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성령은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회복과 갱신을 통한 구원의 효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행위는 고백이나 열정, 그리고 감성의 산물로 이해될 수 없으며, 누구든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나타난다. 하나님과 인간의 사귐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나타난다는 것은 성령을 기능적으로 이해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하나님의 영적 존재를 부각하는 선교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한 이론은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 에너지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한다. 그러므로 거듭난 인간은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창조목적 안에서 샬롬을 실천하는 능력을 행사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성령은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를 얻으며, 사랑 안에 서 연약한 자들과 함께하고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게 한다.
동아시아는 국제사회에서 경제, 군사, 정치, 사회 등 다 영역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동아시아 기독교 신학은 21세기에도 서구 신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구자는 동아시아 기독교 신학이 글로벌 신학으로써 21세기 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고민하였고, 아모스 용의 성령신학에서 대안을 찾아보았다. 기독교윤리 중심으로 발전한 신학은 신자의 삶을 변화시키는데 부정적 평가를 받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의 실천성은 21세기 선교신학의 가장 큰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용은 오순절 관점에서 기독교 신학을 발전시킬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삶의 모든 영역과 요소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하고자 노력하였다. 그가 제시한 성령신학은 영이신 하나님의 삼위일체론으로부터 보편적 포용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이며, 비 서구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종교를 포용한다. 성령신학은 토착문화에서도 기독교 신학을 건설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 한다.
본 연구는 오순절 선교의 통전적인 성령사역의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성서적 접근으로서 사도행전 1장 8절에 의거한 성령세례와 그리스도의 증인되는 삶의 직접적인 연계를 언급하고, 누가복음 4:18-19을 근거로 그리스도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메시아적 선포, 구체적으로 가난한 자와 눌린 자, 포로된 자들을 향한 선교적 부르심임 을 논한다. 나아가 오순절 선교의 역사적인 변천을 살펴 보면서, 초기에 는 기사와 이적을 동반한 복음선포가 주를 이루었다가 점차 사회의 상황에 응답하는 통전적 선교로 발전해 사회의 약자들을 향한 적극적인 행동을 포괄함을 논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정에서 오순절 선교가 어떻게 오순절 통전적 사역이 성령론에 근거한 이 운동의 독특한 요소들을 보존하며 이시대에 도전할 수 있는 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학자들은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을 두 가지로 분류해 왔다. 유동식은 이를 ‘부성적 성령운동’과 ‘모성적 성령운동’이라 부른다. 전자는 한국 유교 전통에 입각한 외향적 사회참여와 사회구조 의 변혁을 도모하며, 후자는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내적인 신앙 및 치유를 강조한다. 이러한 분류 안에서 유동식은 1907년 길선주의 평양 대부흥 운동을 ‘부성적 성령운동’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본 논문에 서는 사회 정치적 참여에 강조를 둔 운동을 ‘예언자적 성령운 동’(Socio-Prophetic movement)으로 명명하며, 내적인 신앙, 치유, 부흥을 강조하는 성령운동을 ‘카리스마적 성령운동’(Charismatic- Pious movement)이라 정의한다. 또한, 한국 역사 가운데 사회 예언자 적 성향과 카리스마틱한 신앙의 요소를 포함하는 통합적인 성령운동 (Holistic movement)이 있었음을 밝히고 그 대표적 예로 길선주 목사의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을 ‘통합적 성령운동’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예언자적 성령운동’의 예로 이현필 선생의 동광원 사역과 ‘카리스마적 성령운동’의 예로 김익두 목사의 치유 사역을 살펴 보고, 21세기 ‘통합적 성령운동’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 논문은 1907년 대부흥운동과 3.1운동을 통해 회심, 치유, 변형의 관점에서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 사이의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회심은 하나님 통치를 향한 개인적, 사회적 변형으로, 정체성과 도덕성과 정치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1907년 대부흥운동은 성령의 역사로 한국교회의 정체성의 원형이 형성되었고, 회심의 결과로 기독교인들의 개인적, 사회적 변형을 도덕적 열매로 거두었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3.1운 동에 참여한 것은 성령의 역사로 그들은 정치적 운동의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열정적인 복음전도자라는 새로운 기독교 지도자 상을 보여줬다. 3.1운동 이후에 복음주의자들은 전도를 강조하고,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변화를 강조하게 되었다. 1907년 대부흥운동에 나타난 정체성 형성과 도덕적 열매들과 3.1운동에 나타난 정치적 참여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복음주의 진영과 에큐메니칼 진영 사이의 화해를 위한 길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즉 민중을 치유하고 사회를 변혁시키는 성령, 신비와 저항을 강조하는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가난과 연약함의 영성,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는 교회의 정체성, 도덕성, 정치를 연결하는 길이 될 뿐 아니라 양 진영 사이의 화해에 기여할 수 있다.
본 연구는 4-5세기 니케아적 영성신학의 은사론을 통해 나운몽의 용문 산 운동에 나타난 은사들을 평가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동안 나운 몽 연구는 한국교회사의 지평 안에서만 논의 되었는데, 필자의 새로운 방 법론을 통해 나운몽에 대한 이해를 보다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니케아적 영성신학을 구성하기 위해서 사용된 텍스트는 주로 아타나시오스, 바실리오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들이며 이 외에도 사막 영성을 증 언하는 작품들도 사용되었다. 나운몽의 용문산 운동에 대해서는 『아실 나 운몽목사전집』만을 사용하였다. 전반적으로 니케아적 영성신학의 은사론은 섬세하게 신학적 사유를 전개한 반면, 나운몽의 경우는 체계적인 은사론이 아니라 단편적인 사건 중심으로 나열하는 경우가 많다.
비교의 범주는 고린도전서 12장 8절 이하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 중에서 치유와 기적의 은사, 악령을 쫓아내는 은사, 예언의 은사 등 세 가지로만 한정했다. 이 세 가지 은사는 나운몽의 용문산 성령운동에서 두드러지는 요소였기 때문에 니케아적 은사론의 틀을 통해 검증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아실의 은사론은 전체적으로 니케아적 영성신학 안에 머무르며, 특히 치유와 기적의 은사는 니케아적 은사론에 근접한다. 그런데, 축사(逐邪)의 경우 아실은 개인의 차원에만 머물지만 니케아적 영성신학은 사 회와 역사와 정치구조의 축귀 등 거대한 지평을 갖고 있다. 예언의 경우 니케아적 은사론은 신학적으로 정교하지만, 아실의 경우 사건만 설명할 뿐 신학적 차원의 관심은 결여되어 있다.
이 논문은 루터의 성령이해를 다루었다. 루터는 고대교회의 삼위일체 이 해를 계승하고 있고, 삼위의 관계나 본질에 대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성령의 활동에 대한 이해는 그에게 매우 중요했다. 왜냐하 면 종교개혁 진영 내부에서 개혁의 정당성을 성령의 직접적인 지시나 내적 명령에 두는 사례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주된 논의의 유발자는 칼슈 타트와 토마스 뮌처 그리고 소위 츠비카우 예언자들이었다. 이들은 행동의 근거를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와 내적 지시에 두며, 개혁의 방향을 주관적 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평신도들에게 성령의 소유를 촉구하며, 성령의 지 시를 받는 자신들만이 참된 하나님의 종이라고 주장했다. 이들로 인하여 루터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숙고했으며, 성서를 토대로 상세히 반박했다. 루터에게는 내적인 깨달음보다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 이 더 중요했다. 그는 성령의 역사를 말씀보다 앞세우지 않았다. 성령의 역 사에 대한 루터의 사유는 대체로 1520년대 초기와 중반에 열광주의자들과 의 대립 속에서 계속 형성되며, 1520년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발간된 고백, 대교리문답서, 소교리문답서 그리고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에 표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