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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Comprehending the prevailing ideals of the body within a specific era requires grasping the intricate interplay between social phenomena and the evolution of clothing. Accordingly, this study investigates the distinctive facets of the perception of the Neo-Confucian body as reflected in men’s dress during the Joseon Dynasty. We examine a comprehensive body of scholarship, literature, and historical records concerning the body and dress. Additionally, we also employ a framework developed by M. Y. Kim, which categorizes the Neo-Confucian body in three ways: as the natural body, the cultural body, and the body as a fully-realized moral subject. Our findings unveil three crucial insights: firstly, guided by Neo-Confucian discourse positing appearance as a manifestation of innate energy (氣), men’s dress was deliberately designed to demarcate stylistic distinctions in women’s dress; secondly, the Chinese gwan (冠) was employed as a tool of self-cultivation (修身) to symbolize the legitimacy of Joseon’s Neo-Confucian governance; and thirdly, sim-ui (深衣), a philosophical emblem of Confucianism extensively represented across through an intensified exploration of historical sources, served as a means to consolidate the political standing of the Neo-Confucian faction. As a consequence of these factors, the attire of noble men conferred upon them both sexual and moral ascendancy as political entities; men’s dress became a visual manifestation of the legitimacy of their power, thus embodying Neo-Confucian ideals. This study carries significance by applying a discourse analysis approach to Korean dress research and elucidating the factors underlying the development of men’s dress during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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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6.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정개청(鄭介淸, 1529~1590)은 호남의 대표적인 화담학파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담학파의 특징인 기 본체론(本體論)과, 선후천론 등이 그의 저 작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그의 사상이 특정한 스승을 통해 확립된 것이 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독서와 탐구를 통해 얻어진 독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와 기의 관계에서 이가 기를 주재한다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만물의 생성과 변화에서 기의 역할에 보다 더 주목한다. 만물의 생성과정에서 기의 차 이에 의해 만물 간의 차이가 발생하며 인간의 운명과 선악 또한 전적으로 기의 차이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기가 압도하는 현실 속에서 유일하게 스스 로의 노력을 통해 주어진 기질을 변화시켜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할 수 있는 존 재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기질 변화를 통해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며 정개청은 기질변화를 강조한다. 정개청은 기질변화론에서 내면의 수양에 힘써 외부 사물에 대한 단속을 소홀 히 하는 무내유외(務內遺外)의 수양을 비판한다. 이와 같은 정개청의 수양론은 경의(敬義)를 함께 실천하는 전통적인 수양론을 계승한 것이지만 구체적인 예 의 실천에 수양의 핵심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정개청은 「동한절의론(東漢節義論)」이라는 글이 빌미가 되어 정철에게 죽 음을 당하였다. 이 글은 정철 같은 당시의 학자들이 중국 동한(東漢) 시대의 학 자들처럼 절의(節義)와 같은 이상적인 덕목만을 숭상하고 일상의 행동은 멋대 로 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었다. 정개청이 「동한절의론」을 쓴 배경에 대해서 여 러 논란이 있지만 본 연구에서는 그것이 정개청의 기질변화론에 기반한 것이었 음을 밝혔다.
        5.
        200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면우 곽종석은 한주 이진상의 수제자로 寒洲學派를 대표하는 학자였다. 그는 당시에 이단으로 배척받던 한주의 성리설을 수용하였고, 그가 한주에게 執贄의 禮로 올린 󰡔지의록󰡕은 한주 성리설의 입문서가 되어 경상우도의 신진 학자들 사이에 두루 읽혀 한주학파의 형성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면우는 󰡔지의록󰡕에 대한 한주의 답변 중에서 유독 氣質之性 한 조목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여 한주와 논변하였다. 喜怒哀樂의 감정이 일어나기 전인 未發 상태에서 기질이 있느냐 없느냐, 기질의 개념이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 제를 가지고 논변을 전개한 것이다. 면우는 관점을 달리하는 논거를 두루 제시 하며 기질지성을 희노애락 미발의 상태에서의 性의 개념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 했고, 한주는 자신이 朱子의 晩年定論이라 믿는 설에만 의거하여 기질지성은 性의 개념이 아님을 강조했다. 즉 면우는 기질은 성과 함께 태어날 때부터 형성 되는 것이니, 기질에 의해 제약된 성이라 할 때 ‘기질에 의해 제약된’까지도 성 의 개념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주는 성의 時分인 미발에서는 氣가 작용 하지 않고 성의 본체만 온전히 드러나므로 기질을 성의 개념에 넣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면우는 실상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한주는 개념 정립을 중시 했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면우는 기질지성에 대한 기존 학설들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한 주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고증한 주자와 퇴계의 만년정설만을 논거로 삼았다. 면우는 ‘미발 상태에서 기질이 없지는 않지만 기질을 말할 필요는 없다’ 한 한 주의 결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면우가 기질지성에 관한 기존 학설의 개념들을 다 부정한 것은 아니다. 면우는 미발을 性의 상태로 규정, 기 질이란 개념을 용납하지 않는 한주의 학설을 수용하면서 여러 관점에서 기질지 성의 실상과 개념을 함께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면우의 이러한 학문 성향이 그 후에 나오는 그의 학설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추후의 과제로 남겨둔다. 이 문제는 스승인 한주의 학설과 대체에서 다를 수 없는 면우의 학설 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에도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6.
        2003.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주자학은 天人合一이라는 우주인간론적 비전을 골격으로 한다. 이 테제는 근대적 심성에는 매우 비의적이고 난해하다. 이 사고는 인간의 본성을 우주적 전체속에서 읽으며, 이는 인간을 우리가 욕망하는 것과는 다른 지평에서 읽을 것을 요구한다. 주자학은 우리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본성을 잘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본성’은 유전적 편향과 후천적 습관때문에 자각되지 않고,덮여있다" 주자학은 이 덮여지고 때묻은 본성을 지속적 자각을 통하여 벗기고 씻기는 것을 공부와 훈련의 과제로 삼는다. 그 과정에서 사적 자아는 공적 자아로 변환되며,자아와 타자를 분리하고 있던 장벽이 사라지면서 언간은 타물과의 우주적 소통을 확보한다. 그것을 전통적으로 철학적으로는 物我-如라는 통일로, 또는 문학적으로는 J홈 飛魚뿔이라는 자연 생명의 약동으로 묘사했다. 그것은 동시에 유가적 가치의 중심인 仁훌禮智가 발현되는 體用의 기제이기도 하다. 퇴계는 이런 본체와 공부의 전 과정을 그림 열 폭에 정돈했다. 이 논문은 퇴계가 정리한 주자학적 본체론을 제 1『太極圖』와 제 2『西銘圖』률 중심으로 해설하고, 이어 그것의 회복을 위한 공부의 규모와 방법을 제 3『小學圖』와 제 4『大學圖』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 중심 에 지속적 자각의 파지로 번역될 수 있는 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