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와 상생, 건전한 사회, 공평과 평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문화구조, 국가와 국가 간의 상호교류 등이 절실히 요청되는 21세기에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폭력과 배제, 혐오가 지구촌 곳곳을 휩쓸고 있는 것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근 환대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인문, 사회과 학 전반에서 화두가 되었고 환대의 실천을 제도화하려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노력도 적지 않았다.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세상으로 파송 받은 교회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본 논문은 환대의 신학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와 선교적 교회의 정체성을 연구한다. 환대 신학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와 교회의 온전한 선교적 삶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하나님의 선교의 출발은 하나님의 환대에서 시작되며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환대를 말과 삶을 통해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환대는 하나님의 선교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교회의 선교적 표지이다. 인간다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와 상생, 건전한 사회, 공평과 평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문화구조, 국가와 국가 간의 상호교류 등이 절실히 요청되는 21세기에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폭력과 배제, 혐오가 지구촌 곳곳을 휩쓸고 있는 것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근 환대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인문, 사회과 학 전반에서 화두가 되었고 환대의 실천을 제도화하려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노력도 적지 않았다.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세상으로 파송 받은 교회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본 논문은 환대의 신학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와 선교적 교회의 정체성을 연구한다. 환대 신학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와 교회의 온전한 선교적 삶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하나님의 선교의 출발은 하나님의 환대에서 시작되며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환대를 말과 삶을 통해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환대는 하나님의 선교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교회의 선교적 표지이다. 인간다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와 상생, 건전한 사회, 공평과 평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문화구조, 국가와 국가 간의 상호교류 등이 절실히 요청되는 21세기에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폭력과 배제, 혐오가 지구촌 곳곳을 휩쓸고 있는 것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근 환대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인문, 사회과 학 전반에서 화두가 되었고 환대의 실천을 제도화하려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노력도 적지 않았다.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세상으로 파송 받은 교회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본 논문은 환대의 신학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와 선교적 교회의 정체성을 연구한다. 환대 신학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와 교회의 온전한 선교적 삶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하나님의 선교의 출발은 하나님의 환대에서 시작되며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환대를 말과 삶을 통해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환대는 하나님의 선교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교회의 선교적 표지이다. 분열되고 배타적이며 혐오로 가득 찬 세상을 치유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교의 정수는 하나님의 선교적 환대에서 비롯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성찬을 선교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여 그 본디 의미를 고찰하고, 목회 현장에 적용할만한 ‘선교적 성찬’(Missional Eucharist)을 예시하여 교회의 선교적 동력으로 삼으려는데 있다. 이 시도의 신학적 근거는 첫째, 존 웨슬리의 성찬신학에서 살펴볼 수 있다. 웨슬리는 복음 설교자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그는 영국국교회의 사제로서 고교회(High Church) 전통의 성례주의자였다. 그가 성찬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거룩한 은총에 의한 회심의 변화가 여기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음적 성화의 사건으로 선교적 부흥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둘째, 성찬 그 자체가 이미 선교적일 뿐 아니라 흥미롭게도 그 의미에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의 신학적 관점들이 농후하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성찬은 은총에 의한 회심 체험 이나 변화의 부재로 ‘명목상의 성찬’(Nominal Eucharist)이 된지 오래다. 따라서 선교적 교회의 내적 동력으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추구하는 성찬이 되려면, 감성과 이성, 전통과 신학 그리고 통전성과의 조화로운 결합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본고는 ‘선교적 성찬’을 통해 선교적 성화가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접근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웨슬리의 신학과 사역에 나타나는 목회적 특성을 네 가지로 분석하고, 다시 그것들을 ‘선교적 교회 성장’(missional church growth)의 개념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다. 웨슬리의 신학과 사역에는 시대적, 문화적 환경을 초월하는 원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실천과 사역이 지속 가능한 부흥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 점을 전제하고 보면 그의 실천과 사역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특성은 크게 네 가지 곧 (1) 교회의 본질에 기초한 목회적 실천, (2) 교회의 유기적 조직과 내적 역동성, (3) 성령의 강한 임재와 현존의 체험, (4) 실용주의적 방법론으로 정리된다. 이것들은 목회적 또는 교회성장 학적 관점에서 선교적 교회 성장의 원리로 구성하면 네 가지 곧 (1) 선교적 교회론, (2)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조직, (3) 성령의 역사와 뜨거운 영성, (4) 효율적 방법론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이 원리들은 선교적 교회론과 교회성장학의 유익한 점들을 서로 결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보쉬는 하나님께서 선교적이라면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신학도 선교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근거해서 이 논문은 온 세상을 위한 온전한 신학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여 한국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온신학’이 선교적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본질 적으로 선교적이 되기를 추구하는 선교적 교회론의 주제들을 온신학이 어떻게 다루는지를 비판적으로 비교할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삼위일 체신학과 하나님의 선교,’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선교의 현장으로서 세상,’ ‘성령에 이끌리는 공동체로서 교회’를 선교적 교회의 중요한 주제들로 간주한다. 결론에서 온신학이 선교적인지에 대한 평가와 이를 토대로 온신학이 보다 더 선교적이 되는데 필요한 부분을 간략하게 제안할 것이다.
최근 언론매체를 통해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사람들의 행각에 대한 소식, 경찰 같지 않은 경찰, 교사 같지 않은 교사, 성직자 같지 않은 성직자들에 대한 나쁜 소식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좋은’ 교사, ‘인간다운’ 인간, ‘목사다운’ 목사, ‘진짜’ 그리스도인, ‘좋은’ 교회 처럼 명사 앞에 그 명사가 당연히 뜻하는 바를 부연 설명해주는 형용사 가 붙어야만 하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금의 한국사회 속에서 교회의 진정성은 무엇으로 담보할 수 있는가?
가톨릭 교회론의 명저인 Die Kirche를 쓴 한스 큉(Hans Küng)이 나 종교개혁자들의 교회론은 공통적으로 ‘조직체’인 동시에 ‘영적 실체’ 로서 교회를 정의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라는 개념을 떠올릴 때, 따로 마련된 건물에서 틀에박힌 예배를 드리는 의식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거나 또는 우리가 소속되어 출석하고 있는 영적인 모임만을 떠올려도 안된다. 오히려 우리가 동일한 목표와 목적지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를 통합시켜주는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레고리 비일(Gregory K. Beale)의 ‘성전신 학’(temple theology)은 이와 같은 교회론을 잘 담보하고있다.
비일은 이중적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라는 개념으로 신구약성경의 통일성을 규정한다. 성전신학은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 의 역사적・신앙적 의미를 구약성경에서 신약성경에 이르기까지 교회 의 선교사명이라는 큰 틀에 맞춰 신학적으로 전개된다. 비일의 주장대 로 에덴동산-성전-하나님의 영화로운 임재-새창조-교회의사명 등 의 주제가 결국 동일한 실재를 나타내는 다른 양상이라면 이때 ‘성전’개 념은 선교적이다. 그의 전제대로 성경텍스트 자체가 스스로 핵심주제 로 드러내고있는 성전개념이 선교적 개념이라면, 성경은 선교의 책이 다. 비일이 자신의 연구를 선교적 해석학(missional hermeneutics) 으로 언명하고있지는 않지만, 필자는 그의 연구를 선교적 해석학으로 분류하여 소개할 것이다.
논문의 구성은 먼저 신구약성경을 통으로 읽지 못할 때의 제반 문제점과 그 결과를 기술하고나서, 신구약성경을 통으로 연결하여 읽어야함을 주장하되 그레고리 비일의 성전신학을 선교적 해석학의 예시로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전신학의 틀로 연구한 선교적 해석 학이 현금의 교회에 주는 메시지를 고찰할 것이다.
한국 역사 속에서 종교들은 대체로 평화롭게 공존하였으나 기독교 유입 이후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 간 관계는 점차 갈등관계나 다원주의로의 양극화 또는 무관심이라는 양상을 띠어 왔다. 종교다원주의는 교회의 근간인 성경의 진리됨을 일종의 은유와 신화 또는 성경 저자들의 고백이라 주장하고 그리스도가 예수를 포함한 여러 이름이라는 주장으로 복음을 모호하게 한다. 반면 다른 종교들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사회적 대립과 갈등으로 확산되기도 하여 왔다.
본고는 종교간 대립과 갈등의 부분에 관심을 두고 이에 주목한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 중 하나는 인종과 종교 집단, 국적에 따라 나뉘어 곳곳에서 갈등을 넘어 폭력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속에서 종교대립이 살인과 테러, 전쟁으로까지 표출되고 있는 것에 비하여 정도에 있어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한국에도 종교적 갈등과 반목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것에 비하여 정도에 있어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한국에도 종교적 갈등과 반목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교회는 배타적 또는 대립적 태도로 인하여 발생하는 오늘날의 사회적 문제들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본고는 종교간 관계의 문제와 요인들을 분석하고 선교적 교회의 본질에 입각하여 종교관계를 위한 교회의 역할을 고찰한다. 더불어 종교신학적 입장에서 정체성의 신학을 제시하며 이를 중심으로 종교관계의 나아갈 바를 보인다. 이를 위하여 십자가의 배타성 뿐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포하고 있는 십자가의 포용성을 강조하며, 교회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사도적 사명을 받은 존재임에 주목한다. 보냄을 받은 공동체인 교회는 사회로 나아가 문화와 종교와 소통하고 관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정신을 좆아 대립과 폭력이 아닌 치유와 평화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교회의 통전적 제자화와 증인됨을 말하며, 또한 교회 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세상과의 소통과 치유가 있는, 세상이 있는 제자화와 증인됨이다.
본고는 교회가 종교다원주의를 지양하고, 정체성의 신학을 통하여 종교관계에 있어 자신의 헌신을 분명히 함으로써 진정하고 의미 있는 대화와 관계를 이룰 것을 촉구한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여 있는 것이 아닌 정체성은 십자가가 드러낸 자신을 내어줌이며 이는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 주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타자를 위한 그리고 타자와 함께 하는 정체성이다. 더불어 교회가 자기부인, 약함과 겸손, 사랑에 근거한 성육신적 열림, 사회참여 및 협력을 통하여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것을 강조한다. 교회는 세상과 많은 접촉점, 만남의 자리, 공통점을 지니지만 영적인 타협은 없어야 하며, 종교적 이상과 대치되는 부분들에 관하여 그 다름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함을 주지한다.
대럴 구더는 자신의 신학 방향을 선교와 신학이라는 두 개의 개별적인 학문의 분야에서 선교적 신학(Missional Theology)으로의 전환으로 두고 있다. 또한 구더는 기독교세계(Christendom)에서 형성된 서구의 전통적인 교회론이 선교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랜 기간 동안 기독교세계의 신학은 거의 선교를 주요 주제로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북미의 축소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개인적인 것으로 축소하였고, 더 나아가서 복음의 본질인 증거의 삶을 선택사항으로 만들었다. 구더는 선교적 신학의 관심은 복음전도를 향한 전적인 헌신으로,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고 이 땅에 그분의 개입하시는 통치(inbreaking reign)에 참여하는 것이다. 구더에게 선교적 해석학은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선교적 소명이라는 면에서 말씀을 해석하는 것으로 사도적 증언을 지속하는 공동체의 선교적 소명을 기록한 문서로 신약성경을 해석한다. 그리고 구더는 니케아 공의회에 네 가지 교회 표징들을 북미에 있는 주요 교단들의 감소와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이 갖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선교적 연계성의 대안으로 제안하였다. 구더는 북미 기독교의 도전이 선교가 있는 교회에서 선교적 교회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의미는 해외선교를 열심히 하자는 것도, 국내선교에 매진하자는 것도 아니고 교회의 본질인 하나님의 선교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북미의 교회들은 그리스도 안의 성령에 의해 축소주의를 극복하고 사도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