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플랫폼’(cross platform) 시대로 불리는 콘텐츠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아, 지금까지 ‘서브 컬처’(sub-culture)로 불리던 웹툰이 OTT 플랫폼의 원천 IP(지식재산)로 급부상하고 있다. 웹툰은 팬덤을 통한 흥 행성 확보 및 독창성·확장성 등의 장점을 무기로 유력한 거점 콘텐츠 IP 로 각광받고 있다.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에서 K-드라마의 글로벌 경 쟁력을 확인시킨 <킹덤>, <이태원 클라쓰>, <스위트 홈>,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은 모두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특히 웹툰은 스토 리의 완결성과 세계관을 가진 원천 콘텐츠로서 영상, 게임 등 다양한 분 야로 IP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디어 생태계의 새로운 ‘가치사 슬’(value chain)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본 연구는 OTT 플 랫폼을 통해 공개된 국내 웹툰 콘텐츠의 활용 사례와 IP 확장에 유용한 전략으로 기대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과의 상관관계 연구를 통해 웹툰의 세계관 확장에 대한 시사점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본 논문은 청소년들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 특히 과학적 세계관의 강한 영향아래 있는 미 정립된 청소년의 세계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며, 청소년 선교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되 그것을 전도서의 세계관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을 두고 있다. 세계관 형성이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청소년들은 세계관의 혼란을 겪는다. 이는 교회 내의 청소년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히 ‘복층식 기독교’의 개념은 교회 내의 청소년과 교회 밖의 청소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그리 큰 차이가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청소년 선교의 근본적인 방향은 성서적 기독교 세계관의 정립을 통해 제시되어야 한다. 연구자는 이 기독교 세계관을 전도서에서 도출하되, 그 핵심 사상을 헤벨, 하나님 경외, 헬레크로 제시한다. 이 사상은 한계 속의 때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모든 판단의 교만을 멈추게 하고, 그 한계 너머의 창조주 하나님을 인식하게 하며, 그로부터 모든 인간에게 주어 지는 몫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참되게 발견하게 한다. 헤벨, 하나님 경외 헬레크의 세계관은 인생의 방향을 창조주에게 맞추고, 그로부터 주어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통하여 문제들의 대안과 소망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조상 제사가 실존적·실제적 차원에서 여전히 중차대한 한국적 상황에서 본 논문은 자신학(自神學)적 시도로써 한국적 조상 신학을 세계관 분석을 중심으로 예비적으로 탐색한다. 첫째, 현상학적 접근의 결과 조상 제사에 내재한 혼합주의적 요소가 파악된다. 무교(샤머니즘)적 우주관, 불교적 구원관, 유교적 윤리관이 조상 제사의 세계관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둘째, 성경적 평가의 결과 혼합주의적 세계관의 실태가 드러난다. 무교적 우주관 으로는 정령(精靈)―망자(亡者) 지향성이, 불교적 구원관으로는 공로(功 勞)―보살(菩薩) 의존성이, 유교적 윤리관으로는 계층-남성 중심성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 끝으로, 본고의 연구 결과 한국적 조상 신학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이 제시된다. 우주론적으로는 정령-망자가 아닌 섭리-창조주 지향성이, 구원론적으로 공로-보살이 아닌 은혜-그리스도 의존성이, 윤리적으로는 계층-남성이 아닌 평등-인류 중심성이 요청된다. 상기한 탐색적 연구 즉 세계관 분석 및 변혁은 한국적 조상 신학 정립에 관한 선교학적 논의에 있어 정향(正向)적 기제로써 기여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전개된 3·1운동과 여성독립운동을 세계평화의 시각에 대입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일본 에 의해 국권을 상실했던 시기의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전개된 3.1운 동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평화운동의 일환이었다. 특히 3·1운동은 민중운동으로서 계층과 지역, 성별의 구분을 넘어선 독립운동이었으며, 그 시대 독립운동이 지향한 독립과 자유에 대해 평화적 견지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첫째, 그 시대가 당면했던 독립의 과제는 시대적·민족적 견지에서의 독립이었으며, 평화운동의 일환이었다. 둘째, 3·1운동에 참여한 여성은 주체의지로 독립운동의 참여자, 실천자로 변화했으며, 독립운동사 에서 한 주류로 한국여성독립운동의 맥락을 이어갔다. 셋째, 3·1운동은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 미주 등으로 확산되면서 아시아 약소국이 자유 의지를 발휘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국내에서는 독립운동의 정신적 저력이 되었다. 이상에서 3·1운동은 세계평화의 관점에서 재인식되어야 하며, 3·1운동과 한국여성독립운동이 평화운동으로 주목받아야 할 것이 다.
Since 1884, many western Protestant missionaries came to Korea. The missionaries initially treated of the spiritual perspective of Koreans as superstitious and ignorance-oriented. Especially in the field of medicine, the Western perspective seemed to be far advanced than the Korean traditional perspective. According to the Korean traditional view, sicknesses was in many cases caused by intrusions of spiritual beings. Therefore, to cure the sick, one had to cast out those spiritual beings out of the bodies through placations or by force. With such perceptions, Korean people were not able to overcome the hard situations caused by the contagious diseases such as pestilence, small pox, and typoid fever. Western missionaries could take advantage on those matters in order to help Koreans and thereby achieving the trust of Korean government. Even though Western science and medicine proved their effectiveness through such medical works, excessive reliance can cause one to fall into the idolatry of worshipping medicine instead of God. Throughout the development in the area of science and technology, Westerners have tended to look everything through the scientific perspectives. Through such trends Western societies were believed to run the course of secularization throughout the 19th and 20th centuries. God and His supernatural world have been marginalized especially in public areas. According to Professor Paul G. Hiebert, even missionaries with severe Western cultural backgrounds have difficulties in understanding the spirit world of the native people. Early missionaries to Korea were not exceptions. They also had difficulties when they first met the Koreans and tried to understand their spiritual view points. In contrast to the Westerners who generally do not recognize the spiritual beings around them, the Koreans recognized the spiritual beings such as ghosts, ancestors in almost every aspect of their lives. Koreans were famous in maintaining the practices related to such spiritual beings throughout their ancient history. When the missionaries first observed practices related to the spiritual beings, they judged Koreans to be ingnorant or superstitious. However, the missionaries continuously tried to understand the people and their worldviews. When they were unable to understand the Korean worldview on the spiritual beings, they resorted not to the Western naturalistic perspective but to the Bible. Through comparison between the Korean traditional perspectives and the Biblical perspectives, they discovered that the Biblical perspectives were more similar to the Korean traditional perspectives. And with careful observation and examination of the Korean ministers’ deliverance works, they changed their thought about the spirit world. The demons and spiritual beings which were regarded to harass Korean people were not supterstitions or fatacies. They were real beings confirmed by the Bible. The native Korean ministers contributed a lot in the paradigm shift from Western perspective to the Korean perspective on the reality of spiritual beings. The Korean ministers viewed the Bible differently. They believed Bible stories where the possessed were released by Jesus and his disciples. The faith of Korean ministers proved to be simple and firm enough to follow the practices of Jesus and his disciples in casting out demons. When the missionaries heard about the stories of deliverances by the Korean ministers and believers, they did not stop but rather carefully examined such behaviors in light of the Bible. The final criteria of missionaries were not the western but the Biblical perspective. With such criteria, they accepted and recognized the deliverance ministries of the Korean believers. Some missionaries, when asked if they could cast out demons out of troubled, succeeded in the deliverance ministries. In my estimation, the Nevius mission plan contributed greatly in making harmony and cooperation between the missionaries and the Korean ministers. God brought Koreans who were troubled with spiritual bondage into the Kingdom of God through such faithful servants of God. The reasons the early protestant missionaries to Korea brought such great success in evangelizing Korea were foremost their deep reliance to the Bible as the Word of God and secondly their deep understanding of Koreans and their ways of thinking.
장현광 성리설이 지닌 성향은 이이 지지, 퇴·율의 절충, 이황 친화, 독자적 성취 등의 순서로 다양하게 평가되어 왔다. 최근 이이 친화적인 인물임을 주장하는 연구가 나와 그 동안 간과되었던 장현광 성리학의 한 측면을 자세하고도 설득력 있게 조명하였다. 그러나 논자는 이것이 장현광 학설의 일면일 뿐, 모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가 理發 개념에 부여한 의미가 이이의 것과 다르다. 그는 이이가 소홀하게 여긴 理의 필연적 작용력을 매우 강조하는데, 이런 경향은 오히려 이황 이 지향한 정신에 가깝다. 본고는 장현광이 중시한 理의 특성인 ‘필연’ 의 의미를 규명하고, 선악의 문제와 인간 심정의 해석에 이것을 적용하 여 일관되게 설명해 보고자 한다. 그는 선배학자들인 이황과 이이의 이론을 절충하여 자기만의 독자적인 학문세계를 구성해내었는데, 이이 의 학설을 지지하였다기보다는 이황의 이론을 수정 보완한 것에 가깝 다고 판단된다.
유니버설디자인의 개념이 적용되었으리라는 가정 하에 한일월드컵이 개최되었던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스타디움의 시설과 스포츠의 진흥방안을 연구하였다. 일본의 경우에는 스타디움에 접근하기 위한 가장 인접한 지하철역과 스타디움의 연결 부분이 보도, 슬로프 카,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 일반인과 장애인이 신체적 조건에 따라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한국의 경우는 접근성에는 문제가 있지만 내부 시설에서 장애인석과 일반인석을 혼용 배치한 것은 일본의 시설보다 더욱 유니버설디자인의 접목이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물리적인 접근성외에 정보적 접근성도 높여야할 것이다. 예를 들면 필담기, 커뮤니케이션보드, 점자지도 등을 배치하거나 미리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하여 사전 인지가 가능하도록 하는 사례는 우리가 하루빨리 도입해야할 사례로 파악되었다.
본 연구는 습정재 하응운(1676-1736)이 지니고 있었던 주정적 세계관을 중 심으로 그의 문학적 형상을 탐구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그의 가학적 전통 과 시대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문학작품이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에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응운은 선대로부터 남명학통을 이어받았으나 노론으로 정립한 학자다. 그의 시대에 와서 명실상부 한 진주지역 노론 명문가로 발전하게 된다. 이 같은 처지에서 노론과 소론 사이 에 있었던 辛壬獄事를 거치면서 退處를 단행한다. 철저한 유가적 출처의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하응운은 당대를 위기의 시대로 판단하고 산림 속으로 물러나 주정적 세계관 을 정비한다. 이는 周惇頤 이래 성리학자들이 聖學을 터득하기 위하여 치열하 게 구축해갔던 세계관이다. 그 역시 이 주정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자신의 호를 ‘습정’이라 하였고, 이를 통해 안으로는 通明을, 밖으로 公溥를 획득하고자 했 다. 이 같은 세계관에 기반하여 문학창작을 하였으며, 당대인으로부터 ‘文苑의 詞宗’이라 칭송을 받기도 했다. 그의 문학은 時文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淸 越奇健’하고 ‘往往逼古’했다는 평가 받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의 문학적 경향 을 대체로 파악하게 된다. 주정적 세계관에 기반하여 작품을 창작했던 하응운은 자연을 ‘습정’의 공간으 로 인식하기도 하고, 창작의 공간으로 인식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생활공간으 로 인식하기도 했다. 습정공간으로서의 자연은 그의 문학이 유가적 수양론과 밀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작공간으로서의 자연은 起興의 대상이 되어 하응운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과 시화를 나누고 주흥을 이끌어내어 작품을 창 작케 하는 구실을 하였다. 그리고 생활공간으로서의 자연은 책읽기나 글쓰기 등 선비의 일상사를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존재였으며, 특히 여행은 자연을 작품 화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글은 만성이 그의 시에서 어떠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러한 관심은 그의 어떠한 생각이 반영된 것인가를 살펴본 것이다. 만성은 그의 시에서 역사와 현실 속에 놓여 있는 인간의 참모습을 찾으려 애 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러한 것은 그의 도문일치에 입각한 그의 문학관에 기 초하고 있다. 일반 사대부들도 문학에 대하여 그와 비슷한 생각을 피력한 바 있 다. 그러나 그들의 문학관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매우 단편적이거나 편의적 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잡록 부분에서 잠간 언급하거나, 청탁에 의해 짓는 개인 의 문집 서와 발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매우 체계적으로 문 학론이나, 문론 혹은 시론이라는 글을 지어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문학에 대한 견해를 정리한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또 생각에만 머물고 그의 문학 세계에서 그의 문학에 대한 생각을 구현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만성은 문학관에 대해 피력한 글이 많지는 않으나, 최장한・곽종석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문학관을 일목요연하게 사적 체계를 세워 정리한 것을 볼 수 있 으며, 이러한 문학관은 그의 많지 않은 시작품 속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올바른 인간에 대한 관심과 수양은 그의 몇 몇 잡저들 예를 들면, 「명덕 설」, 「위인론」, 「입지설」 등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것은 그의 시 속에서 나란히 읊어진 한유한, 정여창 등 선현에 대한 그의 생각과 남명에 대한 생각, 그리고 당대의 어진 사람들과의 교제를 읊은 시 등에서 발현되어 있다. 그가 매 화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 특히 납매에 대한 그의 특별한 관심과 이를 바탕 으로 지은 「납매설」은 그의 참된 인간의 모습을 탐구하고 현시하려한 의도를 읽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가 그러한 인간이 속해 있던 그리고 속해 있는 시간과 공간에 관심 을 가지는 것은 또한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는 역사를 회고하고, 또 시사를 걱정하고, 민속에 관심을 기울이는 등 그가 속해 있는 현실의 과거와 당대에 깊 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만성의 시문학에는 자신의 시대와 그 시대를 열어가는 당대의 바람직 한 인물들과 깊은 교유를 하였는데, 이러한 것은 바로 그의 과거와 과거의 인물 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만성이 바라보는 현실은 없어져야할 대상이 아니고, 보존하고 안존하 고 싶은 곳이다. 시사를 걱정하는 것도 현재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걱정 해서이다. 그래서 그의 현실에 대한 인식은 심각한 문제를 찾아볼 수 없다. 다 만 미래의 불안과 걱정이 있을 따름이다. 미래의 불안과 걱정은 바로 굴욕적이 고 처참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예측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과거는 현재를 보 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미래를 보는 거울인 것이다. 인물의 경우에도 사람을 평가하는 바람직한 기준이 무시되는 현실을 매화를 통하여 비유적으로 이야기하고, 현실 속에서 그러한 인물들을 모색하였으며, 과거에서는 그러한 바람직인한 인물들이 어떻게 살았던가를 인식하고, 현실의 인물들에 교우를 유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