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반유대주의와 《요한수난곡》의 관계를 이 음악작품에 등장하는 군중합창의 역할과 신학적, 음악적 의미를 통해 조망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이 작품의 가사가 되는 수난내러티브에 주목하여, 이 안에서 요한복음서의 기자는 ‘유대인들’이라는 용어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였는지 논의한다. 또한, 이 글은 이러한 논의를 확장시켜, 개혁가 루터는 ‘유대인들’을 어떤 방식으로 기술하였는지, 또는 이해하였는지 살핀다. 요한과 루터의 독해를 통해 ‘유대인들’이라는 표현이 유동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그리고 이것의 신학적 해석이 모호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해 나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 글은 바흐의 음악작품, 《요한수난곡》의 핵심구조를 살피고, 이 안에서 군중합창이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함으로 이 작품과 반유대주의와의 관계를 조명해나간다.
이 논문은 구약성서와 유대주의, 그리고 시오니즘(Zionism)에나타나 있는 배타성이 기독교 선교의 공격성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를 선교 역사적으로 고찰한 연구이다. 기독교 신앙은 유대교에 뿌리를두고 있는 종교이고, 그 유대교는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 선민(選民)사상을 뿌리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믿지 않는 사람들, 즉 선교 현장의 타자(他者)를 대하는 우리들의 선교적 입장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더 협소하게 논의를 전개시켜 나간다면, 이것은 선교학과 구약신학간의 대화를 통해서 해소되어야 할 신학적 쟁점이고, 이 논문 역시이러한 목적으로 연례 구약학회에서 발표되었다.
따라서 이 논문은 구약성서의 ‘전사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먼저 살펴보고, 그 결과 나타난 유대주의의 공격성과 배타성을 역사적 으로 규명한다. 이런 전통에서 배출된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귀신들린 자’ 사건(막 5:1-20)은 유대주의의 공격성과 배타성을 극복할수 있는 성서학적이며 선교학적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거라사(제라시)에서 군대 귀신들린 자를 축사하신 그리스도는 그를 유대의 땅으로 초청한 것이 아니라 고향 데가볼리로 돌려 보내셨다. 이것을 필자는 유대주의의 배타성과 공격성에서 벗어나 그리스-로마 문명과 공존할 수 있는 선교적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 보았다.이런 개방성으로서의 초대야말로 다원화되고 글로벌화 된 세상을 향한 선교적 복음의 미래라고 해석하였다.
본 논문은 16세기 종교개혁 과정에서 ‘유대인’ 또는 ‘유대주의자’라고 불렸던 칼뱅에 대한 연구이다. 칼뱅은 유대인 랍비들을 통해 성서해석에 관한 도움을 받았다. 종교개혁자들과 로마가톨릭교회는 이런 점에 대해 칼 뱅을 ‘유대인’ 또는 ‘유대주의자’라고 비판하였다. 칼뱅은 유대주의자였는 가를 살펴보기 위해 본 논문의 2장은 칼뱅과 유대인에 관해 연구한 학자들 의 입장을 정리한다. 3장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와 종교개혁 시기에 유대인 들의 역할이 종교개혁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본다. 4장에서는 칼뱅이 전통적인 성서해석 입장을 가진 기독교인들과 랍비 유대인의 성서 해석을 어떻게 수용해서 자신만의 성서해석의 길을 걸었는지에 대해 연구 한다. 5장에서는 칼뱅과 유대인 논쟁에 대해 다루면서, 기독교인-유대인 간 의 논쟁의 역사도 제시한다. 6장에서는 칼뱅과 반유대주의의 문제를 논한 다. 끝으로 지금까지 논의를 정리하고, 그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밝힌다.
본 논문은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를 둘러싼 논쟁 중에서 최근까지 가장 첨 예한 대립을 거듭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인 바그너의 사상과 음악이 독일의 제3제국과에 직 접적인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논쟁을 다루었다. 현행 학계에서 이 논쟁은 비판과 옹호의 상호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고 개별사항에서 이견이 노출되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데, 본 논문은 이 대표적인 주장들의 배경과 근거를 비판적으로 검증․논의하면서, 히틀러의 바그 너 숭배, 히틀러의 반유대성, 히틀러와 바그너 일가의 관계, 그리고 바그너의 서거 이후 히틀 러의 제3제국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이른바 “바그네리안(Wagnerian)” 내지는 “바이로이 티안(Bayreutian)”이 어떻게 바그너의 (반유대적 내용과 연관된) 사상과 작품을 의미화했으 며, 확산시켰으며, 수용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추적하였다.
바그너는 음악사상 가장 연구가 많이 되고 오늘날까지 극단적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 면서 논쟁의 한복판에 서있는 인물이다. 그중에서 바그너의 음악극에 과연 반유대적 요소가 표현되고 있는지의 여부는 바그너 생존 시부터, 그리고 특히 아도르노의 문제제기(1952년) 이후 현행 학계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본 논문은 선행연구에서 부각된 대표적인 찬·반 양론의 주요 주장과 사안에 따라 첨예한 대립 중에 있는 주요 쟁점을 비판적으로 검증·정리 하였다.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는 음악사상 가장 연구가 많이 되고 오늘날 까지 극단적인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면서 논쟁의 한 복판에 서있는 인물이다. 본 논문 은 바그너에 관한 연구 중에서 현행 학계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바그너의 반유대 주의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시도되었고, 그 첫 번째 단계로서 바그너의 반유대 주의의 원인과 배경을 다루었다. 논의의 전개에서는 선행연구에서 부각된 주요 주장과 사안 에 따라 첨예한 대립 중에 있는 주요 쟁점을 검증·정리하였다.
Although Apostle Paul said that Jesus Christ became the end of the law for the justification of all believers(Rom 10:4), the ancient church took up the laws of the OT in introducing the institutions. Whence did the double-faced attitude of the ancient church toward the OT laws result? The first question is how much the OT laws influenced the life and canons of the ancient church, in other words, how much the OT laws were taken up in the canons and customs of the ancient church. The second question is why the ancient church took up the OT laws. 1. The ancient church was not simply negative toward the OT laws in spite of the Paulinism. The Pauline assertion that men couldn't be justificated by the good deeds but by the faith, was already reduced and distorted by his disciples as Luke and Hegesippus. As a result the Paulinism compromised with the Jewish legalism. 2. Even if Jesus was critical about the legalism, his posterity could not neglect the OT laws paradoxically. While the ancient church interpreted some OT laws allegorically, it interpreted some laws verbally. The ancient church was not able to interpret all the OT laws from the point of view of prophesy and fulfillment. This was already foreseen, sofar as the christianity took up the OT as its canon. 3. The Judaizing tendency was found in the Sabbath observance, the offering of tithes and firstfruits, the dietary rules, the female ordination and the problem of easter date. The sources which we surveyed, indicated how the greatly Judaism influenced the ancient church life. I conclude that the double-faced attitude of the ancient church toward the laws had something to do partly with the flourishing of Gnosticism and Montanism and partly with the need of the age. The Paulinism which underrated the OT laws, was not useful for the great church to attack the Gnostics. Therefore the great church either rejected the Paulinism or distorted it by mixing it with legalism. The ancient Christianity which had not its own theology and tradition depended necessarily on the Jewish canon and tradition. Therefore the Christianity became the religion of canon. The Christianity needed the clergy order like Jewish priests. Maybe the early monarchic episcopacy developed under the influence of the Jewish male priesthood. And in this trend women were excluded step by step from the church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