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문화는 베트남의 다방면에 다층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언어와 문자를 막론하고 정치제도, 사상관념, 풍속예절의식 등 어느 하나 漢문화의 그림자를 숨길 수 있는 영역이 없고, 漢문화의 중요한 매개체인 한자는 漢문화의 전파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현상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양국의 교류 역사 안에서 그 답을 얻을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주로 베트남에 수동적으로 전파된 한어·한자와 주동적으로 전파된 한어·한자 및 베트남에서 소멸된 한어·한자 등 이라는 세 방면으로 진술을 전개하였다.
동아시아 각국이 자신의 문자 체계를 확보하지 못했던 시절, 漢字는 ‘팍스 차이나’ 즉 중국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문화제국을 성립을 가능케 한 도구였다. 그러나 오늘날 한자문화는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20세기를 전후한 漢族의 해외 이주, 중화권의 정치‧경제적 위상 제고와 이에 따른 중국어 학습 수요 증대 등에 힘입어 非漢字文化圈 국가로까지 확산되고 있지만 전통적 한자문화권 인 동아시아에서는 오히려 그 위상이 점차 약화되어가는 추세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진단만으로는 한자문화권의 특성과 실상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한자문화는 ‘미국문화’, ‘불교문화’, ‘음식문화’처럼 지역이나 종교 또는 생활의 총합으로 구축된 문화와는 달리 문자의 하나인 한자를 표기수단으로 하거나 한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문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한자문화권의 실체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는 물론이요 한자를 매개로 형성된 문화에 대해서도 더 깊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며, 그 방향은 과거의 흔적을 탐색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되며 각국의 특수한 정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대한 탐구,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인류 문명사에서 한자문화권이 담당해야 할 역할에 대한 전망까지 담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최근 한자에 대한 비한자문화권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지만 대부분 외국어로서의 언어 습득을 목적으로 한 것일 뿐이다. 읽기와 말하기 능력에 비해 쓰기 능력이 극도로 취약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비한자문화권 학습자들이 한자의 특수한 성격과 이로 말미암아 파생된 다양 한 문화적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 難望한 일이다. 외국어로서의 한어교육이 활발해질수록 전통적 한자교육은 활기를 잃게 되고, 결국 한자문화권의 결속을 약화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일으 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또한 한자문화권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중화권 국가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정보통 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말할 줄은 알지만 쓸 줄은 모르는 세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한자문화의 근저에 놓인 고전에 대한 관심 역시 갈수록 적어지는 추세다. 簡化字와 拼音의 보급으로 의사소통기능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지만 한자 자체에 내포된 문화적 코드는 상대적으로 약화 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오늘날의 한자문화권은 과거에 비해 범위는 넓어졌지만 깊이는 얕아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상황인식에 근거하여 한자문화의 긍정적 가치를 지키고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신한자문화권을 구축하기 위한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중국어교육에서 古典敎育의 강화. 어휘 차원의 학습만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문화적 함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고전 자료를 활용한 교학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중국어교육과 고전(한문)교육의 병행. 주로 구어 중심으로 구성된 현대 중국어교육과 별개로 古典文言文을 따로 학습하도록 한다. 이는 높은 단계의 중국어 학습자들이 흔히 겪게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셋째, 한자교육에서의 문화적 요소 연구개발 및 활용. 한자에 내포된 문화적 코드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실제 교육에 활용하도록 한다.
넷째,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달리 사용되는 한자와 어휘에 관한 연구. 한자문화권 각국에서 출현한 한자와 어휘는 각각의 생활환경과 정신사유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이에 담긴 의미를 깊이 있게 연구하여야 한다.
본 연구는 서번트 리더십이 조직구성원들의 건설적 일탈에 미치는 영향력을 살펴보려는 목적에서 수행되었다. 또한 조직기반 자긍심의 매개역할을 살펴보았다. 서번트 리더십을 통해 조직기반 자긍심이 높 아지며, 높은 조직기반 자긍심이 건설적 일탈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편 서번트 리더십이 조직기반 자긍심에 미치는 영향력에 있어서 조직정치 지각의 조절효과를 살펴봄으로써 서번트 리더십 발휘의 상황적 맥락도 파악하였다. 건설적 일탈은 혁신지향, 조직도전 그리고 대인관계로 구분하였으며 전체 건설적 일탈로 묶어서도 분석하였다. 조직정치 지각은 전반적인 조직정치 지각을 살펴보기 위해 이익을 위해 가만히 있기와 임금/승진 정책을 묶어서 전체 조직정치 지각으로 분석하였다. 광주지역 제조업과 서비스업종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조직구성원들을 표본으로 하였으며 동일방법편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응답의 원천을 상사응답과 자기응답으로 설문지를 수거하여 분석하였다. 348부를 최종분석에 활용하였으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번트 리더십은 건설적 일탈을 높이고 있었다. 둘째, 조직기반 자긍심은 건설적 일탈을 높이고 있었다. 셋째, 조직기반 자긍심은 서번트 리더십과 건설적 일탈과의 관계를 매개하고 있었다. 넷째, 서번트 리더십이 조직기반 자긍심에 미치는 영향력을 조직정치 지각이 조절하고 있었다. 다섯째, 매개효과와 조절효과를 모두 고려한 조절된 매개효과를 살펴보았다. 조건부 간접효과에 있어서 건설적 일탈 중 혁신지향과 전체에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어 조절된 매개효과를 확인하였다. 조직도전과 대인관계에 대한 조절된 매개효과는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건설적 일탈에 있어서 서번트 리더십이 중요한 선행변수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서번트 리더십은 조직기반 자긍심을 높이고 높아진 조직기반 자긍심이 건설적 일탈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때 조직정치 지각이 낮은 경우에 그 영향력이 더욱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해 서번트 리더십이 건설적 일탈의 중요한 선행변수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조직기반 자긍심은 서번트 리더십이 긍정적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조직에서 비공식적 영향력인 조직정치가 서번트 리더십의 긍정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통해서 조직정치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조직의 규정, 규범을 넘어서 이를 바로잡으려는 건설적 일탈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정치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소식의 계자로 잘 알려진 소과의 시 가운데 부친의 생일을 축하하며 남긴「大人生日」의 시 11수를 분석하고, 이들 시에 드러난 부친 소식의 형상을 살펴보았다. 오대시안 이후 소식은 유배령을 받고 황주에 안치되는데 이 때 도성에는 소식이 ‘신선’이 되어 승천하였다거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유언비어가 빠른 속도로 번져나간다. 1차 황주 유배 이후 지방관으로 임직하던 소식은 다시금 신법파의 타겟이 되어 혜주와 담주에서 2차 유배를 겪게 되는데, 이 기간에도 소식과 관련된 유언비어는 지속적으로 생성된다. 그런데 혜주·담주에서의 유배기간 동안 부친 소식과 함께 생활했던 소과의 시를 살펴보면 소식에게 신선의 형상과 목민관의 형상을 부여하였음이 발견된다. 소과의 시 속에서 소식은 비방과 시비가 가득한 속세마저도 초월하여 고도의 정신적 승화를 이루어 낸 신선과도 같은 존재이자, 유배를 오기 전에는 善政을 행하였던 목민관의 형상을 획득함으로써 유언비어에 의해 무력화된 존재감을 회복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정치적 사건을 겪으면서 실추되어야 했던 한 개인의 명예를 문학적 형상화의 과정을 통해 다시금 회복하고자 했던 시도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할 것이다.
주자성리학을 국가의 기본 통치이념으로 건국된 조선조에서 임금은 그 모든 사회체제의 구심점이며, 그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그러한 임금의 대표적인 의사표현 수단이 어필이다. 어필은 내용적으로는 임금의 개인적인 생각․사상 및 그 시대의 제반 요소가 담겨져 있고, 서체적로는 조선조의 서예사와 서예미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척도이다. 그동안 어필 관련 연구는 일부 임금의 서체에 국한하여 부분적으로 연구되어 조선조 전체적인 관점에서 어필을 이해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본 논문은 임금의 서체에 대해서는 제외하고 『조선 왕조실록』에 기술된 어필에 담겨진 내용을 중심으로 세부적으로 분석․고찰하였다.
실록에 기술된 어필에 대한 내용 속에는 어필과 관련된 형식적인 내용에서부터 문화적․ 사상적․정치적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가 담겨져 있다. 일반적으로 임금이 써서 내린 글을 통칭하여 어필이라고 하는데, 실록에는 임금의 글씨에 대한 명칭을 다양한 용어로 쓰이는 것이 확인된다. 어필의 정치적․사상적 배경도 주자성리학적 세계관에 따라 王道政治를 근본으로 禮治思想을 절요처로 하여 왕도정치와 예치의 통합을 통한 ‘修己之學’과 ‘治人之學’적 요소의 조화로운 통일을 지향하였다.
어필은 서체적 의미 이외에 어필내용을 깊이 분석하여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임금이 어필을 내린 사유를 분류해서 정의한다면 “임금이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고, 종묘사직의 안위를 지키며, 선대왕 및 성현들의 유지를 존숭하고 이를 본받아 계승하며, 신하와 백성들과의 소통 및 교육적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임금의 입장에서 표현하는 형식적인 의사 표시 수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조선조에서 어필의 상징성은 지엄, 권위, 존숭, 공신력, 초권력적 성격을 띤다. 임금은 나라의 지존으로서 이러한 상징성에 의거하여 어필정치를 하였다. 이에 따른 어필의 효용성은 첫째 왕도정치의 구현의 수단, 둘째 행정적 통치의 구현 수단, 셋째 교훈․경계적 現示의 수단, 넷째 국방․외교에 관한 신뢰구축의 수단, 다섯째 특별권력으로써의 왕권 구현 수단 등으로 어필이 다양한 역할을 하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조에 있어서 어필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려 나감에 있어, 임금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직접적이고 형식적인 수단이었다. 이 어필 속에는 임금의 생각과 사상, 그리고 나라를 다스려 나가는 국정운영의 방향과 철학이 고스란히 함축되어 있다. 이 에 따라 어필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고찰하여 어필 속에 담겨진 의미를 다양하게 도출하였다. 조선조는 임금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어필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조선조를 전반적으로 이해 하는 중요한 지렛대이다. 즉 어필은 조선조 이해의 대표적 아이콘이다. 따라서 이번 어필 내용에 대한 연구는 향후 조선조의 정치적 사회적 이해는 물론이고 특히 미술사, 서예사 등 조선조 미학에 대한 연구를 심화 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소프트 파워는 국제 교류 및 지역 협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중국·인도·미얀마 지역은 지리적으로 보면 서로 인접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왕래가빈번한다. 2013년중·인양국이방글라데시·중국·인도·미얀마 경제회랑 건설을 제의한 후에, 방글라데시와 미얀마가 이 제안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4국 간의 교류는 더욱 밀접해진다. 방·중·인·미 경제회랑 지역은 중국 서남과 방글라데시·인도·미얀마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 될 것이고, 이를 통해 관련지역의 문화교류도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4국 간에는 문화교류는 중국과 인도의 소프트 파워에 의해 불균형한 상태로 보인다. 중국·인도는 방글라데시·미얀마에 대해 문화 제품이 더 많이 수출하고 있고, 이는 많은 분야에서 방글라데시와 미얀마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향후에 이 경제회랑은 문화교류 및 협력 가속화하는 배경 하에, 지속가능한 발전 체제를 구축해 나가야하며, 이를 통해 4국의 소프트 파워 영향력을 균형화시켜서 지역문화의 백화제방(百花齐放)를 달성할 것이다.
이 논문은 전지구적으로 우리의 삶을 마이크로-파시스트적으로 통제하는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의 현상에 대항하는 방법으로서 펠릭스 가라티가 내놓은 분자 혁명의 의의를 탐구한다.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IWC)는 우리의 삶과 생활양 식을 파이크로-파시스트적 차원에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을 경계하고 자본주의의 또 다른 산물인 핵가족의 양태로 자기-중심적 욕망에 사로잡혀 진정한 나와 타자의 관계를 잃게 하여 정체성에 혼란을 주고 자아가 분열되게 하는, 소위 정신분열적 현상을 낳는다. 가타리는 이런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횡포에 대항하는 기제로 분자 혁명을 내세워서, 주체가 정신분열적 현상이 가지는 자기-초월적 모멘트를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는 분열분석적 자세로 압제적인 전지구적 현상에 대처하기를 권고한다. 분자 혁명은 주체가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 타자와 함께 어우르는 양태를 지향하여서, 저항에 있어서도 개체가 아니라 집합소들의 형태로 대응하여, 한 개인의 제한적 생각보다 서로가 공동으로 처한 정치 사회경 제적 환경에 공동으로 대처하기를 제안한다. 가타리의 분자 혁명은 마이크로-정치적 차원에서까지 우리의 생각과 생활양식을 통제하는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의 횡포에 자본주의의적 개인의식을 초월하여 창조적으로 우리의 정치문화경제적 환경에 대응하게 하는 효율적 대응전략으로 드러난다.
이 글은 아프리카 지역의 정부조직인 차드 분지 호수위원회(LCBC) 회원국이 테러조직인 보코하람의 테러 행위에 맞서기 위해 형성한 다국적군의 활동이 참여국 정치지도자들의 권력 유지에 어떤 영향을 행사하는지 조사했다. 2010년에서 2018년 기간 나이지리아, 카메룬, 니제르, 차드의 정치지도자들과 관련된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이 지역에서 독재국가의 지도자들보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지도자들이 반테러주의 활동의 실패에 대해 더 많은 정치적 비판에 직면한 결과 권력 유지에 실패했음을 파악했다.
국가가 자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전략문화와 강한 상관관계가 있지만 국가의 전략문화의 분류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중국 서부의 가장 중요한 인접국가 중 하나인 파키스탄은 중국의 든든한 파트너로서 파키스탄의 전략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파키스탄의 국가 정책과 국가가 자주권을 행사하는 행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중국과 파키스탄 양국의 협력관계를 심화시키는데도 도움이 된다. 저자는 지리, 사회, 경제, 문화, 역사, 군사 등의 관점에서 볼 때 파키스탄의 전략적 문화 형성의 메커니즘은 주로 지정학적 환경, 생산방식, 생활방식, 문화적 전통, 역사적 경험과 대외 관계 등 네 가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분석 결과로 파키스탄의 전략 문화는 이슬람에 의해 형성되어 왔고, 대외 지향적인 전략 문화로 분류될 수 있으며 국가가 자주권을 행사하는 거도 이슬람적인 색채가 강하다.
고구려 벽화고분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인 발굴 조사와 학술 연구를 통해 현재까지 역사, 고고, 복식, 문화사, 미술사 등의 방면에서 적지 않은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가 처음 발견된 1907년부터 1980년대까지 벽화고분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일제강점기 발굴을 처음 시작한 일본과 벽화고분이 위치한 북한과 중국에 의해 주도됐다. 한국 학계는 정치 이념과 지리적 문제로 인해 원천자료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했고, 척박 한 연구 환경으로 인해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가 활성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일본을 통해 북한과 중국의 벽화관련 출판물들이 다량 유입되면서 연구를 위한 기초자료들이 서서히 갖춰지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고 2000 년대 초에 남북 간의 화해무드로 인해 학술교류가 활성화되면서 벽화에 대한 실견과 원천자료에 대한 접근이 한 층 수월해졌으며 미술사 연구를 위한 토대도 전보다 탄탄해져 갔다.
1990년대 이전까지 미술사 분야의 연구는 벽화고분이 갖는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학계의 주목을 받기 어려웠으나, 이후 전문 연구자들이 배출되고 미술사의 양식론에 입각한 거시적, 미시적 관점의 다양한 논문들이 생산되었다. 게다가 회화이외에 공예나 불교조각를 전공하는 미술사학자들도 고구려 벽화 연구에 동참하여 전공 연구자가 아니면 다룰 수 없는 세부적인 주제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는데 기여했다.
100여년에 걸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는 그동안 다양한 주제에서 적지 않은 성과물들을 생산해냈지만 전공인력의 부족과 벽화 원천자료의 불완전한 공개 같은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 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많은 고분의 벽화 자료가 제대로 정리, 발표되지 않아 벽화연구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남북교류를 통한 원천자료의 정리와 출판이 시급하며 벽화를 전공하는 미술사 방면 연구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배출되어 다양한 방면에 걸친 활발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양식론에 입각한 연구결과물들이 보다 많이 쌓여 고구려 벽화고분의 편년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기준안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본 논문은 최근 남북한 군비통제의 추진현황과 과제를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군비통제의 이론적 개요, 최근 남북한 군비통제 의 추진현황, 한반도 군비통제의 제약요인과 과제를 살펴본 후 결론을 도출해 본 것이다. 21세기 한민족의 공존공영을 위한 평화구조 정착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는 첨예한 군사적 대결상태와 상호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군비통제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남북·북미정상회담과 후속회담을 통해 남북한 신뢰구축과 군비통제의 여건이 조성되어 가고 있다. 4·27 판문점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적 합의’ 등을 통해 남북한간의 군사적 신뢰구축 및 운용적 군비통제가 이루어 지고 있다. 하지만 남북한의 적대감·불신감의 잔존, 남북한과 주변국과 의 방위조약, 주변국의 군비경쟁과 한반도에 대한 복잡한 이해관계 등의 군비통제의 제약요인(制約要因)이 존재하는바, 남북한의 군비통제에 대한 공감대의 형성과 신뢰구축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장기 적인 통일안보의 비전을 가지고 가능한 것부터 점진적이면서도 신중하게 한반도 대내외 역학관계의 국제적 군비통제의 추세를 고려하여 남북한간의 군비통제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논문은 평화와 번영의 ‘4.27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선언’을 남북교류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이를 ‘한반도신경제구상’과 관련하여 규명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리더십은 ‘평화롭고 번영하는 한반도’라는 행복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선행되고 반드시 필요한 것은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제시한 경제부흥을 위한 한반도신경제구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한반도신경제구상은 한국은 침체된 경제의 성장 동력을 불어 넣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전략이라면, 북한으로서도 새로운 경제발전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디딤돌이라고 분석 할 수 있다. 결국 이것은 남북한의 공통의 목표가 번영을 의미하는 것으로, 신한반도체제로 나가자는 것이다. 신한반도체제는 대립과 갈등을 끝낸 새로운 평화협력공동체이자, 이념과 진영의 시대를 끝낸 경제협력 공동체이다. 남북한은 ‘평화의 완충지대’로서 평화와 번영의 신동북아시대를 견인해야 한다.
이 글의 목적은 3‧15의거가 4‧19혁명을 가져왔으며, 10‧18항쟁이 박 정희 정권 타도의 도화선을 제공해 10·26사건을 가져왔다는 점에 착안 하여 마산의 민주화운동을 비교분석하고자 하는데 있다. 왜냐하면 마산 은 독재자 타도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시민들의 투쟁정신을 상징하는 도시로 각인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3‧15의거와 10‧18항쟁에 대한 민주 화운동으로서 비교분석의 연구가 미흡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마산 의 3‧15의거와 10‧18항쟁을 상호 비교분석에 있어 생각할 점은 마산이 민주화의 성지임을 강조해왔을 뿐, 민주화 정신의 메카로서의 정체성이 정립되어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산에서 반독재운동이 발생하면 독재 자가 타도되는 결정적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마산은 민주정신의 상 징성을 지닌다. 연구방법으로는 ‘권력의 부메랑 효과’를 사용하고자 한 다. 이 부메랑 효과는 권력자가 영구집권을 위해서 일삼은 부정선거, 반체제운동의 탄압이 오히려 권력자의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서 학생들이 교내시위나 학생과 일부 재야세력이 주도한 기존의 민주 화운동과는 다른 방법론적 함의를 의미한다. 3·15의거와 10·18항쟁이 미완의 민주화운동이지만 4·19혁명과 10·26이란 거대한 정치적 변혁을 이뤄낸 데 기폭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독재자의 오만 한 체제유지가 부메랑으로 돌아와 대통령이 하야하거나 피살되어 대통 령직을 잃게 된 것이다. 이런 민주화운동이 직접적인 정권타도에는 이 르지 못했으나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었던 견인 차 역할론은 한국현대사의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의식 있는 학생과 민중들이 적극적인 참여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이 권위주의 정권에 영향 을 미쳐 독재자가 자승자박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놓은 것이었다. 따 라서 독재자들이 정권 붕괴를 자초하게끔 스스로 권력의 부메랑 효과 라는 덫을 놓고 집요하게 부정선거 획책이나 민중항쟁에 대한 강경론 을 펼치며 스스로 정권을 옭아맨 어리석음이 정권의 붕괴를 자초했다 고 볼 수 있다.
예이츠는 후기에 들어 아일랜드 현실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높아지고 자신의 시에 아일랜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예이츠가 자신의 후기시에서 당시 아일랜드 정치상황에 관해 어떠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지를 파악하는 데 있다. 이 연구는 이를 위해 예이츠의 후기시 가운데「1913년 9월」,「1916년 부활절」,「재림」,「비잔티움 항행」를 살피고 그의 마지막 시편 가운데 하나인「사람과 메아리」를 고찰하고자 한다. 예이츠는 아일랜드의 정치에 관해 찬미와 동시에 비난과 회의를 제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연구의 목적은 계몽주의 지리학 발달에 기여한 윌리엄 댐피어가 기술한 동아시아 지역지리의 내용을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댐피어가 동아시아에 대해 언급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았다. 연구결과 댐피어의 무역풍과 해류 지도는 당시 동아시아 바다에 대한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그가 태풍과 허리케인이 동일한 유형의 열대폭풍이라고 정의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른 항해기에서 찾을 수 없는 정치, 종교, 상업 등 다양한 분야의 상세한 정보를 소개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저서에 수록된 정보는 향후 18세기 영국의 동아시아 인식에 관한 근거 자료로 활용 가능함을 확인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예이츠를 아일랜드에서의 제국적 지배의 몰락에 즈음하여 탈식민화의 작가로 보는데, 예이츠는 애국심과 민족주의로 아일랜드의 유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비슷한 탈식민적 접근을 하는 케냐의 작가 응과에와 도잉고는 식민이전의 현실에서 후기식민기에서 현대성으로의 전환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이다. 본 논문은 그들의 극작품화에 나타난 탈식민화 시학을 점검한다. 예이츠의 극『캐스린 니 홀리한』(1902년) 은 아일랜드 정신의 민족화와 탈식민화에 직접 반응하는 아일랜드의 농민의 억압된 상황을 묘사한다. 『정신의 탈식민화 하기』(1986년)와 다른 긱큐유언어로 된 극에서, 도잉고는 문화적 제국주의가 어떻게 아프리카와 범아프리카에서 심리적 정복의 일환으로서 식민주의를 활용하는 지 검토한다. 극을 저항의 장소로 개념화하여, 그는 식민이전의 케냐의 극의 근원과 토착적 빈 공간을 파괴하는 영국의 극적 제국을 대비한다. 두 작가는 정치를 극화하고 영제국주의에 대한 극을 정치화하여 자신들의 유산과 언어를 되살린다. 두 작사는 청중의 정신에게 귀한 유산을 강조하면서도 극공연에서 토착어를 조명하려 한다.
이 글은 이주와 난민에 관한 신학화 작업을 글로컬 교회들의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이에 대해 쏟아지고 있는 사회학적, 정치 문화적 접근을 넘어서서 타인의 자리에 쉽게 놓여 진 이민자들과 난민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이주와 난민에 관한 선교 신학적 작업이다. 그루디 (Daniel G. Groody)1)가 이주와 난민 신학을 세우기 위해 다루는 극복해야 할 우리의 장벽들은 넷으로 구분되는데,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 하나님의 말씀(Verbum Dei),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하나님의 관점(Visio Dei)이며 이에 더해 필자는 사우어(Christof Sauer)가 다룬 하나님의 긍휼(Compassio Dei)이란 관점을 제시했다. ‘이주와 난민 신학’의 다섯 가지 관점은 메타포(Metaphor)로 서 환대적 선교의 실천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특별히 한국 교회가 ‘하나 님의 선교적 차원에서 ’선교적 교회’의 모델을 세우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교회들의 중대한 과제로 인식되는 디아스포라 선교적 틀이,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사회 안에서 교회들의 목회적 관심의 실천 안에서 뿐 아니라, 이민자와 난민들을 품고 껴안을 수 있는 21세기 상황에 적합하고, 응답적인 ‘신학적 논의’ 안에서 더욱 꽃필 것을 기대한다.
통일선교를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생애사적 증언에 기초한 북한의 정치·사회·경제·문화는 물론, 복음 환경과 같은 상황적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졸저의 생애사 주인공 강철수(가명)는 북한이탈주민으로서 현재 남한에서 기독교 복음사역을 하고 있다. 이 연구는 강철수가 복음을 수용하고 북한선교 사역자가 되기까지의 생애사를 로젠탈 (Ronsenthal)생애사 연구방법으로 분석했다. 특히 강철수가 복음을 접하게 된 계기, 수차례의 탈북, 체포 및 수감생활 등 한국에 입국하기 전까지 생사를 넘나들던 시기, 그리고 한국 입국과 그 이후 신학대학원에서의 공부와 북한선교사역의 시작 등 현재까지의 그의 생애사를 분석했다. 분석결과 중국에서 복음을 전해 준 두 분의 영적아버지와 한국에서 북한선교의 비전을 심어 준 영적어머니와의 만남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드러났다. 강철수의 신실한 믿음은 준비 된 인적자원 (human resources)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통일선교 시대를 맞이하여 사람을 준비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The 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 (CSAT) has focused on relative ranks among students since it started from 1993. In December 2014 The Ministry of Education (MOE) announced that it would adopt an absolute grading system (AGS) for English scores in the CSAT, starting from November 2017, and discard the relative grading. The MOE hoped that the AGS of CSAT English would eventually serve to normalize English education by having teachers place more emphasis on improving students’ communication skills rather than on solving CSAT questions. This paper describes the rationale behind the implementation of AGS for CSAT English by the MOE and how the criteria and grades of AGS have been developed and set. Then current problems arising from the AGS for CSAT English are discussed by touching on its theoretical, practical and political issues based on relevant literatures, public hearings and news media reports, and informal interviews with contemporary teachers of English.
본 연구는 국립미술관이 지향하는 공공성의 실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그 운영방침의 전제가 되는 미술정책과 공공성의 역학 관계를 과연 어떤 관점에서 조명해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만약 정책을 ‘공익의 실현’이라는 목표에 이상적으로 부합할 수 있는 실질적이면서 합리적인 수단이라고 전제한다면, 박정희 정권의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국현 경복궁관 개관, 공공 미술관으로서의 대중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과천관의 설립과 전개, 그리고 민간 경영의 개념 도입 이후 정부와 미술계의 논쟁으로부터 비롯된 특수법인화 추진까지의 정책사는 공공성 에 대한 복합적인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있음을 전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