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유학(儒學)의 핵심을 덕(德)으로 상정하여,『논어(論語)』의 덕(德) 과 연관한 도(道)⋅인(仁)⋅예(藝)와의 용례 분석에 기초하여 덕교육적 의미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이는 도덕적 실천과 윤리적 가치의 다원성 및 사회공동체 의 역사문화적 배경 등을 견지하는 현대 덕 윤리학의 관점을 지지하는 연장 선상에서, 전통 교육이 표방하는 덕교육적 의미를 강조하고 지금의 교육을 성 찰하기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도(道)는 자연에 관한 이치를 표방하는 반면, 덕(德)은 인간을 주체로 하여 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공부를 하여 도를 이해하고 실행하 여 실제로 내 마음에 얻은 것을 덕이라고 하듯이, 공공(公共)의 가치와 지향점 을 체득하게 된다면 바로 도를 깨우친 덕인(德人)이 된다. 따라서 도는 덕에 의해 보다 구체화 된다. 인(仁)은 덕목 중의 하나로서 위계구조상 덕의 하위 범주에 해당하며, 덕의 속성과 특징으로도 논의된다. 그러나 『논어』의 핵심을 인으로 상정하고, 인을 구체적인 인간과 인간다움을 기반으로 이해하자면, 인은 모든 덕의 기초이자 본질적인 요소가 된다. 예(藝)는 예술이나 문예 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인을 중심으로 하 여 구체적인 실천 덕목을 이행하고 실현함으로써 덕을 함양하고자 하는 도덕 군자를 주체로 하자면, 예(藝)는 군자가 탐구하는 유학의 학문으로서, 도덕적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덕교육적 교과 영역이나 교과 내용이다. 『논어』의 덕은 구체적인 실천 덕목과 확연히 차별화되어 진술되고 있지 않 고 있으며, 덕과 덕목 간의 위계구조 역시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논어』의 덕은 인(仁)을 중심으로 하여 실천 주체와 대상 또는 덕목 간의 관계성 측면 에서 중층구조를 띄고 있으며, 도(道)를 이해하고 깨우침으로써 공공(公共)의 가치와 선(善)을 지향하고 언행일치를 도모하는 등 일상생활에서의 지속적인 이행과 함양을 촉구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인간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이므로 孝는 전통사회의 秩序 維持에 매우 중요한 要因으로 작용해 왔다. 孝의 槪念은 『論語』이전에 이미 존재했었지만 중국사회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논어』에서 起因한 것이라 보며, 이론 정립도 孔子에서 비롯되었다. 孝 槪念의 多樣性에서 보면, 全人性, 宗敎性 및 生命性이 있으며 효 개념이 함의한 生命 重視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孝 思想은 儒學의 근본이 되는 德目으로서, 孔子에 의하여 심화되고 동 아시아 사회에 영향을 끼쳤으며 가정에서의 부자관계에서 출발하여 사회에서의 忠恕로 이어지고 국가에서는 孝治로 연결되어 갔다. 공자 사상은 ‘人間의 社會性’에 있으므로, 仁道에 기반을 둔 ‘孝와 忠恕의 精神’을 바르게 구현한다면, 온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는 原動力이 될 것이다
『논어』에서 효의 範圍는 ‘生前의 孝’ 와 ‘死後의 孝인 追遠’으로 분류하 고, 人性敎育의 영역까지 확장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효의 方法은, 養口體 에서 시작하여 養志에 까지 이르러야 하며, 愼終追遠을 통하여 德治로 나아갔으니, 공자의 治國의 기본은 바로 孝 思想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효의 최종 目標는 인간의 본질인 仁을 구현하는 것이다.
『논어』에 나타난 효행을 고찰해 보면, 민자건·증자의 효행을 통해 칭 찬을 하였고, 17명의 제자들의 ‘효란 무엇입니까?’ 라는 30개의 질문에, 孝는 無違, 以禮, 恭順, 恭敬, 色難, 敬忠勸, 爲政, 見義不爲 無勇也, 祭 如在祭, 不怨, 遊必有方, 三年無改, 父母之年, 德治, 不敢毁傷, 不敢不 勉, 人不間, 聞斯行之, 君君, 臣臣, 父父, 子子, 崇德, 直, 三年之喪을 지키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대답하셨다. 孔子의 核心 思想은, 仁과 孝인데, 이를 실천하는 근본 덕목으로는 克己復禮, 孝悌忠恕, 有敎無類, 正敎一 致, 正名思想, 奴隸制度, 述而不作, 道德心 回復, 感恩意識, 推己及人, 父慈子孝, 追養繼孝 등이 있다. 『논어』에 나타난 효행들을 고찰하여 “내 부모를 잘 섬겨서 남의 노인에 까지 미치고, 내 아이를 사랑하여 남의 자녀에게 까지 이르게 한다.” 면 한국의 사회문제, 청소년 문제, 환경문제 등이 해결될 것이다. 時代에 맞는 자발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함으로써 개인의 人格完成과 社會秩序의 확립 및 人類愛까지를 孝로 간주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형식적이고 비효율적인 효를 止揚하고, 자발적이며 실천이 가능한 ‘효 실천방안’을 마련하여 한국인의 효를 學問的으로 體系化하 고 普遍化시키며, 倫理的인 덕목으로 개발시키는 데에 그 意義를 두었다.
修辭(수사)의 사전적 의미는 修辭가 文彩(문채: figure)의 분류 기준이 됨을 뜻하므로, 사실 상 修辭의 범위를 문법학적으로 제한함을 뜻한다. 그런데 孔子(공자)는 修辭에 대해서 대단히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고 나아가 언어적인 측면보다 실천의 측면을 더욱 강조했으므로, 사전 적 의미로서의 修辭 개념에 전면적으로 대치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左傳(좌전)에서 공 자는 오히려 말을 하지 않으면 그 뜻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강조하며, 언어표현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修辭學(수사학)에 있어서 ‘修辭’는 “修辭立其誠(수사입기성)”이란 구절에 기 인하고, 이는 “말을 닦음에 그 성실함을 세운다.”는 것이니, 이는 그간 인지되어온 修辭의 사 전적 의미와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修辭의 어원과 그 의미 나아가 修辭가 활용된 空間(공간)의 유형에 대해서까지 섭렵하기로 한다.
작품과 본인의 뜻이 완전하게 부합되는 경우는 引詩 본연의 존재의의이자 주된 목적이라 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引詩의 목적이 자신의 말에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논리적 인 측면이나 이해도 측면에서도 모두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論語』에서 孔子와 그의 제자들은 자신의 뜻을 보다 명확하게 피력하기 위하여,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지 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응용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전혀 맥락이 상통하지 않는 즉 앞뒤가 서로 통하지 않는 斷章取義나 牽强附會의 방법까지도 쓰고 있다. 여기에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공자는 그러한 제자의 모습을 보고 극찬을 아끼 지 않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論語』의 引詩 용례들을 먼 저 살펴보고, 그 본연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파악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나아가 引詩 용례와 중국 고대의 수사학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茶山의 나이 52세 때인 1813년에 완성된『論語古今注』는 실로 二千年 論語學史에 있어서 획기적인 저작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당세와 후세에 끼친 영향력에 있어서는 주자의 『논어집주』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탐구의 깊이나 철저한 고증 력에 있어서는 『논어집주』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 大作이라 해도 전혀 과언이 아 닐 것이다. 이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과 검증은 茶山 論語學의 성격을 더욱 명확히 하고 가치를 밝히는데 있어 굳건한 토대를 만들어 줄 것이다. 본고에서는 [質疑 68]에서 [質疑76]에 대해 검토하였다. 그 대강은 다음과 같다. [질의68]은 주자의 仁在心內說을 부정한 것이다. 다산은 여러 저술에서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측은․수오․사양․시비지심이고 理가 밖으로 발현되어 行事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 인의예지라고 생각하였다. [질의69]는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의 ‘歸’에 대해 주자가 집주에서 “歸, 猶與也”라고 한 것에 대해 이의를 표시한 것이다. 주자에 의하면 여기서의 ‘歸’는 ‘허여하다’․‘칭찬하다’․‘칭탄하다’ 등의 의미가 된다. 다산에 의하면 ‘歸’는 ‘歸化’ 의 의미가 된다. [질의70]은 주자가 “爲之難, 言之得無訒乎?”의 句에 대한 주자의 풀이가 공자 의 원뜻과 합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다산이 이의를 표시한 것이다. [질의71]은 “膚受之愬”에 대한 주자 注에 이의를 표한 것이다. 주자의 해석에 의하면 “부수지소”는 현재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고, 앞의 “浸潤之譖”은 현 재는 그 현저한 효과가 없으나 서서히 그 효과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침윤지참”과 “부수지소” 모두 그 효과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으로 종국에는 엄청 난 파국을 낳는 것으로 보았다. [질의72]는 “足食, 足兵, 民信之矣.”에 대한 주자의 주에 다산이 이의를 표한 것이다. 주자는 足食과 足兵이 民信의 선결조건으로 보았다. 그러나 다산은 이 세 가지가 각각 하나의 일로, 서로 연관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질의73] 역시 (12-7)의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에 대한 주자의 주에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주자는 임금과 백성이 지배와 피지배라는 수직적 관계를 중시하여 이 구절을 이해하였다. 그러나 다산은 백성과 지도자는 신뢰를 가운데 두고 대등한 관계에서 상호 작용하는 존재로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질의74]는 “惜乎夫子之說君子也駟不及舌”의 句에 대한 주자의 독법에 대해 다산이 이의를 표한 것이다. 주자에 따르면 이 구절의 표점은 “惜乎!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이 된다. 다산은 “惜乎夫子之說君子也.”를 9자 一句로 보았 다. 다산에 따르면 표점은 “惜乎! 夫子之說君子也.”가 된다. [질의75]의 논의는 文質論의 일단이다. 경문에 따르면, 극자성은 重質輕文論者 에 속하고 자공은 文質幷重論者에 속한다. 주자는 文質을 本末 관계로 보았기 때 문에 자공의 문질론은 공자의 문질론과 어긋나는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다산은 자공의 뜻이야말로 공자의 문질론과 일치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질의76]은 “誠不以富, 亦祗以異.”에 관한 程子의 착간설에 이의를 표한 것이 다. 다산은 정자나 주자처럼 착간으로 보지 않고 본문 가운데서도 단장취의로서의 의미로 충분히 성립되는 것임을 증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