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는 축적된 연유기술을 바탕으로 화려한 삼채도기 문화를 꽃피운 시기였다. 당대의 연유도기는 이전의 단색 연유기술과 달리 다양한 색상의 구현이 가능했으며, 세 가지 색 이상을 혼용하기도 하여 시각적인 화려함이 극대화되었다. 소위 당삼채라는 당대의 대표적 연유도기는 7세기 중반 盛唐 이후 크게 유행하였다. 주로 부장품인 明器로 활용되었으나 출토 상황에 의하면 일상생활에서도 적지 않게 사용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오늘날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의하면 당대의 연유도기는 화북 및 화남 등 여러 窯場에서 생산되었으며, 중국 내 소비와 함 께 동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로까지 널리 수출되어 활발한 소비가 이루어졌다. 본 연구에서 당대의 주력 생산품이었던 당대 연유도기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수출에 관한 그간 학계의 연구성과를 소개하고 관련 논제들을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아울러 그간 동아 시아에 비해 덜 주목되었던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지역의 출토 사례를 중심으로 해외 전파와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몇 가지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먼저 여러 발굴 성과를 토대로 살펴보면, 당대 厚葬문화 덕에 初唐부터 이미 삼채 도용이 대규모로 생산되었고, 이는 황족묘나 고관대작 분묘 출토품을 통해 어렵지 않게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 편으로 섬서 서안의 中堡村이나 하남성의 張思忠夫婦墓 등의 출토 예를 통해, 無官職이거나 중상급의 평민계층 사이까지 폭넓게 향유되었음을 알 수 있어 이는 당대의 전형적 부장문 화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8세기 중엽 안녹산의 난(755~763) 이후, 화려한 당삼채의 생산이 종식되고 대 신 백유녹채의 생산이 활발해졌다. 이는 성당기의 삼채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채유 도기로 성당시기 당삼채는 부장용 명기의 성격이 강했으나, 9세기 백유녹채도기는 실용기에 가깝다. 그런데 이 백유녹채도기의 제작을 촉구한 역사적 배경은 바로 8세기 후반 이후 바닷길을 통해 이루어진 서아시아, 즉 이슬람제국과의 교역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9세기 폭발 적으로 증가한 이슬람과의 도자무역은 결과적으로 이슬람 시장과 영향력에 대한 당나라의 태도에 기인한 것이라 판단된다. 이는 단순히 동방의 연유 도기가 이슬람권에 수출된 것이 아니라 이슬람권의 기호를 중국 측이 수용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조의 불교의례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견디어야 했던 불교계의 현실과 조선의 치국이념인 유교에서 얻지 못하는 내세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형성된 불교의례는 현세 구복적이며 주술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개항 이후 불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한국불교의 모순을 타파하고 새 로운 이념을 제시한 개혁가들은 이런 의례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비 판과 함께 근대 불교의례의 방향으로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한글화와 대중화가 제시되었다.
이와 같은 한국불교의 자체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병합한 일제 는 사법을 제정하여 한국불교 의례를 크게 변질시키면서 통제정책에 활용 하였다.
그런 분위기를 인식한 한국불교인들은 1910년대 한국불교 의례 회복을 논의하였지만 실행되기 어려웠고, 1930년대 이르러 일제강점에 의해 훼손된 불교의례를 재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대두되었다. 뜻있는 선지식들은 지난날 비판하고 버려두었던 불교의례 속에서 우리의 전통을 찾으려 하였다. 그런 배경에서 1931년 발간된 불자필람과 1935년 대중들을 위해 약본으로 발 간한 석문의범이다. 그런 의식에서 형성된 전통의례의 출판은 한국 불교 인의 많은 관심과 활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일제는 전시 체제에 맞도록 한국 1,500여 사찰에서 대동아전쟁의 연전연승을 위한 기도법회를 열어 절대적인 친일과 동원을 강요하면서 변질 된 의례를 지속시켰다.
이렇게 변질된 한국불교 의례는 광복 후에 회복될 수 있었다. 새로운 집 행부가 설립된 후 모범총림을 시설하여 옛날부터 전해지는 한국불교 범음전 통을 회복하였고, 성철과 청담의 주도하에 설립된 봉암사 결사운동에서 비 불교적인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현대 불교의례의 방향성이 제시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hange type and patterns in which a verb acquires a new meaning to indicate the action related to the computer upon the influx of computer media. When new concept arises upon the social and cultural exchanges with other countries, a new word representing the new concept is needed. However, a new word made from borrowing from foreign languages or synthesis or derivation is limited to a noun. But, since a verb is more limited in synthesis or derivation of new word compared to a noun, we usually use the existing verbs to represent the action or the behavior associated to a noun of new media. As it comes to the 21st century, the whole world experienced the rapid change caused by IT (Information Technology) revolution as much as Industrial revolution. As a result, huge amounts of IT-related words from influx of foreign languages have come or lots of new words have been created, respectively. In this process, there are many words different from the existing actions that we have done when using the hardware or software of IT-related equipments. The results brought considerable changes to the existing verbs. Therefore, this study focused on the meaning change patterns of verbs according to the behavior or action associated to the usage of computers representing the IT media. In this study, the patterns of meaning change were largely categorized into three as follows. (1) No meaning change, (2) Keep the selectional restrictions, (3) Break selectional restrictions. (1) This case is that a verb combines with a new noun upon the influx of computers and a situation can be inferred based on the primary meaning of a verb. (2) The action to use the computer is not existed, but a noun associated with it is used metaphorically. So, it seems to keep the selectional restrictions. (3)Since a verb acquires a totally different meaning, it seems to violate the selectional restrictions with noun argument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was to investigate the transition of the concept and meaning of "bulgogi". "Bulgogi" is a representative Korean food and is also a global menu item. The first dictionary that presented the word "bulgogi" was the Keunsajeon (big dictionary). The results of an analysis of 17 dictionaries published in the last 60 years showed the immutable definition of "neobiani" as seasoned and broiled beef. In contrast, "bulgogi" has been termed differently, from "simply grilled meat of an animal" to the same meaning as that of "neobiani". Furthermore, to define the difference between common grilled meat in modern versus present time, a review of 26 cookery books from Sieuijeanseo, written in late 1800, to The Taste of Korea, written in 1987, were selected and examined. To date, the first appearance of the word "bulgogi" mentioned in a cook book was in Practice in Higher Cuisine, which was written by Shin- young Bang in 1958. The book states that "bulgogi" is the second name or the vulgar designation of "neobiani".
필자는 이 연구에서 루더로 태어난 루터는 개명을 통하여 신학적으로 자기이해를 표현하였다고 주장한다. 루터의 자기이해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은 1517년 10월 31일 마인츠의 대주교 알브레히트에게 보낸 편지와 관련된다. “거룩한 신학박사로 부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회 마틴 루터”라는 서명에는 루터의 신학박사로서의 자유의식과 교직전권 및 그리스도로부터 특별하게 임무가 주어졌다는 자의식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루터는 1517년 11월 11일 랑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eleutherius’라는 새로운 이름을 스스로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당시 스콜라 신학으로부터 자유케 되었음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종교개혁적인 자유사상을 통해 다른 사람을 자유케 하거나 적어도 그들이 자유케 되는 것을 돕는 자라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루터의 이름이 표현하는 사실은, 랑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타나 있는 것처럼 루터 자신이 스콜라 신학의 굴레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에 의해 선사된 자유에 대한 의식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스콜라 신학과 면죄부 제도에 나타난 인간의 지혜에 대항하여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가운데 자신의 임무를 행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루터의 개명은 신학적으로 철저히 의도된 것으로 자유한 자, 그리고 동시에 자유케 하는 자의 사명을 표현하는 자기이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