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아일랜드 문예부흥을 이끈 W.B. 예이츠와 올리비아 셰익스피어의 관계 고찰을 통해, 그것이 서로에게 끼친 영향을 규명하고자 한다. 두 사람은 1894년 처음 친구로 사귄 이래로 서로의 작품을 최초로 읽어주는 독자가 된 후 40여 년간 친구에서 연인, 다시 친구로서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먼저 예이츠 시에 언급된 올리비아 셰익스피어를 통해서 그들의 관계를 추적할 것이다. 아울러 작가로서의 교유는 예이츠가 추구했던 신비학이 올리비아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움이 머문 순간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본 논문은 두 사람 간의 절친한 친구, 연인, 작가로서의 그들의 관계를 상호 중첩된 관계의 시학이라 명명한다.
T.S. 엘리엇은 전혀 새로운 시인으로서 20세기 영미시에서 우리가 전혀 본적이 없는 시를 쓴 시인이다. 그러나, 그는 유럽, 특히 프랑스 시의 전통에 확고한 뿌리를 둔 시인이다. 반면, W.B. 예이츠는 자신이 상징이라고 정의한 시의 특성을 추구한 시인으로 영시나 아일랜드 시에서 금세기에서 조차 어떤 시인도 그를 능가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엘리엇에 영향을 준 프랑스 시인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엘리엇은 프랑스의 새로운 시인들과 접촉하게 되어 독특한 시를 쓰게 된 것은 명확한 것 같다. 엘리엇은 시인 코르비에르에게서 프랑스 시인들이 무시하고 가치를 보지 못한, 프랑스 시의 전혀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다. 이 글은 구하의 책에서 프랑스 시의 영향을 다룬다. 특히 트리스탄 코르비에르의 엘리엇에 대한 영향을 논하다. 코르비에르는 당시 프랑스에서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한 무명시인이었다. 엘리엇은 이 시인에게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을 자신의 시에 잘 사용하였다. 구하는 이점을 다룬다. 반면 예이츠는 불어시를 읽을 수 없었고 프랑스 시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다. 예이츠는 그의 산문에서 엘리엇의 새로움과 위대함을 지적한다.
도와 일본의 미학은 예술적 적합성에서 유사한 미적 보편성을 나타내며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인도와 일본 미학의 예술적 목적은 덕목, 즉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예술의 미적 감상은 인도의 미학이 브라만의 직관적인 빛을 드러내는 동양의 텍스트적 행복에 초점을 맞춘다면, 일본의 미학은 공의 신비한 그림자를 찬미한다. 절대의식의 형태로 동양적 주체성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브라만은 절대적인 통일성을 추구하는 반면, 공은 허무주의적이지 않으며 종종 오해되는 불합리한 생각도 아니다. 그것의 실현은 예술에 대한 인식에서 통일성, 연속성, 조화 및 마음 챙김을 발생한다. 동양적 관점은 형태와 무형태의 초월적 의식에 의해 한계를 지니는데, 이것은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지각하는 가운데 명상한다. 이 논문은 T.S. 엘리엇과 W.B. 예이츠의 시를 통해 그들의 예술이 어떻게 빛과 그림자의 미학을 드러내며 동양의 철학적 의미를 창의적으로 반영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시가 어떻게 초월적이고 세속적인 속성으로 열반에 도달하는지 탐구한다.
이 논문은 프랭크 페이(1870-1931)와 윌리 페이(1872-1947) 형제가 예이츠의 드라마 발전에 끼친 영향을 탐구한다. 1890년대 프랭크 레이와 윌리 페이의 다양한 아마추어 극단은 아일랜드 국립극단(Irish National Theatre Society, 1902)을 탄생시켰고, 그들 중 하나가 최초의 애비극단으로 발전했다. 애비극장의 설립에 형제가 한 역할은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그들의 명성은 때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주제의식을 개진한 문학 및 연극 역사의 서사에 달려 있다. 예이츠는 1923년 스웨덴 아카데미 연설에서 ‘우리의 최고의 남자 배우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무대에서 변호사의 사무원이었고, 또 한 명은 흑인이 관리하는 극단에서 아일랜드를 여행했던 노동자였다’(CW3 413). 이러한 깔보는 듯한 언급은 페이 형제에 대한 이후의 평가에 잘못된 영향을 미쳤다. 이 논문은 애비극장의 기록 보관소와 프랭크 페이 기록 보관소 및 미발표 강의를 참고하여 더블린의 문학적 환경 내에서 페이 형제이 갖는 위상을 재고하려 한다.
이 논문은 예이츠 부부가 행한 자동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예이츠와 조지가 자동기술을 한 시기의 편지를 읽고 다음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 시들을 보는 것이다. 하나의 방법은 지동기술 이전과 이후의 시들을 비교하는 것인데, 이 논문은 자동기술 이전과 이후의 시와 환상록 발간 이후의 시가 어떻게 다른가를 살핀다. 이 논문의 의의는 어떤 시인들과 평론가들은 그를 마술사로 여기면서 낮게 평가한다. 나는 환상록을 만드는 과정이 예이츠의 시를 풍요롭게 만들었다고 여기며, 설령 그가 마술사가 아니었어도 그는, 그의 초기시들이 보여주듯이, 위대한 시를 썼을 것이다. 에즈라 파운드는 대학 때 예이츠의 초기시에 이끌려 영국으로 건너와 예이츠를 직접 만나고자 했다. 그들의 만남은 결국 현대시의 역사를 바꾸게 된다. 본 논문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예이츠부부의 자동기술의 과정을 들여다 볼 것이고 2부는 환상록 이전에 쓰여진 시와 이후에 쓰여진 시들을 비교하고, 환상록의 의의를 평가한다.
시는 삶에서 나오는데, 시인의 삶, 정서와 감정의 표현, 상상력의 발전 을 충실히 반영한다. 이 논문은 예이츠와 아우로빈도 고시에 나타난 속세와 영혼의 시 적 패러다임을 비교 분석한다. 예이츠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충실히 표현하고, 마음의 중심에서 고통을 겪는다. 그는 또한 삶의 경험과 사랑의 철학을 형성하고, 개인의 지 혜와 사상을 옹호하며 그의 시적 경력의 발전에 대해 사유한다. 이처럼 예이츠의 시는 주관적인 감정, 충동, 신비로운 경험에 기초한 생각과 철학을 드러낸다. 한편 현자 이 자 금욕적이고 신비로운 시인인 아우로빈도 고시는 자신의 초기 생애를 드러내고 후 기의 신비적이고 신비로운 비전을 반영한다. 그의 시는 요가 사다나(Yogic Sadhana) 또는 명상에 의해 심화된 이 영적, 신비로운 비전을 표현한다. 두 시인은 각자의 시에 서 시적 패턴에 대한 중요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 방식에서는 차이점을 보인다. 예이 츠의 시가 비교, 신비주의, 환상 및 황홀경을 중심으로 자전적 주제를 드러냈다면, 아 우로빈도 고시의 시는 정신계에서 은유적이고 형이상학적 경험을 주로 표현한다.
예이츠는 개념적 유동성을 정확하게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댄서의 이미지를 선택했다. 댄서/댄스는 역설적으로 단순히 상징적인 것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사회적 관습을 상기시키고, “번쩍이는 시선”으로서 참여의 순간에 경험적으로 느끼는 상호주관적 육체적 반응을 나타낸다. 잎, 꽃 혹은 줄기는 밤나무를 상징한다면, 이것들은 메토님으로서 그런 역할을 하는데, 전체의 부분들의 표현의 힘은 공통적으로 공유되는 것에서 유래한다. 댄스는 마찬가지로, 예술작품으로서 기능할 한다면, 자연과 문화의 차원에서 그런 것인데, 이때 댄서는, 고통이든 기쁨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본 논문은 예이츠와 캐나다 모더니스트 시인 중의 첫 대표시인 A.J.M. 스미스 사이의 관계를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하며, 더 나아가 현대 캐나다문학에 예이츠가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며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논지를 편다. 즉, 예이츠의 문화적 민족주의, 시작법의 미학, 시의 자유화 등은 스미스의 시에 크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예이츠와 엘리엇은 서로의 시에 대해 글을 쓸 때 조심스런 자세를 취한 다. 즉, 기본적으로는 동감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장점에 대해 부득불 인정하는 태도이다. 예이츠는 엘리엇의 시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비판적이고 부정적 태도를 보이면서도 그의 시를 당대문화의 징후로 간주하는 반면에 엘리엇은 예이츠의 시에 대해 침묵으로 대답하면서도 그에 대해서 2편의 공식적 견해를 발간했는데, 연배가 높은 노시인에 대한 존경의 표시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엘리엇은 모든 면에서 예이츠의 시가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는 상반적이라는 점을 너무 잘 인식하고 있었다.
아일랜드의 모더니스트 시인 W.B. 예이츠와 트리니다드 출신의 영국흑인 시인 안소니 조세프와의 비교는 예외적일 수 있다. 예이츠는 핵심적 하이 모더니스 트 시인들 중 하나이며, 조세프는 당대 “영국 흑인” 문학의 아방가르드적 변두리의 혼합장르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특정 기법의 사용, 주제, 신화와 과학적 은유와 결부된 목표 등을 비교하면, 의외의 공통점이 나타난다. 이런 공통 점은 모더니스트와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서정시의 가능성을 확장시켜 전통적 장르의 구분을 뛰어넘게 한다.
본 논문은 예이츠의 희곡 발야스 스트랜드에서가 어떻게 잘 알려진 아일랜드의 전설 “이퍼여왕의 외동아들”의 수백 년 간의 변형과 관련이 있는지를 연 구한다. 이 변화의 역사를 추적하면 자연적인 것과 비자연적인 것의 상충에 대한 주제 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예이츠는 심오한 자연의 충동에 뿌리를 둔 초자연의 모티프를 추가를 시도함으로써 본 주제를 탐색한다. 발야스 스트랜드에서는 인간성 의 거부는 초자연성의 포기와 함께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초자연성의 무시는 우리의 의미 깊은 자연적 충동의 힘을 배제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셰이머스 히니가 그의 산문에서 밝히듯이 그의 시작(詩作)에 있어서 가장 큰 벽은 W.B.예이츠라는 아일랜드 시인이었다. 대부분의 시인이 그러하듯이 히니가 그의 창작을 시작할 무렵에도 아일랜드는 예이츠라는 작가에 의해서 표현, 대변되었다. 예이츠는 아일랜드의 신화, 전설, 정치, 자연경관 등의 소재를 망라하여 작품 활동을 하였고 거장 시인으로 인정되었다. 정치적, 종교적 배경은 예이츠와 달랐지만 아일랜드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히니가 시인으로서 가지는 부담은 심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히니는 북아일랜드를 소재로 하는 그의 작품에서 예이츠의 시적 과정과 표현 방식에서 이탈하려고 하였고, 그것은 북아일랜드의 대지에 그의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의 작품은 초기 시에서부터 북아일랜드의 데리 농장의 유년기 체험을 소재로 하였다. 정치적인 소재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히니는 예이츠의 보수적인 성향에서 벗어나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상황을 북아일랜드의 시골정경과 혼효시켜서 낮은 어조로 아우르는 자세로 접근하였고 이는 대부분이 자신의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는 결과를 낳았다.
예이츠 이후의 시적 자세와 태도를 일견하면, 그의 시가 나중에 쓰여 지는 많은 시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예이츠 이후의 시인들은 그의 그늘에 있다. 그가 황소고 그들이 개미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태양이 어떤 지형에 하나의 그림자를 던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같은 땅 내의 한 부분에서 일한다는 것은 하나의 개미의 그림자가 보다 큰 다른 개미의 그림자와 겹치거나 우연일치가 되며, 그의 그림자의 윤곽은 앞으로 보다 큰 그림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