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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네 사중주의 첫 번째 작품인 번트 노턴 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네 사중주의 주제는 시간과 영원, 그리고 그것의 교차점인 성육(Incarnation)에 대한 화자의 명상이라고 할 수 있 다. 네 사중주는 헤라클레이토스와 바가바드 기타 그리고 십자가의 성 요한, 노르위치의 줄리안 등의 동서양의 철학적, 종교적 사고들을 참 조하고 인용하면서 이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였다. 엘리엇은 이 작품의 후반부에서 기독교적 의미를 명확하게 표현했지만 번트 노턴 같은 초 반부에서 기독교적 의미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 연구들은 동양 사상의 관점에서 네 사중주를 고찰하기도 했다. 그러 나 번트 노턴 에서 네 사중주의 구조적 모델로서 후반부에 명시된 기독교적인 관점들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었다. 번트 노턴 3부에서 표 현된 암흑이나 5부에 나타난 “십단의 비유”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신비 주의 저서에서 참조된 것이며, 이스트 코우커 3부에서 이 암흑에 관 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5부에 나타난 “사랑”은 아리스토텔레스 적인 제 1운동자의 의미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성육의 의미를 함축한 다. 이 성육은 드라이 샐베이지즈 5부의 “반쯤 추측된 암시, 반쯤 이 해된 재능은 성육이다”(The hint half guessed, the gift half understood, is Incarnation.)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에 나타나는 장 미, 빛, 새, 나무 등과 같은 다양한 이미지들에도 기독교적인 의미가 함 축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2.
        2020.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우주 궁극에 대한 진리에 대한 이해는 인간이 어떠한 사유의 틀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고 그 표현도 달라진다. 우주 진리를 탐색하고 있는 엘리엇의 「번트 노턴」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대부분의 학자들은 「번트 노턴」에 대하여 서양적 사유의 틀인 표층 의식적이고 분별적인 방법으로 해석하였고 그 견해는 다양하였다. 서양의 기독교적 사고의 특징은 우주만물의 중심에 있는 근원을 마음바깥의 관념인 신으로 이해하는 외적초월주의였다. 반면에 동양의 불교는 모든 것이 마음이 지어낸다는 ‘일체유심조’의 관념이고 표층의식을 넘어 심층마음인 ‘아뢰야식’이 우주만물을 창조하는 근원임을 말한다. 우주 근원이 하나라는 원리는 동양과 서양이 다를 바 없지만, 사유의 틀에 따라 표현은 다르다고 하겠다. 필자는 동양 종교인 불교적 마음구조로 「번트 노턴」을 설명하였다. 심층마음인 아뢰야식은 인간이 살고 있는 기세간과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만들어내는 종자식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불교의 기본교리인 십이연기, 사성제, 팔정도, 삼법인을 설명하였고 동양의 불교가 지혜에 초점을 둔 종교임을 밝혔다.
        3.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우주 근원에 대한 철학적 물음은 인류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시작되었 고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들은 대체로 형이상학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과학의 발달로 급격히 변화되어 가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는 그동안의 형이상학적이었던 물음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 요망된다고 할 수 있다. 시간과 영원, 그리고 우주 근원과 같은 철학적 의미가 내포 된 엘리엇의 『네 사중주』 중 제1부 「『번트 노턴』 을 과학에 기초된 양 자역학과 인도의 고전 『우파니샤드』의 진리들을 적용하여 새로운 관점 으로 파악하여 보았다. 그 결과 『번트 노턴』 에서 표현된 우주의 근원인 시적 등가물인 정점과,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 기독교의 하느님, 우 파니샤드의 브라만과 아트만 그리고 옴, 양자역학의 통일장과 같은 근 원적 원리들이 결국 조화된 하나로 통일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러한 근원에 대한 진리 탐구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시간 안에서 영원성 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 체득된 지혜는 살아가고 있는 현상을 새로이 바라보고, 인간의 행복한 삶에 적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엘리엇의 『네 사중주』도 이러한 관점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며, 본 논문의 연구 목적도 그러한 것이다.
        4.
        2013.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공간의 관점에서 W. B. 예이츠가 묘사한 쿨 장원과 일곱 숲 그리고 T. S. 엘리엇이 명상한 번트 노턴과 장미원을 고찰함으로써 두 시인을 비교하는 것이다. 조명한 작품들은 예이츠의『환영의 바다 』(1906)의 서시 (1900)와 일곱 숲에서 (1902) 및 쿨 호수의 야생 백조 (1919) 그리고 엘리엇의 장시『네 사중주』(1943)의 첫 번째 사중주인 번트 노턴 (1935)이다. 천국 같은 쿨 장원과 낙원 같은 번트 노턴은 에덴동산에 비유될 정도로 아주 흡사하다. 예이츠가 여러 차례 체류한 그레고리 여사의 쿨 장원은 그의 평생의 시신인 모드 곤과 이루지 못한 결혼으로 고통 받던 그의 마음의 치유 공간이었다. 한편, 엘리엇이 첫 연인 에밀리와 함께 방문한 번트 노턴 역시 그의 첫 번째 아내 비비엔과의 별거로 괴로워하던 그의 마음의 치유 장소였다. 예이츠는 숲과 백조의 상징성을 통해 일곱 숲과 쿨 호수를 포함한 쿨 장원을 사실주의화가 및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시인의 기교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엘리엇은 장미의 상징성과 시간에 대한 철학적 명상으로 장미원과 풀장이 있는 번트 노턴을 입체파 화가 및 철학 시인과 모더니즘 시인의 눈으로 신비적으로 묘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