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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학자들은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을 두 가지로 분류해 왔다. 유동식은 이를 ‘부성적 성령운동’과 ‘모성적 성령운동’이라 부른다. 전자는 한국 유교 전통에 입각한 외향적 사회참여와 사회구조 의 변혁을 도모하며, 후자는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내적인 신앙 및 치유를 강조한다. 이러한 분류 안에서 유동식은 1907년 길선주의 평양 대부흥 운동을 ‘부성적 성령운동’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본 논문에 서는 사회 정치적 참여에 강조를 둔 운동을 ‘예언자적 성령운 동’(Socio-Prophetic movement)으로 명명하며, 내적인 신앙, 치유, 부흥을 강조하는 성령운동을 ‘카리스마적 성령운동’(Charismatic- Pious movement)이라 정의한다. 또한, 한국 역사 가운데 사회 예언자 적 성향과 카리스마틱한 신앙의 요소를 포함하는 통합적인 성령운동 (Holistic movement)이 있었음을 밝히고 그 대표적 예로 길선주 목사의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을 ‘통합적 성령운동’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예언자적 성령운동’의 예로 이현필 선생의 동광원 사역과 ‘카리스마적 성령운동’의 예로 김익두 목사의 치유 사역을 살펴 보고, 21세기 ‘통합적 성령운동’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7,800원
        2.
        2020.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예언자의 언어와 시인의 언어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첫째, 다양한 상징과 맥락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둘째,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 일상적 차원을 초월한 문자 혹은 기호로서 기능한다. 시인이면서도 예언자적 특성과 문학적 상징을 사용했던 작가들의 목록은 매우 길다. 윌리엄 블레이크, 윌리엄 워즈워드, P. B. 셸리 등과 같은 낭만주의 시인뿐만 아니라 밀턴이나 예이츠, 엘리엇과 같은 시인은 단순한 문학적 표상을 넘어 시대와 문화 국경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상징과 기호로 해독되어야 하는 메시지를 작품 속에 담았다. 엘 리엇은 매우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시인으로 평가되는 만큼, 그의 대표작인『네 사중주』는 여러 관점에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본 논문은 그러한 메시지의 형식과 의미가 생산되고 수용되며 해석되는 방식이 예언자들의 점사언어를 해석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밝히며, 어떻게 예언적 점사언어가 예술로서의 시적 상상력을 고취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시학적으로, 언어적으로, 그리고 기호학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를 위해 고대 중국에서부터 사용되던 갑골문의 갑자(甲子)력 체계를 근간으로 한 명리학의 해석체계와 발터 벤야민의 언어기호에 대한 일반적 이론을 근거로 하여, 예언적 기호로서의 언어가 어떻게 문학적, 시학적 가치를 갖게 되는지를 살펴본다.
        6,600원
        5.
        2017.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female voice has been both controlled and ignored in a male dominated society. The issue of women’s subjection has focused on social and sexual problems in relation to historical and cultural dynamics that have been in place since Aristotle’s Politics. This study examines the female voice in the poetry of William Blake. In the earlier prophetic poetry of The Books of Thel, Visions of the Daughters of Albion, and Europe, the female voices of Thel and Oothoon attempt to challenge assumptions about feminine identity and oppose their subordination defined by the patriarchy of the 1790’s. This paper focuses on the development of the female voice of resistance rooted in feminine sexual identification as approached through the figures of Blake’s prophetic visions. In the 1790’s, Blake prophetically predicted women’s sexual identity in a way that would not become reality for another 200 years.
        5,200원
        6.
        2015.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의 목적은 T. S. 엘리엇의 황무지에 나타난 여성들의 노래를 통하 여, 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착취 사이에 직접적 연관성이 있음을 진단하는데 있 다. 또한 이를 종교학, 여성학, 생태학적 비평을 융합하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진단하고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전에 연구되었던 수많은 엘리엇의 선행 연구들은 다양하고 풍성하였다. 하지만 그의 종교성과 음악적 요소는 부분적으 로 연구되었고, 특히 여성들의 성적타락과 부도덕에 관해서 많은 비판이 있었던 반면, 그들의 노래에 재현된 고통과 갈망에 대한 연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생태비평적 관점에서도 여성들의 영성에 관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엘리엇이 노래와 내러티브에 효율적으로 반향시킨 여성들의 종 교적 영성을 에코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이는 황무지를 새롭게 재 해석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효율적으로 그려낸 신의 죽음/영성의 부재에 대한 각성, 황폐화된 자연환경, 여성의 억압적 사회구조를 인식하여, 조화롭고 평등한 사회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이를 위하여 치유의 영적 에코페미니즘을 적용하여 분석하였다.
        5,500원
        15.
        1996.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8,100원
        16.
        1995.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낭만주의 전통에서 시인은 예언자였다. 블레이크에게 시인은 신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하고, 인간의 타락한 모습을 교정하며, 정신 외적인 대상으로 구성된 로크적인 현실을 넘어서서 영혼의 세계의 비전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워즈워드는 시인이란 인간의 정서를 순화하고 영감을 주어 도덕적 충동을 일깨우는 자연의 예언자라고 보고있다. 셸리는 시란 타락으로부터 인간 내부 속에 있는 신성의 축복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린다. 이와 같이 낭만주의 시인들은 “현재를 있는 그대로 깊이 있게 볼 뿐 아니라 현재 속에 있는 미래를 바라본다”라고 셸리가 그의 “시를 위한 변호”에서 천명하고 있다. 요컨대 예언자들이 신적인 영감을 통해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신의 뜻을 해석한 것과 마찬가지로, 낭만주의 시인들은 자연계의 메시지나 인간의 현실적 경험을 표현해 보고자 하였다. 낭만주의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현대 시인들은 상상력에 몰입하여 시의 상징구조로 전환되어 간 인간 경험의 모든 요소를 드러내고 확대시키며 심화할 힘을 지녔던 것이다. 문제는 현대의 현실이 낭만주의 시대의 현실과 다르다는 점에 있다. 부정적이고 황량한 인간조건은 시인들로 하여금 상실감을 보상할 수 있는 반항정신을 일깨웠고, 그 첫 걸음으로 에즈라 파운드 식의 “새롭게 하기”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이 것은 현재를 인식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예비하자 주의인데, 예이츠와 로렌스가 그 대표적 현대시인이다. 두 시인 다 문명의 순환적인 힘의 잔인함을 인지하고 인간성과 자연에 내재한 어두운 모습을 통감하고 있었다. 예이츠는 특히 인간은 역사 속에 무기력한 존재로 던져져 버리는 무심한 신성인 창조주의 수동적인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로렌스는 인간이 자신의 육체, 이기주의, 성적인 금기 등에 갖혀있어서 활력이 사라진 도덕적 사회적 전통과 핏기 없는 영성을 초월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 두 시인은 이러한 현대에 대한 인식에 근거하여 나아가 인간의 개별성을 확인하고, 인간을 보다 큰 계획에 종속시킬 필요성을 감지한다. 이러한 인식을 예언자적인 속성으로 볼 때, 이 들의 시에는, 그 들의 예언자적인 특질이 드러나 있다. 인간의 무기력과 굴레를 벗기고자 하는 노력이 그들의 상상력과 결합되는데, 예이츠는 신화적인 방법으로, 로렌스는 성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시에 구현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예이츠의 “재림,” “비쟌티움으로의 항해,” “1919년,” “원추,” “레다와 백조” 등의 시를 분석하고, 로렌스의 “성 요한,” “신비,” “숫총각,” “뱀,” “보라! 마침내 우리가 해 냈음을!” “새로운 천국과 대지” 등의 시를 다룬다. 이 분석을 통해 두 시인이 공통적으로 신비주의와 이교도주의에 사로잡혀 인간성과 자연에 내재된 어두운 면에 대한 의식으로 현대의 현실을 파악하고 보다 큰 절대자의 계획에 순응하는 자세를 보임을 드러내었다. 한편 예이츠는 신화의 기능을 통해 아일랜드 민족의식을 응시하여 영혼의 훈육과 문명의 순환적인 역사적 힘의 문맥에서 구원을 찾고자 노력하는 반면, 로렌스는 성(sexuality)이라는 인본주의적 종교를 설립하고 우주를 성의 관점에서 바라보아, 신비주의적이고 성적인 완성을 통해 개인적인 구원에 도달하는 접근을 하고 있다. 이 들의 노력에서 보듯이 서로 개인적 구원에 도달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예이츠는 역사의 시간성의 문맥에서 인간조건이 인간 문명의 순환적 위력에 의존한다는 외적이고, 투사적이고, 통시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반면, 로렌스는 인간 상황을 육체적 존재의 공간성에서 “음경적 의식”(phallic consciousness)에 기초를 둔 인간의 번식을 위한 자연스러운 충동의 관점에서 보고있다. 결국 그들의 보고자하는 대상이 다르기는 하지만, 낭만주의 셸리의 예언자적 시인의 특질을 수정 전승한 예언의 시인들이다.
        5,100원
        17.
        2008.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In dieser Arbeit behandelt es sich um die Frage, ob und warum der Montanismus im 2-3 Jh. tatsächlich häretisch gewesen wäre, wie die Altkatholische Kirche behauptet. Das Hauptproblem für die gegenwärtige Montanismus-Forschung liegt zwar in der mangelhaften Materiallage, trotzdem sind zu erhalten 16 Aussprüche der drei führenden Geister des Montanismus, d. h. Montanus, Priscilla und Maximilla, aber sporadisch nur durch Anti-Montanisten ausser Tertullianus. Darum beginnt dieser Aufsatz vor allem ihre 16 Aussprüche zu untersuchen, bemüht sich auch um reichenden Abhandlungen und Aufsätze der Montanismus-Experten. Jedenfalls bezeichnet sich der Montanismus hauptsächlich als unerhörte ekstatsche Prophetienbewegung, Erklärung des bevorstehenden Chilliasmus(Joh. 20, 4f.), extreme Forderung des Moralismus, jährlich dreimalige Fasteneinhaltung und die Bedrohung bzw. Provokation gegen Priestertum der allmählich wachsenden und systematisierenden Grossen Kirche. Die Probleme der Montanisten liegen m. E. nicht nur im Inhalt ihrer Behauptungen. Vielmehr auch noch grössere Probleme beziehen sich auf die Form und Weise ihrer entzückenden neuen Prophetie, “ή νεα προφητεια”. womit sie über die Grenze und Beschränkung der Grosskirche hinausgegangen sind. “H νεα προφητεια” war sowohl quantitativ neu als auch qualitativ noch neuer. Sie behaupten also, dass zuert das Gesetz durch Moses gegeben worden sei, danach zwar das Evangelium als Vollkommenheit des Gesetzes, aber nun die Zeit der neuen Prophetie als entgültige Vollkommenheit des Evangeliums gekommen sei. Also die Tatsache der alte Ketzerurteilung bezieht sich kaum auf die dogmatische Sache. Die Behauptung mit der fremdartige Form der entzückenden Prophetien und Ausschliesslichkeit der Geisterfahrungen muss das Priestertum der Altkatholischen Kirche provoziert haben, weil die Macht über kirchenbezogene Sachen sowie den Heiligen Geist begann immer mehr auf Bischöfe zu konzentrieren, besonderes im Bezug auf den Gnostizismus und Marcion, die die Grosskirche tödlich bedroht haben. Aber die Frage der Moraleinhaltung und Enthaltsamkeit gegen die Säkularisierung der Kirche immer noch zu hinterlassen wäre ihre Beitr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