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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결과 6

        1.
        2024.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구약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논할 때 제한적이며, 특히 창조신학과 원역사 안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문제의식 에서 출발하였다. 하나님의 선교라는 렌즈로 성경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나님의 선교는 성경적인 뒷받침을 얻을 것이다. 본 연구는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형상을 통해 사명을 위임받아 보내심을 받은 선교적 인간에 의해 그분을 계시하고 세상에 구속과 샬롬을 이루는 인간의 선교로 나타난다는 것을 주장한다. 즉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에는 창조된 인간이 그분을 계시하고, 세상에 구속과 샬롬을 이루도록 고안된 특별한 기능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기능을 통해 인간은 공동체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교가 이루어져야 하는 방향과 선교가 보내심을 넘어서 하나님을 계시하는 모든 행하심이 선교이고 그것은 세상에 대한 보호와 보존, 발전임을 주장할 것이다. 그래서 보내심의 선교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또한 이 연구의 목적이 된다.
        8,100원
        2.
        2020.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밀턴은 정치, 표현의 자유, 인권, 이혼 등에 관한 여러 가지 시민 사회의 필수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한 선각자였지만, 유독 젠더의 평등, 여성의 지위, 남녀의 역할 등의 문제에서는 보수적이고 최악의 경우 여성혐오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비난받아왔다. 이 연구는 이런 주제에 대한 밀턴의 사상을 재해석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그의 형상대로 창조한 행위에서 이미 젠더의 평등을 완성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결론 맺는다.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첫 창조 이야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창조됐음을 선 언하고 두 성별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밀턴의 결혼관은 바로 이 점에 기초하여 타락 이전부터 여자는 남자의 종속적인 존재로 창조 되었다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밀턴에게 있어 남자와 여자는 상호 동반자로서 이성적 의존의 관계와 대화를 위해 창조되었으므로, 성(性)은 “혼인한 사랑”의 관계에서 우선순위가 아닌 부차적인 것이 된다.
        5,700원
        3.
        2016.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구약성서의 인간 창조 서술의 핵심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구약신학적 의미와 선교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연구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전통적으로 외형적 혹은 내면적 어떤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구약신학의 분야에서는 아래 의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하여 그것을 ‘땅에 대한 지배권’(dominium terrae)으로 해석한다. 첫째, 창 1:26의 문맥이 이것을 명확히 보여주 며, 둘째, ‘형상’의 히브리어 표현인 ‘첼렘’이 어원학상 ‘상/동상’이란 의미를 지니며, 실제로 고대근동 지방에서는 이 개념을 ‘신의 대리자’로 서 행세하는 왕들이 ‘왕의 이데올로기’를 가시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 였다는 점이다. ‘땅에 대한 지배권’의 모습은 구약과 고대근동에서 자연과 동물에 대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다스림으로 나타나기도 하나, 동시에 ‘보존 과 보살핌의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창세기 1장 28절에도 이 두 가지의 모습이 다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것을 구약성서 자체가 드러내는 ‘하나님의 행하심’의 모습과 고대근동 지방에서 늦은 시기에 대두된 ‘페르시아의 왕의 이데올로기’와 연관하여 보면 창세기 1장 28절의 ‘땅에 대한 지배권’은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에 대한 평화적 통치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권리로서 주어진 ‘땅에 대한 통치권’이 특히 ‘하나님의 형상’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그것이 ‘하나님의 행하심’의 모습을 따라 규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인간과 모든 만물의 주로서의 ‘하나님의 행하심’은 모든 인간과 만물에게 은혜를 주시며 돌보실 뿐 아니라 궁극적 구원을 주시고 모든 창조 세계를 새롭게 하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의 행하심’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고 보냄을 받은 인간의 사명,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땅에 대한 지배권’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르심과 보내심이라고 할 수 있다.
        6,700원
        4.
        2016.05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나옴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는 각 시대와 사조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함을 알 수 있다. 본 서에서는 그러한 생각에서 출발하여 먼저 초대 교부시대의 이레니우스는 하나님의 형상을 절대로 상실되지 않는 성품으로 이해했으며, 이러한 이레니우스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레니우스의 이분법적인 인간 이해를 거부하고 ‘형상’이나 ‘모양’이란 단어가 두 사물들 간의 유사 한 관계를 가리키는 말은 분명하나 동의어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어지는 중세 교회시대에는 스콜라신학으로도 불리는데 이레니우스의 생각을 더욱 발전시켰 다. 당시 대표적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나님의 형상을 신적 특질이라 할 수 있는 지성에 서 찾았다. 종교개혁시대에 이르러 신학자들은 스콜라주의의 ‘형상’과 ‘모양’을 나누는 도식을 거부하고 인간 을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서만 이해하였다 대표적인 신학자 마틴 루터는 인간이 타락할 때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된 것으로 본 반면, 존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이 모든 인간 본성의 부 분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대 신학자들의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의 경우, 먼저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형상 을 찾으려고 인간 속의 구조, 성향, 특성들에 조사하려는 시도는 잘못되었다고 주장했으며 그의 초기에는 하나님의 형상은 전적으로 파괴되었다고 하였으나 후기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직은 남 아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칼 바르트처럼 벌카우워도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지성이나 이성 속 에서 찾으려는 사상을 반대했다. 이상에서와 같이 초대교부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형상 이해의 역사적인 고찰은 초 대교부시대와 중세시대까지는 “인간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인가?”라는 존재적인 측면 을 강조한 특징을 볼 수 있었던 반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 문의 답을 위하여 관계적인 측면을 강조한 특징을 볼 수 있다.
        5,500원
        5.
        2020.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위그 드 생빅토르(Hugues de Saint-Victor)의 저작인 『연학론』 (Didascalicon)의 전반적인 구성을 “토대-구조-완성”이라는 삼중적 모티프에 따라 고찰하였다. 첫 번째 요소인 “토대”는 성서적 신학의 기초인 히스 토리아(historia)에, 두 번째 요소인 “구조”는 성서적 구속사의 순서에 따른 교리적 의미인 알레고리아(allegoria)에, 마지막 “완성”은 성서적 신학의 정점인 영적 최고봉으로 인도하는 도덕적 해석으로서의 트로폴로기아 (tropologia)에 해당한다. 본 연구를 통해 위그 신학이 지향하는 궁극 목적인 인간 본성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비전이 교육대계로서의 『연학론』에서 시종일관된 목표로 제시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 밖에 본 연구를 통해 확인한 바는 다음과 같다. 위그가 신학 연구를 준비하는 예비과정으로서의 인문학예가 지닌 중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하는 데서 “글 읽기”(lectio)가 그의 전반적인 학문 체계 가운데 폭넓고 견실한 토대를 점 하고 있음이 잘 입증된다. 위그의 신학적 대전(summa)이라 할 수 있는 『성사들』(De Sacramentis)을 관통하는 “창조의 사역”(opus conditionis)과 “회복의 사역”(opus restaurationis)이라는 거시적인 신학적 틀이 『연학론』 의 결말부에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연학론』의 제5권에서는 덕의 실천이 지닌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위그의 초기 저작인 『연학론』이 그 주제와 구성에 있어 그의 여타 주요 저술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과, 아울러 그가 신학 연구의 결실로서 윤리적 모범과 목회적 실천을 힘주어 말하는 대목에서는, 그 자신이 속 하여 활동하던, 12세기 의전사제단 운동에서 추구하던 고유한 영적 에토스 (“가르침과 본보기를 통해 타인을 건덕으로 인도함”)가 반영되어 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6.
        2011.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In this article, I have analyzed certain features and theological themes as found in Noah’s Ark (De archa Noe) composed by Hugh of St. Victor, an Augustinian regular canon who lived at Paris in the Twelfth Century, by collating with his Booklet on the Making of the Ark(Libellus de formatione arche). My findings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in the perspective of medieval biblical hermeneutics, the Victorine author elucidates certain senses that may be implied by the biblical image of Noah’s ark. In accordance with this exegetical method, the ark is understood, first of all, as a vessel that Noah made with wood and pitch as indicated in its literal and historical sense; also the Church as the body of Christ in its allegorical and doctrinal meaning; and, finally, the ark of wisdom, as signified in its tropological or moral sense, which is to be constructed within our soul by the discipline of lectio divina. Second, Hugh concentrates on the motif of spiritual ascent as implied by the tropologia of the ark. It is a highly Augustinian theological theme about a journey of the soul which, seeing how instable a situation it is driven to by the disordered love of self, becomes stimulated to ascend to the love of God. The Victorine construes this procedure to be a process for restoring to the soul the image of God that has been shattered and dispersed by the destructive effects of the original sin. In poetic imagery reminiscent of The Song of Songs, he depicts how the uplifted and integrated soul, being liquefied by the flame of love in the final stage of contemplation, flows into the mold of the Lamb, the Lord Jesus Christ, indwelling the center and summit of the ark and is re-formed to His likeness at the end. Third, as regards Dionysius’s influence upon the formation of Hugh’s theology and spirituality, I have noticed that his treatises on Noah’s ark are built up on the Dionysian symbolic principle of proceeding from visible things(the image of the ark) to invisible realities(the inner contemplation). Additionally, I have highlighted that the three ascents starting from the respective corners of concupiscence, ignorance and goodness are certainly associated with the three hierarchical actions of purification, illumination and perfection as presented in the Dionysian Celestial Hierarchy. The Victorine master, however, understands the uplifting process in terms of tropological ascent for restoring the divine image to the soul by the practice of virtues whereas the Dionysian anagogical ascension is all about attaining to the union with the unknown God by way of negation, namely, via negativa. Concerning the topic of Dionysius-rezeption in the medieval Latin Christianity, the recent scholarship remarks that Hugh has laid the first steppingstone for affectivizing the intellectual mysticism of the Areopagite by intensifying the superiority of love over knowledge. In consideration of these observations, the Hugonian treatises on Noah’s ark, permeated with the central motif of love that gives impetus to spiritual ascent and makes possible the restoration of the divine image, should be numbered among certain textual evidences illustrating the Victorine affective reading of the intellectual Dionysian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