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백치 소년 (“The Idiot Boy”), 미친 어머니 (“The Mad Mother”), 가시나무 (“The Thorn”)를 중심으로, 워즈워스가 백치, 부적격자, 빈자, 미 친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게 부과된 당대의 도덕적 낙인을 어떻게 거부하는지를 살펴 본다. 특히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 나타난 공감의 논리와 비교하여, 워즈워스가 사회적 약자의 고통과 감정에 정동적으로 반응하 고 그 고통에 감응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나아가 본 논문은 ‘정동의 정치학’의 관점에 서, 워즈워스가 스미스의 공감 개념에 내재한 위계적 폭력의 근거로 작용하는 “상호 성”과 “상상적 추론”의 논리를 어떻게 비판하고 해체하는지를 고찰한다. 이러한 분석 을 바탕으로, 워즈워스가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슬픔과 분노를 특정한 기준에 따 라 위계화하고 규율하려는 스미스적 공감의 지배적 구조에 저항하는 양상을 분석한다. 또한 지능의 결여, 나약함, 게으름 등의 결함을 가진 이들이 공감의 대상으로부터 배제 된다는 당대 지배 계층의 도덕적 감정과 판단을 근본적으로 전복하는 논리를 밝힌다.
본 논문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루는 예술의 정동 정치에 관한 연구로서, 제주 4·3 미술제의 ‘4·3 예술’을 사례로 분석한다. 기존 비평이 4·3 예술을 역사미술, 기억정치, 생태학적 재연결의 차원에서 논의해 온 데 비해, 본 연구는 이를 정동 정치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이를 위해 바뤼흐 스피노자의 코나투스와 앙리 베르그손의 지속 및 생명의 약동 개념을 철학적 토대로 삼아, 트라우마의 극복이 역사 과정을 자연· 인간·기억이 상호 얽혀 경작하는 삶의 지속과 생성의 과정으로 회복하는 과정임을 논한다. 이 과정에서 정동의 힘과 윤리로 작동하는 정동 정치가 발현된다. ‘4·3 예술’은 죽음과 폭력의 흔적으로부터 회복력 있는 생명성을 포착하며, 처단될 수 없는 생명의 윤리와 그 힘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학살터 순례와 제의적·현장 기반의 수행적 신체 실천을 통해 트라우마적 정동을 생성의 정동으로 전환한다. 이와 같은 ‘4·3 예술’의 정동 정치는 감각적·직접적 체화와 체현의 지속적 수행을 통해 고착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역사를 살아있는 정동의 장으로 구성하는 생명 운동이자 항쟁이며, 생명 진화의 한 작용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연구는 ‘정동의 정치학’의 관점에서 독일의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를 시민들의 '불안'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2015년 시리아 난민 위기 이후 AfD(Alternative für Deutschland)가 주요 정치 세력으로 부 상한 요인을 ‘정동의 방향 전환’을 통해 파악하고자 한다. 과거 독일 시 민들에게 극우정당은 불안의 대상이었으나, 난민이라는 새로운 불안요인 이 등장하면서 극우정당은 불안을 해소할 대안으로 인식되었다. 이와 같 은 정동의 방향 전환은 자유주의 거대서사의 붕괴와 시리아 난민 위기의 결합으로 나타났다. 20세기 후반 탈근대사회의 도래는 자유주의 거대서 사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며, 인권과 자유, 평등과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보 다 개인의 삶의 안위를 중요시하는 가치체계의 변화를 초래했다. 이러한 조건 아래 시리아 난민 위기가 발생하자 개인들은 난민들을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불안요인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난민과 같은 이방인 에 대한 배타적 정책을 주장하는 극우정당은 더 이상 불안의 대상이 아 니라, 오히려 불안을 해소할 대안세력으로 인식되며, 두려움에 처한 독일 시민들의 동반자로 여겨지게 되었다. 본 연구는 기존의 윤리적, 도덕적 시각이 아닌 정동의 관점에서 극우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분석함 으로써 극우정당의 발흥에 대처하기 위해 불안의 정동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연구는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에 주목받는 정동적 노동의 이윤 공유 에 대한 연구들이 한국사회에 적용 가능한지를 확인하고자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 정동적 노동의 이윤 공유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고, 이러한 논의에 소극적 입장을 가지는 한국사회의 경향들을 고찰하였다. 이 경향 들은, 1950~60년대 냉전 시기의 적색공포에서 형성된 ‘반공 자유화 경 향’, 1970~80년대 산업화·민주화 시기의 측정가능한 노동 중시로부터 형 성된 ‘노동 신성화 경향’, 1990~2000년대 외환위기 시기의 무한경쟁에서 형성된 ‘승자 독식화 경향’이다. 물론 한국사회 전구성원들이 이러한 경 향들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다. 또한 이러한 경향들만이 정동적 노동의 이윤 공유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경향들은 정동적 노동의 이윤 공유를 거부하는 대표적 요인이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이 경향들 에 대한 고찰을 통해, 사회적·자연적 부의 공유와 사회구성원들의 권리와 복지에 대한 논의를 확대하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Old Russian Legation(1890) has been attracted public attention in terms of politics and foreign affairs than architectural style because of conditions of location and historical incident. Though it was heavily damaged during the Korean war, and only the tower has been restored, it is very important in architectural history in Korea, because it is the oldest western style brick building which is existing with the old bishop's house in Myeong-Dong. But it has been impossible to reveal exactly the original form as there has been few reliable materials(picture, drawing, document) and it's remains were nearly destroyed owing to development of the surroundings. Recently the decisive document(site outline map) was found, and new research on the architect Sabatine was studied. So I can get into close with the original form by the results. In this study, I tried to conjecture the original form of the old Russian legation(the size, style, plan and indoor space, arrangement of attached facilities) and I checked the location and structure of the room where King Gojong stayed when he took refuge, and the use of the passage in the basement.
본 논문의 목적은 교회 공간 활용을 분석하여 지역교회가 사회와 무엇을 공유하고 영향을 끼쳤는지를 밝히는데 있다. 이 목적을 위해 정동제일 교회를 택하여 해방 후 교회 공간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신문, 보고서, 기사 등을 분석하였다. 여기에서 공간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닌 인간의 활동과 공간적인 실천이 결합된 공간을 의미한다. 이것을 “사회적 공간”(social space)으로 부른다.
해방공간에서 다양한 단체와 기관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위하여 공간이 필요했다. YMCA나 학교강당, 천도교 강당 등은 실내공간으로 선호도가 높았다. 특히 교회건물은 예배공간만이 아닌 다양한 활동 공간으로 사람들에게 제공되었다. 서울에 위치한 정동제일교회는 수도권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 공간이었다.
김인영 목사가 재직하던 시기를 전후로 공간 활용도가 더욱 높았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신흥우와 함께 YMCA와 적극신앙단에서 활동했으며, 해방 후에는 한국기독교연합회에서 활동했다. 기독교 정신 위에 대외적으로 활동했던 그의 행동은 정동제일교회 공간에서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비록 친일행적을 계기로 이전처럼 정치 일선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는 시대적인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국가를 기대하며 시민사회에 공간을 제공하였다.
더 나아가 여러 시민단체들은 세계정세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세계적인 석학이나 종교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시민들의 의식을 함양시켰다. 교회는 시민들의 다양한 욕구들 즉 문화적인 것, 경제적인 것, 결혼식과 장례식 등의 일상적인 것들을 위하여 공간을 제공하였다. 이것은 교회가 시민들의 생각과 욕구를 공유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승만과 관련된 단체들에게 결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 그의 정치활동을 지원하였다. 반탁과 관련된 집회와 강좌는 서울지역의 우파를 결집시켰고, 전국대회를 성공적으 로 개최한 독촉국민회는 1948년 제헌국회에서 다수당이 되어 정국을 주도 하였다.
정리하면 정동제일교회 공간은 사회적 관심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국가 건설을 세우는데 그 힘을 결집시키는데 영향을 주었다는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