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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

제9집 (2018년 12월) 6

1.
2018.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스토클레 프리즈>의 디자인 전개과정을 살펴본다. 먼저 스토클레 저택과 스토클레 가문에 대해서 고찰하고, 이어서 클림트의 <스토클레 프리즈>를 위한 디자인 스케치부터 완성된 모자이크까지의 형식과 구성을 검토할 것 이다. <스토클레 프리즈>는 스토클레 저택의 다이닝룸 벽을 장식했던 모자이크 작업이다.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스토클레 저택은 비엔나 공방이 추구했던 “총체예술 (Gesamtkunstwerk)”의 실현물로서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스토클레 프리즈>를 주문했던 아돌프 스토클레는 은행업과 철도사업을 운영했으며 20세기 전반기 중요한 예술후원가였다. 1905년, 아돌프 스토클레와 수잔 스토클레 부부는 요셉 호프만에게 스토클레 저택의 건축을 의뢰했다. 이후 스토클레 저택은 호프만의 지휘 아래 건물과 실내장식부터 식기까지 20세기초 새로운 모더니즘 경향의 예술품과 물건들로 장식되었다. 1905년, 클림트는 호프만을 통해 스토클레 저택의 다이닝룸 벽화장식 주문을 받았다. 이어서 클림트의 디자인 작업은 다음과 같이 세 단계에 걸쳐 진행되었다. 먼저 여러 점의 구상 스케치들이 1908년도에 제작되었다. 이후 완성 모자이크 벽화에 등장하게 되는 형식적 특징들이 초기 스케치들에서 이미 나타난다. <스토클레 프리즈> 디자인이 결정된 후, 클림트는 이 디자인 구상을 총 9장의 실물크기의 작업드로잉으로 확대, 제작했다. 클림트는 모자이크 재질과 색상의 농도 등 실물 벽화제작을 위한 상세한 지시사항 들을 1910/11년 제작된 작업드로잉 위에 직접 적어 놓았다. 작업드로잉들은 곧 모자이크 제작을 위해 모자이크 공방과 비엔나 공방으로 전달되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비엔나 공방의 “총체예술”의 이상의 실현이자 구스타프 클림트의 황금시기를 대표하는 <스토클레 프리즈>(1910-1912)이다.
5,800원
2.
2018.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전통가구는 대부분이 조선 후기 座式가구로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좌식가구는 임진왜란 이후 온돌이 발달 하게 되면서 정착된 것으로, 그 이전에는 立式가구들을 사용하였고 조선 후기에도 기록이나 유물을 통해서 사용례를 살필 수 있다. 기록은 단편적이나마 회화․문헌 등에서 엿볼 수 있고, 전하는 유물 역시 희소하지만 그 형식적 영향관계가 깊은 중국 가구와 비교검토는 시도 가능할 것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전통 입식가구에 대한 고찰과 더불어 우리나라 좌구의 특징적인 요소를 검토하고자 한다. 그런데 전통 생활 방식 속에서 의자나 테이블과 같은 立式생활에 관한 것은 그 흔적만 살필 수 있을 뿐이다. 일제시대 洋가구 공장이 생기면서 특히 1940년대에 들어와 의자를 제작하는 공장들이 눈에 띈다. 그 이전의 전통 생활양식에서 의자의 제작과 유통에 관한 것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본 논문에서는 입식 가구 중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의자’에 주목하였는데, 문헌이나 회화 속 전통 의자는 거의 등받이가 둥근 의자 즉 ‘圓椅’에 해당한다. 때문에 이 원의에 주목하여 당시 입식 생활이 대한 기록과 유물을 찾아보고, 형식적 밀접함을 보이는 중국의 명청가구와 비교검토하여 우리나라 ‘圓椅’의 형태적 특징에 관해 짚어 보고자 한다. ‘圓椅’라는 명칭은 조선후기 서유구의 『林園經濟志』를 따른 것이며, 조선 후기 다른 문헌에서는 ‘교의’라는 명칭을 썼다. ‘원의’라는 명칭은 중국과 구별되는 명칭이므로 여기에서는 이를 따르기로 하였다. 전통 회화 중에서 당시 생활상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그 情景을 엿볼 수 있는 것은 기록화와 풍속화일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한시각(韓時覺, 1621-1691 이 후) 그림 <北塞宣恩圖>는 당시 생생한 기록을 담은 그림으로 평가되고 있다. 1664년 (현종5) 함경도 길주목에서 실시된 문무과 과거 시험 장면을 그린 이 그림 안에는 비교적 자세한 표현의 의자와 다리가 높은 탁자가 그려져 있다. 의자는 등받이가 둥근 의자, 등받이가 없는 긴 의자로 나뉘어 있어 당시 의식 생활의 일면이 확인되는 중요 장면이다. 그 외 17세기 기록화인 <권대운 기로연회도>(1689년경), 18세기 풍속화 김득신의 <田園行獵圖>(1744년경), 기록화적인 성격을 띄는 17-18세기의 초상화들, 19세기 풍속화로서 좌구 사용을 볼 수 있는 <練光亭宴會圖>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중 초상화는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다수의 유물이 전하고 있어, 미술사적 성과가 이뤄진 상태에서 그 안에 그려진 의자 형태를 확인 연구 시도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전하는 유물로 논문에서 다룬 것은 왕이 사용했던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朱漆交 椅>나 경기도 박물관 소장의 1668년(현종10년) 하사품인 <李景奭(1595~1671) 交椅>같은 특별 제작의 의자와 일반 선비가 사용했던 의자로 <同春堂송준길(1606~1672) 의자>를 예로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좌식 생활 연구에 편중된 전통가구 연구에서, 立式생활의 면모를 확인하고, 그 형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여기에서는 의자에 한정하였지만, 입식 의자와 함께 사용된 다리가 높은 테이블 역시 전통 가구 연구에서 중요하게 다뤄 져야 할 부분일 것이다. 본 논문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발굴이 될 수 있는 우리 전통 의자, 의자와 함께 사용하였을 다리 높은 탁자 등 우리 전통 생활의 다양한 면모에 대한 폭넓은 연구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6,600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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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리언 웨어링(Gillian Wearing)은 개념적인 의미가 담긴 비디오 작업을 통해 ‘정체성’을 둘러싼 이슈를 자각하게 하였다. 특히 유성(有聲) 컬러 비디오 작업 <1 나누기 2 (혹은 하나 안의 둘) 2 into 1>는 한 가족 구성원 중 어머니와 쌍둥이 아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한 것으로, 이 작업은 ‘립싱크’ 기법을 이용하여 화면에 나타난 대상의 모습과 귀로 듣게 되는 음성 사이의 간극으로 인하여 ‘정체성’ 개념의 복잡한 읽기 방식을 숙고하게 하였다. 웨어링의 작품에서 한 주체가 타자의 음성을 똑같이 따라 말하는 ‘더빙’, ‘립 싱크’ 기법은 감상자로 하여금 통합된 주체가 아닌 무엇인가가 구성 되어가는 주체, 혹 은 과정 중의 주체 개념을 환기시켰다. 정체성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깨뜨리는 웨어링의 <1 나누기 2(혹은 하나 안의 둘)>는 언어를 배우며 어머니의 욕망으로부터 분리되어 아이가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이행하는 주체와 타자 개념과도 연결됨은 물론, 감상자로 하여금 자신과 타자와의 관계를 다시 보게 만들어 확고한 믿음이라는 시스템의 중심에 속해있는 모든 것들을 다시 보게끔 한다.
4,600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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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 Torres)는 쿠바 태생으로 미국 뉴욕에서 행위 예술과 개념 미술 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이다. 그의 성적 정체성 문제로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사항들을 은유이면서도 섬세하게 작업했다. 토레스가 활동했던 1980년대 후반 -1990년대는 앞선 시대였던 1980년대 보수적인 분위기와 달리 다소 부드러운 분위기로 작가들의 주제들을 큰 틀 안에서 용인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그런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작품에서 피력한다. 토레스는 프랑스 철학가 조르주 바타이유(George Bataille)의 책 ≪에로티즘≫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동성 연인의 죽음 전후로 바타이유의 이론이 작품에 적절히 적용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바타이유가 ≪에로티즘≫에서 거론한 죽음과 금기의 위반에 대하여 살펴보고 그의 작품에서 두 의미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육체와 정신을 이중적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생각이 지배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와서야 전통적으로 하위 개념을 지녔던 육체적인 부분을 정신과 동일하게 인정하기 시작했다. 토레스의 경우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을 잘 알고 있었으나 그러한 몸과 정신의 대비 상황을 설명하기보다 아직은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었다는 개념에서 작업한다. 그의 작품은 자신과 죽은 연인의 현존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일한 물건을 나란히 배치하것은 연인과 자신, 영혼과 육체,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등 대비되는 두 가지를 상징한다. 또한 그의 작품 중 초상화로는 독특한 형식인 <사탕 더미 Candy Spill>는 육체를 구성하는 세포들과 사탕을 동일시하여 관람자가 사탕을 가져 가는 행동이 자신의 아픔과 치료라는 상징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사탕은 관람자의 몸 속에 녹아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고 이 과정에서 소멸과 부활을 상징한다. 개념적이면서 환영적인 부활을 나타내는 작품들은 관람자의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미술관 제도에서 금기시 하는 행위들을 위반하여 제도에 대한 비판적 태도도 선보인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금기와 위반적 측면을 작품을 통해 살펴보고 그 개념이 바타이유가 설명한 금기와 연관 있다고 보았다. 위반은 위반한 사람들에게 일종의 쾌감을 선사한다. 삶에 대한 위반인 죽음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쾌락을 의미하고 바타이유 이론에서 죽음에 대한 부분과 맥락적으로 상응하고 있다. 아울러 작품 전체를 통해 암시되고 있는 일시성은 죽음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장치가 된다.
6,100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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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 재위 1776-1800)시대를 대표하는 국중(國中) 최고의 화가였던 김홍도 (金弘道, 1745-1806년 이후)는 문인 수준의 지적 소양까지 겸비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양반이 아니면 사회적 대우를 거의 받지 못했던 신분제 사회의 질곡은 김홍도 또한 넘기 힘든 벽이었다. 본고에서 필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형성 된 엄격한 신분제 사회라는 한계 속에서 김홍도가 느꼈을 비애와 자기 연민을 중심으로 이러한 그의 신분 의식이 어떻게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나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신분제적 모순에서 김홍도가 느낀 소외감과 불만을 유추해보는데 가장 중요한 작품은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의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이다. 이 그림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그림 오른쪽에 적혀있는 김홍도의 제발로 그 내용은 “생황의 [길고 짧은] 들쑥날쑥한 모습은 봉황의 날갯짓 같고 월당(月堂)에 울려 퍼지는 생황 소리는 용(龍)의 울음보다 처절하네(筠管參差排鳳翅, 月堂凄切勝龍吟)”이다. 김홍도가 느낀 신분제적 차별과 관련해서 주목되는 것은 “용의 울음(龍吟)”이다. 중인 출신의 시인이었던 이득원(李得元, 1639-1682)은 한 시에서 “용처럼 으르렁거리고(龍吼) 빈산의 귀신처럼 울부짖는 칼”로 신분제적 차별 속에서 고통받았던 자신을 비유하였다. 그런데 이 제발에서 김홍도는 용의 울음보다도 더 처절한 생황 소리를 자신의 울분과 고뇌를 표현하는 상징으로 활용하였다. <단원도(檀園圖)>(1784년, 개인 소장)는 김홍도가 1781년에 자신의 집에서 강희언(姜熙彦, 1738-?), 정란(鄭瀾, 1725-?)과 같이 가진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의 제발에서 김홍도는 이 모임을 ‘진솔회(眞率會)’로 지칭하였다. 그런데 이 진솔회는 북송시대를 대표하는 문인이었던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의 아회였던 ‘진솔회(眞率 會)’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김홍도가 자신의 모임을 사마광의 진솔회에 비유한 것은 그가 스스로에 대해 매우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김홍도는 당시(唐詩), 송시(宋詩)에 대한 이해가 깊었으며 다수의 시의도(詩意圖)도 제작하였다. 김홍도는 문 인적 소양을 갖춘 화가로 높은 자존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김홍도는 뛰어난 재주와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뜻을 펼칠 수 없었다. 중인으로서 그가 느낀 슬픔과 좌절감은 그의 그림 속에 녹아있다. 정조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도화서 화가였던 그의 화려한 명성 뒤에 숨어있었던 그의 신분 의식을 고려하지 않는 한 우리의 김홍도에 대한 이해는 절반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6,000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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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