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예배무용과 신앙성숙도가 심리적복지감에 미치는 영향 관계와 자기조절효능감의 매개효과로 인한 영향을 검증하여, 예배무용이 기쁨과 즐거움, 행복과 같은 심리적으로 감정을 만져주고, 몸과 마음의 평안함과 안정감이 자리해서 삶에 대한 긍정적 정서, 정신적 피로 해소 등에 영향을 미치고, 예배무용을 통해 교회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타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심리적으로 관계를 할 수 있으며, 현대교회의 예배설교 외에 예배무용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각 교회마다 예배무용 프로그램 개발과 더불어 체계적인 교육을 활성화하여 영적․정신적 부분까지 고려한 심리적복지감과 행복하고 건강한 신앙생활과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둔다.
예배회복운동(Liturgical Movement)이 지적했듯이, 오늘날 교 회 예배는 현대 사회의 실용화의 측면을 강조한 나머지 예전(liturgy)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선교적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의 결과물이라 면, 그곳의 예배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적 본성이 전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선교적 예배는 교인들로 하여금 지역 사회의 봉사를 독려하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선교적 하나님을 대면하고 경험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또한 선교적 예배는 서구에서 1,500년 이상 지속되었 던 선교 부재의 크리스텐덤(Christendom) 유산에서 벗어나서, 교인 모두가 스스로 하나님의 부름 받고 보냄 받은 자로 인식하도록 하게 한다. 이를 위해, 선교적 예배에서는 크리스텐덤 시대에는 사라진 하나님의 선교 내러티브가 구현되어야 하고 양과 질적인 면에서 축소된 성만찬이 선교적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본고는 근세로 이행하는 시기의 이탈리아에서 제작되었던 예술작품들이 단순히 예술적 의도로만 제작되지 않았음을 밝힌다. 15세기 후반 무렵, 피렌체의 예술이 볼로냐로 퍼져나가 어떻게 반 응하였는지를 살피고, 볼로냐를 통치한 조반니 벤티볼리오 2세가 주도한 도시 프로젝트를 통해 그 가 활용했던 황제의 이미지가 공공장소에서 주는 효과, 그리고 사적인 공간인 개인 예배당에서 그의 교양이 예술 속에서 어떠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지를 분석한다. 정치사상가로서의 단테의 『제정론』에 근거해 조반니 2세가 추구하려 했던 정치적 이상향을 밝히고 나아가 군주로서의 조반 니 2세의 풍부한 이미지 창출 능력을 재평가하여 북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예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의의를 둔다.
교회는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모두가 평등한 사회통합적인 조직으로 볼 수 있으나, 한국 교회는 아직 장애인들과 통합의 준비가 미흡한 상태이다. 교회라는 제한적 공동체 내에서의 통합은 사회적 통합을 이끌 수 있는 통로와 기틀이 된다는 점에서 통합 예배의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드리는 통합예배의 의의 및 과제에 관하여 장애 유 형 중 지체장애, 시각장애, 발달장애, 농인(청각장애인)을 중심으 로 살펴보았다. 연구 결과 첫째, 지체·시각장애인의 공통사항으로는 접근권, 이동권, 편의시설인 환경부대시설같은 물리적 조건 의 정비가 통합예배에 중요한 요건이었다. 둘째, 시각장애인에게 는 정보 접근권의 일환으로 점자주보, 점자찬송가 및 음성언어해설이 필수적이었다. 셋째, 발달장애인은 장애의 특성상 타인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의사소통 시 표준 연령대보다 낮은 아동 수준의 언어사용과 돌발행동에 대한 이해가 요구됨을 확인하였다. 넷째, 농인에게는 수화통역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였으며, 특히 멀티미디어의 활용이 효과적임을 밝혔다.
본고는 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기독교 예배가 갖는 공동체적 차원과 이웃 섬김의 차원을 고찰한다. 통상 예배는 하나님을 향해 배타적으로 드려지는 시간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본고는 개혁주의 신학, 특히 종교개혁자 존 칼빈(1509-1564)의 신학을 매개로 하여 하나님에 대한 예배란 기본적으로 다른 신자들에 대한 관심과 섬김을 포함한다는 것 을 주장한다. 말하자면 예배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 일치되는 양상을 원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라는 것이다. 특별히 본고는 초대교회에서부터 예배의 필수 요소로 여겨져 온 성찬이 교회로 하여금 이러한 이웃 사랑의 정신을 온전히 구현케 하는 장이된다는 것 을 보인다. 이것은 예배란 신자들이 단순히 이웃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받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구현해 보이는 자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본고는 이러한 이해들에 입각하여 예배와 성찬이 보다 이상적으로 거행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하고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본고는 신앙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예배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실천이 우리를 보다 균형 잡힌 신앙으로 이끈다는 것을 주장한다.
오늘날 기독교대학들은 그 본래적인 사명인 학원선교에 큰 어려 움을 겪고 있다. 난관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필자는 그 중에서도 선교의 대상인 학내 대학생들에게 드러나지 않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포스트모더니티라고 여긴다. 21세기 들어서 서구에서 시작 된 포스트모더니즘은 초미세먼지와 같이 보이지 않게 신세대들의 의식 과 생활양식에 서서히 큰 변화를 주고 있다. 모던세대들에게 전하던 방식으로는 복음이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먼저 포스트모던 흐름에 대한 고찰을 필요로 한다. 그 다음으로 포스트모던 세대에 맞추어 복음을 전하여 상당한 효력을 보면서 점점 확산되고 있는 이머징 교회 운동을 살펴본다. 이머징 교회 운동은 대략 세 부류로 나뉘는데, 기독교의 기존 틀을 바꾸려는 과격한 그룹은 복음 자체를 변질하거나 정통교리와 성경에 근거한 교회의 기본 틀(하드웨어)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있어서 본고에서 지양한다. 다만 보수적인 신앙과 전통교회 구조는 지키면서 예배형식과 설교기법 등을 쇄신하여 포스트모던 시대에 적합 하게 선교하는 그룹을 택하여 분석 비판한 후 한국교회, 특히 침체된 기독교대학 학원선교에 활용 가능한지를 검토한다. 학원선교의 영역도 여러 가지로 많다. 그러므로 그 모든 영역을 다루기에는 지면이 허락되 지 않아서 채플예배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 활용방안을 모색한다. 이를 위해 본고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나 뚜렷하 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예배-선교-문화’의 관계를 삼위일체적인 시각에서 그 관계성을 탐구하여 이머징 예배의 예배학 및 선교학적인 타당성을 문화와 관련하여 정리하였다. 끝으로 성령의 삼중적인 사역이 실행될 때에만 포스트모더니즘을 실제적으로 극복하여 채플예배가 활성화되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독교 문화가 꽃피우고 열매 맺을 것을 기대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선교적 교회론은 오랫동안 선교지에서 사역한 후 자신의 고국인 영국에 돌아온 후 오히려 선교지 보다도 더 영적으로 황량해진 고국 교회의 회복을 고민하면서 교회의 선교적 본질 회복을 외쳤던 뉴비긴(Lesslie Newbigin)의 영향을 받아 일단의 북미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GOCN(the Gospel and Our Culture Network)이라는 단체를 구성하고 교회와 복음, 그리고 문화라는 세 영역을 상호 소통시킴으로써 지역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회복하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배경 하에서 태동한 선교적 교회론은 오늘의 교회들을 선교적으로 갱신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를 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아직 이 이론이 현장에서 지역교회들을 실제적으로 갱신하고 변화시킨 보고는 그리 많지 않다. 즉 선교적 교회론의 내용 자체는 충분한 당위성을 지니지만 현재로서는 그 성과를 확신하기 어려운 면이 있으며, 선교적 교회론의 전략은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상황에서 본 연구는 선교적 교회론이 실제적으로 선교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교회를 형성하는 일에 기여하려면 예배의 측면에 대한 깊은 고려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선교적 교회론이 역동적으로 작동을 하려면 성도들이 선교적 교회론이 주장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동력을 제공하고 적절한 훈련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것에 가장 적합한 장 중 하나가 예배이다. 이런 점에서 본 연구는 선교적 교회론을 작동 가능케 할 원천으로서의 예배를 탐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다.위와 같은 목적 하에 본 연구는 1장 서론에 이어 2장에서는 선교적 교회론이 태동된 배경, 선교적 교회론의 주된 강조점, 그리고 선교적 교회론에서 고려되어야 할 사항 등을 살펴보았다.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재발견하고 강조함으로써 약화된 서구 교회를 활성화하고 복음의 공적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하였는데,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이 일을 수행해야 하는 성도들이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공급하고 훈련하는 작업 등에 대하여 깊이 고려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예배의 계명이 선교백성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능력을 공급하고 선교백성의 삶을 살 수 있는 훈련을 위해 주어진 계명임을 밝히고, 이 기초 위에서 선교와 예배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밝히면서 선교적 교회의 실현을 위하여 수행해야 할 바람직한 예배의 기본적인 방향을 찾아보았다. 그 방향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면하여 능력을 체험하게 하는 예배, 복음의 사회적 영향력을 실현하도록 훈련하는 예배, 성도들과 잠재적 성도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예배임을 살펴보았다. 본 연구는 선교적 교회론과 예배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로서 이 관계가 역동적으로 잘 이루어질 때 선교적 교회론이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임을 주장한다. 특별히 선교적 교회론의 주된 관심이 주로 ‘흩어지는 교회’에 집중되면서 ‘모이는 교회’에 대하여는 다소 미흡한 면이 있는데, 이 연구는 선교적 교회론이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되고 그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In the Old Testament, the worship law was given as a part of the Sinaitic Covenant, the purpose of which was to make Israe1 a kingdom of priests and a holy nation (Ex. 19: 6). With the covenant, God desired that Israel would carry out the role of mediating the nations with God (the role of priest) by living a sacred life among the worldly nations (the role of a holy nation) Then from where were the Israelites able to get the power to perform these roJes? The major source of power for that life was given through worship that continued to remind the Israelites of the history of salvation done by God throughout their history. As they heard how God saved the Israelites from Egypt and how he fed them for 40 years in the desert, they praised the great salvation carried out by God. Through these activities the Israelites were ab1e to experience God who saved them not onJy in the past but also now, and thus, based on that experience, they gained the power to live the life of witnesses in the wor1d. In a word, God, by commanding worship 1aws, intended to provide “ a context for equipping Israel" toward effective and powerful centripetal witness. In this sense, the major purpose of worship is to train and equip God’ s people so that they can contrib ute to the expansion of the kingdom of God. When this goal of worship is well achieved, the church as the agent of the kingdom ministry will grow naturally. Then what are the ways of making the worship that nurtures kingdom witnesses? Of course the ways would vary according to the context where worship is done. So I would like to provide just brief and basic suggestions toward that goal. First, we need to consider the needs of worshipers. The worship that ignores the needs of attendees will be ignored by the people in return. On the other hand, the worship that satisfies the needs of congregations would lead many people. Secondly, it is necesary to make worship to be oriented toward witness. When we say the term “ worship that is oriented toward witness," it means the worship that attracts non-believers and the worship that empowers congregations to become effective witnesses. Thirdly. we should try to make worship dynamic. Dynamic worship is possible when it is opened towards the work of the Holy Spirit who leads worship with flexi-bility and dynamics. Fourthly, we have to recognize the importance of praise in worship. Effective worship leaders do their best in selecting and developing hyrnns that would touch the heart of people. Finally, we need to consider the emotional dimension of people. Wise worship leaders do their utmost to give good impressions to attendees and, in particular, to newcomers in their worship. To effectively bring about dynamic church growth, we need to continue to study detailed methods and develop them with a view of the big picture of “ witness-oriented worship."
병치기법은 1920년 출판된 엘리엇의 시집 『시』에서 가장 혁신적이며 전형적인 몰개성 기법 중의 하나이다. 1917년에 출판된 『프루프록과 기타관찰』의 시가 주로 지배적인 하나의 관점을 보여주며 극적인 기법을 더 원용했던 반면, 복잡한 목소리를 보여주는 『시』는 이미지나 상징 같은 암시적 기법에 더 의존한다. 형이상학파의 위트와 상징주의자의 상징, 조이스의 소설적 방법 등이 동시적으로 적용되면서 암시기법이 더욱 복잡해짐에 따라 의미의 명징성을 해하지 않고자 엘리엇은 『시』에서 인칭대명사의 사용을 급격히 줄이고 병치기법을 전면에 내세운다. 엘리엇의 독자적인 ‘신화적 방법’은 병치를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여 순식간에 패러독스를 불러일으키는 암시기법에 다름 아니다. 이미지뿐만 아니라 보이스, 레지스터, 배경, 시간, 언어적 요소, 내러티브 프레임, 그리고 문법구조를 망라하는 엘리엇의 병치기법은 과감하게 논리와 코멘트를 생략하고 이질적인 것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가 『시』에 수록된 사행시에서 구하고자 한 몰개성의 핵심 자질을 가능케 한 기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