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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re are six volumes of Sushi蘇軾 that has records related to Zigushen子姑神. Among them, 〈Zigushenji〉 is the record about Sushi’s observation of a shamanic ritual at a house in Huangzhou. Here, Sushi had a conversation with a spirit named Zigushen, and recorded the details of the conversation. This paper discusses three main points focusing on Sushi’s records. The first point is the discussion of the credibility of his story by comparing with five other works of his. The second point is the credibility analysis of the contents of the conversation with the spirit. The spirit claimed that she was a woman name Hemei during the Tang dynasty. And she described events during and after her life to Sushi in detail. She also wrote several poems after the conversation with Sushi. The third point is about how to explain this phenomenon if her words were truthful, and why Sushi slightly doubted the phenomenon. Considering these points, this work concludes as follows. Not all Zigushens in ancient Chinese literatures are Hemei, but the one in Sushi’s work is. The concreteness of the conversation and the phrases from the poems support the idea that it is not fictional. Modern Chinese scholars treat these ancient records as literary works. They argue that these fictions are of intellectuals expressing their concerns through ghost stories.However, this view is based on materialistic thinking. We can understand the mental world of ancient Chinese people, if these stories are treated, not just as literary works, but as records. There are thousands of similar stories in 《Taipingguangji太平廣記》, an ancient Chinese literature. Jiyun紀昀 of the Qing dynasty has also written many stories about shamanic rituals. His writings are relatively objective and detailed. This paper analyzes contents of Sushi’s work with Jiyun’s writings. Of course, not all phenomena of shamanic rituals are believable. Spirits can be deceitful, even when the conversation coincides with the reality. It is for this reason that Sushi was doubtful toward the Zigushen phenomenon.
        5,100원
        2.
        2019.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에서는 소식의 계자로 잘 알려진 소과의 시 가운데 부친의 생일을 축하하며 남긴「大人生日」의 시 11수를 분석하고, 이들 시에 드러난 부친 소식의 형상을 살펴보았다. 오대시안 이후 소식은 유배령을 받고 황주에 안치되는데 이 때 도성에는 소식이 ‘신선’이 되어 승천하였다거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유언비어가 빠른 속도로 번져나간다. 1차 황주 유배 이후 지방관으로 임직하던 소식은 다시금 신법파의 타겟이 되어 혜주와 담주에서 2차 유배를 겪게 되는데, 이 기간에도 소식과 관련된 유언비어는 지속적으로 생성된다. 그런데 혜주·담주에서의 유배기간 동안 부친 소식과 함께 생활했던 소과의 시를 살펴보면 소식에게 신선의 형상과 목민관의 형상을 부여하였음이 발견된다. 소과의 시 속에서 소식은 비방과 시비가 가득한 속세마저도 초월하여 고도의 정신적 승화를 이루어 낸 신선과도 같은 존재이자, 유배를 오기 전에는 善政을 행하였던 목민관의 형상을 획득함으로써 유언비어에 의해 무력화된 존재감을 회복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정치적 사건을 겪으면서 실추되어야 했던 한 개인의 명예를 문학적 형상화의 과정을 통해 다시금 회복하고자 했던 시도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할 것이다.
        6,000원
        3.
        201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詞의 風格은 蘇軾에 와서 일변한다. 晩唐이래로 이어져 오던 婉約한 사풍이 소식에 와서 豪放하고 淸新한 풍격으로 바뀐다. 이렇게 사풍이 변하게 된 뒤에는 소식의 정치적 처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신이 쓴 詩가 문제가 되어 ‘烏臺詩案’이란 筆禍를 겪게 된 소식은 시를 대신하여 詞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토로했다. ‘시를 쓰듯 사를 쓴다(以詩爲詞)’는 평가는 여기에서 나왔다. 소식은 당시 文人士大夫들의 관심의 대상이 아닌 사를 통해 貶謫으로 인한 복잡한 감회를 사를 통해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폄적으로 인한 여러 가지 복잡한 자신의 심경을 豪放하고, 淸麗하고, 超脫한 풍격의 사로 노래했다. 결과적으로 소식의 폄적은 전통의 婉約한 풍격의 사와는 다른 새로운 풍격의 사를 탄생시켰고 이는 다시 당시 문단에 영향을 주어 송대 詞風의 변화를 이끌었다.
        5,500원
        5.
        2015.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蘇軾은 중국 北宋시기의 문학가, 정치가, 사상가, 서예가이다. 현재 전해지는 그의 그림이 매우 적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畫史 에서 그의 존재를 거의 논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소식 의 畫學사상은 宋代이후의 畫壇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3부분으로 소식의 화학사상을 천명하였다. 첫째, 그는 화가에 대해 ‘人品’을 요구하였다. 그는 고아한 人格이 畫 道의 근본이라는 견해를 제기하고, 회화는 ‘技’에서 ‘道’로 나갈 수 있는 통로하고 천명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회화를 ‘技’에서 ‘道’로 한 단계 끌어 올려 文人畫가 정식으로 확립하는데 중요 한 공헌을 하였다. 둘째, 그는 화가에 대해 ‘涵養’을 요구하여 ‘士人畫’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하였다. 셋째, 그는 회화의 ‘意境’ 이 총체적인 주요사상이라는 것을 제기하였으니, 곧 ‘畫中有詩’ 라는 것이다. 이외에 필자는 明代胡應麟이 열거한 소식의 주요 친구들의 신분분석을 통해 소식의 친구들 중에 화가 혹은 화단과 밀접한 인물들이 50%를 초과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宋代에 출현한 주요 화학 저술은 대부분 소식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식이 畫史에서 지위가 견고한 것은 그가 회화기교가 뛰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가 문단에서 영수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화학사상이 문단에 광범위하게 영 향을 주어 화단에 깊이 침투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중국 문인화의 4개 요소는 ‘人品’, ‘涵養’, ‘意境’, ‘筆墨’인데, 그중에 앞의 3요소는 모두 송대에 이미 형성 된 것으로, 소식 및 그 학파가 이를 처음으로 제창하였다고 할 수 있다. 모종 의의 상에 소식은 중국 문인화 이론의 기초를 다졌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소식은 중국 문인 중에서 특수한 지위와 영향력이 있어 그의 문인화에 관한 이론이 신속하게 화 단의 주요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宋이래 ‘抒情寫意’, ‘筆恣墨韻’을 중시하는 문인화가 되어 魏晉이래 ‘尊神權’, ‘重教 化’, ‘重形似’, ‘勾勒填彩’의 院體風格을 타파하였다. 그 결과 중 국 전통회화예술의 풍격이 크게 전환하는 직접적인 계기를 마 련하였다.
        6,700원
        6.
        2013.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은 겸재 정선이 양천현령시절 제작한 화첩이다. 영조 18년(1742) 10월 보름날, 임술년을 맞아 경기도관찰사 홍경보가 경기 동부지역을 순시 중에 삭녕 우화정으로 경기도 관내 최고의 시인 연천현감 신유한과 최고의 화가 양천현령 정선을 불러들여 연천의 웅연까지 뱃놀이를 즐겼고, 정선은 이 이벤트를 〈우화등선(羽化登船)〉과 〈웅연계람(熊淵繫纜)〉두 점으로 그렸다. 그림의 제목대로 삭녕 우화정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는 장면과 웅연에 도착하여 닻을 내리는 장면을 각각 담은 것이다. 이 모임은 같은 임술년(1082)에 가졌던 북송대 문인 소동파(蘇東坡)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660년 전의 고사(故事)를 추모하여 재연한 행사였던 셈이다. 이를 밝힌 홍경보의 서문과 신유한의 글 ‘의적벽부(擬赤壁賦)’ 일부, 그리고 정선의 발문(跋文)을 합하여 꾸민 서화첩이 《연강임술첩》이다. 기존에 알려져 있던 화첩본 이외에 새로이 2011년 11월 필자가 참여한 동산방화랑 기획전에 또 다른 《연강임술첩》이 공개되었다. 정선이 화첩의 발문에 밝힌 대로 세 화첩 가운데 두 번째가 출현한 셈이다.《연강임술첩》의 〈우화등선〉(도6)과 〈웅연계람〉(도7) 두 폭은 소동파 적벽부 관련 고사도이자 실경산수화이면서, 동시에 경기도관찰사의 선유 행사를 담은 기록화이다. 옆으로 긴 화면을 적절히 소화한 대가다운 구성방식을 보여준다. 고운 비단에 비교적 강한 먹을 쓰고 옅은 담채와 먹의 농담으로 늦가을의 정취가 살짝 감돌게 그렸다. 강변의 절벽과 암봉(岩峯)은 북종화풍인 농묵의 부벽준(斧劈皴)을, 먼 토산과 근경언덕은 피마준(披麻皴)과 태점(苔點)의 남종산수화풍을 구사했다. 남북종화풍을 조화시켜 임진강변의 풍광을 그렇게 담아낸 것이다. 겸재가 통상 현장사생을 거의 하지 않았듯이, 아마 두 점도 관아에 돌아와 기억으로 이미지를 재구성했을 것으로 본다. 실경그림과 실경현장을 비교하기 난감할 정도로 이상화 시켜 놓았다. ‘의취(意趣)를 살리며 외형 닮기에 소홀히 했다’는 당대 문인 이하곤(李夏坤)의 지적을 실감케 하는 진경작품이다. 그리고 좌우로 긴 풍경에 행사장면과 그 주변 등장인물이나 경물들을 소홀히 다루지 않고, 기록화적 성격까지 적절히 살려놓은 명작이다.
        6,400원
        7.
        2013.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회봉과 동파는 몇 백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和陶詩’라는 하나의 시형식으로 遭遇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도연명이라는 인물의 도덕적 청렴함과 인품의 고결함, 은자로서의 삶에 같은 공감대를 느끼며 ‘화도시’를 짓게 되었고, 특히 회봉은 소동파에게도 상당히 경도되어 있었는데 이도 화도시를 짓는 하나의 動因이 되었다. 시대의 간극을 뛰어넘고 ‘화도시’로 만난 이들은 각자 처한 시대와 현실에 고민하고 갈등하며 그 내면적 고뇌들을 시에 加減 없이 담아내었다. 그러므로 ‘화도시’는 그들의 정신적 고뇌의 산물이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의 고민과 갈등을 해소해가는 일종의 정신적 해방구이기도 하였다. 회봉은 화도시에서 유학자로의 자세를 견지하고 도덕적 선을 추구하는 시를 지었으며, 亡國의 좌절과 아픔을 화도시에 담아 내었다. 유학자로서 이상적인 모습을 시에 나타내려한 회봉의 화도시에는 溫柔敦厚함이 담겨있다. 그리고 동파는 현실을 추구하는 유자로의 모습과 은일의 삶을 추구하는 은자로서 모습 사이에서 갈등하며 시대의 불우에 대한 좌절을 화도시에 담아내면서도 아주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보였다. 회봉은 동파와 유사하거나 또는 상이한 견해를 보이며 시공을 초월하여 ‘화도시’를 통해 동파와 交感하였다. 동파와 비교가 가능한 회봉의 화도시는 우리 한문학의 범위를 해방후까지 연장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근대한문학의 범주를 공고히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