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학들이 기독교 정체성 유지·제고의 문제로 난항중이다. 필자는 기독교대학에서 교양필수 과목으로 성경을 가르치는데, 80% 안팎의 비기독교인 학생들을 상대로 ‘선교적 해석학’의 틀로 성경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가르친 결과, 대다수의 기독교인/비기독교인 학생 들에게 비교적 긍정적 반응을 얻어냈다. 긍정적 반응으로서 그리스도인 의 경우는 교회에서 들었던 성경의 파편적 내용들을 하나의 맥으로 관통해서 보게 되어 좋았다는 평가가 가장 많았다. 비기독교인의 경우 는 성경을 처음 접하는데도 지루하지 않고 기억에 잘 남았으며, 기독교 인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언급이 가장 많았다. 또 종교에 상관없 이 많은 수강생들이 ‘선교적 해석학’을 통해 성경을 이야기로, 메타내러 티브로 이해하게 됨으로써 성경의 거대서사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피력하였다. 이것이 바로 메타내러티브로서 성경의 기능이다.
대학(원)생에 의한 발명은 다른 직무발명의 상황과 달리 대학교, 외부 산업체, 국가 등 각종 법인체와 지도 교수가 함께 관여한다는 점에 큰 특징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나 산업체는 대학(원)생의 발명에 대한 권리취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대학교나 교수와의 각 관계에서 직무발명 규정의 적용여부가 위 권리취득에 결정적이다. 대학(원)생에 의한 발명에서 나타나기 쉬운 도덕적 해이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의 실례를 일부 참고하여 종업원의 발명이기만 하면 설령 직무발명이 아니라도 사용자가 계약으로 일정한 지위를 취득하는 것을 지금보다는 넓게 인정하고 반면 종업원을 위한 보상금은 아주 두텁게 상향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안일 수 있다.
이 글은 張顯光(1554-1637)의 『대학』 해석에 대해 기왕의 연구가 문집에 수록된 「錄疑竢質」만을 분석해 논한 것을 반성하고, 『역학도설』에 수록된 「大學圖」·「大學改正之圖」를 함께 분석하여 그의 『대학』 해석의 성취과정 및 특징을 밝힌 것이다.
장현광의 『대학』 해석은 세 단계로 성취되었다. 제1단계는 주자의 『대학장구』에 따라 해석하면서 權近·李滉 등의 설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그의 「大學圖」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대학도」는 주자의 「대학도」를 따르지 않고 권근·이황의 대학도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이황의 대학도보다는 권근의 대학도에 가깝다.
제2단계의 해석은 선유들의 『대학장구』개정설을 보고서 다시 「大學改正之圖」를 작성한 것이다. 이 「대학개정지도」는 권근·이황의 대학도와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만든 것이다. 특히 명명덕·신민 밑에 팔조목의 공부를 배열하고, 지어지선 밑에 팔조목의 공효를 나누어 배열한 것, 전 제4장의 청송장을 경문 맨 뒤로 옮기고, 경문 제2절·제3절을 뒤로 옮겨 순서를 바꾸어서 격물치지장으로 삼은 것, 전 제4장을 없앰으로써 전체를 經一章·傳九章으로 파악한 것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설은 이언적의 설과 유사하지만, 지어지선 밑에 팔조목의 공효를 배열한 것과 전 제1장·제2장의 논리구조를 端(本)-事-極으로 파악한 것 등은 그만의 독특한 설이다.
제3단계는 자신의 개정설을 다시 수정하여 『대학장구』개정설을 제기한 것으로, 「錄疑竢質」에 수록되어 있는 설이 그것이다. 이 설의 핵심은 격물치지장을 재구성한 데 있는데, 채청·이언적의 설을 수용하여 맨 앞에 ‘所謂致知在格物者’ 8자를 보충하고, 그 다음에 경문 제3절, 청송장, 경문 제2절을 배열하고 ‘此謂知本’을 ‘此謂物格’의 오자로 보아 수정하여 ‘此謂知之至也’와 함께 격물치지의 공효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장현광은 『대학』을 해석하면서 내용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탐구를 하였는데, 誠意章 ‘誠於中’을 주자 및 쌍봉요씨의 설과는 달리 선이 마음속에 가득 찬 것으로 해석한 것이 독특하다.
이러한 장현광의 설은 경학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선유의 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문제의식을 키웠고 독자적인 시각으로 『대학장구』개정설을 제기하였다. 둘째, 「대학도」·「대학개정지도」 등을 작성하여 삼경령·팔조목의 공부와 공효에 대한 연관성을 보다 정밀하게 밝혔다. 셋째, 傳文은 經文을 해석한 것이라는 傳文釋經之法의 논리를 개발하여 전문의 논리적 흠결을 보완하였다. 넷째, 격물치지의 개념을 주자와는 다르게 정의하여 격물치지장의 논리적 정합성을 선명하게 하였다. 다섯째, 경문 제2절(知止而后有定……)의 知止·定·靜·安·慮·得을 새롭게 해석하여 팔조목과 연관시킴으로써 삼강령의 공효로 막연히 이해하던 해석을 명료하게 하였다. 여섯째, 誠意章의 ‘誠於中’을 善이 마음속에 가득한 것으로 해석하여 해석의 다양성을 제시하였다.
이 글은 鄭載圭(1843-1911)의 학문정신과 대학 해석에 대해 살펴본 것으 로,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정재규는 인륜이 무너져 금수의 세상이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기 때문에 守正主義를 강조했고 衛正斥邪를 부르짖었다. 그는 도 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守死善道意識을 보여주고 있으며, 도를 보전 하기 위해 讀書種子를 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정재규의 학문방법은 독 서를 통한 지식을 실생활에서 체찰하는 隨事省察과 자신의 몸에 돌이켜 실천하 는 反身踐實로 요약된다. 이는 分殊 속에서 理를 구현하려 한 주리론적 사유를 반영한 것이다. 정재규의 대학 해석 기본관점은 ‘新民도 明德 속의 일’로 보는 명명덕에 치 중한 해석과 팔조목 가운데 反身踐實에 해당하는 修身에 치중한 해석이다. 해 석의 주요 특징으로는, 1)反身踐實의 관점에서 誠意를 대학의 골자로 본 점, 2)「大學章句序」의 分節이 선유들의 설과 다르며 性․敎에 중점을 두어 성인의 가 르침을 따라 본성을 회복하는 일을 말한 것으로 본 것, 3)明德을 ‘天之明命’과 연관시켜 理로 보고, 心合理氣를 전제로 하되 心은 氣之精爽, 明德은 心之无妄 으로 보아 理主氣資의 입장에서 心 속에서 眞實无妄한 본체를 명덕으로 본 것, 4) 正心을 全體主宰處에서 照管하는 것으로 보아 장구의 ‘敬以直之’에 천착해 體까 지 말한 것으로 보는 설을 따르지 않고, 用의 측면만으로 본 것 등을 들 수 있다. 정재규의 대학은 해석을 경학사적 시각에서 보면, 주리론적 관점에서 明德 를 理로 보아 이에 치중해 해석한 것과 反身踐實의 관점에서 성의․정심에 치중 한 해석을 하면서 齊家 이하를 수신의 實事로 본 것이 시대적 변화에 대처한 그 의 새로운 해석성향이라 하겠다.
이 논문은 南塘 韓元震(1682-1751)의 대학해석 가운데 내용상의 요지를 적출하여 그 특징과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栗谷 李珥로부 터 싹트기 시작한 大全本 小註에 대한 비판과 주자의 여러 설을 辨正하여 定論 을 정하려 했던 점을 남당의 대학해석의 기본관점으로 보았다. 남당의 대학 해석의 요지로는 經一章의 ‘明德’ ․ ‘六事’ ․ ‘本末始終’에 대한 해석, 止於至善章 을 知止 ․ 能得과 연관시켜 해석하고 제4,5절을 明明德의 止於至善과 新民의 至 於至善으로 해석한 것, 聽訟章의 本末에 대한 심도 있는 해석, 誠意章의 ‘自欺’에 대한 해석, 正心章을 主靜工夫로 보는 해석, 修身章을 성의장 ․ 정심장과의 연속 적 맥락에서 파악한 것, 齊家治國章을 推 ․ 化의 구조로 본 것, 治國平天下章의 ‘絜矩’를 辨正한 것 및 새롭게 分節을 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남당의 설은 상당 부분 주자의 설을 더 심화 발전시킨 것이며, 주자의 여러 설을 변정하여 정설을 확정한 것도 있고, 전 제10장의 分節처럼 주자의 설 과 다른 설을 개진한 것도 있다. 남당의 대학해석은 주자학적 대학해석 가 운데 가장 정밀한 해석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남당의 설이 발표됨으로써 다시 이 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 한층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 었다. 이런 점에서 남당의 대학해석은 우리나라 대학 해석사에서 끼친 공 헌이 지대하며, 그 위상 역시 중요한 자리를 점한다고 하겠다.
이 글은 嘿守堂 崔有海(1 588-1641)의 경학관과 대학 해석에 관해 살핀 것이 다. 묵수당의 경학관은 懷疑를 통한 義理의 發明, 곧 道를 추구하는 것이였다. 그는 이와 같은 관점으후 先需의 설만 固執하는 사람들을 拘需로 보고 墨守主義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런 경학관으로 경전을 해석하였는데, 특히 대학에 관심을 집중하여 아래와 같은 설을 발영하였다. 첫째, 주자의 『대학장구』를 텍스트로 하지 않고 고본대학을 취하여 독자적으로 체제를 개편하였는데, 삼강령을 기본골격으로 하여 明明德傳• 新民傳• 止於 至善傳으로 배열한 뒤, 팔조목을 명명덕의 일로 보아 명명덕전에 포함시켰다. 둘째,명명덕전은 釋明明德• 釋格物致知 · 釋誠意• 釋正心修身 • 釋修身齊家• 釋 齊家治國• 釋治國平天下순으후 배열하여 대체로 『대학장구」의 체제를 따르고 있다. 셋째, 대학의 작자에 대해,經文 제1 절만 孔子의 말씀이고, 경문의 팔조목 공부와 공효를 말한 두 절은 曾子의 말씀이며,나머지는 모두 傳文으로 후인이 지 은 것으로 보았다. 넷째, 明德의 明이 致知로부터 발하기 때문에 명덕이 격물치지 로 연결되어야 하고, 평천하도 自明에 해당하는 명명덕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新民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하였다. 다섯째, 『대학장구』 경일장의 제2절 • 제 3 절 • 제 6철 • 제 7철 및 청송장을 합해 격물치지전을 새롭게 구성하였다. 여섯째, 正心章의 四有를 주자차럼 心之用으로 보지 않고 情이 치성해 방탕해진 것으로 보았다. 일곱째, 평천하장의 緊短에 대해 累之以短• 契而巨之를 모두 취하지 않고,以쭉則如方이라는 독특한 해석을 제시하였다. 여덟째, 평천하장의 제 6절부터 제 10절까지의 다섯 절을 제 18 절 뒤로 옮겨놓았다. 아흡째,지어지선전을 功效로 보고 『중용』에서처럼 五引詩로 끝맺었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