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이츠는 집과 후손들, 그리고 노년에 대한 네 편의 기도시를 썼다. 인생 2막을 다시 시작하면서, 결혼은 그에게 가정과 가족 그리고 마음의 안정감을 선사했다. 우선, 그는 결혼한 아내를 위하여 투르 발릴리 탑을 구입하고 수리했는데, 이 탑은 그의 후기 시들에 많은 시적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1918년 발릴리 탑으로 이사하면서 「내 집에 들어갈 때의 기도」(1918)를 썼다. 그리고 「내 딸을 위한 기도」(1919)와 「내 아들을 위한 기도」(1921)에서 딸과 아들의 행복과 안전을 기원했다. 딸을 위한 기도는 이상적인 여인의 삶을 위한 미덕과 금기 사항들로 채워진다. 아버지로서 예이츠는 아직 힘없고 어린 아들의 건강과 안전만을 간절히 염원한다. 젊은 시절부터 나이 들어가는 영역은 예이츠가 명상했던 일관되고 진지한 주제였다. 비록 시간의 흐름으로 노년에 이르렀지만 진중하고 열정적인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노년을 위한 기도」(1934)에서 염원했다. 예이츠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는 한 남자로서 인간적이고 솔직한 진정성을 기도 시에서 보여준다.
본 연구는 1974년부터 2003년까지 김홍도의 주일 낮 예배 설교 중 기도를 주제로 삼는 40여 편을 선별하여, 설교 구성과 내용 그리고 삼중구조의 의의를 밝혀 구령 활동과의 연관성을 통하여 선교적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설교 구성은 신구약 성경 구절을 균형 있게 자주 인용하 였으며, 성경과 교회의 역사에 있었던 기도 인물들 이야기와 기도에 관한 격언들을 적절히 활용함을 보여준다. 설교 주제는 기도의 동기와 원리를 먼저 선포하고, 기도 방법과 결과를 다루고 있다. 이처럼 기도의 동기, 방법, 결과에 대하여 삼중구조로 기도의 실천을 종합한다. 첫째, 개인의 영역에 제한되지 않고, 그 대상이 전방위적으로 통전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교회 역사 속 기도의 인물들과 격언을 인용하여 교인들에게 기도의 실천적인 부분을 강조하게 된다. 셋째, 쉽고 반복되 는 설교 내용은 교인들에게 삶 속에서도 나눌 수 있도록 선교적 기도 영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러한 삼중구조와 각 내용의 균형은 영혼 구원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통전적, 실천적, 선교적이다.
새벽기도는 한국기독교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서구 선교사에 의해 한국에 복음이 전달되었지만, 한국의 토양에서 새벽기도는 새로운 한국교 회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 한국교회는 오늘날까지 매일 새벽기도 회를 하고 있다. 교회가 세워지는 곳마다 새벽기도회는 정규 시간으로 정해져 있고, 절기마다 특별 새벽기도를 하여 새벽기도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와 실천을 하고 있다. 이 논문의 목적은 한국교회의 새벽기도 문화, 새벽기도 신학을 살펴보고, 상황화 관점에서 선교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문화적 접근으로 새벽기도 형성의 역사적, 종교적, 사회적 배경으로부터 그 기원을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과 평양 대부흥운동, 도교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 신학적인 면에서 새벽기도는 한국교인의 영성 훈련과 국난 위기의 극복, 교회부흥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선교적 관점으로써 새벽기도에 대한 적합한 상황화를 논하며 종교성이 강한 아시아의 바람직한 상황화 모델로서 제안한다.
「딸을 위한 기도」는 문학사에서 딸에 관한 시로 가장 유명한 시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딸이 이 시의 유일한 주제인가? 본 논문은 예이츠 자신의 자기투영의 관점에서 이 시의 이면에 깔린 부차적 텍스트를 다시 읽어내는데, 이 시에서, 딸의 미래에 대한 아버지라는 표면적 맥락에서의 기법을 사용하지만, 예이츠 자신의 과거, 현재와 미래, 자신의 나이 들어가는데 대한 걱정, 그리고 초월과 지혜의 추구 등에 대한 이 시의 부차적 텍스트가 발견되는데 그것들을 짚음으로써 그 질문에 답하려 한다.
2013년 개봉한 임흥순 감독의 영화 <비념>은 제주 4.3 사건과 강정마을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비념>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형식을 취하지만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와는 다른 다양한 시도와 변화들을 꾀한다. 영화는 인물이나 서사, 극적 전개로 관객의 정서를 끌어내지 않는다. 그 대신 영화가 정서를 끌어내기 위한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미지와 사운드이다. <비념>은 이러한 실험으로 2013년 영화평단의 호응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본문에서는 먼저 <비념>에 나타난 다양한 영화적 기법들과 시도들을 살펴본다. <비념>은 이미지와 사운드의 분리를 통해 이미지를 강조하고 인터뷰를 비롯한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의 형식에서도 변화를 주며 중심 소재에 접근하는 방식에서도 이미지를 중심으로 다가간다. <비념>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이미지인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이러한 이미지를 풍경과 정물의 개념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비념>이 뛰어난 점 중의 하나는 풍경의 이미지를 잡는 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물의 이미지까지 포착해 감독의 화두나 영화의 주제, 영화의 형식미를 형상화하는 데 그 이미지들이 적절하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영화적 기법들과 이미지들의 사용을 통해 <비념>이 중심 소재인 4.3 사건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지 흔적과 아우라의 개념을 통해 고찰한다.
It might seem quite strange to look for the image of an ideal woman in “A Prayer for my Daughter”. But Yeats would have wanted his daughter to lead such an ideal life, regardless of the circumstances in which she was placed, for Europe at that time was on the verge of war. And so we can easily surmise her future image would be that of an ideal woman. Though we are likely to misunderstand that Maud Gonne was the ideal beautiful woman, the image which appears in the poem is not certainly that of Maud Gonne. She appears to be a woman whose life was ruined as a result of her outward appearance. Therefore, the poet prays for his daughter to be beautiful, but not too beautiful to distraught stranger’s eye or too beautiful to become proud of her beauty in appearance itself. Yeats emphasizes a good and kind heart. He found an example of that in Olivia Shakespear. She seldom appears in Yeats’s poetry or prose, but in some letters we can find sh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Yeats’s life. After her death, Yeats wrote to Dorothy Wellesley that she had been the centre of his life in London for more than forty years. During those many years they enjoyed a close friendship. Yeats’s wife, George Hyde Lees, was a good wife and it is very hard to think of Yeats’s later poetry without her. After his marriage, he felt that he was satisfied and at peace, for his wife was considerate and self-sacrificing. The good and kind heart of both his wife and Olivia Shakespear has become an indispensable factor for his depiction of this image of an ideal woman. Yeats believed Lady Gregory was like his mother, friend, sister and brother. She became to Yeats an ideal aristocratic image. The poet explains her state in terms of a linnet, the Horn of Plenty and a hidden laurel tree, which mean kindness, wealth and custom respectively. Even though his daughter has an aristocratic attitude, she will lead a comfortable life, for she has a generous spirit which originated from ceremony and custom. In conclusion, we can say that Yeats developed this image of an ideal woman from the persons he knew well. He desires that his daughter has somewhat less beauty than Maud Gonne, such sincere and good heart as his wife and Olivia Shakespear, and the wealthy and generous spirit of Lady Gregory. He has certainly produced a “Unity of Being” in this poem.
루터는 개혁의 인물, 저항의 인물, 시대의 인물 그리고 기도의 인물이다. 그는 교회의 본질을 되찾고자 신학적 저항을 했다. 교권에 맞서 신앙의 자 유를 천명했다. 구시대의 전통과 관습에 맞서 ‘오직’을 고수했다. 이 모든 것의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과도 싸웠다. 그 도구 는 기도였다. 기도의 경우, 루터에게 죄와 은총의 문제처럼 논쟁적 성격을 가진 주제는 아니다. 그에게 기도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있었다. 그의 저서에는 물론 ‘기도’라는 명확한 단어가 붙은 책도 있다. 『소 기도서』(1522) 와 『쉽게 기도하는 법』(1535)과 같은 저서이다. 『대교리문 답서』와 『소교리문답서』에서는 기도의 콘텐츠를 제시했다. 이 글은 루터의 기도 이해를 연대기적으로 다루면서 올바른 기도란 무엇인지를 찾고자 했다. 초기강의 중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강의에 당시의 기도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다. 로마서 12장 12절 주해에서 두 종류의 기도를 설명했다. 음성기 도(oratio vocalis)와 정신기도(oratio mentalis)이다. 갈라디아서 4장 3절에서 는 ‘이해 없이 소리내는 기도’ 즉 “음성기도”(oratio vocalis)를 육적인 것이 라고 비판한다. 1519년에는 기도를 주제로 설교했다. 이 설교에서 모든 기도는 5가지 요소를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약속, 간구. 믿음. 진심 그리고 예수의 이름이다. 『간략한 주기도문 강해』(1520)에서는 “가난한 기도”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라고 평했다. 『소기도서』(1522)에서는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강조했다. 『쉽게 기도하는 법』(1535)에서는 루터 그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기도를 설명한다. 루터는 무엇보다 기도의 필요성을 하나님의 명령에서 찾았다. 하나님은 기도를 명했고, 기도의 응답도 약속 했다
본 논문은 『창세기 강해』에 초점을 맞춰 루터의 기도 개혁과 기도 신학을 살펴보았다. 개인적 및 대중적 경건 형성에서 기도가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인식한 루터는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기도 신학과 관행을 비판했고, 대안적인 기도 신학과 관행을 제시하면서 기도 개혁을 주도 했다. 루터의 기도 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도에는 명령과 약속이 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 있고, 이것이 기도의 출발점이요 근간이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명령은 사랑으로 순종해야 한다. 셋째, 참된 기도에는 인간의 절박한 필요가 있어야 한다. 특히 가슴속에서 솟아 나오는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과 울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의 부르짖음을 완벽한 기도로 만든다. 넷째, 진실한 기도의 중요한 요소인 절박한 필요성은 소명에 충실할 때 나온다. 다섯째, 기도와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를 강조한다. 『창세기 강해』에서 루터가 제시하는 기도 신학은 다른 글들에 나타나는 기도 신학과 맥을 같이 한다.
목적: 본 연구는 크리스천선수의 스포츠심리상담과 코칭에 대한 제안을 하기 위하여 실시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많은 크리스천선수들이 각 종목에서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이유로 심리상담과 코칭에 대한 연구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본 연구는 크리스천선수의 믿음을 이해하고 상담과 코칭에 도움을 주는데 목적을 두었다. 방법: 선행연구와 문헌을 분석하고, 선수의 신앙적 경험 사례를 조사하여 제시하였다. 결과: 첫째, 크리스천의 믿음을 이해하기 위해 자유의지와 동기에 관련하여 이론적 분석을 하였다. 둘째, 스포츠에서 기도의 사용에 대한 연구를 알아보았다. 셋째, 크리스천선수들의 성경구절과 기도에 의한 심리조절 사례를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크리스천선수의 스포츠심리상담 및 코칭을 위한 제안과 미래연구를 위한 제안을 하였다. 결론: 크리스천선수에게는 성경구절과 기도 등의 믿음이 심리조절에 영향을 주므로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본 연구에서의 제안을 시작으로 많은 스포츠심리학자와 상담사가 크리스천선수에 대한 연구와 코칭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In Hinsicht auf die patristische Auslegungen über die vierte Brotbitte im Herrengebet(Mt. 6.11; Lk. 11.3) wurden uns zwei unterschiedliche Auslegungsrichtungen, nömlich spiritualisch und materialisch, überliefert.
Unter “dem äglichen Brot(o ∈`π ι o α` p)” verstehen nicht nur Tertullianus, sondern auch Origenes als Christus, der “das vom Himmel herabkommende wahre Brot”(Jo. 6.32) oder “das Brot des Lebens”(Jo. 6.35) ist. In der Forderung Jesu, dass wir sein Reich und seine Gerechtigkeit beten sollen(Mt. 6.33), findet Tertullianus den Grund seiner exegetischen Richtung. Origenes, der darüber etymologisch am tiefsten erörtert, haben auch seinerseits mindestens zwei Gründe: erstens, Jesus erfordert uns, etwas Himmliches und Grösseres zu beten(Proöm. peri euches); zweitens, er leitet “∈`π ι o(täglich)” etymologisch von “∈πι την ouσιαν” aus, indem er “ouσια” als “notwendig” vesteht. Also "ό έπιουσιος 'άρτος” ist für ihn “das mit Wesen verbundene Brot”. Die biblich und etymologisch grundlegende Interpretation von Origenes wurde auf die “spiritual-erbauliche” Auslegungstendenz der folgenden Generationen ausgeübt.
Im Gegenteil davon sehen darin Gregorios von Nyssa und Johannes Chrysostomos einfach materiales, reales Brot, weil Menschen, natürlich nicht Engel, unter Hunger leiden können und darum etwas zum Essen jeden Tag brauchen müssen. Aber dies Brot ist uns nicht preislos gegeben, sondern man soll es erwerben, insbesondere für Gregorios, als Lohn der fleissigen Arbeit(Gen. 3.19). Uns gibt es also der himmliche Vater, das daher das gerechtige Brot ist. Die Bedeutung der Gregorios’ Exegese ist schliesslich folgenschwer, besonders für das Thema “Reictum und Armut”.
Die Unterschiedlichkeit beider Positionen könnten aus der zeitlichen Situations-veränderung zwischen dem 3. und 4. Jahundert, oder aus sozial-wirtlschaflich unterschiedlichem Hintergrund in Nordafrika und Asia Minor, oder aus der individuell theologischen Richtungen.
이 글은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기도했던 곳으로 전해져 오는 남해 금산의 ‘이태조기단’에 관해 언급된 여러 기록을 고찰한 글이다. 남해 금산이 이성계 전설과 관련이 있다는 언급을 한 최초의 관찬 기록물은 광 무 7년(1903)에 당시 의정부 찬정 尹定求가 지은 ‘南海錦山靈應紀績碑’와 ‘大韓 中興頌德祝聖碑’이다. 전자는 남해 지역에서 이태조 전설과 관련된 기념물이 조 선조 말엽에 조성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이를 정부 차원에서 공인하게 되어 기념비 등이 만들어지게 된 사실을 알려주는 기록으로 주목된다. 후자는 고종 황제의 공 적을 조선 태조의 공적에 비겨 칭송하여 성군이 되기를 축원하는 내용을 담은 비 로서, 이를 대한제국 시기에 남해 금산에 세우게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들 두 비문을 제외하면 남해 금산을 이태조 전설과 관련해서 언급한 관찬 기 록물은 찾아지지 않는다. 이성계 전설에 대한 기록은 여러 개인 문집에 수록된 금 산 기행록을 통해서 살필 수 있을 뿐이다. 이들의 기행록에는 이성계가 기도하던 곳이 시기에 따라 여러 곳으로 나타나고, 이를 ‘王拜石’․‘聖臺處’․‘山祭壇’ 등 으로 지칭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개인 문집을 통해 살필 때, 남해 금산을 이성계 전설과 관련해서 언급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에 이 곳을 등산한 조겸의 기행록인 것으 로 나타나고, 이 밖의 여러 기행록 가운데 오늘날 이태조기단으로 알려져 있는 곳 이 처음으로 분명히 언급되기는 1865년에 금산을 기행한 이우선의 錦山記에서 이다. 여기에 비로소 현재 이태조기단이 위치한 ‘보리암 동쪽’에 이성계가 ‘산제를 지내던 제단[山祭壇]’이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 곳은 그 보 다 앞서 금산을 기행한 이들의 기행록에 언급된 ‘王拜石’․‘聖臺處’가 있던 곳과 는 다른 곳임이 주목된다. 이우선의 금산기 에서 언급된 보리암 동쪽의 이성계가 산제를 지낸 제단은 이 후 남해 금산을 유람한 여러 인사들의 기행록에서 이성계 전설을 언급하는 경우 대체로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서 보아 오늘날 이태조 기단으로 전해지는 곳은 이우선이 금산을 유람하던 1860년대를 전후한 무렵에 이 성계 기도처로 알려져 이후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