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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aims to construct a corpus of 17th-century Korean personal letters, classifying them into royal and aristocratic (yangban) correspondences, and to compare their linguistic features through quantitative analysis. Based on a total of 285 letters—including 「현풍곽씨언간」, 「숙명신한첩」, 「숙휘신한첩」—the 17th Century Eongan Corpus was developed with detailed morphological analysis and lemmatization. The findings reveal that yangban letters tend to utilize practical and colloquial expressions, whereas royal letters demonstrate a more written style with enhanced forms of greeting and ritual politeness. Distinct differences were observed in pronoun usage, speech levels, sentence endings, and adjectives. Furthermore, phonological changes and dialectal vocabulary appeared more frequently in yangban letters, whereas royal letters maintained linguistic conservatism. This study contributes a new methodological approach to the field of historical Korean linguistics by providing a structured corpus and employing corpus-based analysis to elucidate stratified stylistic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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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5.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대한민국 정부들은 복지국가를 시대적 과제로 천명하고 있음에도, 낮은 복지 지출과 높은 사회적 불안이 라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복지국가 ‘체제’의 기획을 제안 하며, 그에 필요한 관점과 방향성을 얻기 위해 복지국가이론의 계보를 탐색한다. 먼저, ‘전후 복지국가’의 팽창을 설명하는 이론들을 고찰하고, 복지체제론을 통해 그 성숙과 위기 대응 양상도 살펴본다. 다음으로, 새로운 사회경제적 환경에 조응하여 진행되는 복지국가의 재구조화, 즉 ‘탈(脫) 전후 복지국가’의 등장을 설명하는 현대 이론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이렇듯 복지국가이론의 계보를 살피는 것은 현행 제도의 구 조와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미래 기획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이자, 대한민국이 사회권적 기본권이 적 극 구현되는 나라로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지적 토대를 쌓는 일이라고 본 논문은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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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25.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15세기 후반에 제작된 아미타여래삼존상의 새로운 제작 경향을 확인하고 수륙재 와의 연관성을 확인하는 데 목적이 있다. 15세기는 아미타여래삼존상의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두 가지 주요 경향이 주목된 다. 첫째, 아미타여래삼존상은 중대형으로 제작되어 주불전의 중심 존격으로 조성되었다. 이 는 아미타여래삼존이 당시 신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 대세지 보살과 함께 지장보살을 협시로 한 아미타여래삼존상이 활발히 조성되었다. 이는 당시 불교 의례와 신앙에서 지장보살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수륙재는 망자의 극락왕생과 산 자의 현세안녕을 기원하는 두 가지 핵심 목적을 지닌 불 교 의례였다. 이는 15세기에 간행된 天地冥陽水陸雜文과 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의 제목에서 하늘[天]과 땅[地, 지옥], 영혼의 세계[冥], 사람의 세계[陽]를 모두 아우르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무엇보다 천지명양수륙잡문에는 아미타여래삼존과 정토를 상징하는 변상도가 처음으로 등장하며, 지장신앙과 관련된 소첩을 통해 지장보살의 역할도 강조된다. 이를 바탕으로 15세기 후반에는 아미타ㆍ관음ㆍ대세지 삼존상뿐만 아니라 명부의 권위자인 지장보살이 극적인 요소를 더하며 아미타ㆍ관음ㆍ지장 삼존상 역시 중대형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수륙재를 위해 아미타여래삼존상을 조성한 사례로 보은 복천사와 강진 무위사가 주목된 다. 복천사는 1451년 세종의 수륙재를 위해 아미타ㆍ관음ㆍ대세지 삼존상을, 무위사는 1478년 수륙사 중창을 위해 아미타ㆍ관음ㆍ지장 삼존상을 조성했다. 이를 통해 15세기 후 반에는 수륙재를 거행하면서 대세지보살 또는 지장보살을 협시로 한 아미타여래삼존상이 모 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15세기 후반 아미타여래삼존상은 수륙재 성행과 맞물리며 전각에 봉안되는 중심 존격으 로 조성되었다. 그동안 현존하는 사례의 부족으로 주목받지 못한 조선 전기 불상의 조성배경 과 현상 변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조선 전기 불상을 보다 심도 있게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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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25.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paper is about the characteristics of the supply of wood in the 17th and 18th centuries of Sannung construction. The construction period of the Sannung construction cannot be planned and determined, and the construction must be completed within 3 months. Due to these characteristics, the supply of wood is also different from that of general construction. First, the method of directly logging and obtaining was minimized. Instead, they received timber from a private timber dealer. In the case of logging, considering transportation, it did not leave Hwanghae-do, Gangwon-do, and Chungcheong-do, where the distance was as close as possible. In addition, wood stored by individuals or the government was used as much as possible rather than logging, and in the 18th century, there were many cases of logging around royal to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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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25.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Hyeonpung Gwakssi Eongan」 (A collection of Korean letters)is of 176 letters. Of 176 letters, 83 letters are about dietary which are 47.16% of the total letters. In 83 letters of dietary, there are records of rice, glutinous rice, barley and buckwheat, and also yeast, malt, flour, wheat bran. For poultry and meats, there are beef, raw & dried pheasant, chicken, quail and other birds. For fish and shellfish, there are sea fish such as cod, herring, croaker, flatfish, and freshwater fish such as crucian carp. For main dish, there are cooked rice, porridge, noodles and dumplings. For side dish, there are soup, grilled dish, nureumi, stir-fried dish, steamed dish, fermented fish, raw fish, jaban and chimchae. For rice cake, there are ancestral rites cake, sanseung, gyeongdan, ssookddeok. In「Hyeonpung Gwakssi Eongan」, Ju Gwak instructed food preparation, grocery shopping, recipe, guest-welcoming, housekeeping, making bed, transportation, curfew for his kids and clothing for his wife one by one. Furthermore, there are records of dietary lifestyle of spring season and the month of November in lunar calendar. Lastly, there are birthday ceremony, coming of age ceremony, wedding ceremony, funeral ceremony and ancestral rites ceremony according to Confucianism ideal and their food rec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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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24.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20세기 초 일본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을 위해 설립되었던 속성교육기관들은 이들의 ‘문화자본’ 획득에 있어서 복합적인 ‘장’ 구조를 형성하였는데, 이러한 교육 ‘장’은 유 학생들의 제국대학 입학에 필요한 ‘문화자본’이 ‘재생산’되는 ‘장’으로 기능했다. 즉, 이들의 ‘문화자본’은 일본 학교 ‘장’을 중심으로 일본 국내사회 ‘장’과 중일 양국의 국 제사회 ‘장’의 중첩되는, 또는 포괄적인 교집합의 접점에서 작동되었다. 이러한 복잡 한 ‘장’ 구조에서 경제적 ‘장’의 논리는 타 ‘장’들을 점차적으로 포위해 가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부르디외가 모든 자본의 근본은 경제적 자본에 있다고 주장했던 바 와 같이 ‘경제자본’이 ‘문화자본’으로 전환되는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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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2024.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19세기 동안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은 해도 제작에 있어 가장 앞선 나라 중 하나였으며, 19세기 중반부터는 영국 수로국 제작 해도가 세계 표준해도로 인정받았다. 영국 해도상에 한반도와 주변 바다는 1855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였고,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기재 정보가 확충되어 갔다. 이 연구는 1876년부터 1907년 까지 작성된 영국 해도 2347번에 나타난 한반도 해안선의 변화 및 지명 기재 양상을 1876년, 1885년, 1891년, 1907년에 작성된 총 4개의 해도에서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해안선의 경우 1876년의 경우 평안도, 황해도, 전라도 등 서해안에서 집중적으로 변경되었고, 1885년의 경우 동해안 해안선이 동쪽으로 이동한 점, 1891년의 경우 전라도 및 충청도 해안에서 많은 변화가 확인되었다. 1907년에 이르러서는 해안선 이 현재의 해안선과 매우 유사함을 확인하여 완성 단계에 이르렀음을 확인하였다. 한편 한반도 및 주변 바다에 기재된 지명의 경우 기재된 지명의 개수가 1876년에 341개, 1885년에 415개, 1891년에 431개, 1907년에 244개로 변화하였음을 확인하였다. 해도인 까닭에 해안 지형과 관련되는 자연지명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인문지명의 비중도 적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1907년 해도가 완성단계에 이르러서는 인문지명이 대폭 감소한 점 또한 특이점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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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2024.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개신교 선교사가 처음 활동을 시작한 시기, 주로 1890년대에 이루어진 불교와 개신교의 만남을 다룬다. 1880년대 말 한국에 처음 들 어온 서양인과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거주했던 서울 도성 내에서 사찰을 볼 수 없었기에, 한국은 종교 없는 나라라는 선입관을 한동안 유지했다. 1890년대 들어 활동 반경이 서울 근교로 확장하자, 선교사들은 도성 바 깥에 있는 살아있는 불교와 바로 만날 수 있었다. 선교사는 머릿속에 있 던 우상숭배 관념을 불교를 통해 재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들이 보기에 한국의 불교는 퇴락한 전통이고 승려들은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들로 비추어졌다. 불교와 개신교 선교사의 만남은 의외로 휴양의 맥락에서 이루어기도 했는데, 그들이 삼막사에 머문 기록이 상세히 남아 있다. 한 달 이상의 만남과 접촉은 친밀함의 형성, 상대방 의례에 대한 면밀한 관찰로 이어졌 다. 한편 한국 전통에 다른 태도를 보인 성공회 선교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사제직과 수행 공동체를 존중하는 교단에 속했기에, 불교에 서 자신과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신교 선교사는 불교에 관한 부정적 관념이나 선입관에서 만남을 시 작하였다. 그러나 같은 공간 내에서 몸과 몸이 만나는 현실 속의 만남은 상호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또 이 만남의 기록은 조선 말기 한국 불교의 어려운 현실을 증언해 주는 생생한 자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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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2024.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하멜보고서』의 ‘1660년, 1661년, 그리고 1662년’에 실려 있는 ‘종교’ 부분에 대해석 작업이다. 이는 “데 스뻬르베르 호”의 생존 선원들이 1653년 8월 16일 난파당하여 불시착한 후 1666년 9월 5일까지 조선에서 경함한 것의 기록을 활용하고 있다. ‘종교’부분 기록 내용은 17 세기 조선의 불교와 의례, 조선 승려와 계율, 불교와 사찰 교육 그리고 불교 건축과 사원 관리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특히 불교와 불교의 식에 대한 유자들의 인식과 불교가 백성들의 죽음의례에 여전히 깊이 간 여하고 있고, 평소 그들이 절에 가서 기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한편 당시 상주권공이나 수륙재가 설행되는 풍경도 읽을 수 있는데, 여기에는 생태적 음식에 대한 기록은 소략하나 자신들의 조상을 위한 의례가 행해 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찰이 교육기능은 물론 사회복지기능도 하며 사찰의 고아들에 의해 사자상승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살펴보았 다. 또 불사의 권선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알게 한 귀중 한 민족지 증언이 아닐 수 없다. 본 연구에서는 『하멜보고서』가 전하는 17세기 중엽 조선의 종교생활이 매우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사람이 쓴 최초의 조선에 대한 민족지(ethnography)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는 17세기 중엽 이후 일어나고 있었을 법한 조선의 유교문화의 전개양상과 견주어 함께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고 할 것이다. 이는 제도적으로 불교와 불교 의식을 폐지하려는 유자들의 권력이 더 강해지는 환경에서 민중들이 어 떻게 불교와 불교적 세계의 신앙을 영위했을까의 문제로 나아간다고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하멜보고서』가 전하는 실상은 청허당 서 산대사 휴정의 염불문과 의문(儀文)이 해남 대흥사를 중심으로 소비되는 맥락을 깊이 있게 천착할 수 있는 실증자료라고 생각된다. 특히 17세기 후반 이후 전개될 조선 후기 유교의 종법질서에 입각한 『주자가례』와 문 중(門中)의 문화와 대비하여 개인과 가족, 각 마을의 민중들이 당면한 문 제를 해결하려는 종교적 실천행위에서 불교의례의 역할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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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2024.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aims to gain insight into society and culture in the 10th to 7th centuries B.C. by exploring the clothing in Assyria, which was the most powerful force in Mesopotamian civilization at the time. As a research method, literature and empirical studies were conducted in parallel, focusing on a total of 127 Assyrian artifacts held in domestic and foreign museums.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The basic forms of Assyrian clothing are tunics and shawls. The tunics have short sleeves and are knee or ankle length with a special type of tassel decoration. They have a wide belt at the waist, and a decorative panel is attached vertically below with a strap. In addition to the basic clothing, there are loincloths and overskirts, with some having open right sides and fringe decorations to denote a higher status. The overskirt has a third or fourth-tier skirt structure with an open front and fringe decorations on the edges. Most military members, except for archers, wore knee-length tunics as uniforms. As for armor, they wore short-chest or knee-length coat-type lamella armor. Headwear mainly consisted of cylindrical hats and headband-type decorations. In the case of bracelets, mainly rosette-shaped decorations and simple ring-shaped bracelets with three or one turn were worn. For shoes, sandals were mainly worn, and soldiers mainly wore boots. As a result, each costume element is expressed in various ways depending on the wearer’s status, clearly showing Assyrian costum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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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2024.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traces the origin of the current <Romanization of the Korean Language> back to the 19th century to engage in a discursive analysis of Romanization. Central to this discussion is the question of what the object of the discourse is, as discourse is not inherently given but is constructed through a particular perspective. This paper examines the context that led to the development of Romanization in the 19th century to identify the object of the Romanization discourse and the trajectory it followed. Furthermore, it investigates 19th-century texts that addressed Romanization issues to seek for the perception of the West in Joseon during that era. The shift in Western perceptions of Joseon led to the initiation of Korean language studies and the development of Romanization syst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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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2024.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고려청자 문양 연구에서 그동안 모란과 작약, 훤화와 연화 문양의 세부 특징을 분석하지 않고, 훤화를 연화나 초화로 분류하거나 작약을 모두 모란으로 명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 다. 이러한 경향은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본 논문에서는 중국 정요 자기의 영향을 받은 각 화목의 문양과 구성 요소를 비교 분석하여 문양을 분류하고 명칭 분류의 필요성을 제기하였 다. 대부분 모란으로 분류되었던 작약문의 존재를 확인하고, 작약이 중앙 관사인 중서성을 상징했던 사실도 문헌 기록을 통해 밝혔다. 또 정요 자기에서 연화문으로 분류되던 여러 형 식의 훤화문도 고려청자에 영향을 주었다. 정요 자기와 고려청자의 화훼절지문은 문양 구성이 유사하지만 시문 기법에서는 차이가 있다. 고려에서는 정요 자기의 음각과 유사한 획화 기법 대신에 성형과 시문이 동시에 가능 한 압출양각 기법을 선택하였다. 정요 양식의 화훼절지문 청자는 12세기 전반과 후반의 제 작 경향이 달랐다. 12세기 전반에는 압출양각과 함께 음각 기법도 구사하고, 백색내화토 빚 음이나 규석 받침이 품질 차이 없이 생산되었다. 정요 자기의 문양을 해체하여 재조합하거나 시문 기법을 바꾸는 등 외래 요소에 대한 적극적 변용도 행해졌다. 그러나 12세기 중반 이후 부터는 절요접시의 꺾임이 완만해지고, 모란절지문과 작약절지문만 압출양각 기법으로 13세기 초까지 생산되었다. 또한 선화봉사고려도경의 ‘定器制度’에 대해 연관된 여러 용어의 용례를 검토한 결과, 정요 자기의 크기, 형태, 규격 등을 의미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정기제도’는 12세기 전반에 고려청자 제작에 정요 자기의 영향이 매우 컸던 상황을 충실하게 기술한 것으로 판단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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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2024.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9세기 신라 구법승은 당에서 어떤 불교 성물을 보았을까? 이 글은 신라 구법승과 같은 시기 당(唐)에 머물며 장안(長安)과 양주(揚州), 태주(台州) 등지에서 불교 경전과 서적 뿐 아니라 불화와 백묘 도상, 밀교 법구 등을 수집해 간 일본 구법승들의 청래목록(請來目錄) 을 살펴보았다. 입당팔가(入唐八家)라 알려진 일본의 9세기 구법승, 즉 사이초(最澄), 구카 이(空海), 조교(常曉), 엔교(圓行), 엔닌(圓仁), 에운(惠運), 엔친(圓珍), 슈에이(宗叡)가 작성한 청래목록을 읽으며 그들이 가지고 온 그림과 도구 등의 미술사 관련 물목을 정리하 고, 신라 불교미술과의 연관성을 탐색해 보았다. 9세기 일본 승려들이 입당한 주요 목적은 밀교 수법에 필요한 만다라와 도구 등을 구하는 것이었지만, 여정에 따라, 또 개인적인 관심사나 인연에 따라 천태(天台)나 선(禪) 등 비밀 교적인 그림이나 성물도 수집했음을 확인했다. 이들이 공들여 수집한 물건들 가운데에는 신 라 구법승도 관심을 가지고 보았을 것이고, 신라로 장래(將來)한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 글에서는 화본(畫本)으로 전해진 밀교 도상이나 단감(檀龕), 즉 전단목(栴檀 木)으로 제작한 불감 등 그간 신라 불교미술 연구에서 주목해 온 항목을 재확인했다. 이에 더해 근래 주목을 받는 경주 출토 <범한다라니(梵漢陀羅尼)>(본관6860)가 사이초의 목록 에서 보이는 <범한양자수구즉득다라니(梵漢兩字隨求陀羅尼)> 등 범자와 한자 두 글자로 적힌 다라니의 유통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리고 조교와 엔교, 엔닌의 목록에 보이는 보리상(菩提像)과 수월관음상(水月觀音像)의 유통 양상을 주목했다. 이 외에도 목 록에 보이는 다양한 종류의 고승 진영, 오대산(五臺山) 및 천태산(天台山) 관련 유물, 인불 (印佛)과 인탑(印塔) 역시 앞으로 더 주목해 보아야 할 소재임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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