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이래 영미권에서는 근대적인 역사지도집이 다수 제작되었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이 결과 영미권에서 발간되는 역사지도집은 한국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에서 역사지도집 발간 시 주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사지도집은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지도학적 및 역사지리학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대표적인 영미권 내 역사지도집인 「더 타임스 세계 역사지도집」 과 「돌링 킨더슬리 세계 역사지도집」 내에 수록된 동북아시아 지역 관련 역사지도들을 대상으로 지도학적, 역사지리학적 분석을 통해 문제점을 확인 하였다. 분석 결과 지도학적으로는 축척, 방위 등 지도학적 기본 요소의 부재, 해안선 및 하천 등 지형요소의 부적절한 표현, 국경선 표시의 부적절함, 한반도 형태의 부자연스러운 점 등의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아울러 역사지리학적으로는 한군현의 과도한 영역표시, 발해 명칭 표기 문제, 한반도의 중국 영토 표시 문제 등이 확인되었다. 한편 독도는 1993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이후 분쟁지역이라는 표시가 사라지면서 지도상에 표시되지 않고 있음이 파악되었고, 동해표기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병기가 이루어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본 논고는 기독교 선교 전략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다민족, 다문화 지역에 대한 선교 전략을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에 합당한 전략을 모색할 것인가를 러시아연방 내의 북카프카스 지역을 사례로 들어 논증한다. 즉 하나의 국가 내에서 다문화 이해를 통한 선교 전략에 대한 논의를 러시아연방 북카프카스 지역의 인문지리, 역사, 정치적 상황을 통해 통찰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이다. 본 논고에서는 북카프카스의 다민족 국가의 선교 접근 전략을 북카프카스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과 동시에 북카프카스에 속하는 체첸 민족을 북카프카스 민족 그룹의 대표 주자로 선정하여 체첸 민족을 중심으로 역사, 정치, 사회적 관계를 다루고 있다. 하나의 소수 민족을 연방 내에서 분석하는 것은 다민족 선교에 매우 주요한 관점을 제공한다고 판단된다. 체첸이 소연방 해체 이후 독립을 추구하였는데, 이 사실은 다민족 국가에 속하는 민족 그룹의 역사적, 정치적 특성들을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민족, 다문화 선교전략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 본 논고는 북카프카스 인문지리 특성, 그리고 체첸공화국의 인문지리, 역사적 기원, 러시아 민족과의 관계, 체첸 전쟁 등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통해서 다민족 국가의 선교전략을 도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본 논고에서 필자는 다민족 국가의 선교전략은 치밀한 지역연구를 통해서 그 전략적 방향성을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였으며, 민족의 종합적 상황을 통해 구체적인 선교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하였다.
일찍이 일본과 중국, 그리고 북한도 2007년에 출간한 바 있는 역사지도집이 한국에는 아직 없다. 최근에는 역사지도 역시 디지털맵으로 제작되는 추세이다. 디지털맵은 역사지도를 단순한 지도에서 거대한 정보체로 전화시켰고, 역사지리학자와 역사학자 에게 GIS 프로그래머와 웹디자이너가 아주 중요한 파트너가 되어야함을 알려주었다. 이 글은 역사지도 제작론에 입각하여 역사지도와 관련된 주요 개념과 특성을 정리하고, 역사지도에 수록될 정보들 중에서도 기본이 되는 정보, 즉 시대와 주제를 초월하여 마치 밑바탕 그림처럼 수록되어야하는 정보를 행정구역, 자연환경, 교통망, 지명데이터베이스 네 영역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네 영역 각각의 수록 범주와 내용, 그리고 그 방법론에 대해 기술한다. 역사지도는 역사지리정보의 집합체적 성격을 갖는 점에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DB를 어떻게 표출하고 계속 생성되는 역사지리정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된다. 이에 본고 말미에 역사지리정보의 표출과 관리 방안에 대한 몇 가지 제안을 초보적인 수준에서 제시한다.
The objective of this study was to identify the primary source of radon in Seoul subway stations, and to investigate a relationship between geology and radon. Especially, we expected that the granite areas would have substantially high levels of radon in subway stations. The indoor radon concentrations in subway stations were lognormally distributed. The geometric mean and geometric standard deviation of indoor radon concentration were 48.11 Bq/㎥ and 2.15, respectively. Indoor radon concentrations of eight measuring sites exceeded U.S. EPA criteria (148 Bq/㎥). The geological structure of the subway station regions under this study is characterized by biotite granite, alluvium, banded biotite gneiss and diluvium. Results indicate that bedrock geology can account for a significant portion of the indoor radon in subway stations. Indoor radon concentrations of one subway station were higher than those of other stations. The bed rock in this particular subway station was that of alluvium. We assumed that the unusual increase in measured radon concentration should be related mainly to the existence of the near inferred fault zone (p<0.0001). We selected ten subway stations with homogeneous bedrock type in order to compare radon concentrations of each basement level. There was a significant difference in radon concentration, depending on the basement levels in subway stations (p<0.05).
A study was carried out to compare the food cultures among Korea (Chosun dynasty), China (Ming, thing dynasty) and Japan (Muromachi, Edo era) from 14 century to 19 century. For this study, geographical environments, historical background with the times were researched and also bibliographies related on food cultures were compared among these three countries. There were special geographical environments in three countries upon their territories and geographical features. Historically, in those era, the livelyhoods of the common people in three countries were difficult considerably because of the disturbances of war in the inside and outside of the countries. But the food cultures of three countries were changed owe to introduce the new western culture and institutions. And also there were numerous bibliographies related on food culture which were published from 14C to 19C in Chosun dynasty, Ming and Ching dynasty, and Muromachi, Edo era. They were shown to be the most in Japan, and order of China and Korea followed them. The bibliographies of Ming and thing dynasty showed less than those of Edo era for considering their population and territory, comparatively. In Japan, the biliographies related on food culture of Edo era was given the term of the age of cookery books. It was thought to be resulted from that the peoples of Japan were concerned about cooking and had more chances to contact foreign culture earlier than other country.
이 글은 지리산유람록에 나타난 지리산지 주민생활사의 자료 가치에 주목하여 역사지리적인 재구성을 시도한 것이다. 지리산유람록은 지리산지 주민의 생활사에 대한 풍부한 1차적 자료를 시계열적으로 제공한다. 지리산유람록이 여타 유산록과 다른 특징은 이 점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이 연구는 지리산유람록에 수록된 주민들의 생활사를 정리하여 재구성함으로써, 지리산유람록에 어떤 내용적 특색이 있는지를 드러낸 연구사적 의의가 있다. 지리산유람록에 나타난 주민생활사는 환경과 생태, 취락과 주거, 토지이용과 농경, 생업과 산물, 시장과 유통, 신앙 풍속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리산유람록에서는 지리산지의 기후 조건이 주민들의 거주와 생활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실을 적었다. 겨울철 산지 기후는 산간 주민들의 주거와 이동 패턴도 규정했다. 지형 및 토양 조건에 관해서는 수질, 토양, 비옥도 등이 경작 조건을 관련해 언급됐고, 관련하여 토지생산성, 장수요인, 사회적 피난지대 등이 표현됐다. 삼림식생의 수직 분포와 경관에 대한 표현도 있었고, 천연림과 인공림을 포함한 수종들 및 장소 정보가 많이 나타났다.
지리산유람록에서 읍취락의 주거생활사는 하동의 입지지형과 가구 수, 주민생활사에 대한 약간의 정보가 언급되었다. 마을의 경우에는, 지리산권 산촌의 형성 및 사회적 변동과 관련한 자연적·사회적 배경, 변동의 역사적 계기, 인구의 유입과 유출, 지리산권 주거지역 평가 등의 언급이 다수 있었다. 마을의 자연적·지형적 입지유형, 마을경관, 마을 형태와 규모 등에 대한 표현들도 나타났다.
지리산유람록에서는 주민들의 토지 이용과 농지 개간에 대한 언급이 여러 차례 나왔다. 고도대에 따른 토지이용, 화전 개간 및 일제강점기의 사회적 축소, 벼농사와 관련한 관개 기술 및 모내기 등의 내용이 있었고, 주요 농업지역에 대한 표현도 나타났다. 주민들의 생업과 산물로서 임산물 채취, 농작물 및 닥나무 재배, 기타 공산품 제조와 관에 바치는 공물 등이 있었다. 화개장터의 장날 풍경도 생생하게 묘사되었고, 매매 품목, 물산의 규모와 유통 범위 등이 기록됐다.
지리산유람록에는 지리산의 여러 민간신앙소와 풍속이 기록되었는데, 이를 통해 조선후기까지 지리산지의 민간신앙이 번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신앙소의 지리적 위치 및 모습, 신당의 관리 및 운영주체 사실 등도 기록되었고, 특히 천왕봉에 있었던 성모사의 시계열적 변화 모습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글은 지리산과 한라산의 명산문화를 이루는 요소를, 산천제, 명산·진산, 삼신산, 여신설화, 풍수문화와 백두산래맥설의 주제를 들어 역사지리적으로 비교하여 특색과 정체성을 도출한 것이다. 지리산은 신라 때부터 남악으로서 국가적 제의 대상이었고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지속되었다. 반면에 한라산 제의는 17세기 후반에 본격화되고 18세기 초에나 祀典에 등재되어, 지리산에 비해 시기도 늦었을 뿐더러 格도 고을 제의로서 낮았다. 지리산은 조선초·중기에 도(전라·경상)의 명산이자 고을(구례)의 진산으로 지정된 바 있었다. 상대적으로 한라산은 줄곧 고을의 명산이자 진산이었다. 한라산은 제주목의 진산에서부터 주변 고을의 진산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조선후기 지식인들에게 지리산과 한라산은 공히 동국의 명산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조선후기에 와서 한라산이 나라의 명산으로 격상된 것은 국가·사회적으로 고양된 영토·영역 의식, 중앙정부의 통치지배력 강화, 그리고 삼신산으로의 위상 변화 등과 관련이 있다. 삼신산으로서 지리산과 한라산도 시기와 대상에서 차이가 났다. 방장산은 조선초기부터 거의 단일하게 지리산으로 지칭되었으나, 영주산은 조선초기에는 변산으로 지칭되다가 17세기 초반 무렵부터 한라산으로 굳어졌다. 한라산이 삼신산의 하나로 알려지면서 명산으로서 위상은 크게 제고되었다. 지리산의 성모천왕과 노구, 한라산의 설문대할망은 모성의 상징이미지를 지니지만, 각각 어머니신과 할머니신으로 상징적 의미에 차이가 났다. 이는 지리산과 한라산에 대한 지형경관 및 생활터전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도 해석될 수 있다.지리산권역에서 풍수의 영향력은 깊고 컸지만, 한라산권역에서는 조선중기까지 미약하였다. 지리산권역의 마을에는 풍수형국론이 문화생태적인 영향을 크게 미쳤지만, 한라산권역에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조선후기에 지리산과 한라산의 白頭山來脈說은 조선후기적 명산문화의 한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조선을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려는 일제(日帝)의 야망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결부되어 국제적으로 공용되어 오던 동해(東海) 라는 이름을 ≪일본해(日本海)≫라는 강도적인 지명으로 바꾸어 놓은 사실을 놓고도 잘 알 수 있다. 오늘도 일제는 ≪일본해≫라는 강도적인 지명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조선 인민과 세계 인민들의 정당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것을 계속 쓰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 동해 이름의 발생 변화 과정을 역사 지리적으로 밝히고, 그에 기초하여 ≪조선 동해(朝鮮東海)≫표기의 정당성과 ≪일본해≫표기의 부당성을 논하려고 한다.
본 논문은 독도에 대한 역사ㆍ지리적 인식을 밝히기 위해서 마련되었다. 이 연구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본 논문에서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문헌 자료와 구전 자료, 그리고 지도들을 이용하였다. 그리하여 얻은 성과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하나의 세트로 인식하여 왔는데, 조선 시대에 접어들면서 독도에 대한 실체를 별도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둘째 한국은 일찍부터 울릉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일본은 상대적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지식을 근대에 들어서 가지기 시작하였다. 셋째 한국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울릉도는 울릉도로, 독도는 우산도로 인식하였으며, 이들 두 섬에 대한 위치와 크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졌다. 한편 일본의 경우는 이들 두 섬의 명칭부터 혼란을 보이고 있었으므로, 정확한 지식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 넷째 일본은 독도가 무주지였기 때문에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무주지는 생활권을 함께 하는 곳에 속한다는 원칙에 따라, 울릉도에 속한 섬이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을 구명하였다.
오늘날 배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톤(ton)을 사용하고 있다. 톤이란 용어가 배의 크기를 나타내는 일반명사가 되기 이전에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고유한 단위로 배의 크기를 나타내었다. 이를테면 서유럽에서는 포도주 통인 ton, 북유럽에서는 곡량 단위인 last, 제노바에서 는 cantara, 베네치아에서는 milliaria, 나폴리에서는 carra를 각각 사용했다. 동양권에서는 가장 중요한 화물이 쌀이었기 때문에 한중일 모두 미량 단위인 을 사용하여 배의 크기를 나타냈다. 특히 중국인들은 싸라는 독특한 단위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각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른 단위를 사용하여 배의 크기를 나타냈으나, 19세기 중반 Moorsom 방식에 의한 톤수 측정법이 도입되고, 이것이 전세계적으로 보급됨에 따라 톤이 배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정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