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하버마스와 슈미트의 관점을 대결을 통해 코소보에서의 인 도적 개입 사례를 해석해 보았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 에 특히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시의성을 지닌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 국 패권의 쇠퇴의 단편으로 고려되고 있지만, 그 본질적 요소에 대한 메 타이론적 논의는 아직 부재하다. 사실 미국의 자유주의 규범의 이중성(인 권보호-인권개입) 그리고 인권과 국가 주권(불가침주의) 간의 상호 간섭 은 상당한 긴장을 발생시키고 전환기적 국제질서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주요한 요소라는 점을 본 연구는 주목한다. 이를 위해 본연구는 현재 진 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보다 완결된 사건인 코소보 사례를 통해 논의를 심화해 보았다. 이는 인권 보호를 위한 개입의 딜레마를 보여주 며, 이는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과 밀접하게 유사하 다는 점에서 유의미 한 사례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사건들을 미국 패 권의 쇠퇴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인권과 주권 간, 그리고 개입과 보호 간의 갈등에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는 미 국 규범에 대한 도전이며 더불어 자유주의 규범의 파탄, 그리고 미국 패 권의 쇠퇴에 관한 담론의 정치철학적 근간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유의하 다. 즉, 인권과 주권의 본질을 미국 패권의 쇠퇴와 다극화의 상승이라는 더 큰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의 결과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이 연구는 새롭게 떠오르는 국제 질서 내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를 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This scholarly investigation delves into the legal complexities arising from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s high-altitude balloons entering US airspace. By analyzing landmark cases, such as the Lockerbie incident, this study emphasizes the urgent need for clear liability norms in international airspace. The 2023 Montana Incursion served to clarify the self-defense and proportionality principles under international law. This study examines the nature of these balloons to determine whether they fall under international accords such as the Chicago Convention. It also explores military classifications and legal ambiguities surrounding non-combatant operators in armed conflicts. This paper identifies gaps in the principles of privacy and ethics concerning intelligence gathering within sovereign boundaries. It advocates for new multilateral treaties with geofencing standards to regulate high-altitude unmanned aerial vehicles. This author aims to fortify legal frameworks based on technological advances.
Underwater heritage is the term commonly used to mean material found underwater. Many states have heightened of underwater heritage remains unprotected. The UNESCO 2001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of the underwater cultural heritage is the foremost international legal reference for the protection or salvage of underwater heritage. To conduct a literature review for this thesis, five keywords were chosen such as UNESCO, under water cultural heritage, marine salvage and sovereignty, exploration, and investigation. The objective is; i) To ensure Malaysia underwater heritage is being well enforced by respective enforcement authorities.; ii) To create an awareness and protection to public and relevant parties.; iii) To identify the relevant implementation of legal enforcement from the respective Malaysia authority) To formulate Malaysia underwater cultural heritage strategic framework for enhancement sustainability development of underwater assets and wealth, and sovereignty. And for the problem statement, i) Lack of proactive measures from operational patrol of underwater cultural heritage for the enforcement from maritime authority,; ii) lack of public disclosure on the importance and existence of underwater heritage in Malaysia by stakeholders,; Iii) Lack of procedures and legal aspects for implementation of underwater cultural heritage in Malaysia water,;iv) None of national underwater cultural heritage strategic framework for sustainability of underwater assets and wealth in Malaysia. Specifically, the component of the underwater heritage is outlined for the protection and conservation of artifacts which have been partially or totally underwater. Qualitative method as main method and data collection from research book, journal article, publish and non-publish report. While expert interviewed via Webex within expert from academician and operational as supportive for this research. Text transcribed has been used for this research and coding system functioned for reference during discussion and findings. This thesis also uses theory of formulation and marine salvage as well as underwater cultural heritage law as a main reference. Finally, underwater cultural heritage strategic framework has been formulated regards to enhancement sustainability development of underwater assets and wealth, and sovereignty. thereby, it shown the Malaysian government commitment and concern to remain national maritime sovereignty.
본 연구에서는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사외교를 통한 대외적 자율성 확보 정책을 분석하였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은 임시정 부의 활동 공간을 확장시켰다.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는 중국으로부터 한국광복군에 대한 자주성을 회복하고, 미국·영국 등 연합국과 군사합작을 통해 전후 승전국의 지위를 얻고자 하였다. 미국과 영국은 정치적으로는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았으나 군사적으로는 임시정부와 협력관계를 유지 하고자 하였다. 임시정부에서 추진했던 군사외교활동이 국가의 대외적 자 율성 확보 측면에서 갖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외적 자율성 확보 를 위해서는 대내적 환경의 안정성이 선결되어야 한다. 둘째, 대외환경의 변화는 대외적 자율성을 추구하기 위한 기회이자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 강대국과의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요소는 대외적 자율성 확보 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임시정부는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는 기회를 활용 하여 최종적으로 임시정부에 대한 연합국의 승인을 얻어내고자 하였다.
Most scholars argue that the principle of permanent sovereignty over natural resources (PSNR) has been used by developing countries as a legal basis to exploit their natural resources, including forests, for the sake of economic development. Land conversion and forest burning are the primary causes of forest degradation and deforestation in Indonesia. Thus, the biodiversity of Indonesian tropical forests is decreasing tremendously. This article aims to comprehensively analyze the experiences of the Indonesian government to balance the principle of PSNR and sustainable forest management (SFM). The paper argues that the implementation of the PSNR principle in SFM faces many challenges, such as deforestation, forest degradation, and the failures in implementing laws, as well as weak law enforcement. Therefore, to balance the PSNR principle with SFM, the Indonesian government needs to undertake various efforts, such as strengthening law enforcement, carrying out social forest management, and exercising mandatory forest certification. Moreover, all these efforts need to be further improved.
Although the key purpose of international investment law is to promote foreign investor protection by offering both substantive and procedural standards, the international investment governance regime needs to strike a balance between foreign investor rights protection and the host state’s right to regulate. The changing balance of this dichotomy shapes a leaving-and-return-of-the-state paradigm which explains and rationalizes an evolutionary development of both substantive and procedural norms and the changing status of sovereignty in international investment law. The “leaving” or “return” of the state paradigm informs us of the role of the state in the context of international investment law. This article makes a normative case for reframing investment and national security within what we call the investment rule of law. Both push for and pull from a liberalization movement are in an attempt to reshape this investment rule of law surrounding the concept of sovereignty, the core of international law.
본 논문은 한국의 독도영유권의 역사와 수호전략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신라·고려·조선·대한제국의 독도통치, 일제의 독도침탈과 미군정기의 독도영유권 회복, 일본의 독도도발과 한국의 실효적 지배, 독도문제의 국제정치적 함의와 한국의 독도수호전략을 살펴본 후 결론을 도출해본 것이다. 신라 이사부가 우산국(현 울릉도와 독도)을 정벌한 이래 오랫동안 우리민족은 독도를 통치해왔다. 그러다가 일제는 1905년 러일전쟁 중 한반도 침탈과정에서 한국영토 독도를 일본영토로 강제 편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 일제의 패망이후 우리는 독도 를 수호하여 실효적으로 지배해왔다. 하지만 일본은 전후 일본질서를 규정한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한국에의 반환도서로 독도가 명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독도의 일본영유권을 제기하고 있다. 일본은 독일이 포츠담협정을 통해 강제합병한 모든 영토를 말끔히 반환한 것과는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일본군 무장해제라는 빌미로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 과는 거리가 먼 한국이 일본 대신 분단되어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여, 일본은 더 이상 독도도발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은 외교 적·군사적 대응역량 강화를 통해 우리 영토 독도를 착실히 수호·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본고는 근세로 이행하는 시기의 이탈리아에서 제작되었던 예술작품들이 단순히 예술적 의도로만 제작되지 않았음을 밝힌다. 15세기 후반 무렵, 피렌체의 예술이 볼로냐로 퍼져나가 어떻게 반 응하였는지를 살피고, 볼로냐를 통치한 조반니 벤티볼리오 2세가 주도한 도시 프로젝트를 통해 그 가 활용했던 황제의 이미지가 공공장소에서 주는 효과, 그리고 사적인 공간인 개인 예배당에서 그의 교양이 예술 속에서 어떠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지를 분석한다. 정치사상가로서의 단테의 『제정론』에 근거해 조반니 2세가 추구하려 했던 정치적 이상향을 밝히고 나아가 군주로서의 조반 니 2세의 풍부한 이미지 창출 능력을 재평가하여 북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예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의의를 둔다.
Advanced telecommunication technologies enable us to employ new methods for judicial acts in the national civil procedure, such as facilitating evidence through a video-link system. However, before implementing these methods in the national proceedings for cases with foreign elements, it is necessary to elucidate the relationship between sovereignty and judicial acts of courts, including the validation of these new methods. This is because judicial acts by courts are considered to fall within the purview of the exercise of sovereignty from a Japanese perspective. From the analysis on Japanese state practices to date, it is recognized that Japan has strictly abided by the principle of territoriality under public international law. Nevertheless, reconsidering the meaning of sovereignty, Japan can adopt a more liberal and tolerant policy. In particular, Japan can become more tolerant of other countries’ judicial acts, which may be conducive to the better delivery of justice in transnational civil and commercial dispute settlements.
최근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바 그 중 하나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 에 제소하겠다는 일본의 의도인 것이다 특히 일본은 독도를 한 일간 영유권 분쟁도서로 간주하여 이 문제를 국 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자고 수차례 제의해 온 바 있다 즉 년 월 일 일본 정부는 구상서를 통하여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자고 하였고 년 한 일 외무부장관 회담에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제의를 한바 있 다 또한 일본 외무성의 년 펴낸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포인트 등에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제의 등을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본고는 독도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제의에 대한 한 국 정부의 반대논리를 제시하여 독도문제가 영유권 분쟁도서가 아닌 한국의 고 유영토임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일본의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주장에 대한 반박 논리 및 근거를 제공하여 향후 예상되는 일본의 주장에 대응하기 위한 법적 이론적 및 논리적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삼국사기」권4의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이사부장군이 512년에 동해 중간에 위치하고 무릉도(울릉도)와 우산도(독도)로 구성된 우산국을 목사자를 실은 전함의 해군력에 의해 정복했다. 그 결과 신라의 독도의 영토주권이 수립되었다. 즉 신라는 독도의 영토주권에 대한 역사적 권원을 취득했다. 따라서 512년에 지증왕 시기에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되었다는 사실에 관해 어떠한 의문도 제기될 수 없다. 그러나 오늘 역사적 권원은 현대 국제법상 타당한 권원으로 대체될 것이 요구된다. 역사적 권원은 대체 당시에 타당한 권원으로 대체되지 아니하면 법적 효력이 없다. 그러나 역사적 권원과 그에 유사한 개념은 그 후의 역사적 발전에 의해 대체된 후에는 법적으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권원의 대체 이론은 많은 학자와 국제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일반적으로 수락되고 승인되어 있다. 대한제국은 독도의 관할권에 관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1900년에 선포하였다. 동 칙령의 선포에 의해 512년에 취득된 독도의 역사적 권원은 현대 국제법상 유효한 새로운 권원으로 대체되었다. 따라서 독도의 역사적 권원은 오늘 현대 국제법상 법적 효력이 없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 권원은 대체되기 이전에는 독도 영유권의 권원으로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이다. 대체된 이후에도 역사적 권원이 귀속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적 사실로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권원의 대체에 따라 역사적 권원에 기초한 주장은 현대국제법상으로는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The South China Sea has long been regarded as a major source of tension and instability in Pacific Asia. To clarify the position of claimants is a research task for creating the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and promoting efforts to manage the possible conflicts in the region.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address the Vietnamese position on the sovereignty disputes over the Paracels and Spratlys, and maritime zones in the South China Sea. The Vietnamese position will be examined from three aspects: (1) the sovereignty of the Paracels and the Spratlys; (2) the maritime zones around these islands; and (3) the settlement of disputes in the South China Sea.
2020년 재개관한 일본 영토주권전시관이 1905년 이후 독도에 대한 일본의 국제법상 합 법적 지배와 한국의 불법점거를 강조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일본제국주 의 침략노선의 근간인 일제식민주의에 입각한 일본의 지속적인 독도주권 침탈의 역사가 여전 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일본의 독도침탈 시도가 1905년을 중심으로 재개되 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 정부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장기전략 왜곡프레임이 총체적인 국제법적 권원 강화정책으로 전환되고 있는 점에서 그러한 독도영유권 주장의 정책적 토대를 구축해온 일본 국제법 학계의 권원 연구를 분석한 결과, 독도영유권에 대한 권원 연구가 미나가와 다케시(皆 川洸)의 역사적 권원론을 시작으로, 우에다 도시오(植田捷雄)의 본원적 권원론, 다이쥬도 가 나에(太壽堂鼎)의 대체적 권원론, 세리타 겐타로(芹田健太郎)의 공유적 권원론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확인하였다. 그러한 권원 계보의 정점이자 귀결점에 위치하는 히로세 요시오(広瀬善男)의 국제법사관 을 전제로 한 ‘독도영유론’ 이후 주류 연구자로 등장하는 쓰카모토 다카시(塚本孝), 나카노 데 쓰야(中野徹也) 등의 국제법학자들은 모두 무주지 선점론을 주장하는 본원적 권원(original title)의 계보로 분류될 뿐만 아니라 영토주권전시관의 주장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기 를 요구하고 있다. 먼저 쓰카모토 다카시는 일본이 17세기 역사적 권원을 가진 영토에 대해 선점 등 실효적 점 유에 기초한 영역취득 절차를 거쳐 불확실한 원초적 권원을 근대국제법상의 권원으로 보강하 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필자가 선행연구에서 ‘대체적 권원론’의 검토했던 다이쥬도 가나 에(太壽堂鼎)의 주장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다이쥬도 가나에가 주장하 는 것처럼 국제법상 역사적 권원을 가지는 고유영토를 영유하기 위하여 그것을 근대 국제법상 의 다른 권원으로 대체하는 것은 요구되지 않으며, 실제 일본이 역사적 권원에 기초하여 영유하 는 다수의 도서를 선점과 같은 다른 권원으로 대체한 일도 없다는 점에서 국제법 법리상 타당성 이 없는 것이다. 그러한 전제에서 기본적으로 동일한 논거를 제시하고 있는 쓰카모토 다카시의 주장은 동일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1905년 당시 일본 정 부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군사상 필요에서 영토 편입한 것으로 기술한 나카이 요자 부로의 문서는 부정하면서도, 어업행위에 대해서는 국가권능의 행사로 추인하여 선점요건을 구비하였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 뿐만 아니라 국제법 법리에 대한 왜곡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러한 전제에서 태정관지령,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독도 편입과 관련한 그의 역사의식 을 검토하면, 한국의 독도 명칭 관련 문제를 독도 무주지론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일본 역시 태정관지령에서도 울릉도를 ‘죽도’로 호칭하고 있는 문제를 개방 에 따른 서양지도의 유입으로 인한 혼란으로 희석화하는 등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한편 나카노 데쓰야는 쓰카모토 다카시와는 달리 역사적 권원과는 일정 부분 절연을 전제 로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의 국제법 관계를 전제로 한 무주지 선점론을 제기하고 있으나, 1904년 한일의정서 이래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갖는 불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별개의 개념으로 외면하고 있다. 그러한 그의 주장은 선점 요건으로서의 통고 문제에서 극명하게 표 출되어 1885년 베를린회의 일반의정서, 1888년 만국국제법학회의 통고 의무는 인정하면서 도, 영역권원 취득의 절대적 요건으로 한다는 국제법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해석 하며 시마네현의 고시로 선점의 완료를 주장하나, 국제법이 지자체의 고시와 동일하다는 법 규범 인식 자체가 타당성을 담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쓰카모토 다카시는 다이쥬도 가나에의 ‘대체적 권원론’에 내재된 법리적 문제점의 답습과 일본의 독도 명칭 혼선을 왜곡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으며, 나카노 데쓰야는 역사적 권원과의 절연의 법리로 주권평등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 국제법체제을 주장하면서도 독도주권 침탈을 비롯한 통고문제 등에서 일제식민주의를 합법화하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아울러 히로세 요시오와 동일하게 무주지 선점론 주장자들이 실효적 점유의 법리로 제시하는, 클리퍼튼섬 사건, 동부그린랜드 사건, 망키에-에크레오 사건 모두 무인도, 원격지, 실 효적 지배와 관련된 사례로 자의적인 해석과 원용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정책적 토대를 구축해온 일본 국제법 권원 관련 계보의 주장들은 카이로 선언에서 천명한 폭력과 탐욕의 본질로서 일제식민주의와 일치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권원 계보의 귀결점인 히로세 요시오의 국제법사관이 이후 무주 지 선점론자들이 제기하는 식민지배합법론을 전제로 이와 분리를 시도한 독도영유권 주장은 국제법적 권원의 법리적 왜곡이자 한국의 독도주권에 대한 국제법을 앞세운 중대한 법리적 침해라는 점에서 21세기 평화공동체를 향한 일본의 국제법적 책무를 촉구하고자 한다.
영토주권을 수호한다는 측면에서 만약의 경우 독도문제가 국제재판소에 회부될 경우 이에 대한 사전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영토분쟁에 대한 국제판례의 이해와 분석을 통한 법리적 대비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고유영토론과 실효적 주권행사를 내세우고, 일본은 고유 영토론과 함께 1905년 무주지선점을 주장하고 있다. 독도문제가 국제법원에 회부될 경우 한·일 양국은 각각 독도 원시취득의 증거와 주권의 장기간에 걸친 실효적 행사, 무주지선점에 관한 증거를 제출하게 될 것이다. 영유권 판정에 관한 국제판례의 판단기준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조약과 현상유지법리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에는 대부분 ‘실효적 주권행사’에 따라 인정했다는 점이다. 역사적 권원을 인정한 판례도 있지만 그 숫자는 매우 예외적일 정도로 작다. 실효적 주권행사와 관련된 최근 의 도서영유권 판례는 분쟁도서에 대한 국가 권한의 평화적이고 계속적인 행사의 실체가 되는 다양한 증거들을 검토하여 우세한 증거를 제시하는 측에 승소판결을 내렸다. 도서영유권과 관련된 국제판례를 검토한 결과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격리된 도서 영유권 분쟁의 경우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는다. ① 조약 문안에 격리도서가 규정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 ② 현상유지법리가 적용될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 ③ 문헌과 기록 등 증거가 희박 하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객관성 결여로 증거력 부여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실효적 주권행사의 상대적 평가에 따라 권원을 인정하였다는 공통점을 도출할 수 있다. ICJ는 영토분쟁 사건의 해결을 위해 조약(treaty), 현상유지법리(Uti Possidetis Juris), 실효적 지배(effective control) 순으로 적용한다. 독도와 관련하여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의 해석이 우선될 것이며, 동조약의 해석에 따라 결정이 되지 않을 경우 실효적 주권행사 여부 에 따라 도서영유권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또한 한일 양국이 역사적 권원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도 아울러 필요할 것이다.
독도에서 가장 지리적으로 근접한 섬은 우리나라의 울릉도일 뿐만 아니라 독도는 울릉도의 후배지 또는 판도에 속해 있는 섬이다. 지리적 근접성은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오로지 역사적 그리고 국제법적 측면에서만 주장 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학자가 지리적 근접성원칙 적용에 여러 가지 엄격한 조건을 강조하는 것은 영토주권의 권원으로서 지리적 근접성이 국제법적으로서 부정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이 주장할 수 없는 지리적 근접성에 근거한 영토권원의 가치와 무게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 이다. 한국과 일본의 여러 역사문서들은 독도가 일본보다는 한국으로부터 가깝다는 서술을 반복적으로 명확하게 하고 있으며, 울릉도쟁계 관련 한일 양국의 외교공문서에서도 도서영토의 귀속주체를 결정하기 위한 기준으로서 지리적 근접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중세 한일간에 영토귀속의 기준으로서 지리적 근접성이 고려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리적 근접성이론은 기본적으로 판도이론 또는 영향이론과 상관관계를 갖는 이론으로서 제국주의적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하는 강대국이 아닌 그 피해당사국이 주장하는 경우 이는 자국 영역의 온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도덕적 주장’일 뿐만 아니라 ‘정당한 주장’으로서 당해 지역에 대한 완화된 상징적 지배가 있으면 국제법상 ‘진정한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글은 우선 영토획득의 권원으로서 지리적 근접성원칙을 분석하고, 제3장에서 일본 시마네현의 죽도문제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카노 테츠야 교수의 지리적 근접성 논의를 검토 하였으며, 제4장에서는 영역주권 판단의 근거로서 지리적 근접성과 판도이론을 반영하고 있는 일본의 문서기록들을 살펴보았다.
올해는 대한제국이 칙령 제41호로 독도 영토주권을 천명한 지 120주년이자, 일본에 의한 을사늑약 115년과 한국강제병합 110년이 중첩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을사늑약 100년이던 2005년 일본은 시마네현을 통해 ‘죽도의 날’을 선포하여 한국의 독도주권에 대한 침탈의 역사를 기념하고 계승한 이래, 2020년 재개관한 영토주권전시관에서는 1905년 이후 일본의 국제법상 합법적 지배와 한국의 불법점거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노선의 근간인 일제식민주의에 입각한 일본의 지속적인 독도주권 침탈의 역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오늘 우리에게 부여된 역사적 과제에 대해 다시 검토해 보게 된다. 독도는 한국 영토주권의 상징이자 명백한 우리의 고유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독도주 권에 대한 일본의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일본정부가 한국의 독도주권을 인정한 1696년에도막부의 도해금지령과 이를 승계한 1877년 메이지 정부의 태정관지령을 의도적으로 은폐 하고, 국제법적 권원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국제법상 권원(title)이란 영토주권과 관련하여, 문서상의 증거에 국한되지 않고 권리의 존재를 확립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증거와 권리의 현실적 연원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당하고 적법한 권원이 결여된 권리는 성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자체가 한국의 독도주권에 대한 불법적인 침탈도발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제에서 일제식민주의에 입각한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정책적 토대로서 국제법적 권원 법리의 계보를 추적하고 주장의 법리적 문제점을 검토해 보았다. 일본 국제법학계의 독도영유권에 대한 권원 주장의 계보는 미나가와 다케시(皆川洸)의 역사적 권원론, 우에다 도시오(植田捷雄)의 본원적 권원론, 다이쥬도 가나에(太壽堂鼎)의 대체적 권원론, 세리타 겐타로 (芹田健太郎)의 공유적 권원론으로 이어지며, 권원 계보의 정점에 히로세 요시오(広瀬善男)의 국제법사관을 전제로 한 독도영유론이 존재한다. 일본의 국제법 권원 계보의 귀결점인 히로세 요시오의 국제법사관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경계로 ‘식민지화’와 ‘비식민지화’로 개념을 구분하여 식민지배와 독도영유권 문제를 분석한다. 비식민지화란, 국제연맹기 법질서의 성립을 계기로 새로운 식민지 형성의 행동이나 강제적인 타국의 보호국화 혹은 영역편입행위는 완전히 위법하다는 것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의 국제법상 합법성을 주장함과 동시에 독도영유권 문제를 분리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일본이 대한제국의 독도주권 선포 이후 1905년 독도 편입조치를 했으나, 국가활동의 지속적인 전개에 따른 영유권 주장의 유효성 결정에는 양자간 군사적 지배력 등 상대적인 권력 관계가 당시 국제법에서 일반적으로 승인, 둘째, ‘실효적 점유’라는 것은 토지의 현실적 사용이나 정주라는 물리적 점유보다도 해당 지역에 대한 지배권의 확립이라는 사회적 점유로서 일본의 점유 상황이 국력을 배경으로 최종적인 법적 효과를 귀속, 셋째, 일본이 영역편입조치를 취한 1904년~05년의 시기에 소규모 일본인의 어업이 실시되었고, 조선 측으로부터의 유효한 항의나 배제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던 점은 독도에 대한 일본정부의 실효적 관리가 있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국제법도 국가실행과 유착된 일본형 법실증주의가 아닌 보편적 국제규범에 입각한 규범성이 제고되고 있는 점과 1935년 UN국제법위원회의 조약법협약 법전화 과정에서 ‘하버드 초안’의 국가대표 개인에 대한 강박에 따른 무효조약의 대표사례인 1905년 을사늑약의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다. 더욱이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정책적 토대를 구축해온 일본 국 제법 권원 관련 계보의 주장들은 카이로 선언에서 천명한 폭력과 탐욕의 본질로서 일제식민주의와 일치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식민지배 합법론’을 전제로 한 일본 국제법 사관의 ‘독도영유론’은 한국의 독도주권에 대한 국제법을 앞세운 중대한 법리적 침해라는 점에서 일본은 21세기 평화공동체를 향한 진정한 국제법적 책무를 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고전적 권원, 봉건적 권원, 본원적 권원 등 역사적 권원은 현대 국제법에 의해 타당한 권원으로 권원의 대체를 이룩하지 아니하면 법적 효력이 없다. 현대국제법상 권원으로 대체된 역사적 권원은 현대 국제법상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것이 국제 판례와 학설에 의해 관습국제법으로 승인되어 있다. 한국정부가 독도영토주권의 역사적 권원을 주장함에 있어서 역사적 권원만을 주장하고 역사적 권원의 대체에 관해서는 주장해온 바가 거의 없다. 그 결과로 한국은 신라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복하여 수립한 한국의 독도 영토주권의 역사적 권원은 오늘에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독도의 역사적 권원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권원뿐만 아니 라 여사적 권원의 대체에 관해 지적하여야 함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신라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 정복에 의해 수립된 한국의 독도영토주권의 역사적 권원은 1910년 10월 25일의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의해 현대국제법상 유효한 권원으로 대체 된 것이다. 역사적 권원의 대체의 관습국제법은 특히 독도를 연구하는 사학자에게 보급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이는 관계 정부당국에 부여된 책무인 것이다.
17세기 조・일 양국 간 ‘울릉도쟁계’에서 교환된 외교문서는 ‘거리관습’에 관한 ‘약식조약’을 맺었다는 박현진의 주장을 둘러싸고 논쟁이 계속 중이다. 본고는 쟁점 중에서 일본의 구상서를 외교문서로 볼 수 있는지, 또한 외교문서의 원본에 관한 문제에 대해 외교 기록 『동문휘고』등을 활용해 검토했다. 그 결과 ‘약식조약’설에는 의문이 남는다. ‘거리관습’설에 관해서는 조・일 양국은 먼저 울릉도(다케시마)가 조선 땅이며, 일본 땅이 아님을 확인한 다음 울릉도와 양국과의 근접성을 거론했으므로 ‘거리관습’설이 성립될지 의문이다. 한편, 조・일 양국은 ‘울릉도쟁계’에서 낙도의 귀속에 관한 판단기준을 세웠으며, 이는 ‘광의의 국제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산도(독도)의 귀속을 판단하면 우산도도 조선 땅이 된다. 그 후 조선정부는 울릉도와 우산도에 대한 영유의사를 계속해 관찬서에서 밝혔다. 또한 일본에서도 다케시마(울릉도)와 마쓰시마(독도)의 귀속을 판단할 기회가 수 차례 있었는데, 그때마다 일본정부는 두 섬을 조선 땅이라고 판단했다. 이 판단은 17세기의 판단기준대로였다. 그 판단기준은 양국에서 관습으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해금정책으로 인해 한말에 우산도는 위치를 알 수 없는 전설의 섬으로 되었다. 이와 별도로 전라도 어민들에 의해 ‘독섬(독도)’이 발견되어 어렵에 이용되었 다. 이 섬이 1900년 칙령 제41호에 ‘石島’라는 한자 표기로 울도군 관할로 명시되었다. 이는 대한제국의 독도에 대한 주권 표시다. 독도는 무주지가 아니므로 1905년 일본정부가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했던 처사는 국제법에 위배된다. 위와 같이 독도에 대한 한국의 역사적・원시적권원이 계속 확인되었더라도, 국제법원에서는 분쟁당사국의 주장에 따라 조약 및 ‘우티 포씨디티스’ 원칙 등이 중요한 검토 대상으로 된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는 독도의 귀속에 대해 결론을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티 포씨디티스’ 원칙에 따라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이 확정된다.
본 연구는 1952년한국 정부의 평화선 선언 이래본격적으로 제기된 일본의 독도영유권주장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의독도주권수호정책의전개과정을1965년한일어업협정체제와일본정부의 일방적 파기 및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 체제로 구분하여 고찰한 다음 일본의 궁극적인 전략인 ICJ를 비롯한 국제재판소 제소에 대응한 우리 정부의 유엔해양법협약상 강제관할 배제선언의 국제법적 효력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한국의 독도주권을 침탈하기 위해 일본이 제기하는 영유권 주장의 본질적 토대는 제국주의 침략 노선의 근간인 일제식민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이 한국의 독도주권을 인정한 1696년에도막부의도해금지령과이를승계한1877년 메이지 정부의「태정관지령」에대한의도적인은폐에 더하여, 1905년무주지선점론에서시작하여, 17세기고유영토론을경유한뒤, 1951년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승인론으로 전환해온 과정 자체가 일본이 강변해온 국제법상 시제법의 법리에서도 오류로 점철되어 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그러한한계로인해일본의3단계장기전략정책프레임은한국의외환위기국면을활용한한일어업협정의일방적 파기와병행하여 본원적·역사적·조약적권원으로 귀결되는 국제법적논거의 강화를통해궁극적으로ICJ를비롯한국제재판소에회부하려는고도화된전략으로분석된다. 이에우리정부는일본정부가일제식민주의에입각하여제기했던1954년ICJ 제소시도선례에서이미확고한 독도주권 수호 의지를 천명하였는 바, 향후 이를 제고하는 장기・종합・체계적 정책 대응방안의 수립이 긴요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