikonomia)과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생태학은 성경적 의미에서 통전적이지 않으며, 고로 충분히 선교적이지 않습니다. 매우 분명하게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한 사람들의 공동체(바울이 ‘한 몸이 된’[membered together]이라고 표현한)이며, 그러므로 교회는 오늘날 세계에서 지속적인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령에 의한 주요 기관입니다. 비록 성령은 교회를 넘어서 또는 앞서서 역사하시고, 때로는 교회를 심판하시지만 말입니다.”“교수님의 교회갱신론과 하나님 나라론과 생태적 교회론이 어떻게 선교적 교회와 연결됩니까?”라는 질문에 스나이더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내 아이디어들은 ‘선교적’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전에 발달되었습니다. 하지만 물론 그 아이디어들은 생득적(生得的)으로 ‘선교적’입니다. 나는 세 가지 아이디어 모두를 오늘날 ‘선교적’이라고 명명된 범위 안에 넣고자 합니다. 성경적으로 ‘선교적’을 말하려면 완전한 하나님 나라와 모든 피조물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땅’이라는 주제의 중요성―을 포함한 하나님의 선교 전체를 포함해야만 합니다. 나는 현재 진행되는 ‘선교적 교회’ 논의에서 [내가 1975년에 출간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에 이미 최소한 씨눈 상태로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별로 많이 발견하지 못합니다.”스나이더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회의 선교적 본질 사이에는 중요한 유전적 연결고리가 있다고 믿는다. 교회의 근본적인 DNA는 교회를 하나님의 통치의 표적과 미리 맛봄, 그리고 초기 구현이 되도록 하고, 삼위일체를 반영 또는 반향 짓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나이더는 교회를 선교적, 대안적, 언약적, 삼위일체적 공동체로 묘사한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반교회적, 탈교회적 상황이 확산되는 시대적 상황은 교회의 본래적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절실히 요청한다. 이러한 교회 본질의 회복의 일환으로서 필자는 하나님나라와 하나님나라 전도(kingdom evangelism)를 하워드 스나이더의 이론을 바탕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총 6장으로 구성된 본고는 하나님나라의 성서적 개념, 하나님나라의 신학적 논의, 스나이더의 하나님나라 모델들을 순차적으로 탐구한 후, 영적, 사회적, 생태적 구원을 총괄하는 하나님나라 전도를 교회의 본질적 사명으로 제시한다. 스나이더에 따르면 하나님나라는 본질상 현재-미래, 이생–내생, 개인–사회, 점진–급진, 인적–신적, 교권–비(非)교권 등 6중적인 양극성을 수반한다. 이런 창조적인 긴장관계에 주목하면서 그는 하나님나라의 성서적 표현과 역사적 표출을 다음과 같이 8가지로 분류한다: 1) 미래의 희망, 2) 내면의 영적 경험, 3) 신비로운 사귐, 4) 제도적인 교회, 5) 대안 사회, 6) 정치적인 국가, 7) 기독교적 문화, 8) 지상의 유토피아. 이처럼 다양한 사상 중에서 스나이더의 주관심사는 재세례파, 스탠리 하우어워스 등과 경건주의, 스탠리 존슨 등이 각각 지향했던 ‘대안 사회’ 즉 전복적 하나님나라(subversive kingdom)와 ‘기독교적 문화’, 즉 변혁적 하나님나라(transformative kingdom)에 통합적으로 기울고 있는데, 이는 양자가(특히 후자가) 성서적으로 적합한 개시된 종말론(inaugurated eschatology)에 기반하고 상기한 6중적 양극성을 전향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후자의 스탠리 존슨이 주창한 하나님나라의 우주적 복음에 경도된 스나이더는 하나님의 창조적 주권성과 인간의 청기기적 선교성에 주목하면서 생태학적 차원까지 아우르는 하나님나라의 전일성을 강조한다. 스나이더의 하나님나라 사상에서 교회는 하나님나라 공동체로 부름을 받았다. 세속적 집단과 성별된 선교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왕권의 범우주적 선포와 실현을 위해 즉, ‘회심(conversion), 제자화(discipling), 정의(justice), 문화(culture)’를 포괄하는 하나님나라 전도를 위해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다. 따라서 하나님나라 전도에 올곧게 집중할 때 교회의 정체성과 생명성은 최고로 발현되며, 바로 이 때 신적 샬롬이 영적, 사회적, 생태적으로 온 피조물의 삶에 회복되고 구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